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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1.15 그래도 결과적으로만 살진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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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초가 되면 으레 한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해의 각오를 다집니다. 지난 몇년동안 연초마다 그런 생각을 정리해서 포스팅을 했는데, 2018년이 벌써 보름이 지났지만 아직 그런 글도 적지 못했고 어떤 걸 적어야할지 생각나는 것도 별로 없습니다. 최근 티스토리에 글을 적는 회수가 줄어드니 포스팅하는 습관 자체가 사라저버린 것은 아닌지... 아침에 짧게 회사 게시판에 글을 적었습니다. 어쩌면 그 글 속에 2018년의 저의 모습이 투영된 것 같아서 그냥 그 글을 가져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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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인간은 결과적이다.
좋은 결과든 나쁜 결과든.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겨울을 보내고 판교로 이주하겠노라고 약속한 것은 다른 잡다한 이유도 있지만 제주에서 마지막 겨울을 온전히 보내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고, 그 욕심의 근원에는 하얗게 눈덮인 비자림로 (사려니숲길 입구)의 사진을 찍어보겠다는 바람 때문이다. 재작년 페이스북에 올라온 어느 동영상을 보면서 가졌던 아쉬움을 지난겨울에 해소하지 못했을 때 또 한번의 기회가 더 있을까?라는 거의 포기 상태였다. 하지만 겨울을 한번더 제주에서 보내게 됐는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판교 출장 신청을 할 때 그 주의 날씨가 어떤지부터 체크했다. 지난 주 출장도 대설을 기대하지 않았기에 출장신청한 거였는데, 막상 판교에서 제주의 폭설 뉴스를 봤을 때는 일종의 좌절감을 느꼈다. 하고 싶다고 하고자 한다고 해서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구나... 그래도 목요일에 제주로 내려오면 금요일은 휴가내면 가능성은 있겠다는 작은 희망을 가졌었다.

그런데 목요일 오후에 김포공항에 갔을 때 20분 지연 소식을 들었다. 오전에 결항이 많았을 정도로 혼잡했을테니 20분의 지연을 평소와 다름없었다. 하지만 공항에 도착한 비행기에서 승객들이 다 내린 후에도 탑승은 시작되지 않았다. 제주공항에 다시 눈이 내러서 제설작업을 해야하니 언제 끝날지를 모른다는 거였다. 그렇게 무기한으로 기다렸다. 혹시나 해서 다음날 내려가는 비행기표도 미리 예약하면서 기다렸다. 다행히 한시간 후에 7:30에 제설작업이 모두 끝나서 비행기를 탑승할 수 있었다. 설마 내려오는 중에 또 폭설이 내려서 공항이 폐쇄되고 회항해서 돌아오는 것은 아닐까라는 두려움도 있었다. 제주공항 근처에서 가장 심한 터뷸런스를 만났지만 어쨌든 9:30에 무사히 제주공항에 도착했고 눈발이 날리는 중에 집까지 무사히 운전해서 올 수 있었다. 금요일은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고 도로는 많은 눈이 쌓여있었다. 출근을 위해서 셔틀은 어쩌니 재택근무를 하면 안 되느니 등의 많은 문자가 제주채팅방을 뒤엎었지만, 이런 날은 그냥 휴가를 내고 집에 있는 게 좋다. (애가 있는 집이면 그냥 휴가내고 애랑 놀아주는 게...) 날씨도 춥고 막상 눈이 계속 내리니 사진 찍고 싶은 욕심도 없이 그냥 방에 누워있고 싶었다. 그럼에도 카메라를 챙겨서 길을 나섰다. 비자림로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비자림로 사진을 찍고 걸어서 내려올 생각이었다. 정확히 일주일 전에 그렇게 했었다. 하지만 중산간 도로의 제설작업은 시작도 안 돼서 모든 버스는 운행중단이었다. 고민하다가 그냥 비자림로까지 약 8km를 걸어갔고 (가는 중에 제설이 돼서 돌아오는 길에는 버스가 운행하기를 살짝 기대했지만) 또 걸어서 내려왔다. 아침 식사도 거른채 초코바같은 요기거리도 없이 그저 삼다수물 한통만 들고서 거센 눈바람을 맞고 한 18km정도 걸었다. 동영상에서 봤던 만큼의 눈이 쌓인 것은 아니었지만 그대로 미련을 남기지 않을 정도로.. 결과는 좋았다.

Canon | Canon EOS 5D Mark III | Aperture priority | Partial | 1/160sec | +0.67 EV | 23.0mm | ISO-400 | Off Compulsory | 2018:01:12 12:30:12

전날 많이 걸었기에 토요일은 조용히 보내고 일요일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났다. 잠시 밖을 나와서 한라산을 바라보니 시계가 좋았고 하얀 한라산이 다시 유혹한다. 백록담 (사라오름)이나 윗세오름 등산은 불가능하겠지만 1100고지에 가서 상고대는 보고와야겠다는 의욕이 생긴다. 분명 1100고지에 가면 환상적인 경험을 할 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올라갔고 (윗세오름 등산객들이 몰려서 도로가 혼잡했던 것을 제외한다면) 천백고지 정상 부근에서 도로를 따라서 왕복 약 5km를 걸었다. 전전날 18km가 무리가 됐지만, 걷는데 큰 불편함이 없었다. 저기에 가면 분명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가지 않았다면 좋은 것을 볼 수 없었을 거다.

Canon | Canon EOS 5D Mark III | Aperture priority | Partial | 1/200sec | +0.67 EV | 138.0mm | ISO-100 | Off Compulsory | 2018:01:14 09:52:47

요즘 평가 시즌이다. 1년동안 내가 뭘 했나를 고민하고 옆의 동료들이 뭘 했나를 정리한다. 평가라는 것이 결과에 관한 거다. 아무리 과정이 좋았더라도 결과가 없으면 평가가 되지 않는다. 간혹 장기적인 관점으로, 투자의 개념으로 성과없이 2~3년 연구개발하도록 지원/방관하는 케이스도 있지만, 대부분의 회사 업무는 길어도 6개월에서 1년 내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실패한 거나 다름이 없고, 그 이상을 잘 기다려주지 않는다. 데이터 분석 작업이나 추천 알고리즘 작업을 오랫동안 해왔고 광고 쪽 도메인 지식도 많이 쌓았지만 다시 비즈추천셀로 넘어왔을 때 내가 바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핑계일수도 있지만 실질적으로 그랬다. 하지만 지난 1년동안 더 다양한 논문도 읽고 해결해야할 문제를 다양한 측면에서 검토하고 새로운 알고리즘도 구상하고 구현하고 실험했다. 하지만 그게 시스템에 반영돼서 매출에 기여했다거나 실질적인 개선작업이 이뤄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태도와 역량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실질적인 결과물이 없는 상태에서 나는 다시 평가대 위에 올랐다. 많은 것을 했지만 결국 한 것이 하나도 없다. 많은 것을 알고 있고 어쩌면 똑똑한 척했지만 결국 빛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평가에서 과정이 참고는 되겠지만 평가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평소에 10~12km정도를 걷는 것이 다리에 큰 무리도 주지 않고 적당히 운동했다는 기분을 낼 수 있는 거리라고 생각했다. 그 이상을 걸으면 다리가 아파서 다음날까지 힘들다. 하지만 금요일에 18km를 걸었지만 일요일에 다시 5km를 걸을 때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2015년 크리스마스 때 윗세오름을 다녀온 후로 겨울 (백록담/윗세오름) 산행을 하지 않았었다. (지난 겨울에 사라오름을 두번 갔다오긴 함)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많이 떨어져서 힘들 것같다는 것이 주요 이유였다. 하지만 일주일 전에 14km를 걷고 일주일만인 지난 금요일에 18km를 걷고 나서도 어제 이른 아침에 1100고지 산책이 별로 힘들지 않았다. 기본 체력이 다시 채워지는 기분이다. 매주/격주로 축구를 할 때는 조금 숨이 차도 한시간을 뛸 수 있었지만, 한두달을 쉬고 다시 피치 위에 서면 숨이 차서 전반전은 거의 걸어다닌다. 하지만 또 매주 경기장에 나서면 또 어느 샌가 한시간을 달릴 체력이 생긴다. 결과적으로 2017년은 (결과물이 없는) 실패한 해였지만2018년을 달리게 하는 기초 체력을 마련해줬다. 인간은 결과적이다. 평가는 결과를 평가한다. 하지만 결과를 위한 과정이었다고 스스로 위안하며 다시 시작점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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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라는 집단은 결과, 성과 즉 KPI로 사람을 평가할 수 밖에 없는 곳이다. 회사 밖 세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데이터의 시대에는 모든 것이 측정되고 정량화된다.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들로 평가를 받고 평판을 얻는다.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것은 필요치 않고 그저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나인 셈이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완벽한 것도 아니다. 평가받기 위한 결과로만 살고 싶지는 않다. 남들이 원하는 것을 주면 좋은 사람으로 여겨지겠지만 그건 나 자신이 아닐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결과물을 만들어내겠지만 그것만으로 끝나지는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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