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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사람들

Gos&Op 2014.03.14 13: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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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앱 하나가 기사에 소개됐다. 앱에서는 속풀이라고 표현했지만 회사에 관한 또는 근무하면서 발생한 여러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뒷담화를 하는 익명게시판 서비스인 팀블라인드라는 앱이다. 기사가 나왔을 때는 다음은 게시판에 포함돼있지 않았는데, 그저께 다음도 서비스에 포함되어, 앱을 설치해서 바로 가입했다. (내가 이미 글을 적었는지 댓글을 달았는지에 대해서는 노코멘트. 날 감시하는 사람들이 있을테니… 그리고 적더라도 길게는 안 적을 예정임. 내 문체는 내 개인정보처럼 모두에게 식별되기 때문에)

아직 서비스 초기라서 회사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을테지만 그래도 벌써부터 가입해서 열심히 글을 적고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많다. 익명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조금 과격한 표현도 있고 또 반대편에 선 사람들도 눈에 띈다. 서비스 초기지만 나름 활기를 띈다. 어쩌면 내가 이 회사에 온지 6년만에 처음 보는 활기다. 물론 절대적으로 많은 숫자의 글이 올라오는 것도 아니지만 여지껏 이 정도의 반응을 본 적이 없다. 사내의 공식 게시판을 통해서도 아니면 야머라는 게시판을 통해서도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자발적인 열기다.

나는 그런 익명게시판이 좋으냐 나쁘냐를 말하고 싶지는 않다. 긍정적인 요인과 부정적인 요인은 어디든 존재하는 것이고, 비단 익명성만의 문제도 아니다. 물론 익명성을 남발하는 것은 자제됐으면 좋겠고, 또 특히 떳떳이 자신의 존재를 밝히지도 못하는 찌질이들이 익명성에 의존하는 것은 늘 반대였다. (물론 함구하는 것보다는 적당한 선에서 익명성에 기대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밝히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함) 적어도 익명게시판을 통해서라도 그동안 경험치 못했던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의 생각 (불평/불만이 대부분이지만)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게 생각하고 있고, 또 그들이 이것을 통해서라도 울분의 한풀이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한 순간 (나를 포함해서) 이 사람들은 참 불쌍한 사람들이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얼마나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을까? 어디 속편히 털어놓지도 못하고 그런 불평불만을 속으로만 삭혀야했던 그들에게 연민을 느낀다. 나만하더라도 조금 감정적인 글을 적으면 왜 그렇게 감정적이냐고 피드백을 받고, 또 그래서 감정을 최대한 자제해서 드라이하게 글을 적으면 또 반항하냐라는 피드백을 받는다. 사내 게시판에 한동안 활동을 많이 했지만 이상한 반응들을 본 이후로 (거의) 절필하고, 1년에 1회정도만 가끔 글을 적고 있다. 나는 그래도 나름 남들의 평가나 의식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도 눈치를 보면서 글을 적지 않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나보다 더 여리고 착한 사람들은 어땠을까?라고 생각해본다. 그들은 나처럼 속의 이야기를 막 꺼내지 못하고 혼자서 삭히거나 또는 주변의 친한 사람들에게만 조용히 이야기를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제 익명게시판이 생겨서 그나마 속풀이라도 하기 시작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해보니 그들이 참 불쌍하다고 느껴졌다. 그동안 얼마나 참았으며 또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리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라고 말하는 무책임한 사람들도 경멸한다. 그런 인간들 때문에 싫어지는 거다.)

앞서 말했듯이 사내게시판은 그 역할을 상실한지 오래다. 물론 꾸준히 하루에도 10여개의 글이 올라오지만, 공지사항, 분실물/습득물 신고, 서비스 장애 등이 대부분이다. 한동안은 그나마 글쟁이들이 있어서 뻘글이라도 적었는데, 그런 사람들도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고 또 회사를 떠나버렸다. 야머라는 좀더 자유로운 공간도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또 공개적인 공간에서 자신의 신세한탄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많은 소리, 다양한 소리는 결국 헛소리였던가라는 자책을 하며 지낸지도 오래다. 오죽했으면, 글쟁이 10명을 모아서 돌아가면서 한명씩 하루에 한 개씩만 적어도 2주 주기로 다양한 글을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했고, 그걸 실행에 옮길까?를 고민했었다. 그러나 말했듯이 글을 쓰지 않기로 결심했고 이런 모음글도 적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얼마나 많이 회사/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아왔던가? (물론 나는 표현의 자유가 모든 것이 허용된다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런 인고의 시간 속에서 사람들을 스스로 강압되고 학습돼왔다. 자기검열의 수준을 넘어서 스스로 입을 닫아버린 이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지금 익명게시판에서 벌어지는 현상이 -- 더 크게 폭발하고 더 지속되기를 희망한다 -- 이 회사, 그리고 크게는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를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행동해야 한다. 비록 익명성이 그들을 자유케했지만 계속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원래 말없고 얌전하고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인데, 왜 이렇게 투사가 되어가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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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미화해서 글을 마치자면) 많은 글들이 기본적으로 사랑과 관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오늘 해외축구 기사에 네스타의 인터뷰 내용이 소개됐는데, 단어 몇 개를 고치면 많은 사람들이 (익명)게시판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말이 이런 게 아니었을까?

네스타는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와의 인터뷰에서 "이것은 내 밀란이 아니다. 우리는 대규모 투자를 하거나 큰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현재 우리는 선수 영입에 쓸 수 있는 돈이 없다. 이것이 경기력으로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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