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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시대마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키워드가 있다. 지난 2월에 한 시대를 마감하고 또 다른 시대를 준비하는 시점에 '소통에서 진정성으로'라는 글을 적었다. 지금은 진정성이 시험대에 오른 시대다. 이런 진정성의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또 고민하게 된다.

가볍게 TV예능 얘기로 시작하자. 지난 토요일에 무한도전 8주년 기념으로 무한상사가 방송되었다. 무한상사에서 보여준 정리해고라는 삶의 무게에서 느껴지는 우리네의 삶과 애환이 무겁게 다가온다. 무한도전이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감싸는 것은 그 속에 담긴 진정성을 빼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잘 알다시피 무한도전은 리얼버라이어티 시대를 개척했다. 리얼버라이어티는 돌발성이라는 리얼리티를 추구하지만 기본적으로 버라이어티라는 틀을 유지하고 있다. 잘 짜여진 대본은 없더라도 전체 맥락과 상황을 구성하는 작가들이 존재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의도된 미션들이 주어지고 그것을 수행해나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돌발성 때문에 리얼리티가 보여진다. 무한도전 이후로 쏟아졌던 많은 예능들 -- 1박2일, 패밀리가 떴다, 런닝맨, 정글의 법칙 등 --은 무한도전의 카테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무한도전의 진정성이라고 표현했지만 리얼버라이어티의 기본은 소통의 문제였다. TV 속에만 등장하는 스타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네의 일상 생활 속에서 부대껴 살아가는 이웃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 리얼버라이어티였고, 그것이 일종의 시청자와의 소통이었다. 실제 많은 에피소드에서 연예인들만의 말장난, 몸장난이 주를 이룬 특집보다는 일반 시민들과 부딪히는 상황이 많았던 특집이나 사회문제/시대정신을 반영한 특집들에서 더 큰 호응을 얻었다는 것은 TV 속의 연예인과 일반 시민들 사이의 교감/교류, 즉 소통의 핵심성을 잘 보여주었다.

그리고 더 최근에 방송의 한 꼭지를 차지했던 다양한 오디션 프로그램들에서는 TV스타가 아닌 재능을 가진 일반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일반인들과 연예인들의 묘한 비중의 차이에서 프로그램의 성패가 결정된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일반인이 연예인으로 발굴되고 성장해가는 것도 일종의 큰 벽이 허물어지는 소통의 정점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오디션 프로그램이 성숙할 수록 더욱 부각되는 것이 진정성이었던 것같다.

리얼버라이어티와 오디션의 시기를 넘어서 최근에 보여주는 트렌드는 말 그대로 '진정성'을 핵심 개념으로 내세우는 것같다. 최근에 새로 시작해서 호응을 얻고 있는 프로그램들의 특징은 리얼버라이어티에서 보여줬던 시나리오가 무시되고 있고, 버라이어티가 아니라 그냥 리얼리티를 주무기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소위 말하는 관찰카메라, 즉 그냥 다큐버라이어티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아빠 어디가' '나 혼자 산다' '진짜 사나이' '인간의 조건'에서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컨셉이 그냥 스태프들은 상황을 관찰할 뿐이다라고 말한다. 큰 틀에서 미션이 주어지거나 상황이 설정되기는 하지만, 이전의 무한도전이나 1박2일에서보다는 자유도가 훨씬 더 높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글의 법칙'은 과도기적인 작품이었던 것같다.) 미션은 주어지지만 아이들의 돌발성을 그대로 허용하는 아빠 어디가, 주제만 정해놓고 일주일간 그냥 관찰만하는 인간의 조건, 군대/내무반이라는 상황만 존재하는 진짜 사나이, 그리고 그냥 혼자 잘 살고 있는 독거남들의 집에 카메라만 설치한 나 혼자 산다 등의 최근 프로그램들은 그냥 현실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그런 가공되지 않은 현실이 진정성이다. (최근 정법 뉴질랜드편에서 제작진들이 애써 변명하려했던 것도 일종의 그런 진의를 재설정하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한다.)

무한도전으로 시작된 리얼버라이어티에서 보여줬던 소통의 정신이 슈스케를 통해서 더욱 부각이 되어 나는 혼자산다로 이어지면서 만들어진 여과되지 않은 현실성이라는 키워드가 비단 TV예능의 트렌드로 끝날 것같지가 않다.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적인 문제에서 소통이 중요한 키워드였듯이 이제는 진정성이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용하고 만들어갈 IT 서비스들도 그런 사회 분위기/트렌드에 맞춰져야 한다. 이 시대와 세대가 요구하는 것이 진정성이라면 IT서비스도 진정성의 구현에 초점을 둬야 한다. 사실 진정성없는 소통은 무의미하고 소통이 없는 진정성은 보여질 수가 없기 때문에 소통과 진정성을 별도의 개념으로 떼내어 얘기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소통의 정신과 진정성이라는 시대정신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정도로만 얘기를 해두자. 그리고 잘못된 소통은 소음에 불과하다. 현재 논란의 중심에 있는 층간 소음이 그렇고, 계층간 소음이 그렇다. 진정성이 없는 소통은 그냥 소음에 불과하다.

지난 글에서 밝혔듯이 지난 정권에서는 소통이 가장 큰 화두였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MB정권은 소통의 부재의 시대가 아니라, 신뢰의 부재, 즉 불신의 시대였던 것같다. 그런 내재되고 억압된 신뢰라는 문제가 -- 그는 소통이라는 키워드로 의제를 설정했으나 -- 진정성이라는 키워드로 정리된 것이다. 그런 분위기가 TV방송에서 그대로 나타나는 것같다. 새로운 정권이 시작하기 전에 진정성의 시대를 잘 맞이해야 된다라고 말했는데, 몇 달이 지난 지금 진정성이 크게 훼손된 것을 본다. 공약이 공약이 되어버렸다. 어떻게 해서 국민들이 그렇게 세뇌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공주님은 약속을 잘 지키는 정치인이다라는 신기루같은 믿음이 있었고, 어쩌면 그런 허상 때문에 지금 여제가 되었다. 그런데 이제 실제 보여지는 여과되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그래서 언론과 대중에 잘 노출되려하지 않는다) 진정성이 의심받기 시작했다. (의심받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나마 불행중 다행이다. 꿈에서 벗어나는 길은 먼저 잠에서 깨어나야하기 때문이다.) 시민이 주인이 되지 못하는 경제민주화라든가 실체가 없는 창조경제라는 용어로 여전히 국민들을 꿈꾸게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실망하고 있다.

MB시대를 거치면서 가장 각광을 받았던 서비스는 촛불과 함께 아고라라는 공론의 장이 이슈가 되었고, 이후에 아이폰의 등장과 함께 각종 SNS라는 연결과 소통의 서비스가 주를 이뤘다. 인터넷이 처음 대중화되던 시절에는 오프라인의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대체되었듯이 스마트폰의 시대를 맞으면서 모든 온라인 서비스들이 모바일 최적화가 이뤄졌고, 그런 모바일 퍼스트의 핵심은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중심으로 어떻게 (서로를 -- 정보와 사람, 사람과 사람) 연결해서 묶을 것인가?가 시대의 화두였던 것같다. 소통의 시대에 소통의 도구가 각광을 받았던 것은 당연하다. 아고라가 그랬고, 트위터가 그랬고, 페이스북이 그랬고, 카카오톡이 그랬다.

소통의 시대에서 진정성의 시대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 새롭게 등장하는 서비스들도 소통이 핵심이 아니라 진정성이 핵심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제 소통의 도구는 그냥 기본이 되었다. The step after ubiquity is invisibility라는 말이 생각난다. 이제 모든 서비스의 기본에 모바일과 소통의 정신이 체화되어버려서, 모바일이나 소통을 전면에 내세울 필요가 없어졌다. 소비자들은 으레 새로운 서비스가 나오면 모바일에서도 잘 작동하겠지 또는 친구들과 공유하는 것이 편하겠지라고 생각한다. 지난 몇 년동안 중요하게 생각되던 기능들은 이제 모든 서비스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 시점에 역트렌드로 모바일무시 또는 고립된 서비스를 만들어서 특정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도 있다. 어떤 측면에서 개인정보와 프라이버시 문제와 함께 그런 역트렌드 서비스가 오히려 진정성의 구현으로 각광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소통의 기능이 기본이 되어버렸다면 이제 새로운 차별화 포인트가 필요하다. 진정성의 시대에 그런 차별화 포인트는 당연히 진정성일 듯하다. 개인의 진정성을 표출할 수 있는 공간/기능/서비스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안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여전히 진정성은 모호한 개념이다. 적어도 소통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가 있지만, 진정성은 겉으로 표현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굳이 표현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진정성이라는 단어의 개념부터 제대로 정립해야겠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면 어느 정도 정리될 것같다. 적어도 진정성의 여부를 사람들이 판단하는 기준은 생길 것같다.

일상 속의 진실된 나의 모습을 알리는 서비스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아주 사소한 생각이나 활동이더라도 그것이 나 자신을 제대로 반영하는 것이라면 일기를 적듯이 표현하는 그런 서비스일 수도 있다. 진정성의 시대에는 개인이 개인으로써의 브랜드가 중요해질 것같다. 평판이라 불리는 그것이 개인에게 더 중요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의 평판을 관리하는 서비스가 마련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역으로 평판 세탁을 도와주는 서비스도 성행할지도 모르겠다. 공인들의 말과 행동을 감시해서 그 사람의 진정성을 관찰, 평가하는 것들도 등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정치인들이 했던 모든 말을 모아서 그 사람의 일관성을 측정해보고 실제 선거철에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고, 선거 공약으로 등장했던 것들이 얼마나 제대로 지켜졌는지에 대한 것도 점검될 것이다. 그런 공인들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것이 그저 깨어있는 시민단체를 넘어서 대중에게 퍼질지도 모르겠다.

이제 단순 연결보다는 속깊은 신뢰가 더 중요해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런 신뢰 진정성의 시대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짧은 설을 내부인들에게 짧게 펼치고 싶어서 글을 적으려고 했는데 너무 장황하게 흘러갔고 또 본론/결론은 미약해졌다. 그냥 시대의 정신이 소통에서 진정성으로 넘어가고 있으며, 새로운 서비스는 그런 흐름에 맞춰야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내 글이 늘 용두사미로 끝나지만, 구체적인 액션플랜을 제시하기보다는 그냥 시대(정신)의 흐름을 말해주고 싶었다.

(2013.04.28 작성 / 2013.05.06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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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출근길의 일입니다. 여느 때처럼 같은 길로 차를 몰고 출근하고 있는데, 바로 머리 위로는 검은 구름으로 덮였지만 멀리 바다 위로 파란 하늘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길 가에 핀 억새는 쓸쓸한 가을을 너무 잘 표현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차를 잠시 세우고 아이폰으로 아래의 사진을 한장 남겼습니다. 매일 이런 길을 통해서 출퇴근을 할 수 있는 것도 복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늘 같은 길을 다니면서 매번 바뀌는 바깥의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도시인들이 상상하기 힘든 광경입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이렇게 매일 매일의 날씨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때, 지금 감지하고 있는 변화가 그냥 날씨의 변화 뿐일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지금 감지하고 있는 것이 날씨의 변화가 아니라, 계절의 변화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연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패션 fashion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핀터레스트에서 패션관련 이미지들을 아침에 보고 나왔기 때문인지 아니면 나는 평소에 허름한 옷을 입고 다니지만 사실 패션에 매우 민감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속마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던 문을 나서는 순간 패션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순간순간 변하는 패션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때에 맞는 아이템들을 준비해서 몸에 걸친다고 해서 그것을 소화하는 사람의 펀더먼탈 (겉으로 보이는 체격/외모나 내재된 인품 등)이 부족하면, 화려하고 값비싼 패션아이템도 무용지물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 때, 단순히 시대의 트렌드 trend 에 맞출 것이 아니라 먼저 서비스의 펀더먼털 fundamental이 뭔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위의 사진을 찍는 순간 내가 알아차린 변화가 날씨였는지 아니면 계절이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짧은 주기로 변하는 날씨는 패션과 같다는 생각을 했고, 조금 더 긴 주기의 변화인 계절은 (메가) 트렌드와 같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변하는 날씨를 알아차리고 또는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듯이 만들고/관리하고 있는 서비스의 패션과 (중장기) 트렌드를 바로 캡쳐해내는 능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단순히 변화를 감지하는/읽는 능력을 갖고 싶다는 바람보다는 앞서 말했던 그런 펀더먼탈을 창조해내는 능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강했는지 모릅니다.

트위터와 함께 단문 실시간 서비스가 인기를 얻으니 모두 회사들이 비슷한 서비스 개발에 뛰어들고, 4Sq처럼 위치기반의 서비스가 주목을 받으니 또 모든 서비스에 위치정보를 활용하려고 하고, 또 페이스북을 위시한 소셜이 대세라고 하니 모두 소셜 소셜거리는 것이나, 빅데이터를 활용해야 한다는 뉴스가 떠면 또 모두가 빅데이터를 가지고 장난을 쳐야만 할 것같은... 어쩌면 이런 것들은 모두 단기 패션에서 중기 트렌드일 뿐, 펀더먼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트렌드 얘기를 꺼냈으니 오래 전부터 적고 싶었던 글이 있어 짧게 적습니다. 별도의 글로 적고 싶었지만 구체적으로 장문을 만들지 못할 것같아서 계속 미뤄뒀던 겁니다. 흔히들 트렌드를 잘 읽어서 빨리 그 트렌드에 편승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앞서 실시간, 위치정보, 소셜, 빅데이터 등도 모두 트렌드라고 말했지만 그리고 단순 트렌드에만 의존하지 말라고는 했지만, 그래도 큰 트렌드의 초기에 그것을 알아차리고 시도를 하면 성공적인 결과를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변하는 트렌드에 촉각을 세우고 언제든지 갈아탈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트렌드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업트렌드 up-trend와 다운트렌드 down-trend라고 이름을 붙여봅니다. 말 그대로 업트렌드는 첫물 즉 트렌드의 생성이고, 다운트렌드는 끝물 즉 트렌드의 소멸입니다. 보통 업트렌드의 경우 언론이나 전문가들이 많이 떠들어대기 때문에 잘 알아차립니다. 그래서 그런 트렌드에 편승하기 위해서 전력투구를 합니다. 그런데 다운트렌드의 경우 사람들이 잘 알려주지 않습니다. 트렌드를 잘 읽는다는 것은 새로운 트렌드를 알아차리는 것도 있지만, 과거/현재 트렌드의 소멸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트렌드에 맞는 새로운 서비스/기능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으로 소멸되는 트렌드에 맞는 서비스/기능을 버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보통의 경우 너무 늦게 트렌드에 편승하다보니 소멸되는 트렌드를 읽지 못하고 뒤늦게 뒷북을 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해서 이런 코멘트를 답니다. 현재 매진하고 있는 서비스/기능들을 잘 리뷰해보세요. 어쩌면 단물이 다 빠진 트렌드에 헛수고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요약하면, 업트렌드와 다운트렌드를 모우 읽고 대처할 수 있어야 하는데, 성공하려면 업트렌드를 읽어야 하고 실패하지 않으려면 다운트렌드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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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그냥 유쾌한 SF 소설을 읽는 느낌으로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 그러나 그 내용이 내일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는 책... 천성적으로 미래를 좋아한다.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는 것보다는 알 수 없는 미지의 내일을 꿈꾸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르겠다. ... 이제껏 읽었던 트렌드분석이나 미래예측에 대한 최고의 서적은 아니지만, 미래에 대한 호기심으로 또는 시간을 보내기 위한 재미로 읽기에는 충분한 가치가 있는 듯하다. 저자가 제시한 내용을 기억해뒀다가 50년 후에 제대로 예측했는지 점검해보는 그런 부질없는 짓은 굳이 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그냥 현재의 트렌드가 어떻고 또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변할 거라고 사람들이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참고만 하면 될 것같다. 잊고 지내다가 실생활 속에서 책의 내용이 기억나는 사건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냥 그 사건을 먼저 예견했다는 듯이 씩 웃고 치우면 그만이다.

 한달 또는 일년 뒤를 예측하는 것보다 50년 100년 뒤를 예측하는 것이 더 쉽다. 먼 미래의 예측은 그 내용의 진위를 검증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일반 경향성에서 장기간이 단기간에 비해서 타임 배리언트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1년 뒤의 미래는 정확히 1년 내에 이루어져야 하지만, 100년 뒤의 역사를 100년의 기간 동안 이루어지면 되기 때문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퓨처 파일
카테고리 경제/경영
지은이 리처드 왓슨 (청림출판,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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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IT, 공학, 및 기술의 트렌드에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 패션계의 트렌드를 중심으로 기술된 책은 그리 흥미롭지가 않았다. 그래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책에서 제시된 트렌드 확산 모델은 너무 단조롭고 이미 다른 형태로 너무 많이 언급된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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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네트워크의 속성을 빌어서 현재의 트렌드를 만들어가고 또 찾아가는 여정에 대해 재미있게 적은 책. 더 깊은 내용까지 원했기 때문에 5점은 줄 수가 없었으나 그래도 강력 추천.

미래학 (미래예측 및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과 트렌드 (현재의 주요 산업 및 브랜드의 트렌드 및 특성, 그리고 어떻게 트렌드를 찾아내고 구조화/가시화할 것인가?)에 대한 근래에 나온 책들은 두루 읽고 있는 것같다. 미래학이나 트렌드에 관심이 있는 초보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다. 특히, 본인이 네트워크 (네트워크 자체의 속성과 네트워크를 이용한 다양한 사회현상 분석 및 적용을 포괄한 전반)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트렌드를 읽는 기술을 네트워크 내에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실제 책의 주요 내용은 트렌트를 읽는 기술보다는 트렌드를 창조해서 공유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라 말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목적을 가진 네트워크지만 그 속에서 균형잡힌 의견의 교류를 통해서 더 큰 이상을 추구할 수가 있다. 때론, 부정직한 (엔론 사태나 주식버블, 피라미드식의 다단계 등)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제대로된 협업네트워크를 형성한다면 그런 부정직한 사태도 미연에 감지해서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집단지성 (군집 창의성)은 집단의 목표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또는 자신의 이익을) 집단에 위임 (commitment)하라'는 것이다. 이는, 보스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인 Benjamin Zander의 다음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 
“We are about contribution, that’s what our job is … everyone was clear you contributed passion to the people in this room. Did you do it better than the next violinist, or did he do better than a pianist? I don’t care, because in contribution, there is no better!”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 Tipping Point (티핑포인트), by Malcom Gladwell
- Linked (링크, 21세기를 지배하는 네트워크과학), by Albert-Laszlo Barabasi
- Wikinomics (위키노믹스, 웹2.0의 경제학), by Don Tapscott & Anthony D. Williams
- Microtrend (마이크로 트렌드, 세상의 룰을 바꾸는 특별한 1%의 법칙), by Mark Penn
- Re-Imagine (미래를 경영하라), by Tom Peters
- Group Genius (그룹 지니어스), by Keith Sawyer
-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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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점 2/5... 좋은 재료를 제대로 요리 못했다. 손님의 입맛이 아닌, 요리사의 입맛에 맞춘 책. 그러나 재료값은 쳐줘야겠기에 3점은 준다.

 '마이크로 트렌드'라는 책이 사회 및 관련 기술에서의 미쳐 눈치 채지 못했던 또는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던 100가지 트렌드를 잘 정리해두었는데, 메가 트렌드 이후의 마이크로 또는 나노 트렌드라는 같은 재료를 두고 맛이 전혀 엉뚱한 책이 나와버린 듯하다. 기술적인 내용을 철학적으로 다룬다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철학적 글쓰기에 대한 본인의 무지인지는 몰라도... 책을 읽으면서의 흥분이나 감동보다는 짜증이 우선되었던 것같다.

 전체적으로 읽으면서 저자가 똑똑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러나, 독자를 감동시키는 능력은 없구나라는 걸 느꼈다. '내가 이만큼 똑똑하고 잘났다는 걸 이제는 알겠지?'라는 투의 글은 읽는 본인을 매우 불편하게 만들었다. 사회과학에도 무지하지만 예술에도 무지한 본인에게는, 특히, 마지막 파트인 '당신도 앤디 워홀이 될 수 있다' 부분은 특히 불편했다. 처음 '당신도...'의 제목을 보면서 느꼈던 것, 그리고 챕터를 읽으면서 굳어졌던 생각은 '당신은 절대 앤디 워홀이 아니다'라는 것을 강조하는 듯했다. 그런 불편함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아량이 넓은 분들에게는 책을 추천한다. 그렇다고 해서, 절대 나를 원망하지는 말기 바란다. 당신의 취향/입맛이 나와 같다면 동지를 얻은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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