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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데이터 관련 업무를 해왔지만, 관련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일을 하면서 느낀 의견일 뿐이고, 어쩌면 다른 많은 데이터 분석가들은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많은 일반인들은 데이터는 매우 정확한 것이다라는 인식을 가진 것같다. 특히 일반 개발자들과 일을 하다보면 대략적인 데이터 관련 로직/알고리즘을 스케치해서 알려주면 세세한 부분까지 내가 알려줬던 내용을 그대로 구현하려는 경향이 있다. 데이터 관련 전문성/경험의 부족에 따른 것일 수도 있고, 그냥 시각의 차이일 수도 있다. 데이터 분석의 결과는 매우 정확하고 그것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분석 업무를 하다보면 엄격하게 정확한 데이터에 기반해서 의사를 결정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분석가의 감이나 경험에 의존하기도 한다. 해결해야할 문제를 검토하고 관련된 데이터를 수집하다 보면 대강 이렇게 로직을 만들고 이정도의 파라메터를 설정하면 된다는 그런 감 또는 경험치가 있다. 데이터가 보여주는 완벽한 궤적의 함수를 구하기 보다는 그냥 대강 SQRT를 씌우거나 LOG를 취하는 등의 데이터 변형을 시켜서 적용해 본다. 예를들어, scale-free 네트워크에서 빈도는 폭발하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시스템에서 나온 데이터라면 그냥 LOG를 취한다는 거다. 적당히 값을 키우고 싶을 때는 그냥 제곱을 적용해보고 더 급격히 증가하는 걸 원하면 세제곱을 해보기도 한다. 그런 경험치 함수를 적용해서 로직을 개발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데이터가 그렇게 말해주기 때문에 그런 수식/로직이 나오지 않을 때가 많다는 거다.

대략적인 로직을 정해서 구현할 개발자들에게 알려줄 때, 어떤 변수의 범위가 필요할 때 특정 값을 지정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대략 10정도보다 크면 된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 11이 좋을지 9가 더 좋을지 나도 모른다. 그냥 안전한 수치를 정하는 것이고, 또 실제 구현해서 테스트하면서 11이 더 좋은 것 같으면 그냥 11로 해도 된다는 의미도 있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구현된 것을 보면 무조건 '10'으로 고정돼있는 걸 본다. 물론 데이터를 보고 값을 정해서 알려주는 것이 내 역할이기는 하지만, 상대방에게 자유도를 주기 위해서 대략적인 걸 말하는데 상대는 그렇지가 않은 것같다. 정확한 스펙과 순서를 요구한다.

아주 미세한 차이가 큰 (역)효과를 내는 분야가 있다. 달에 우주선을 쏘아올리는 경우 0.01도를 잘못 적으면 그 우주선은 우주 미아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 우리가 만나는 많은 데이터 문제들이 그렇게 세밀하지가 않다. 하루에 '데이터'라는 쿼리가 1000번 들어오는 것과 1001번 들어오는 것은 별로 큰 차이가 없다. 광고 CTR을 0.1%를 올리는 것은 매출에 큰 영향을 준다. 그러나 광고 노출에서 어떤 조건을 10을 두는 것과 10.1 또는 11로 두는 것에 따라서 실제 광고 CTR이 0.1% 이상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지가 않다. (물론 중요한 변수인 경우는 차이를 낼 수도 있고, 여러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예상치 못한 결과를 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게 중요한 변수라면 이미 잘 통제되고 있거나 더 정확한 실험 등으로 값을 특정했을 거다.)

그리고 현실에서 정확한 수치가 아닌 것을 원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들어, 최적화 문제/식을 잘 풀었더니 X = 10.56이 나왔다고 치자. 그런데, 원래 문제의 도메인이 정수형이었다면, 즉 Integer program이었다면 10.56은 틀린 답이다. 10이나 11이 돼야 한다. 만약 제고관리나 생산관리 등에서 오늘 하루동안 완성해야하는 자동차의 대수가 100.56대가 나왔다면 100대를 만들고, 나머지 한대는 0.56만큼 미완성품으로 만들어둬야 하는 게 아니다. 이런 경우 하루에 100대를 생산하거나 101대를 생산하라고 명령이 내려져야 한다. (반제품 상태로 나둬도 되는 경우라서 조금 모호하긴 하다.) 최적화 식을 통해서 내일 컴퓨터 8.4대가 필요하다는 값이 나왔다면 당연히 9대를 가져올 거다. 극단적인 예처럼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정확한 수치보다는 그 상황에 맞는 그럴 듯한 수치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데이터를 다루는 사람들은 늘 직관의 선물을 감사히 받아들여야 한다. (다음 이야기에서 정확한 분야나 숫자는 의미가 없다) 초보 분석가가 며칠동안 고생해서 8.347이라는 해를 구했는데, 상사는 그냥 빈둥거리며 놀다가 한 8.5정도 나오지 않을까?라고 직관적으로 얘기하는데 어렵게 구한 값과 별로 차이가 없었다 등의 풍문이 많다를. 직관/경험이 맞고 데이터가 틀렸다는 얘기가 아니다. 데이터가 주는 정확함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얘기다. 초기의 미세한 차이가 향후에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런 경우라면 중간에 변화의 폭이 커지는 사이에 조정을 해주면 되는 것이지 처음부터 엄격할 필요는 없다. (물론, 중간에 미세 조정이 불가한 경우도 있겠지만...) 그리고 데이터가 정확하다고 믿겠지만, 데이터 내에 부정확함을 내포하기 때문에 데이터가 거짓은 아니지만 진실을 얘기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어차피 대부분의 분석은 모집단 전체가 아니라 (편향될 수 밖에 없는) 샘플을 사용한다. 빅데이터도 데이터가 많아져서 부정확함을 상쇄시킬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지, 데이터 자체의 부정확함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머신러닝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알고리즘도 처음에는 랜덤에서 시작하기도 하고, 같은 데이터로 여러 번 같은 프로그램을 돌려도 다른 결과값을 내주기도 한다. (물론 그런 랜덤성을 최대한 없애고 결과의 일관성을 확보하도록 알고리즘이 발전하고 각종 트릭들이 보완되는 거다.)

부정확함은 어느 곳에든지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데이터는 정확하다는 것은 일종의 미신이다. 처음에는 모호함이 주는 자유를 즐겨라라는 것을 적고 싶었는데, 뒤로 갈수록 뉘앙스가 달라졌다. 개발자들은 데이터 전문가들을 무조건 믿지는 말아야 한다. 엄격한 것이 틀렸을 가능성이 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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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6년 10월 2일에 우편으로 DVD를 렌탈하는 미국 업체인 넷플릭스 Netflix에서 많은 이들을 깜짝 놀라게하는 발표를 했다. 2006년도 기준으로 자사가 보유하고 있던 방대한 양의 사용자들의 영화 평점 데이터를 공개하고, 자사의 추천 알고리즘의 정확도보다 10%이상 향상시킨 알고리즘을 개발한 팀에게 상금으로 $1M을 주겠다는 발표한 것이다. 이른바 Netflix Prize 또는 Netflix Contest로 알려진 대회의 시작을 알린 것이다를. 당시만 하더라도 이제 겨우 우편 렌탈에서 온라인 스트리밍다운로드로 넘어가던 초기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놀라운 일이다.

1백만달러 (한화로 약 10억원)의 상금 규모도 놀라웠고, 또 그들이 공개한 평점 데이터의 양도 놀라웠다. 학교에 있으면 신뢰할만한 충분한 양의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데, 넷플릭스에서 공짜로 아니 상금까지 내걸면서 공개한 것이다. 2006-7년도는 학교에서 추천 알고리즘으로 논문을 한참 적고 있던 시절인데, 당시에 구할 수 있는 추천 데이터는 겨우 수천명의 사용자가 수백개의 아이템을 평가한 것이 전부였다. 일부 불필요한 데이터를 제거하고 나면 겨우 몇 만에서 몇 십만의 평가 데이터만 구할 수 있던 시절에, 1억건이 넘는 평가 데이터를 공짜로 얻는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상금뿐만 아니라 양질의 데이터를 얻을 수 었기 때문에 세계의 많은 학자들이 넷플릭스 프라이즈에 뛰어들었다.

참고로 약 48만명의 사용자가 1.8만개의 영화에 대해서 5-star 평점 (rating)을 매긴 약 1억건의 데이터를 공개한 것이다. (참고. https://en.wikipedia.org/wiki/Netflix_Prize) 넷플릭스 프라이즈에서 RSME로 10%를 향상시키는 알고리즘을 찾겠다는 평가 방식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나, 이 글에서는 별로 중요한 이슈는 아니다.

돈의 가치가 많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1백만 달러 (약 10억원)은 여전히 큰 돈이다. 넷플릭스 내에도 똑똑한 개발자들이 많이 있을테고, 추천 시스템으로 유명한 몇몇 대학 연구실과 협업을 하면 더 적은 돈으로 충분히 괜찮은 알고리즘을 만들 법도 했지만, 얼핏 보기에 넷플릭스가 무모한 선언을 한 것처럼 보였다. 물론 대회를 선언했기 때문에 그동안 추천 시스템과 무관한 일을 했던 수학자나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들을 추천 문제에 눈을 돌리도록 했고, 또 3년만인 2009년 6월에 RSME를 10%이상 향상시킨 알고리즘을 얻을 수 있었다. 어느 사기업의 돈으로 인류 전체에 혜택이 돌아가는 연구가 발전한 셈이다.

그래도 최근까지 1백만 달러는 과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다른 (마케팅)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넷플릭스는 1백만 달러라는 푼돈으로 더 큰 것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2006년도 이후에 발표되는 수많은 추천 관련 논문이나 인터넷 포스팅들에서 넷플릭스 프라이즈를 필히 언급한다. 단순히 기업의 브랜드 광고를 위해서도 수억원의 광고비를 책정하는데, 수많은 권위있는 논문, 기사, 그리고 블로그 등에서 10년이 넘도록 넷플릭스를 여전히 언급하고 있다. 아마존 등의 기업도 추천 알고리즘으로 유명하지만, '추천 = 넷플릭스'라는 인식을 많은 사람들에게 심어준 것이 넷플릭스 프라이즈라고 본다. (물론 저같이 IT 및 DT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일반인들의 인식에는 조금의 차이가 있겠지만...)

만에 하나 넷플릭스 프라이즈 (RSME 10% 향상)가 실패했더라도, 아니 전혀 정확도 개선이 없었더라도 넷플릭스는 남는 장사를 했다고 본다. (실패했다면 $1M을 세이브했을테니, 홍보만 왕창했으니 손도 안 대고 코를 푼 격)

오픈 소스를 공개하고 활용하는 것은 오랜 관행이었지만 데이터를 공개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흔치는 않았다. 실리콘밸리의 유수의 기업들이 그들의 핵심 역량을 계속 공개하고 있고 최근에는 국내의 네이버마저 데이터랩을 오픈하는 것을 보면 10년 전에 넷플릭스한 결단은 그저 놀랍다. 보통 방향을 잘 모른다는 것이 문제지만, 방향이 맞다면 얼핏 보기에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지르는 것도 결국은 남는 장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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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의 경제

Gos&Op 2015.05.18 19: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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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에게도 익숙한 경제학 용어가 몇 있습니다. '규모의 경제' (Economy of scale)가 그런 것 중 하나입니다. 규모의 경제란 말 그대로 규모에 따른 경제성, 즉 규모가 커지면 경제적이라는 의미입니다. A라는 물건을 하나만 생산하는데 들어가는 총 비용이 1000원이라면, 같은 물건을 10개 생산하는데는 10 x 1000원이 아니라, 10 x 800원 정도 줄어들어서, 즉 개당 생산 단가가 줄어들어서 경제성을 띈다는 것입니다. 같은 물건을 100개를 생산한다면 800원보다 더 적은 금액으로 생산할 수 있고, 더 많은 수량을 한꺼번에 생산한다면 더 큰 비용 절감을 가져옵니다. 단순히 제품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비용은 하나를 생산하든 1만개를 생산하든 같기 때문에, 규모가 커지면 (최초 제품 이외에서는) 그런 초기 비용이 없어 단가가 줄어듭니다. 기계나 공장 등의 설비 투자에서 이득을 얻기도 하고, 부품 구매 시에도 단품보다는 묶음으로 대량 구매하면 할인된 금액으로 부품을 조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규모의 경제란 생산 규모/수량을 늘림으로써 생산 단가를 줄이고, 절감된 비용만큼 이득이 생기게 됩니다. 비용이 줄게 되면 개당 판매 금액도 할인해줄 수 있어서 소비를 늘려서 더 많은 생산이 가능하게 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규모의 경제는 시장의 크기에 따라서 형성되기도 하지만, 생산하는 제품의 종류를 줄임으로써 가능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애플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었던 것도 제품의 종류가 많지 않아서 같은 부품을 대량으로 할인된 금액으로 구매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규모의 경제만큼은 잘 알려졌지는 않지만, 다른 유명한 용어로 '범위의 경제' (Economy of scope)가 있습니다. 규모의 경제가 생산 수량에 따른 생산 단가 인하로 경제성을 확보한다면, 범위의 경제는 생산 종류를 늘림으로써 경제성을 얻습니다. 얼핏 보면 (규모의 경제 관점에서 보면)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범위의 경제는 단순히 제품의 종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투입된 설비나 (잉여)부품을 공유하는/재활용하는 다양한 제품을 만듬으로써 경제성이 생깁니다. 자동차 회사에서 브랜드와 외관은 모두 다르지만, 같은 프레임/차체나 공통 부품을 이용해서 다양한 자동차를 만들어내는 것도 범위의 경제를 통한 규모의 경제를 확장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A라는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 투자된 설비에 추가 투자없이 B라는 제품도 함께 생산한다면 B 제품을 위한 초기 설비 투자가 필요없기 때문에 경제성이 생기게 됩니다. 

여러 종류의 공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작업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공을 옮기기 위해서 바구니가 필요한데, 규모의 경제는 큰 바구니를 가져와서 많은 공을 한꺼번에 담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면, 범위의 경제는 바구니에 우선 큰 공을 담은 후에 큰 공 사이에 작은 공들을 채워넣어서 많이 담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이렇게 경제성은 (여건이 허락하는 한) 규모를 키우거나 범위를 넓힘으로써 얻을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제조업 중심의 기업들이 그래서 큰 규모의 공장을 지어서 대량생산을 하거나 큰 노력없이 다양한 품종의 제품을 생산하려고 수고했습니다.

이런 규모의 경제나 범위의 경제가 제조업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서비스 업에서도 차이는 있겠지만 규모와 범위를 확장해서 경제성을 얻으려 했습니다. 소위 말하는 네트워크 효과 (Network Effect)도 어떻게 보면 규모를 키워나감으로써 더 큰 효용을 얻고 또 더 큰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는 규모의 경제입니다. 사람들끼리 문자를 주고받는 메신저 플랫폼을 통해서 게임 초대 메시지를 보내는 등의 게임 플랫폼으로 확장한 것은 범위의 경제 개념입니다.

서비스/IT에서도 규모의 경제나 범위의 경제라는 전통 개념이 잘 작동하지만, 더 크고 새로운 혁신과 파괴를 위해서는 또 다른 개념이 필요할 듯합니다. 그래서 이름붙인 것이 '관점의 경제' (Economy of perspective)입니다. 범위의 경제도 전통적인 개념에서 규모의 경제를 다른 관점으로 확장한 것이지만, 그런 규모와 범위를 뛰어넘는 새로운 카테고리(의 제품)를 만들어내는 것을 관점의 경제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최근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창조적 파괴 또는 와해성 기술들이 규모나 경제로 설명할 수 없는, 관점의 승리라고 봅니다. 소위 말하는 공유경제 또는 임대경제가 그렇습니다. 숙박업의 개념을 바꾼 Airbnb나 교통수단을 변화시키는 Uber는 단순히 규모를 키우고 범위를 확장해서 이룩한 것이 아니라, 관점을 바꿈으로써 가능했습니다. 물론, 더 활설화시키고 산업을 확장하는 것은 그 이후의 규모와 범위 논리가 따르기는 하지만, 시작은 새로운 관점에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 더 많은 새로운 관점의 서비스/제품들이 쏟아질 것입니다. 그런 것에 빨리 적응해서/기생해서 적당한 가치를 얻는 사람들이 늘어나겠지만, 애초에 그런 새로운 관점을 장착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저 관점의 경제를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규모의 부품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여전히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가 위력을 발휘하겠지만, 점점더 관점의 경제로 체질 개선을 하지 않으면 생존을 걱정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관점의 경제가 가능키 위해서 새로운 관점을 실현시켜주는 기술이 있어야 합니다. Pixar의 존 레스터 John Lasseter가 말했던 'The art challenges the technology, and the technology inspires the art.' 문구가 관점과 기술의 관계를 그대로 설명합니다. 관점은 기술을 통해서 실현되고, 기술은 관점을 통해서 가치를 얻습니다. 그러니 적당 기술이든 적정 기술이든 늘 준비된 자만이 스파크가 일었을 때 불을 피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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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이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저 강조를 위한 수사법일 뿐입니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카메라를 들고 제주의 곳곳을 누빕니다. 최근 마음의 짐이 점점 무거워집니다. 힐링을 위해 제주를 찾는 이들이 이제 제주를 킬링하고 있습니다. 그 속도가 점점 빨라져서 걱정입니다. 2000년도에 여행와서 봤던 제주의 모습이 2008년도에 다시 찾았을 때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도로 등이 좀더 정비돼 있어서 더 편리해졌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2012년도에 우도를 10년만에 다시 찾았을 때 제 기억이 틀렸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2~3년 사이에는 온전한 기억이 이젠 거의 남지 않게 됐습니다.

현재 제주는 중산간 곳곳에 중국의 거대 자본에 잠식된 골프장과 리조트 단지들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송악산 일대는 풍광을 해치는 고층 호텔이 들어선다고 난리입니다. 월령리 일대의 밭들이 중국 자본에 넘어가고 있고, 조만간 대형 리조트 사업이 진행될 거라는 얘기에 제주에서 시끄럽습니다. 각종 위락시설이 들어서면서 원래 취지와 맞지 않은 카지노가 들어선다는 것에 큰 반대가 있습니다. 한동안 주춤했던 제주도심의 100층짜리 빌딩 건축이 중국 자본으로 재개되고 있습니다. 지역 신문/방송에서만 다루지 않고 이제 전국 일간지, 방송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뉴스 소재가 됐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중국 자본의 잠식을 우려하며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욕해야할 대상이 비단 중국 자본만이 아닙니다. 그저 대한민국의 자본이 아니고 (섭지코지로 대변되는 국내 자본에 의한 왜곡도 있고), 일개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거대하고, 또 눈에 너무 잘 띄는 곳에서 자연을 파괴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비난의 화살을 중국 자본에 돌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똑같은 비난을 더 많은 우리들이 받아야 합니다. 중산간 등의 자연 보호 지역을 파괴하는 것이 거대 중국 자본이나 국내의 골프장/리조트 회사들이라면, 소소한 우리의 동네와 해안을 파괴하고 있는 것은 누구일까요?

제주의 원주민/이주민이라는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흔히 그렇게 사용하니 이 글에서 큰 오해없이 그대로 사용하겠습니다. 초기 제주에 이주/정착한 이주민들은 제주에 긍정적인 효과를 줬다고 생각합니다. 정체된 제주에 조금 다른 활기를 불어넣었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예술가들이 보여줬던 다양성을 높게 평가합니다. 그리고 원주민들과 다른 친절을 앞세운 독특한 식당들이 저의 지갑을 가볍게 했습니다. 새로 생기는 깔끔하고 친절한 식당이나 카페를 보면서 원주민들의 허름하고 불친절한 식당은 곧 망할 것같다는 글도 남긴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운은 어쩌면 불과 3년 전까지입니다. 여전히 긍정성이 존재하지만, 부정성이 점점 크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2년 전 봄에 월정리 해안에 갔을 때 충격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4~5년정도 전에 아름다운 해변에 카페 하나는 용의 눈을 찍은 듯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지럽게 늘어선 카페들과 붐비는 자동차와 사람들 속에 더 이상은 특별할 것이 전혀 없는 해안가 마을이 됐습니다. 지난 주말에 북서쪽 해안도로를 드라이브하면서 또 다시 충격에 빠집니다. 원래부터 북동쪽보다는 식당이나 펜션들이 많이 있던 곳이지만, 지금같지는 않았는데 이젠 제 기억을 수정할 시간입니다. 월정리 도로가에 박힌 주차금지 봉이 애월해안도로에 그대로 박혀있는 것이 상징적입니다.

그리스의 산토리니가 아름다운 것은 그곳에서 나는 건축자재로 통일감있게 들어선 건물들 때문일 것입니다. 일부러 특이하게 만들기 위해서 하얀 집들을 지은 것이 아니라, 주변에 늘린 석회암을 이용해서 건축하다보니 자연스레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형성된 마을이 지금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제주의 시골마을이나 해안가를 돌아다니면 마치 프랑케슈타인을 재현한 듯한 착각을 받습니다. 기존 제주집을 개조한 것들도 많지만, 많은 이주민들은 제주의 환경과 마을의 스토리와 무관한 모습으로 집과 카페, 식당 건물을 올리고 있습니다. 주변과 호흡하지 못하고 역사와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저는 안도 타다오가 제안한 노출 콘크리트의 미니멀리즘 건축의 신봉자입니다. 그래서 제주에서 전원주택을 짓게 된다면 여건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미니멀한 노출 콘크리트 건물을 짓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깨닫게 됐습니다. 아무리 갈망하더라도 제주에서는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제주가 원치를 않습니다. 이미 그렇게 지어진 많은 집들이 제주와는 겉돌고 있습니다. 

제주의 중산간과 거점들을 파괴하는 것은 중국 및 국내 거대 자본이지만, 제주의 곳곳을 파괴하는 것은 결국 우리들입니다. (그리고 강정과 같이 국가에 의한 파괴도 무시할 수 없음) 이주민들만의 잘못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원주민들이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주민들이 빈틈을 파고들면서 엇박자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글에서 자연과의 조화, 역사의 연속성, 원주민과의 호흡에 초점을 맞췄지만 (당연히 거대 자본은 이런 것에 극히 취약하고, 최근 많은 이주민들도 마찬가지임), 조금 다른 측면에서의 걱정도 있습니다. 원래 주말에 이 글을 구상할 때 자연/역사/공동체와 동떨어진 마구잡이식 건축물과 함께, 그 속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의 가격)도 아직은 제주와 조금 동떠어진 것같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처음 이주민들의 식당과 카페는 제주에 새로운 맛과 친절을 갖다줬습니다. 그런데 그것과 함께, 서울의 물가도 그대로 가져온 듯합니다. 어차피 도심에서 온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곳이지만, 그 건물이 들어선 시골 마을 어르신 들이 감당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으로 음식이 제공되는 것은 조금 모순이라 생각했습니다. 서비스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는 것은 맞지만 단순 입소문만 믿고 터무니없는 가격을 매기는 것은 지양해야 합니다. (8,000원짜리 자장면이나 12,000원짜리 햄버거를 한번정도는 테스트 삼아 먹으러 찾아가겠지만 진짜 특별하지 않는다면 다시 찾거나 추천해줄 것같진 않습니다.) 어쩌면 이런 것도 원주민과 이주민, 그리고 원주민과 관광객의 간격을 더 크게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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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을 위해서 조금은 흉악하게 변해가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필요한데 제가 너무 아름다운 것만 남기려던 욕심 때문에 적당한 사진을 찾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좀더 다양한 사진을 찍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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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는 필요할까?

Gos&Op 2015.02.17 09: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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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느 정도 공부에 뜻이 있고 적성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학위를 갖는 것이 좋다. 그러나 학위를 갖는 것은 부자로 가는 길도 아니고 그저 명예를 얻는 길도 아니다. 대강 석사정도를 할 거라면 그냥 학부를 마치고 취업하는 걸 조언한다. 물론 이도 사람에 따라 다르겠으나, 석사 2년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남자는 군대 2년 연기정도의 혜택이라면 혜택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 학위는 박사를 뜻하고, 단순히 자격증으로써 학위가 아니라 스스로 연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의미에서 학위를 뜻한다.

학위를 가지면 여러 가지로 좋다. 학위 때문에 좋은 것도 있겠지만 그걸 얻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것이 크다. 물론 이상한 지도교수를 만나서 고생만 실컷하는 경우도 있으니 진로 선택은 조심해야 한다. 석사를 포함해서 젊은 시절의  5-6년은 진짜 길고 아까운 시간이다. 요즘같이 급변하는 시대에는 어떤 면에서 그냥 직장에서 경험을 쌓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여러 면에서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첨단 분야는 학교보다는 회사가 더 빠르고 실용적인 경우가 더 많은 듯하다. 성과라는 압력만 없다면 회사가 여러 면에서 인프라나 지원도 더 좋다. 그럼에도 학위를 갖는 것을 권하는 이유는 학교에서만 가질 수 있는 여유로움 때문이다. 말했듯이 회사에서는 단기 성과에 목을 메지만 학교는 조금은 자유롭다. 교수들이야 급하겠지만 학생이 급할 것은 없다. 물론 학생 때는 조급하고 불안했던 것은 사실이다. 

회사 생활의 불만 중에 하나는 어떤 문제를 근본부터 깊이 파고 들어가기 어렵다는 거다. 그렇게 하려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여러 헛짓을 해봐야 하는데 회사에는 그럴 여유가 없다. 능력 좋은 사람들은 미리 성과를 내고 사이드잡으로 이것저것 해볼 수도 있다지만 일반적으론 그렇지 못하다. 하나의 문제를 깊이 이해하려면 관련된 서적이나 논문을 탐독하면서 나름의 지식 체계를 만들고 그 지식 나무를 키워서 과실을 따먹어야 한다. 학교에서는 이게 가능하다. 사실 학생들에게 바라는 것이 별로 없다. 박사 2-3년차가 되기 전에는 학생이라곤 하지만 실질적으로 바보다. 혼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바라는 것도 없고 그저 사고만 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 기간동안 많은 다양한 논문을 읽으면서 지식의 나무를 키워야 한다. 그렇게 몇년을 보내고 박사 3년차 쯤 되면 나무에 꽃이 피기도 하고 과실이 열리고 익히는 것이 보인다. 물론 천재적인 년놈들은 이런 과정없이 바로 과실을 얻기도 하지만... 그건 예외적이다. 당신이 이미 (어린 나이에, 20대 초반?) 과실을 얻지 못했다면 당신은 천재가 아니다.

학술 논문이든 졸업 논문이든 논문을 적는다는 것은 대단한 특권이다. 문제를 발견해서 새롭게 정의하고 가정을 세우고 그것을 검증하고 또 그 결과를 하나의 레포트로 만들어내는 것이 쉬운 것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런데 학위 과정이 이것을 연습하는 거다. 회사에서 경험하기 힘든 거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수십 수백편의 논문을 읽을 여유를 회사에서 얻기 어렵다. 어렵고 전문적인 게다가 영어로 적힌 논문이나 책을 쉽게 읽어서 종합해서 자신의 지식으로 만든 것은 쉽지 않다. 학위 과정은 이걸 수차례 반복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전문성을 키우게 된다. 이 과정에 얻는 지식과 전문성은 이 과정을 거쳤다라는 경험에 비하면 보잘 것없는 부산물일 뿐이다.

회사에서 보면 그저 한두편의 논문만 읽고 마치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 양 내세우는 사람들을 간혹 본다. 또는 다양 논문이나 주제를 그냥 남들이 엮어놓은 그대로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외부의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키지도 못했으면서 어쩌면 소화시키는 방법도 모르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학교에서 삽질만을 한 게 아니었구나라는 걸 깨닫는다. 새로운 주제에 관해서 다양하고 깊게 읽고 이해하고 또 나만의 지식 체계로 만들고 기존의 것과 엮을 수 있어야 한다. 정상적으로 학위 과정을 거쳤다면 이게 가능할 거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걸 훈련하고 그 훈련을 인증하는 것이 학위다. 슬프게도 이것이 사회에서 더 잘 사는 또는 저질적으로 말해서 경제적으로 더 풍요로운 삶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학위를 가졌다고 더 전문적이거나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걸 얻는 과정에서의 경험을 내재화하지 못했다면 일반적으로 그들은 남들보다 더 바보다. 더 다양한 경험으로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고 가치관을 형성할 시기에 전혀 실용적이지 않은 문제 때문에 책과 논문에 파묻혀있었으니 그 쓸데없는 논문 주제 외에는 아는 것이 전혀 없는 바보일 뿐이다. 그럼에도 관심이 전혀 없지 않다면 학위를 가져라라고 조언하는 이유는 지식을 내재화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는 비싼 기회를 가벼이 버리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학위가 없어도 멋진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없다고 주눅 들 필요는 전혀없다. 세상의 이치를 깨쳤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 물론 여러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이런 현상도 있으니 참고만 하시길...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50216053203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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