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욱찾기

Gos&Op 2013.02.14 09: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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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김종욱 찾기'

영화 '김종욱 찾기'는 아련한 기억 속의 첫사랑의 연인인 김종욱을 찾아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의 일상 속에도 그런 김종욱같은 사람이 있다. 물론 이 글에서 김종욱을 첫사랑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글의 기본 내용은 오래 전부터 생각하던 것인데, 결정적으로 글로 표현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모든 전문가가 전문가는 아니다'라는 문장이 문득 떠오른 때다. 그렇다. 이 글에 말하는 김종욱은 나만의 전문가를 의미한다. 그저 유명하고 권위가 있는 인물이 아닌 내 주변의 전문가를 찾는 프로젝트가 바로 코드명 김종욱이다. (물론 실제 프로젝트가 진행중인 것은 아니다.)

인터넷이라는 것이 어느날 우리에게 찾아온 이후로 다양한 서비스들의 역습을 경험했다. 1996년 대학이란 곳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이메일 계정을 만들었다. 그 전에 OT기간동안 포스비라는 학내 사설BBS에 계정을 먼저 만들었던 것같다. 고퍼는 사용해보지 못했지만, 유즈넷은 가끔 사진이나 폰트를 찾는다고 이용했던 적도 있다. 지난 달 서비스를 종료한 나우누리의 기억도 새록새록하다. 1학년 겨울 방학 즈음해서 HTML을 배워서 홈페이지를 만드는 것에 푹 빠지기도 했고 JAVA라는 언어를 배운답시고 책부터 구매했던 그런 시절도 있었다. 홈피에 방명록을 붙인다고 CGI소스를 다운받아서 설치했던 것도 반평생 전의 이야기다. 그러던 중에 요즘도 많이 사용하는 웹메일이 등장하고, 웹기반의 커뮤니티와 지식서비스가 나왔고, 또 블로그라는 개인미디어는 홈피를 집어삼켰다. 웹2.0이라는 마케팅 용어 이후로 지금의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의 서비스들이 인터넷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대학을 다닐 때 만들어졌던 인터넷 1세대 그리고 대학원 이후에 나온 인터넷 2세대가 현재는 공존하고 있다. 인터넷에 다양한 서비스가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길어졌다.

인터넷의 많은 서비스들의 핵심은 데이터 (텍스트, 이미지, 동영상, 메타/통계 데이터 등)을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있다. 단순히 컴퓨터 화면/브라우저상에 어떻게 보여지느냐가 아니라, 사용자들의 만족효용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데이터의 정렬에 관한 것이다. 검색에서는 랭킹이라 불리고 다른 서비스에서는 추천이라고 불린다. 사람이 직접 관여해서 운영되는 경우도 존재하고, 알고리즘에 의해서 자동으로 이뤄지는 경우도 존재한다. 많은 서비스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차별화를 시도하지만, 결국에는 이 랭킹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로 집결된다. 구글은 페이지랭크를 선보이면서 인터넷의 절대강자가 되었고, 페이스북은 엣지랭크를 선보임으로써 유용한 사용자경험을 제공했고, 아마존은 개인화 추천이란 것을 선보였다. 인터넷의 등장 이후로 랭킹을 제대로 해결한 기업들이 결국 탑랭크되었다. 역사가 말해주고 또 말해줄 것이다.

랭킹. 문제는 참 단순한데 답은 꽤 복잡하다. 인터넷의 절대 반지다. 많은 사람들이 답을 구했지만 손에 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구글이 그랬고, 페이스북이 그랬고, 아마존이 그랬다. 그러나 아직은 완벽하지도 범용이지도 않다. 그래서 여전히 희망이 있고 새로운 웹도라도 (웹 엘 도라도)를 발견하기 위해서 많은 이들이 노력하고 있다. 그저 웹 세상에서는 구글이 평정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구글이 그저 컨텐츠와 집단지성을 이용하고 있을 때, 새로운 경쟁자들은 컨텍스트에 주목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트위터는 시간을 공략했고 페이스북은 인간을 공략했다. 포스퀘어가 공간을 지배할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공간정보는 그냥 범용이 되었다. 아, 소위 지식서비스라 부르는 Q&A도 구글의 거대한 알고리즘 틈 사이로 사람을 집어넣은 것이다.

랭킹이나 추천을 어떻게 할 것인가? 현재까지 사용되는 방법은 구글과 아마존으로 대표되는 집단지성, 지식iN으로 대표되는 전문지성 (일단, 답변자들이 전문가라고 가정하자.), 그리고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대표되는 지인지성이 있다.

집단지성. '많아지면 달라진다'는 말 (클레이 셔키의 책 제목)이 있다. 많은 사람이 선택을 했다면 '좋다' 아니 적어도 검증되었다라고 볼 수가 있다. 이를 가장 잘 활용한 곳이 구글과 아마존이다. 구글은 다량의 문서 네트워크에서 암묵적인 인커밍 허브를 찾아내는 방법을 활용해서 이를 페이지랭크라 불렀다. 아마존은 상품 구매자의 평점을 활용해서 개인화 추천 시스템을 만들었다. 특히 아이템 기반의 관련 컨텐츠는 이후 유튜브의 관련 동영상에도 사용되고 있다. 그외에 이베이의 판매자 평판 시스템도 명시적 집단지성을 잘 활용한 예다. 문제가 있으면 대중에게 물어보면 된다. 각자의 능력과 지식은 미흡할지 모르나 모이면 정답에 가까워진다. 물론 문제의 답이 정규분포를 따른다는 (일반적으로) 가정 하에 그렇다.

전문지성. 요즘은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그냥 구글에 검색해보거나 트위터/페이스북에 질문을 올리지만, 예전에는 가장 좋은 방법이 전문가를 찾아가는 거였다. 물론 유명한 전문가를 우리가 직접 만날 가능성이 매우 낮은 치명적 단점이 있다. 그러나 인터넷은 개념적으로는 그런 만남의 가능성을 높여놓았다. 아니, 우리 모두가 아는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재야의 고수들을 만날 수 있다. 개념적으로 전문가에게 질문을 하고 답변을 하사받는 시스템이 지식iN 또는 Q&A 서비스다. 물론 현재 인터넷에는 숨은 고수들이 많지만 사이비도 많다. 특히 마케팅/홍보로 오염된 경우가 많다. 어쨌든, (신뢰할만한) 전문가가 있다면 전문가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좋다. 아프면 인터넷에서 검색도 해보지만, 병원을 찾는 이유도 가운을 입은 의사가 전문가라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진짜 천재를 만나 고급의/정확한 전문지식을 얻을 수 있다면 집단지성보다 낫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우 그런 이를 만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전문지식에도 집단지성이라는 투표수나 공감수 등을 믹싱한다.

지인지성. 사실 일반 대중에게 묻거나 전문가를 찾아가는 것보다 더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엄마한테 물어보는 거다. 엄마가 갑이다. 나이가 들면서 엄마만으론 부족하기 때문에 주변의 친구들의 조언을 듣는다. 친구들은 내가 뭘 좋아하는지 또는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많이 알기 때문에 전문지식은 아니지만 친밀한 답변을 해줄 수가 있다. 나에 대한 컨텍스트 정보가 없는 전문지식이나 대중의 지혜가 쓸모없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경우는 너무 사소해서 전문가나 대중들에게 묻기가 부끄러운 경우도 있다. (물론 검색하면 대부분 나오지만… 구글은 신이니까)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가 이를 파고든다. 페이스북의 엣지랭크가 친구와의 친밀도 점수를 활용하고 있다.

집단지성은 대중성에 기반을 두고, 전문지성은 객관성에 기반을 두고, 지인지성은 친밀성에 기반을 둔다. 최근의 서비스들은 이들 모두를 잘 활용하는 듯하다. 어떠한 형태로든 원하는 답변을 얻을 수 있다면 별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중에 의해 검증된 지인의 진솔한 전문지식을 답변으로 얻는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집단지성이라는 대중적 검증과 전문지성이라는 신뢰하는 출처, 그리고 지인지성이라는 개인적 친밀감을 더 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래서 김종욱이 필요하다. 나와 아는 사람 중에서 검증된 전문가 김종욱을 찾는다. 프로젝트 김종욱. 참 복잡할 것같다.

(서론은 길지만 본론과 결론이 짧은 것이 내 글의 특징이다.) 검색이나 추천에서의 랭킹/순위는 다른 말로 관련성이라 표현할 수 있다. 내가 입력한 키워드와 나의 처지에 맞는 검색결과, 그리고 나의 개인적 취향에 맞는 제품/컨텐츠를 추천하는 것이 관련성이다. 그런데 이 관련성은 3가지로 세분화된다. 

  • 첫번째는 질문자 (나)와 답변자 (너) 사이의 관계다. 지인 네트워크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단순히 관심사로 묶인 관계일 수도 있다. 같은 물건을 구입했던 사람, 같은 노래를 듣고 있는 사람, 같은 기분/처지를 공유하는 사람 등등의 동질성을 가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친밀감이 온다. 
  • 두번째는 나/질문자의 관심사다. 답변은 나의 관심에 맞아야 한다. 아무리 전문가의 답변이더라도 또는 99%의 대중이 선택한 것이더라도 나 개인의 관심사와 맞지 않는다면 전혀 쓸모가 없다. 관심사는 평소 누적된 나의 행동에서 얻을 수 있다. 평소에 검색했던 검색어목록, 작성했던 글, 자주 읽는 기사, 또는 자주 가는 곳 등의 평소의 작은 행동들이 모여서 나의 관심사를 보여준다. 그리고 답변자의 관심사도 파악이 되어야 한다. 나의 관심사는 질문의 컨텍스트를 제공해주지만, 답변자의 관심사는 답변자의 전문성을 확보해준다. 
  • 세번째는 너/답변자의 관점이다. 관점은 다소 불명확한 개념이다. 그냥 겉으로 드러나는 답변만으로 부족하다. 답변자가 어떤 관점으로 그런 답변을 내놓았는지 알지 못한다면 답변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예를들어, '강정 해군기지의 문제점'이라는 질문에, 찬성론자는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부작용을 축소시켜서 답변을 줄 것이고 역으로 반대론자는 필요성/당위성보다는 환경파괴나 공동체파괴 등의 극단적 부정성을 강조하는 답변을 내놓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관점도 어필이 되어야 한다. 답변의 뉘앙스가 나의 관점에서 벗어난다면 답변의 만족도가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질문자의 관점이 나와 똑같야 된다는 말이 아니다. 상대가 어떤 관점을 가지고 답변을 주는지가 파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결론적으로 전문성의 가진 지인이 나의 관점에 맞는 답변을 해주면 베스트케이스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전문가를 김종욱이라 부르기로 했다. (여담. 회사 내에 동명의 인물이 있긴하다. 과연 그가 답을 하사해주고 떠날 것인가?)

프로젝트 김종욱의 결과물이 소셜Q&A 서비스인 Quora나 Aardvark 등과 닮았다. 그러나 Q&A 서비스는 온디멘드 On-Demand다. 즉 누군가 질문을 하면 그제서야 지인 전문가가 답변을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프로젝트 김종욱은 Q&A보다는 검색을 염두에 두고 있다. 즉, 지금 내게 필요한 정보/답변을 지인 전문가의 예전 글에서 찾아주는 것이다. 물론 현재 변화된 상황에 맞는 답변을 얻을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이건 검색이 가진 어쩔 수 없는 한계다. 그래도 비동기식 Q&A가 줄 수 없는 즉시성의 장점이 있다. 현재가 지나면 현재의 관심사도 없어진다. 아드바크의 초기 조사에서 응답시간이 수분 내로 매우 짧았다고 한다. 그러나 몇 시간, 며칠 이후에야 답변을 얻는 경우도 상당한 비율을 차지했다. 인터넷, 특히 모바일 세상에서 사람들은 참을성을 점점 상실하고 있다. 수초의 시간도 길다. 최근 페이스북이 그래프서치를 선보였다. 그걸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결국은 지인전문가 김종욱이 아니라, 김종욱이 전해주는 정보에 관심이 가는 것인 걸까? 영화에서도 결국 김종욱이 아닌 새로 만난 인연과 연결이 되었다. 김종욱은 구실일뿐...

(2013.02.02 작성 / 2013.02.14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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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실패

Gos&Op 2012.04.16 1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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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 대해서 별로 관심은 없겠지만, 그동안 제가 읽었던 책들을이나 글들을 보다보면 '대중'이나 '집단'과 관련된 것들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임스 서로위키의 <대중의 지혜>라던가 존 L. 캐스트의 <대중의 직관>, 찰스 리드비터의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 등과 같이 '대중의 ~' 또는 '집단~' 등의 제목이 붙은 책들이라면 어김없이 저의 위시리스트에 올라갑니다. 그 외에도 집단지성 및 집단행동에 관련된 책들이라면 대부분 읽은 듯합니다. (클레이 셔키의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나 <많아지면 달라진다>, 키스 소여의 <그룹 지니어스>, 피터 밀러의 <스마트 스웜>, 말콤 그래드웰의 <티핑 포인트> 등도 이런 맥락에서 읽었습니다.)

이런 책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바는 조금은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개인이더라도 이들이 함께 모여서 집단을 형성해서 문제를 해결할 때면 소위 전문가들보다 더 뛰어난 문제해결능력을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단순히 생각해봐도 잡스형의 뛰어난 통찰력의 소유자가 어느 날 갑자기 해결책을 제시해주지 않는 이상은, 유행이라던가 사회트렌드는 모두 대중의 선택에 의해서 이뤄지고 주도되는 것이니 당연합니다. 

그런데 모든 문제에서 대중 또는 집단이 옳은/현명한 선택을 했을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제가 종종 우려하는 '집단광기'는 과연 없는가? 최근 이슈가 되었던 연예인들에 대한 사생팬이나 팬덤현상과 같은 부작용을 심도깊게 얘기하는 책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위의 책들에서도 가끔 우려의 목소리는 내지만, 책의 주요 논지가 긍정적 집단지성에 맞춰졌기에 부정적인 면에 대해서는 누락되거나 거대한 네트워크 내에서 자연치유/자기정화 Self-healing되는 것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SNS에서 잘못된 정보가 쉽게 퍼지기도 하지만 그런 잘못들이 즉시에 바로 수정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합니다.)

이 글에서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집단광기에 대해서 얘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즉흥성의 흥분보다는 더 큰 대중의 실패에 대해서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대중의 선택이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선거결과입니다. 지난 수요일에도 19대 국회의원 총선이 있었습니다. 결과는 아들 아시다시피 아이러니하게도 보수층에게는 안도와 불안을, 진보층에게는 좌절과 희망을 동시에 줬습니다. 금뱃지를 달게된 모든 국회의원들이 제대로 뽑혔는가?에 대한 잡음이 심합니다. 문도리코나 제수 성추행미수범 등과 같이 겉으로 드러난 사례도 있지만, 낙선한 후보가 당선된 후보보다 더 적합한 인물인가?에 대한 의문이 계속 이어집니다. 앞으로의 4년의 여정을 통해서 대중의 선택이 옳았는가?가 판단될 것이니 미리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그러나 과거의 선거결과들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대중의 선택이 옳았다면 왜 정권은 계속 바뀌고 국민의 대표는 수시로 바뀌는 것일까요? 물론 시대와 사회의 큰 틀에서 또는 강력한 외부요인에 의해서 개인이 실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국제금융위기라던가 대내외의 전쟁 등의 어쩔 수 없는 환경에서 대통령이 소기의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대중의 선택은 늘 바뀝니다. 지난 MB의 실정은 MB 개인의 잘못일까요 아니면 그를 선택한 대중의 잘못일까요? 

국내에서는 역사가 짧기 때문에 정권교체가 별로 빈번하지 못했지만, 미국의 경우 공화당이나 민주당인 10년이상 장기집권한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겨우 재선에 성공해서 8년 정도 정권이 이어지면, 그 다음에는 거의 어김없이 다른 당의 대통령이 나왔습니다. 앞서 말한 어쩔 수 없는 외부요인에 의한 실정도 고려되어야겠지만, 매번 선거 때마다 표심의 향방이 바뀝니다. 그것은 4년 5년 전의 대중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 제임스 길리건의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미국의 경우 공화당 대통령이 집권하면 살인률과 자살률이 증가하고, 민주당 대통령이 당선되면 치상률이 감소했다고 합니다. (신)자유주의의 공화당 대통령 시기에는 사회 불균형도 심해지고 그런 빈부차에 따른 수치심도 늘어나서 살인 또는 자살률이 올라간다고 합니다. 범죄라는 이런 단적은 사례만을 본다면 대중은 매번 민주당을 선택했어야 합리적입니다. 그런데 5년 10년마다 한번은 민주당을 선택했다가 또 그들에게 실망해서 다음번은 공화당을 선택합니다. 이런 스윙보팅행위가 대중의 불완전성 또는 실패의 단적인 사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중의 지혜를 말할 때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집단 내의 각 개인은 모두 독릭적으로 생각/선택해야 하고,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를 역으로 해석하면 균일화된 집단에서 비독릭적으로 (또는 상호의존적으로) 생각/선택/행동하게 된다면 집단은 일종의 팬덤현상이나 광기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해도 될 듯합니다. 미국에서는 붉은 색의 남부 또는 중서부 내륙 주들과 푸른 색의 (서/동) 연안 주들로 나뉩니다. 집단이 독릭적인 개인에 의해서 이뤄졌다면 이런 명확한 집단의 분리를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국내에서도 19대 총선결과는 강원도, 경상도를 기점으로 한 붉은지역과 경기도 전라도를 기접으로 한 녹색지역으로 명확하게 나뉘었습니다. 수도권만 보더라도 녹색의 강북과 붉은색의 강남 (물론 강남3구를 중심으로)으로 나뉘었습니다. 지역주의는 집단 내의 개인의 사고의 폭을 제한합니다. 집단 내의 독립성과 다양성이 무너졌을 때, 집단의 합리성도 무너진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집단이 늘 옳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늘 실패하라는 법도 없습니다. 그러나 집단이 조금이라도 실패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독립된 개인으로 남아서 각자의 역량에 따라서 사고하도록 자유를 줘야 합니다. 그런데 '프레임 Frame'이라고 말하는 사고의 틀을 만들어서 개인들이 그 틀 속에서만 생각하도록 강요합니다. 그렇기에 틀을 벗어난 생각을 부정한 생각이라고 은연중에 경계를 하는 것같습니다. 기존의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사고의 틀을 만들지 못한다면 대중 또는 집단은 결국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게임이론에서의 협력게임과 같이 개인은 (조금) 실패하더라도 집단은 성공할 수 있어야 하는데,...

주말에 읽은 글에서.. 헤겔의 정반합의 변증법에서 '정'에 대항하는 '반'은 기존의 '정'의 프레임에 갖힌 사고다. 새로운 프레임이란 '정'에 대한 '반'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은 '합'이다라는 요지의 글이 기억납니다. 기존의 것을 단순히 동조하거나 아니면 단순히 반대하는 것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합을 만들어내는 것이 건전한 집단으로의 길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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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시작은 하지만 제대로된 결언을 지을 수 있을런지는 자신이 없다. 그저 늘 생각하던 문제의 화두만 던져보고 싶다.

 집단의 광기와 지성을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특히 결과로만 보면 둘 사이의 차이점이 없는 것같다. 그러나 한가지 특징적인 차이는 있는 것같다. 둘의 차이는 결론부가 아닌 시작부 (그리고 진행과정)에서 나타난다. 바로 '다양성'이다. 집단지성과 집단광기는 모두 특정 결론을 향해서 치닫는다. 그런데 집단광기는 처음부터 하나의 방향과 결론이 내려진 상태에서 그 지점에 도달하는 반면, 집단지성은 정해진 방향과 결론이 없이 어쩌다 도출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즉, 광기는 처음부터 하나에서 시작해서 미리 정해진 그것으로 끝나는 반면, 지성은 여럿에서 시작해서 정해지지 않은 무엇으로 끝난다. ('그것'과 '무엇'이 성공이냐 실패냐는 중요한 이슈는 아닌 듯하다.) 사이비 집단일수록 하나의 목적과 하나의 수단만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때론 그 '하나'에 결함이 발견되어 외부의 공격을 받더라도 자연스럽게 자기합리화과정을 그쳐서 단순 변형된 그것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제대로된 지성의 집단이라면 다양한 생각/의견들이 모인다. 끊임없는 정반합의 과정을 통해서 특정 결론에 이르는 것이 지성이다. 애초에 의도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결론에 이를 수가 있는 것이 지성이고, 또 그렇게 맺어진 결론은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긍하고 받아들인다는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정해지지 않은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결론을 향해서 나아가는 과정이 얼마나 길고 지루하겠는가? 그런 지겨운 과정을 거쳐서 도달한 곳/것이 집단지성이다. 그래서 천재들의 눈에는 집단지성이 우습게 (때론 어리석게) 보일 수도 있다. 바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이 눈에 보이는데도 끊임없는 시도와 실패를 반복하는 것이 우스꽝스러워보일 거다. 우리가 개미들의 행렬을 보면서 느끼는 그런 감정... 그러나 어리석고 미개해보이는 개미/벌의 집단은 그들의 임무를 완성한다. 비록 최단 코스, 최단 시간의 정석을 밟지 않았더라도 끝에는 바른 결론에 이른다. 반면에 집단광기는 그 속에 속해있는 동안은 너무 편하다. 보이는 결론을 향해서 모두 힘차게 달려가기 때문에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그러나 한발자국 뒤로 물러나서 보면 그리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들의 달음질이 정말 옳은가?를 판단할 수 있다. 사방 360도 중에 한곳만을 향해서 달려가는 집단보다 더 어리석은 것이 있을까? 때론 최단코스를 밟을 수도 있지만, 영원히 못돌아오는 막다른 길로 치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 집단에 속해있는 동안은 절대 알 수가 없다. 물론 알 수 있는 시점이 결국에는 오기도 한다. 바로 낭떠러지 앞에 섰을 때, 또는 심지어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고 있을 때. 그런데, 집단광기도 처음에는 한두번의 (대)성공을 거두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집단광기가 더욱 공고해지고, 그 속에 더 깊이 빠져들게 되는지도 모른다. 다시 사이비 집단으로 돌아가서, 처음에 그 집단에 들어갔을 때 주위의 관심으로 삶의 위안을 얻는 것처럼 보였듯이, 집단광기에서 처음의 몇번의 성공은 사람/집단의 이성을 마비시켜버린다. 지성의 집단이 될 수도 있었는데, 결국 그냥 광기로 끝나고 만다. 간혹 광기는 자연스럽게 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광기에서 지혜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같다. 그냥 (대)실패로 끝났다면 그래도 나름의 각성이라도 할텐데, 그냥 시간이 지나면 산불이 진화되듯이 그냥 그렇게 사그라들어버리면 나중에 비슷한 광기가 벌어졌을 때 제대로 대처를 할 능력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더 큰 광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무섭다.

 '집단광기'라는 용어를 처음 생각한 것은 아마도 국내 청소년들의 아이돌을 향한 팬덤문화를 보면서 느꼈던 것같다. 더 먼 미래는 생각지도 않고 단지 현재 좋아하는 그들의 우상을 향해서 생과사를 모두 바치려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자기 오빠가 아닌 다른 이들은 무조건 무시하고 깎아내리려는 그런 이상한 팬덤문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던 것같다. 단순히 '팬덤=광기'로 표현할 의도는 없다. 단지 부정적인 팬던현상에서 그런 광기를 느꼈다는 얘기다. 그리고 또 느꼈던 적은 2008년의 대한민국에서 촛불이 일어났을 때였다. 지금 '촛불=광기'로 표현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개인적으로 나도 그때 우리의 반응을 지지한다.) 단지, 그 사건/현상이 자칫 잘못하면 지성이 아니라, 광기로 흘러갈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 전에도 황우석사건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고, 신정아사건 때도 비슷했고, 천안함사건이나 최근 카이스트사태에서도 비슷한 것을 느낀다. 내가 지금 그런 개별 사건들과 진행과정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사건이 지성으로 연결될 것인가 아니면 광기로 이어질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을 하며 관찰을 했다는 거다. 그리고, 일부에서는 광기도 분명 존재했던 것같다. (대체로 정상과정을 밟아왔지만,..) 사실 이성이 깔리지 않은 우리의 많은 집단행동들이 광기로 이어질 개연성은 충분히 있고, 그런 집단주의가 과거의 파쇼와 다를바가 없다는 생각도 간혹 하게 된다. 최근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화 움직임은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큰 흐름에서는 집단의 지성과 감흥 (연대)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간중간에 함정과 같은 광기도 분명 존재할 거다. 그런 덫을 제대로 찾아내서 제거하지를 못한다면 지금 중동의 바람이 또 다른 후세인이나 카다피를 만들어낼 것이 분명하다.

 갑자기 든 생각이다. 기업에서 '브랜드'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지성과 광기의 싸움인 것같다. '브랜드'란 소비자들이 인식하는 그것으로 정의될 수가 있다. 소비자란 바로 '집단'이다. 그 집단 전체에 퍼져나가는 기업이나 제품에 대한 인식이 바로 브랜드다. 그래서 하나의 브랜드가 정립되기 위해서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 간혹 잘 만들어진 광고로 인해서 인지도가 높아지는 경우는 있지만, 그것이 바로 브랜드로 직결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게 만들어지고 공고해진 브랜드의 가치가 어떤 면에서 집단지성이다. 그런데, 국내의 굴지의 기업S가 벌이는 모습을 보면 지성체로써의 브랜드가 아니라 광기체로써의 브랜드를 지향하는 것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기업에서 독단적으로 진행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언론사들이 광고주를 모시기 위해서 먼저 굽신그렸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 기업에서 새로운 제품이 출시가 되면 언론사들은 마치 약을 먹었는 것처럼 그 제품을 찬양하고 경쟁사의 제품에 흠집을 내기에 바쁘다. 이것이 집단 패닉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그렇게 찬양하던 제품이 제대로된 브랜드로 소비자들에게 인식되던가? 치명적인 브랜드로 인식이 되기는 했다. 그게 너무 '치명적'이라서 자신 (기업과 언론사)들의 몸에 생체기를 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아직까지는 그런 기업과 언론사들의 몸집이 너무 커서 그런 작은 생체기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언젠가는 작은 생체기를 통해서 감연된 세균은 거대한 몸퉁 전체를 쓰러뜨리고 말 것이다. (국내의) 소비자는 늘 국내 기업의 지원군들이다. 그러나, 그들을 언제나 반군이 될 수도 있다. 기업의 광기에 소비자의 광기로 맞서는 그런 날은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비극이다. 제발 지성과 지성이 만나서 새로운 지성을 탄생시키자. 그나마 이제껏 기업의 광기에 소비자의 지성이 만나 현상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사람은 늘 지성과 광기의 중간에서 외줄타기를 한다. 그런데, 국내의 기업들뿐만 아니라, 정부기관이나 학교 등의 여러 단체들도 기업의 그것보다 더 낫다고 볼 수가 없으니 문제고 걱정이다. 후진국가가 선진국민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국민도 언젠가 인내심이 바닥나고 포기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 날은 절대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집단감성을 집단지성보다 고위의 상태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집단감성은 집단광기와 명확히 다르다. 이성을 기저에 두지 않는 집단감흥이 집단감성이 될 수가 없다. 이성에서 시작해서 발흥한 집단의 감흥이 집단감성이다. 그런 감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또 불을 지필 수 있다면 미래에 더 잘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의 인터넷 에코는 집단의 지성과 감성을 모으고 발화시키는 공간인지 아니면 집단의 광기에 불을 지피는 공간인지 늘 조마조마하게 지켜본다. 이상은 지성과 감성에 있지만, 현실은 늘 광기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같기도 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런 끝없는 광기의 사건들과 과정들을 통해서도 나름 발전과 진화를 거듭해간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쩌면 단편단편의 광기에 너무 크게 주목하고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때론 작은 광기가 지성의 자극제가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말머리에 밝혔듯이 이 글이 어떻게 쓰여졌는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결론을 내리기 위한 글은 아니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오해를 살만한 내용들이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한다. 점심시간 및 분석프로그램 실행중에 잠시 짬을 내어서 글을 적다보니 연결이 매끄럽지도 못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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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5, 분산된 다양한 독립된 대중들의 생각이 적절히 조정, 통합되면 똑똑한 개인보다 낫다. 일반적인 경우..

대중의지혜(시장과사회를움직이는힘)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영이론 > 산업심리
지은이 제임스 서로위키 (랜덤하우스코리아,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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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고전이 되어버린 제임스 서로스키의 <대중의 지혜>. 그 명성에 비해서 너무 늦게 읽은 감이 있습니다. 핑계를 대자면, Yes24에서 계속 절판이라서 책을 살 수가 없었다 정도...

 한줄평에서 제임스 서로스키의 <대중의 지혜>에 대한 모든 리뷰가 끝났다. 아무리 노력해도 더 많은 내용을 다루지도 않고, 다른 내용을 다루지도 않는다. 그래도 21세기의 인터넷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읽어봐야할 책이다. 한줄평에서 요약했듯이, 일반적인 경우 대중의 지혜가 모여서 집단지성을 발현하면 똑똑한 개인의 솔루션을 능가한다는 것이 책의 핵심이다. 여기서 대중이란 전문가 집단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어중이떠중이들이 모두 모인 그런 집단을 포함한다. 때로는 전문가집단들이 더 어리석은 결정을 내린다. 전문가들은 이미 생각이 굳어있고 자신들이 걸어왔던 길 이상을 볼 수가 없기 때문에 새로운 시각도, 새로운 시도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그들의 모인 생각이 집단지성이 아니라, 왜곡된 집단광기에 가깝게 된다. 그런데/그래서, 집단지성/대중의 지혜를 모으는데는 3 (+ 1)가지 원칙이 있다. 이미 밝혔듯이, 1. 집단을 형성하는 대중의 다양성 (생태계에서 종의 다양성과 같은 논리), 2. 군집으로 집단뿐만 아니라, 군집을 이루는 개인의 독립성, 그리고 3. 그런 개인들의 불리적 그리고 논리적 분산이 대중의 지혜를 완성하는 세가지 원리이다. 그리고, 4. 이런 다양하고, 독립되고, 분산된 개인들의 생각들이 하나로 모이는 통합이 이뤄질 때 진정한 대중의 지혜가 생기게 된다.

 책을 계속 읽어나갈수록 책에서 보여주는 모든 사례들이 '게임이론'에서 주로 다루는 사례들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게임이론이 수학적으로 증명되었듯이, 집단지성/대중의 지혜도 수학적으로 증명될 것같다는 생각도 든다. 네트워크효과나 집단지성, 스케일프리 네트워크 등의 다양한 개념들이 이미 늘리 받아지고 있기 때문에 너무 고전틱한 책으로 볼 수가 있지만,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유용하기 때문에 대중을 이해하고 함께 호흡하기를 원하는 이들이라면 모두 읽어볼 것을 권한다. 물론, 그 이후의 몇몇 책들에서 서로스키의 <대중의 지혜>에 대해서 조금은 부정적인 면을 다룬 적도 있다. 그래도, 기본 원리는 바뀌지 않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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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 5, 집단지성에 의해서 쓰여진 집단지성에 관한 책.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
카테고리 경제/경영
지은이 찰스 리드비터 (21세기북스, 2009년)
상세보기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  
 
 이 책에 대한 가장 좋은 설명 방법은 아래에 나열된 '함께 읽으면 좋은 책'을 소개해주는 것이다. 정보기술, 특히 인터넷의 발달은 과거에는 상상도 못하던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많은 예제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주목해볼 만한 것으로는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서로 인터렉션이 가능하여 서로의 생각을 즉시에 교환/공유할 수가 있다는 점이다. 이런 즉시 교환 및 공유는 하나 또는 몇 개의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지게 되고, 그런 모아진 의견은 소위 말하는 '집단지성 Collective Intelligence'로 발전하게 된다. 현명한 영웅이 평범한 다수를 먹여살리던 것이 역사나 영웅담의 주요 소재였다면, 더이상 그런 영웅담은 없어질 것같다. 집단지성의 기본은 이런 영웅담을 뒤집는데서 시작한다. 이제는 평범한 다수의 집중된 힘이 천재 1인의 능력을 능가하는 시대가 되었다. 물론 천재의 번떡이는 능력은 여전히 빛을 발하겠지만 천재 한명이 전세계를 구하는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같다. (반대의 경우 - 즉 1인이 세계를 멸망시키는 시나리오 - 는 여전히 가능하겠지만. 현재 남MayBe북JI처럼) ... 인터넷이 그리고 집중된 다수의 힘이 모든 것에서 우위를 발휘할 수는 없겠지만, 점점 그 세력/영역이 커지는 것을 부인한다면 다가오는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집단지성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는다. 현재 1%를 위한 암울한 시절을 보내고 있지만 99%의 힘이 모아지는 그 최적점을 찾아서 전진하는 과정에 있다. ... 그리고, 집단지성과 함께 생각해봐야할 주제는 바로 '집단감성 Collective Emotion'이다. 인류가 함께 생각하는 집단지성과 인류가 함께 느끼는 집단감성의 시대를 우리는 준비해야 한다.

   함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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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네트워크의 속성을 빌어서 현재의 트렌드를 만들어가고 또 찾아가는 여정에 대해 재미있게 적은 책. 더 깊은 내용까지 원했기 때문에 5점은 줄 수가 없었으나 그래도 강력 추천.

미래학 (미래예측 및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과 트렌드 (현재의 주요 산업 및 브랜드의 트렌드 및 특성, 그리고 어떻게 트렌드를 찾아내고 구조화/가시화할 것인가?)에 대한 근래에 나온 책들은 두루 읽고 있는 것같다. 미래학이나 트렌드에 관심이 있는 초보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다. 특히, 본인이 네트워크 (네트워크 자체의 속성과 네트워크를 이용한 다양한 사회현상 분석 및 적용을 포괄한 전반)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트렌드를 읽는 기술을 네트워크 내에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실제 책의 주요 내용은 트렌트를 읽는 기술보다는 트렌드를 창조해서 공유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라 말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목적을 가진 네트워크지만 그 속에서 균형잡힌 의견의 교류를 통해서 더 큰 이상을 추구할 수가 있다. 때론, 부정직한 (엔론 사태나 주식버블, 피라미드식의 다단계 등)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제대로된 협업네트워크를 형성한다면 그런 부정직한 사태도 미연에 감지해서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집단지성 (군집 창의성)은 집단의 목표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또는 자신의 이익을) 집단에 위임 (commitment)하라'는 것이다. 이는, 보스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인 Benjamin Zander의 다음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 
“We are about contribution, that’s what our job is … everyone was clear you contributed passion to the people in this room. Did you do it better than the next violinist, or did he do better than a pianist? I don’t care, because in contribution, there is no better!”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 Tipping Point (티핑포인트), by Malcom Gladwell
- Linked (링크, 21세기를 지배하는 네트워크과학), by Albert-Laszlo Barabasi
- Wikinomics (위키노믹스, 웹2.0의 경제학), by Don Tapscott & Anthony D. Williams
- Microtrend (마이크로 트렌드, 세상의 룰을 바꾸는 특별한 1%의 법칙), by Mark Penn
- Re-Imagine (미래를 경영하라), by Tom Peters
- Group Genius (그룹 지니어스), by Keith Sawyer
-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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