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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허술함

Gos&Op 2013.08.01 16: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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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red지의 편집자 Chris Anderson의 신작 <메이커스>에 보면 흥미로운 회사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오늘 아침 출근 전에 본 '브릭암스'라는 회사가 기억에 남습니다. 브릭암스는 레고에서 만들지 않는 근현대 소형화기 (권총, M16, 바주카포 등)를 레고의 규격에 맞게 만들어서 판매하는 회사입니다. 레고의 주 고객층이 유아라서 폭력성이 짙은 것은 제조하지 않았는데 (대신 칼이나 창 등의 원시 무기나 스타워즈의 레이저총이나 광선검 등은 제조함), 그 빈틈을 파고든 것입니다. 브릭암스의 CEO가 아이들과 레고로 2차대전 상황을 만드려다가 재래식 무기가 없는 것에서 창안해서 만들고, 또 회사까지 창업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레고사에서는 브릭암스의 사업모델에 딴지를 걸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차피 레고사에서는 전혀 만들 의도가 없는 부분을 브릭암스가 채워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유아기를 벗어난 8~9세 정도의 어린이들은 레고에 흥미를 잃기 시작하는데, 브릭암스에서 제공하는 블럭들 때문에 그 시기가 지나서도 계속 레고에 관심을 이어가고 또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레고를 즐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파트너사들이 레고의 틈새를 매워줌으로써 레고 생태계를 더 견고하게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레고 블럭을 만드는 재료나 공정 등에 대한 간단한 가이드라인만을 제시할 뿐, 레고사는 블릭암스와 같은 파트너들을 별도로 제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예전 글에 적었던 '전략적 허술함'이 떠올랐습니다. 레고라는 견고한 플랫폼을 가진 레고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블릭암스와 같은 제조사들을 방해, 제재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더 견고하고 큰 레고 생태계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플랫폼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허술함이 있어야 합니다. 무조건 완벽한 플랫폼은 플랫폼으로 성공하지 못하고 제대로된 에코를 만들지 못합니다. 애플의 아이폰마저도 허술함을 보여줬기 때문에 지금의 앱생태계가 만들어졌습니다. 완벽한 톱니 바퀴에는 새로운 것이 끼어들지 못합니다. 새로운 것은 늘 허술한 틈새를 파고 들면서 만들어집니다.

완벽한 플랫폼이란 말은 모순된 표현입니다. 플랫폼이라는 것이 그 위에서 새로운 것들이 추가되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완벽한 것에 새로운 것이 추가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허술함을 메꿔주면서 진화하는 것이 플랫폼이고 건전한 생태계입니다. 레고사가 블릭암스와 같은 파트너사들의 틈새를 메울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들을 허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략적으로 더 낫다는 판단이 내려졌기 때문에 그들을 허용합니다. 그런 허용 Allowance이 바로 전략적 허술함입니다. 할 수 없어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하지 않는 것입니다. '전략적 허술함'이라는 모순된 표현이 그래서 나왔습니다.

최근 경제민주화 바람에 편승해서 대기업들이 여러 상생 방안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는 NHN/네이버에서도 인터넷 상생안을 발표했습니다. 기본 내용은 1000억 정도의 상생 자금으로 벤쳐를 육성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전략적 허술함을 보여주지 않고 그냥 상생기금만을 제공한다면 1년, 5년, 10년이 지나고 나서도 현재와 별반 다를 게 없을 것입니다. 국내의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자회사를 통해서 모든 부품을 수급합니다. 간혹 협력업체가 있지만 그네들의 삶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가격 후려치기 등의 온갖 방법으로 협력업체의 피를 빨아먹으면서 대기업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상생이라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상생이란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나 혼자서 모든 것을 하지 않음으로써 이웃에게 길을 터주면서 시작됩니다. 이것이 바로 전략적 허술함입니다. 전략적으로 부족하게 남겨놓고 그 남겨진 부분을 주변에서 채워줄 때 상생이 가능하고 건전한 생태계가 만들어집니다. 이런 전략적 허술함을 배웠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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