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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을 달리 해석하는 것은 읽는 이의 자유지만 그것이 내 의도는 아님을 미리 밝힙니다.

기본적으로 나는 야근을 권하지 않는다. 계약을 맺은대로 정시에 출근해서 정시에 퇴근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그러나 불가피하게 야근 또는 추가 근무가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비록 본인 (또는 상사나 동료)의 무능, 잘못 짜여진 계획, 부족한 리소스 (시간) 등의 이유로 인한 잔업을 해결하기 위한 야근도 절대 지지하지 않는다. 물론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합의와 공감대가 있었다면 얘기는 조금 달라지겠지만…

지난 연말부터 새로운 프로젝트에 투입됐고, 이것 때문에 서울에서 파견 오신 분도 계신다.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서울에서 오신 분들은 잠만 숙소에서 자고 아침 8시에 출근해서 밤 12시 또는 그보다 늦은 시간에 퇴근하는 것이 다반사다. 평소에도 일찍 퇴근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함께 일하시는 분들이 늦게까지 야근하기 때문에 그들과 같이 퇴근하지는 못하더라도 평소보다 조금 더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있게 된다. 물론, 사무실에 남아있는다고 일만 하는 것은 아니고 1~2시간정도는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괜히 남아서 게임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더 얄밉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먼저 사무실을 떠나는 것이 편하지 않다.

참고로, 기본적으로 나는 제주에 내려오면서 나인투나인으로 생활하고 있다. 가능하면 아침 9시 이전에 출근해서 밤에 8시나 9시정도까지는 사무실을 지키려고 한다. 대학원 연구실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던 것이 몸에 베어 그런 것도 있지만, 워크홀릭이라서 그렇게 실행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8시간 동안 모든 능력과 집중력을 압축해서 소진해버리고, 일과 무관한 세상으로 도피하는 (그리고 다음날 또 도살장으로 끌려가듯 일터로 나가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그저 8시간동안 집중할 것을 9~10시간으로 양적으로 완화, 분배해서 여유롭게 일을 하고 싶을 따름이다. 담배를 피거나 커피를 마시면서 수다도 떨지 않기 때문에 잠시 머리 식히려고 퍼즐을 하는 것은 좀 용납해줘으면 한다. (사실 퍼즐을 하고 있을 때는 가장 많이/집중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쨋든 그렇게 조금 늦게 회사에 남아있다보니 이제 저녁 7시가 넘어서 야근하는 사람들을 거의 볼 수가 없고, 대부분의 사무실은 불이 꺼져있다. (실은 한 두 사람 때문에 불필요하게 사무실 전체가 환희 불켜져있는 것이 맞다.) 내가 처음 제주로 내려왔던 6년 전과는 사뭇 다른 사무실 풍경이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함께 밤 늦게 일하던 대부분의 동료들이 이제 결혼해서 애를 낳고 가정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도 이유이기는 하지만… 잠시 감정을 추스리고...

그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새로 들어온 젊은 친구들이 야근을 하는 모습을 쉽게 보는 것도 아니다. 간혹 급한 잔업을 처리하기 위해서 야근하는 모습은 보이지만, 야근이 사라진 사무실의 풍경이 이제 전혀 낯설지가 않다. 칼출근, 칼퇴근이 나쁘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근태관리는 중요하다.)

잔업에 의한 야근은 분명 반대하지만, 지금은 열정에 의한 야근마저 사라졌다는 것에 답답하고 암울하다는 얘기다. 지금은 형식상 야근이 사라졌다는 것이고, 실질적으로는 열정과 의욕이 사라졌다는 것을 뜻한다. 업무의 연장선에서 더 나은 제품/서비스/성능을 위한 야근도 사라졌지만, 더 심각한 것은 새롭고 다른 것을 시도해보기 위한 야근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전자든 후자든 자발성에 의한 야근이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제 직원들이 창조성과 생산성을 위해서 잉여력을 기꺼이/자발적으로 투자하지 않는다. 그냥 소비하고 소진할 뿐 창조하지 않는다. 다양한 원인과 이유를 모두 설명할 수 없지만, 어쨌든 결론적으로 열정이 사라졌고 그 현상으로 야근하는 모습이 자취를 감췄다.

몇 년 전 소셜 커머스가 이제 막 생겨나던 시절에 몇몇 직원들이 듀얼잡으로 소셜 커머스 서비스를 운영하다가 적발돼서 감봉 등의 징계를 받은 사건이 있었다. 분명 이중취업을 금지한 회사 내규를 어겼기 때문에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사안이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 또는 실수 또는 잘못을 단순히 감봉하고 징계하는 선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새로운 기회로 삼아서 사내 벤처 형식으로 도전의 기회/장으로 활용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확신컨대 해당 소셜 커머스 서비스는 별로 빛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례를 통해서 사내의 다른 직원들도 도전의 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고 그래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벌써 2~3년도 더 지난 이야기지만 그런 기회를 통해서 그 사이에 제도권 내에서는 만들어질 수 없었던 다양한 서비스나 제품이 만들어져서, 회사 전체의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하고 수익이 되는 사업으로 발전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실패했을 수도 있다.)

낮에는 맡은 회사일에 충실하고 그리고 퇴근 후에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저녁이 있는 삶은 중요하다) 또 다른 기회를 위한 도전이 이뤄지는 삶의 모습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벅차다. 그러나 그런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야근이 사라졌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의욕과 열정이 사라졌다. 언제든 버려질 수 있는 부속품이 되어 회사를 힘겹게 다니는 동료들의 모습만 보인다. 새로운 도전, 무한한 꿈, 넘치는 열정… 여유가 없으니 문화도 없고 시스템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회사에 경쟁력있는 서비스가 없는 것도, 주가가 시원치 않은 것도 문제겠지만, 그건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그런 문제들은 어떻게든 해결될 수 있다. 단, 열정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직원들이 존재할 때의 얘기다. 지금은 직원들에게서 그런 열정과 도전을 발견하기 어렵다. 그래서 회사의 전망이 어둡다는 거다. 캐시카우는 만들어서 키우면 되고 그러면 자연스레 주가는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그런 캐시카우는 만들고 키우는 직원이 없다면… 그들의 열정과 상상력과 도전이 없다면….?

야근이 사라진 것이 아쉬운 것이 아니라 함께, 아니 먼저 사라져버린 열정과 도전이 아쉽다. 나는 아직도 가슴이 뛰고 있는데… (몸도 지쳤고 마음에 상처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아직은 버틸 수 있지만… 힘든 건 힘들다.) 로켓에 빈 자리가 나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도 이젠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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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innyland.tistory.com BlogIcon 바람이 머무는 하늘 2014.05.13 10:55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안녕하세요, 잘 보고 갑니다. ^^;
    추천 시스템에 대해서 열심히 보다가 가벼운 글까지 함께 읽게 되었네요.

    야근에 대해서 읽고 있으니 문득 프랑스로 건너간 어떤 개발자가 겪은 야근에 대한 SNS가 생각나네요. 근면한 한국 개발자로서 프랑스에서 일하면서 8시, 9시까지 남아 일을 하다보니 매니저가 와서 화를 내더랍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열심히 하고 싶어서 그런거다. 성과가 나면 당신에게도 좋지 않느냐' 라고 응수했다지요. 매니저가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당신 한 사람으로 인해서 나머지 사람들이 따라 야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겨서는 안된다. 우리는 일의 성과보다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저녁시간이 훨씬 소중하다. 우리가 힘들게 만들어 놓은 문화를 제발 망가트리지 말아달라' 라고요. 역시 나라마다 문화가 틀리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단순히 생겨난 문화가 아닌, 개발자들이 스스로 노력해서 만들어간 근무 문화가 정착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 역시 해 보았습니다.

과시적 생산

Gos&Op 2013.04.08 09: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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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잉여'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잉여력이 어떻게 사회를 변화시키는가? 많은 이들의 잉여력을 어떻게 한 곳에 집중시킬 수 있을까? 사람들이 기쁘게 자신의 잉여력을 기부할 수 있는 분야는 무엇일까? 등의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사람들의 잉여 이유를 알고 싶었습니다. 이 글이 모든 잉여의 이유를 설명해주지는 못합니다.

재미있는 경제학 용어가 있습니다. 미국의 경제학자 베블린 Thorstein Veblen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베블린효과 Veblen Effect라고도 불리는 '과시적 소비 Conspicuous Consumption'라는 용어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위키를 참조하시고 (위키링크), 대략적으로 설명하면 사람들의 소비행위가 자신의 계급이나 지위를 남에게 과시/뽐내기 위한 행동의 일종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소비 행위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고가의 명품을 구입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잘 설명해줍니다.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기 때문에 자신의 위치를 나타내기 위해서 고가의 명품을 구입하는 경우도 있지만, 역으로 자신의 지위가 높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고가의 제품을 구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명품/고가품의 구입이 단지 과시성만이 이유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즉 과시성이 주가 되기 때문에 비쌀수록 더 잘 팔리는 기현상도 발생합니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고가의 명품을 구입하는 과시적 소비가 있다면, 비슷한 이유로 과시적 생산도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잘 난 사람이야' '나는 뭐든지 잘해' 등과 같이 자신의 역량을 과시하기 위해서 이것저것 만들어 보여주고, 스스로를 과시하고 뿌듯해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종종 봅니다. 이런 생산에서의 과시성이 잉여력의 한 이유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지나친 과시정으로 잉여력 이상의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는 헛된 과시성의 중독도 목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잉여력의 발산의 큰 부분이 과시성이 있는 것같습니다. 스스로 좋아서 하지만, 굳이 필요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 소비에서 처럼 -- 과시성으로 설명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변에 이것저것 남들을 잘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는 오픈소스 커뮤니티에서처럼 자신의 시간과 리소스를 기부하는 행위를 종종 봅니다. 이들이 그런 행동을 통해서 실질적으로 얻는 것도 없으면서 그것을 계속 하는 것은 적어도 남들 (도움을 받은 이)에게 인정을 받기 위한 심리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여러 커뮤니티나 서비스를 둘러보면 회원들을 등급으로 나누는 것도 일종의 과시성 및 과시성을 부추기는 것같습니다. 그냥 일상의 생각을 기록하던 블로거들에게 '파워블로거'라는 명칭을 붙여주고는 그들의 잉여력을 최대한 뽑아내려는 것도, 그리고 스스로 파워블로거라고 자부하면서 스스로 대단한 위치에 있는 것처럼 여기는 것도 모두 과시성입니다. 필요에 의한 것도 있지만 게임에서 만렙을 얻거나 성주가 되는 것도 그런 과시성이고, Q&A 서비스에서 최고 등급을 받기 위해서 모든 질문에 답변해주는 것도 일종의 과시성의 발로입니다.

적당한 과시성은 좋은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공유경제가 더 활성화되고 자발적인 문화가 번성합니다. 그러나 과시성에 중독되어 자신의 능력 범위를 벗어나는 것은 위험합니다. 요란한 선행 Blatant Benevolence라는 말이 있습니다. 과시성이 지나쳐서 자신의 모든 선행을 남들에게 떠들석하게 알리는 것입니다. 남몰래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 플래쉬 세례를 받으면서 떠들석하게 기부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과시성만으로 모든 잉여력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직접적인 혜택이 없는 잉여력의 발산을 과시성보다 더 잘 설명해줄 수 있는 다른 것도 없을 듯합니다. ('이타성'이 있긴있네요. 근데 많은 이타성 내에도 과시성이 존재한다고 생각됩니다.) ... 잉여력의 발산이 과시성에 기인했든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건 세상에 기여하는 다양한 잉여력의 발산은 늘 좋습니다.

(2013.04.02 작성 / 2013.04.08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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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이해관계

Gos&Op 2012.03.27 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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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에 회사분과 얘기하면서 잠시 스친 생각입니다. 회사에서 생활하다 보면은 이제 더이상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동료가 아닌 경쟁자라는 느낌을 자주 받습니다. 지금 많은 회사들은 연봉제와 인센티브제도에 기반해서 동료가 좋은 성과를 내어 좋은 평가를 받으면 상대적으로 내가 나쁜 업무평가를 받는 구조입니다. 많은 경영서적들은 동료 간의 협력체계가 굳건하면 전체 팀이나 조직이 좋은 퍼포먼스를 낸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같은 팀에 소속되어있지만 각자의 성과지표 KPI를 맞추기 위해서 경쟁하는 경쟁관계가 되어있습니다. 선의의 경쟁이 존재하지만 경쟁이 과열되면 전체의 조화보다는 개인의 성과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동료도 이제는 경쟁관계이고 이해관계가 되었습니다. 경쟁관계와 이해관계가 똑같은 의미는 아니지만, 언제나 자신의 이해에 따라서 동료와 협동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용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냥 무시해버리기도 합니다.

같은 회사나 같은 팀에 속한 경우에도 서로가 서로를 이해관계로 여기기 시작했는데, 만약 다른 팀이나 다른/경쟁 회사에 속한 사람들과의 관계는 더욱 이해관계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비협력게임 Non-cooperative game에 익숙해져있습니다. 자신이 가진 정보는 철저히 보호하면서 남이 가진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때로는 자신이 가진 정보의 양이 자신이 가진 힘의 크기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자신이 가진 정보를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이에게 공유하면 자신의 힘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합니다. 한 조직 내에서도 경영자들은 자신이 구상하는 조직의 미래 청사진/장기 비전을 제대로 공유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그런 경우 아래 직원들은 장기 마스트플랜에 따라서 전략적으로 움직이기 보다는 단기 성과를 위해서 임기응변식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무한경쟁과 약육강식이라는 회사/사회 내에서의 우리들이 이해관계가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 듯합니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는 우리는 비이해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문수학한 대학에서도 서로 좋은 학점을 얻기 위해서 경쟁을 펼칩니다. 고등학교에서도 서로 더 좋은 내신을 얻기 위해서 경쟁을 하고, 서로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경쟁을 합니다. 그런 경향은 점점 더 어린 세대들에게 전이되고 있습니다. 중학생들도 고등학교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초등학생은 중학교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그 이하의 유아들도 서로 더 좋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배당되기를 위해서 경쟁을 합니다. 어쩌면 산부인과 선택에서부터 그런 경쟁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릴 적을 회상해보면 동네 친구는 그냥 친구였습니다. 먹을 것이 있으면 같이 나눠먹고, 심심하면 서로서로 불러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기꺼이 가르쳐주고 또 상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이 다릅니다. '잘 모르겠는데요'라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자신을 한수 접고 들어가는 것으로 비쳐집니다. 때로는 상대를 속이기 위해서 '잘 모르겠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여러 서적들을 읽어보면 비이해관계를 통한 사회개혁을 이룬 사례들을 자주 봅니다. 그런 사회활동들이 멋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현실에서 나는 그런 비이해관계를 맺어서 더 숭고한 꿈을 성취하기 위한 활동을 할 가능성이 너무 낮습니다. 늘 마음으로는 이웃을 돕고 싶은데, 내가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돈을 허비해버리면 옆의 동료들에게 뒤쳐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늘 조급해집니다. 매일 잠들기 전에는 조금 더 느리게 조금 더 심플하게 살고 싶다고 말하지만,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어떤 일을 빠릴 해치울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내가 줄 수 있는 것보다는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에 더 마음이 빼았깁니다.

처음에 글을 시작할 때는 이런 무거운 분위기의 글보다는 발전적인 글을 적을려고 구상했는데 어느 순간 신세한탄으로 빠져버렸습니다.

이 사회에서 비이해관계를 맺으며 지속가능한 사회를 꿈꾸는 모임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에 허심탄회하게 서로를 도와주고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공유하고 또 내가 가진 재능을 기부하는 그런 모임말입니다. 늘 내가 만들고 있는 서비스에만 관심을 두다 보니 내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하는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나의 잉여 자원을 사회에 기부하고 또 남의 잉여 자원을 수혈받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모임이나 플랫폼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직업의 세계에서는 스스로 프로페셔널이 되기에 전념을 하지만, 그외의 삶의 일상에서는 스스로 즐거움에 심취한 아마추어리즘에 빠져보고 싶습니다. 어쩌면 사회의 진화는 프로들의 노력에 의한 것이겠지만, 사회의 지속은 아마추어들의 즐거운 기여에 의한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주변을 좀더 관찰해보고 이런 활동에 관심이 있는 많은 잉여들을 집결하는 일을 해봐야겠습니다. 먹고 사는 일에 대한 문제보다는 사람으로 사는 삶에 집중할 때입니다.

처음에는 비이해관계를 잉여와 아마추어리즘에 연결하고, 또 그것을 해커문화로 연결한 글을 적고 싶었는데, 이해관계/경쟁관계에 대한 한탄이 너무 길어서 더 발전적인 글을 적지 못했습니다. 생각을 더 정리해서 조만간 다시 글을 적겠습니다.

P.S. 원래 이 글은 'The Big Bang Theory'라는 미드를 가지고 글을 전개할 예정이었습니다. 시즌2에 나오는 'Friends with Benefits'이라는 단어가 적당한 시작포인트로 생각했는데, 글의 전개가 달리 흘러가서 그냥 그렇게 적었습니다. (참고로, Friends with Benefits은 위키백과에서도 설명하듯이 결혼이나 약혼 등의 깊은 관계를 전제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벼운 성관계를 맺는 친구사이 정도로 설명하는 단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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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글타래를 이어갑니다. 오늘은 장황하게 글을 적지 않고 그냥 의미있는 설문조사 결과/기사만 소개합니다. (퓨리서치)
 1. 재미있는 검색. FUN
 2. 잉여자들을 위한 검색 Search As Fun
 3. 잉여를 위한 검색은 없다. No Search for Abundance/Surplus
 4. 잉여의 나라로 Into Real World
 5. 검색의 재미 검색의 잉여 Fun of Search
 6. 잉여와 잉여자, 그리고 검색 Abundance & Surplus

 재미있는 설문조사가 퓨리서치에서 발표했습니다. 미국 성인들의 과반수 이상이 재미로 인터넷에 접속한다는 조사결과입니다. (퓨리서치의 원본 리포트) 논란의 여지가 없게 하기 위해서 퓨리서치의 원본글을 인용하겠습니다.
These results come in the larger context that internet users of all ages are much more likely now than in the past to say they go online for no particular reason other than to pass the time or have fun. Some 58% of all adults (or 74% of all online adults) say they use the internet this way. And a third of all adults (34%) say they used the internet that way “yesterday” – or the day before Pew Internet reached them for the survey.1 Both figures are higher than in 2009 when we last asked this question and vastly higher than in the middle of the last decade.
 대강 번역하자면 "모든 연령대의 인터넷 사용자들이, 과거에 비해서, 특정한 이유를 갖고 인터넷 (온라인)에 접속하는 것보다 그냥 시간을 보내거나 재미를 위해서 인터넷에 접속한다. 모든 성인의 59% 또는 모든 온라인 성인의 74%는 인터넷을 그런 용도로 사용한다고 답했다. 그리고 34%의 성인들이 설문조사 전날 그런 용도로 인터넷을 사용했다고 답했다. 그런 경향은 같은 질문이 마지막으로 조사된 2009년보다 높아졌고, 10년전보다는 월등히 많이 증가했다"입니다.  (아래 그래프 참조) * 재미있는 것은 그래프에서 보듯이 2009년과 비교해서 장년과 노년층에서는 그런 트렌드가 다소 누그러졌지만, 젊은층에서는 더욱 커졌다는 것. 나이가 들수록 인터넷피로도도 커졌다는 의미일까요?
 

지난 10년간 인터넷을 시간떼우기 또는 재미를 위해서 사용한다는 응답률의 각 연령대별 추이도.


 사람들에게 늘리 퍼진 가장 일반적인 가정은  '인터넷 = 정보의 바다'입니다. 즉, 인터넷은 정보를 탐색하기 위해서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의 조사결과에서 보듯이 단지 그 목적으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위에서 응답한 60%의 사용자들의 대부분이 인터넷을 이용하는 첫번째 목적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그러나 단지 정보만을 얻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인터넷이 우리의 삶에 더욱 밀접하게 연결될 수록 우리의 삶도 인터넷에 더욱 밀접해진다는 것입니다. (말장난처럼...) 모든 제품이나 서비스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 목적/의도와 다른 진화된 용도로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재미를 얻는다는 의미는 (일단 온라인게임을 제외하고) 인터넷에서 원래 궁금했던 사항이 아닌 정보를 탐독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올드미디어 시절에 집으로 배달되는 신문의 모든 헤드라인을 훑어보거나 (또는 전체 기사를 읽어보거나) 특정시간대에 방송되는 뉴스를 시청하듯이, 지금 우리는 포털에 접속해서 전체 또는 특정 섹션의 기사들을 훑어보고 있습니다. 필요한 특정 정보를 얻는다는 의미보다는 어떤 의미에서 시간을 떼우기 위한 행위입니다. 그나마 뉴스기사 (물론 제대로 적은 기사)는 정보성 컨텐츠지만, 그 외에 다양한 재미있는 유머나 사연, 이미지, 동영상 등을 감상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더우기 소셜미디어에서는 친구들과의 수다도 정보성보다는 오락성에 더 가깝습니다. 위의 그래프에서 보듯이 젊은 성인일수록 재미를 위해 인터넷을 사용한다는 응답률이 높다는 것도 큰 의미/시사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보의 바다 인터넷에서의 꽃인 검색도... 검색도 충분히 재미를 위해서 사용될 수 있고 또 재미를 위한 검색도 가능하다는 결론은 너무 성급한 것일까요? 검색이 그런 용도 FUN로 사용되는 것에 문제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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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번째 글입니다. 글의 시작은 재미있는 검색을 만들자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바쁜 현대인들에게 잠깐의 기쁨을 줄 수도 있겠으나, 그것보다는 잠시라도 여유를 찾은 이들에게 검색이 어떤 혜택을 줄 수 있을까로 이야기가 흘러갔고, 재미있는 검색을 논하기 전에 검색이 줄 수 있는 재미는 어떤 것이 있을까?라는 물음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핵심된 내용이 정리되지 못하고 지난 다섯편의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 논의흐름의 맥이 될 '잉여는 무엇이고 잉여자는 누구인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대상으로 삼고 싶었던 그들이 누구이며 그들의 속성이나 성향을 알지 못하면서 그들에게 재미를 주겠다는 어설픈 논의는 핵심을 벗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먼저 지난 다섯편의 논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재미있는 검색. FUN
 2. 잉여자들을 위한 검색 Search As Fun
 3. 잉여를 위한 검색은 없다. No Search for Abundance/Surplus
 4. 잉여의 나라로 Into Real World
 5. 검색의 재미 검색의 잉여 Fun of Search

 과연 잉여는 무엇일까요? 잉여를 그냥 나머지, 떨거지로 생각한다면 이전 글에서 짧게 언급했던 소비 또는 유희의 시대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입니다. 잉여란 단지 필요가 없어서 남는 것이 아닙니다. 잉여란 많아서 흘러넘침을 뜻합니다. 가둘 수 있는 통의 용량은 제한되어있는데, 그것보다 더 많이 들어와서 흘러넘치는 상태입니다. 돈의 잉여라면 벼락부자, 졸부가 자신의 부를 주체하지 못해서 마구잡이로 돈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를 이미 충족시키고 또 그 이상의 기본 욕망을 충족시키도 남아서 그것을 더 가치있는 곳에 사용하는 것이 잉여입니다. 시간의 잉여도 단지 할 일이 없어서 빈둥거리는 것이 잉여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고, 그리고 고갈된 에너지를 재충전한 상태에서 (충분한 재충전의 의미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자신의 본업도 아니고 그렇다고 휴식도 아니지만 개인 또는 사회적으로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시간의 잉여일 것입니다. 소비의 시대는 무조건 자신의 가진 것을 허비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유희의 시대는 단지 재미를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소비와 유희의 말에는 더 고차원의 중용이 있습니다. 일에 따른 휴식 그리고 그 이상이 잉여입니다. 

 잉여자는 그런 잉여의 가치를 알고 그것을 즐기는 자입니다. 단지 시간이나 돈이 남아돌아서 마구잡이로 허비하는 사람에게 잉여자라는 별칭을 붙이기 어렵습니다. '잉여자'가 주는 어감이 조금 부정적인 것은 압니다. 지금 논의에서는 구시대적 관점이나 가치에서 붙여진 그 부정적 '잉여/잉여자'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잉여자는 플러스알파의 가치를 아는 사람입니다. 잉여자는 그냥 (돈이나) 시간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을 가치있게 활용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잠깐. 음 고백하자면.. '잉여'라는 용어는 박상민님의 '소프트웨어, 잉여과 공포'라는 글에서 가져왔습니다. 글하단의 '참고' 참고.)

 앞에서 돈과 시간을 얘기했지만, 잉여를 말할 때는 '돈'보다는 '시간'에 관계된 것같습니다. 사람의 시간을 구분해보면 '일/업 + 휴식 + alpha'정도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일의 종류가 다르고, 휴식의 방법도 다르고, 알파의 유무도 다를 것입니다. 직장인은 직장에서 주어진 업무가 일이지만, 학생은 (학교)공부가 일이 됩니다. 그리고 휴식의 방법도 단순히 잠을 자는 것에서부터 음식을 먹는 것, 마사지나 사우나를 하거나, 독서나 TV시청/게임 등의 개인차기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은 일과 휴식의 시간은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논의에서 어떤 일/휴식을 가졌느냐 또는 얼마나 일/휴식을 하느냐보다는 알파의 유무나 크기의 차이가 중요합니다. 이 알파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뉴욕대학교 교수인 클레이 셔키 Clay Shirky의 <많아지면 달라진다 Surplus Cognitive>에서 주장하는 사회를 위해 더 가치있는 기여로 발전하느냐를 결정합니다. 

 휴식을 넘어서는 부분에서 (시간의) 잉여가 시작하고, 그 잉여휴식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그리고, 제 글의 시리즈에서, 그 지점에서 검색이 어떤 기여를 하고 가치를 줄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불필요하게 추가된 잠이나 TV시청, 게이밍을 다른 더 가치있는 실내/야외활동으로 전환시킬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잠이나 TV시청 등에 더 중요한 가치는 두는 이들에게서 그것들을 빼았을 생각은 없습니다. 지금 논점에서는 필요이상의 그것들, 즉 잉여에 대한 얘기입니다.) 시간이 있는 (그리고 조금이라도 의지가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더 창의적인 활동의 무대로 끌어들일 것인가? 야외에서 레즈스포츠를 즐긴다거나 실내에서 독서 등의 취미활동을 한다거나... (잠이나 TV/게임 등이 취미일 수도 있죠.^^) 이 지점에서 검색이 도와줘야 합니다. 그래서 검색의 '추천'기능과 '노하우'기능이 필요합니다. 추천은 말그대로 영화나 도서 등을 사용자에게 알려주는 것이고, 노하우는 (단순 지식iN이라는 Q&A서비스가 아닌) DIY를 위해서 가이드를 해주는 것입니다. (추천과 노하우에 대한 내용은 지금 그리고 내년에 제가 담당할 일과 연결된 부분이라 지금 당장은 자세한 설명을 생략합니다. 몇 개월 후에 또 다른 기회를 통해서 어떻게 추천할 것인가? 또 어떻게 노하우를 발견/공유할 것인가? 등에 대한 주제를 만들어보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테마검색이나 실세계검색이 이 추천과 노하우와 맥이 통합니다. 테마검색이나 실세계검색은 별 생각없이 막던졌던 용어인데, 지금보니 추천/노하우의 전형입니다. 그런데, 이 추천과 노하우 (또는 테마검색과 실세계검색)이 합쳐지면 'Act-How'가 됩니다. 앎으로써의 지식이 아닌 행함으로써의 지식.

 ** 참고. 박상민씨의 '소프트 한국'이라는 제목으로 현재 6편까지 연재되어있습니다.
 1. 소프트웨어, 공포와 잉여 
 2. 영웅이 탄생하기 힘든 나라
 3. 실무형 인재란 없다!
 4. 세상을 바꾸는 '잉여인'
 5. 지식의 역사, 소프트웨어
 6. 안드로이드? 진짜는 아마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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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TA 때문에 두개의 글을 적기 전에 연속으로 4편의 글을 적었습니다. 오늘 그 시리즈를 조금 이어갈까합니다. 지금 제목만 생각났을 뿐, 어떤 내용으로 이야기가 구체화되고 전개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시작합니다. 시작을 해야 생각을 이어갈 수 있고 글을 마무리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FTA 문제도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결론이 나고 세상이 바뀝니다.) 재미있는 검색에 대한 저의 이전 담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재미있는 검색. FUN
 2. 잉여자들을 위한 검색 Search As Fun
 3. 잉여를 위한 검색은 없다. No Search for Abundance/Surplus
 4. 잉여의 나라로 Into Real World

 미리 말씀드리지만, 아래는 두서없는 글입니다. 결론도 정답도 없습니다. 설마 끝까지 읽고 욕하지 마십시오. 미리 경고했습니다.

 처음 글을 적기 시작한 것은 '검색은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것에 더해서 '검색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명제로 시작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을 위해서 어떤 모습으로 검색이 가능할까를 생각하면서, 말도 안 될 수도 있지만, 검색게임이라는 것도 생각해봤고, 테마를 정해놓고 A-to-Z를 보여주는 테마검색, 그리고 온라인에서 뿐만 아니라 실세계에서 즐길 수 있는 놀이거리를 제공하는 실세계검색 등의 이야기를 펼쳤습니다. 처음부터 '검색은 재미있어야 된다'라는 생각에서 이런 연속의 글을 적었습니다.

 그런데 방금 뿌나를 보면서 갑자기 든 생각이 있었습니다. 검색은 재미있어야 된다. 그런데 '검색의 재미'는 뭘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그래서 잠시 닫혔던 이 글시리즈를 다시 열었습니다. 검색의 재미는 뭘까요? 검색의 재미를 제대로 파악해낸다면 역으로 재미있는 검색을만들 수도 있을 것같습니다. 일종의 리버스 엔지니어링 Reverse Engineering입니다. 사실 제가 이 글들을 적으면서 처음부터 결론을 이를 생각이 없었습니다. 더우기 지금의 의문 '검색의 재미는 무엇일까?'는 어느 한 사람의 생각으로 정리될 문제가 아닙니다. 막상 글을 적기 시작하니 저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질문을 오픈 쿼스쳔 Open Question으로 남겨놓으려 합니다. 정말 무책임하죠?

 한번 TV 시청을 시작하면 쉽게 TV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그래서 독서 등의 다른 행위를 할 시간이 부족해지기 때문에 일주일에 정해진 몇 편의 TV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TV시청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특히 연속극의 경우 몰입의 정도가 심하기 때문에, 매번 조심스럽습니다. 그렇게 조심한다고 하면서도 덫에 걸려들었습니다. 바로 '뿌리깊은 나무'입니다. 뿌나의 경우 내용전개도 재미있지만 그 속에 더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고, 그 의미가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과도 너무나 서로 닿아있습니다. (군왕의 도리와 백성의 삶. 지금 위정자들의 배신과 FTA정국, 언론은 왜곡되어있고 그래서 더욱 언로가 막혀버리고, 신문방송의 통제를 넘어 인터넷/SNS의 통제까지도 넘보고 있는 작금의 상황을 500년 전 세종의 한글창제 정신에 비추면 너무 한심하고 부끄럽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검색을 업으로 삼고 있는 본인에게 너무 많은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검색이란 무엇인가? 내가 지금 검색서비스를 왜 만들려고 하고 있는가? 과연 내가 세종이 백성들을각하는 것과 비견될만큼 다음검색을 사용하는 유저들에게 유익과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 모든 서비스를 기획, 개발하고 있는가? 등의 질문이 끊이질 않습니다. 지금 인터넷이라는 것이 500년 전의 문자 (한글창제)와도 너무 닿아있습니다. 

 결국 재미있는 검색이란 없습니다. 사용자들에게 가치를 줄 수만 있으면 그것이 바로 재미있는 검색입니다. 역으로 검색의 재미는 사용자의 가치충족과 만족일 듯합니다. 검색은 유저들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해줄 수 있을까? 원론적으로 정확한 질의에 대한 답변정도. 그렇지만, 단순히 문자화/디지털화된 문서/정보가 아니라 그 이상의 삶을 줘야 합니다. 삶. 그것이 실세계입니다. 인터넷에 의존해서 살아가지만 우리는 여전히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주는 하나의 통로로써 검색이 역할을 할수 있을까요? 아니 그런 검색을 만들 수 있을까요? 

 데이터의 발굴, 정보의 습득, 지식의 발견에 더해서 삶의 지혜를 경험하는 것. 그것이 검색이 줄 수 있는 최고의 가치이고 재미일 듯합니다. 그런데 검색이 삶의 지혜를 줄 수 있을까? 무엇이 지혜인가? 또 어떻게 그걸 만들 수 있는가? 발견의 즐거움보다 더 큰 행동의 즐거움을주는 검색서비스를 꿈꿔봅니다. ... 누군가는 꿈을 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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