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7.10.12 꾸준함이 무기다.
  2. 2013.12.19 당연함과 인숙함과의 결별
  3. 2012.11.09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꾸준함이 무기다.

Gos&Op 2017.10.12 18: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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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게시판에 적었던 글을 그냥 가져옵니다. 수정도 귀찮아..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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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 man, in mathematics you don't understand things. You just get used to them.
- John von Neumann


야공만에서 폰 노이만이 '수학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것을 보고 찾아본 원문입니다. 수학 뿐만이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매너리즘에는 빠지지 않고) 익숙해지는 것은 우리 삶에 필요한 덕목입니다.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꾸준해야 합니다.


어려운 논문을 읽다 보면 처음에는 잘 읽히지 않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해했을 수도 있지만, 그냥 익숙해졌을 수도 있습니다. 복잡한 수식을 증명하거나 유도 과정을 풀이하지 않고 마치 단어를 외우듯이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고 넘어갑니다. 딥러닝을 처음 접할 때 소개되는 다양한 수식들이 처음에는 와닿지 않습니다. 동영상 강의를 듣거나 풀이집을 여러 번 반복해도 볼/읽을 때만 '아하'하다가도 시간이 좀 지나면 수식의 전개 과정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비슷한 논문을 반복해서 계속 읽다보면 비슷한 패턴이 보이고 복잡하게 도출된 수식 그 자체를 그냥 하나의 지식 체계로 받아들이면 이후에 다른 논문을 읽을 때 편하게 느껴집니다.


수학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개발언어에서 새로운 프레임워크가 나왔을 때 처음에는 적용하기 어렵지만 예제를 반복하고 때론 패턴을 그대로 적용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게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몰라도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냥 적용합니다. 말콤 그래드웰이 말한 '1만시간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물론 후속 연구들에서 천부적인 재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반복해서 얘기하고 있지만, 천재가 아니더라도 웬만한 작업은 계속 반복하다 보면 익숙해집니다. 아무리 길치더라도 새로운 길에서 헤매지 매일 다니는 똑같은 길에서 헷갈리지 않습니다. (물론, 살짝만 바꿔도 다시 길을 잃을 가능성은...) 앞서 말했지만 익숙해진다는 것은 반복의 결과이고, 반복은 다시 말해서 꾸준함을 뜻합니다. 삶의 여러 방면에서 꾸준함은 참 중요한 덕목입니다.


요즘 늘 후회합니다. 딥러닝이 처음 알려지기 시작할 때부터 꾸준히 공부했더라면 지금쯤 나도 AI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는 않았을까? 학생 때부터, 아니 입사 후부터 꾸준히 개발언어와 프레임워크에 조금씩이라도 더 친숙하고 개발에 꾸준히 참여했더라면 지금 느끼는 부족함을 덜 느끼지 않았을까? (... 그랬다면 여기서 지금 이런 글을 적고 있지 않을....) 배에 쌓이는 인덕을 보면서 꾸준히 운동을 했더라면...


발전/진보의 과정에는 소위 말하는 퀀텀점프 또는 혁명적인 발전도 있지만 일상의 꾸준한 개선도 있습니다. 파괴적 혁신이라는 말에 속아서 일상의 개선보다는 특별한 혁신의 과정에 더 관심을 갖겠지만, 많은 혁신들이 일상의 개선 위에서 생겨납니다. 물론 혁신에서의 단절은 개선으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지금 각광받고 있는 많은 기술들이 초기에는 왜면을 받았지만 그걸 믿고 꾸준히 연구하고 개선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그런 사람들이 지금은 대가라는 칭호를 받습니다. 딥러닝에서 힌튼같은...


꾸준함의 적은 게으름입니다. 그리고 제대로 되겠어라는 (소멸적) 의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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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아서 수정없이 그냥 복붙했는데, 부연설명이 필요할 듯... 하지만 귀찮으니...


=== Also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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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 지나고 이제서야 몇 자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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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그동안 침묵하던 불편한 물음과 대면하고 있다.
누군가가 아닌 우리 모두가 답을 해야할 물음이다.

대학에 들어가면 안녕할 수 있을까요?
학점을 잘 받으면 안녕할 수 있을까요?
취직을 하면 안녕할 수 있을까요?
승진을 하고 연봉이 오르면 안녕할 수 있을까요?
결혼을 하고 애를 낳으면 안녕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그 답을 모르면서 그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에 바쁘다.

폭력에 시달리고 성적을 비관해서 죽어가는 친구들이 옆에 있는데도,
취업을 못해 졸업도 미루고 고시촌을 전전하는 친지가 옆에 있는데도,
비정규직, 해직으로 신음하는 동료가 옆에 있는데도,
아파도 병원, 약국도 제대로 못 가는 이웃이 옆에 있는데도,
우리는 그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만 하면 그만이다.

당장 나한테 불편한 것은 절대 못 참으면서
사회의 모든 부조리에는 싑게 눈을 감는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메시지 속에서 철저히 세뇌되었다.

우리는 그저 대학만 들어가면, 취직만 하면, 승진하고 성공만 하면...
그렇게 착함을 강요받는다.
착함이 미덕이 되었다. 아니 이 표현은 틀렸다.
착함은 절대 미덕이 되었다.
착한 아이, 착한 학생, 착한 직원, 착한 국민...
우린 그렇게 사회 정의와 단절되어 살아가고 있다.

안녕하냐고 물으셨나요?
절대 안녕 못합니다.
사회의 부조리 때문이냐구요?
아니요.
부정선거, 대량해고, 국유재산의 사유화, 대통령의 불통은 다 무시할 수 있습니다.
당장 눈 앞에 있는 시험이, 진학이, 취직이, 승진이, 결혼이...
어려워서 안녕하지 못합니다.


3년이 넘도록 분노하라 팔찌를 끼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사회와 타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적당히 눈을 감는 법도 배웠고
적당히 뒤로 물러나는 법도 배웠습니다.
까불면 찍히고 튀면 혼자 병신이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불만분자, 부적응자가 이제 순한 양이 되었습니다.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 믿었지만 그렇게 타협했습니다.

불편하더라도 끽소리도 못 내고
억울하더라도 눈치를 보며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조용히 살고 착하게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 아들이, 그런 학생이, 그런 직원이, 그런 국민이 되는 것이
최고의 미덕을 가지는 것으로 배웠습니다.

당연함과 익숙함과의 결별이 두렵습니다.
그러나 모두 함께 하는 새로운 도전이 설렙니다.
이제는 다른 차원의 안녕하지 못한 세계로 나아갑니다.

문제가 있으면 답이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의 답이 아닌 무수히 많고 다양한 답들이 있습니다.
어렵다는 것은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벌써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정해진 과거가 아닌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갑니다.
그 출발점에서 늘 두렵지만 또 설렙니다.
게임은 시작되었고 이제 멈출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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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에 오랜만에 불면이 찾아왔다. 낮에 여러 가지 일들로 신경을 썼더니 조금 마신 커피에도 몸이 바로 반응을 한 모양이다. 더우기 오늘 휴가를 미리 내놨기에 굳이 일찍 잘 필요도 없었다. 불면은 괴롭지만 정신이 말짱해서 다양한 생각들이 떠오른다. 때론 서비스에 대한 나름 획기적인 아이디어도 떠오르지만 쓰잘데기없는 지난 일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냥 떠오르는 생각들을 흘려보내면 그만인 것을, 이것을 또 페이스북에 올리게 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익숙치않은 것에 자신이 없어지는 것... 나도 그렇다.

낮에 서울에서 내려온 기획자를 오프라인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사람을 사귀는 것에 매우 서툰 편이지만, 그래서 앞으로 몇달간 같은 문제로 서로 고민해야할 사이인데 오프라인에서 일면식도 없이 그저 화상미팅이나 메일/메신저로만 대화하는 것은 사뭇 불편해서, 앞으로 진행될 프로젝트의 방향을 정해보자는 것을 핑계로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싶어서 출장오라고 부탁했던 거였다. 막상 어렵게 출장을 내려왔는데 처음부터 회의실에 마주 앉아서 딱딱하게 일 얘기부터 꺼내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같아, 미팅 전에 커피나 한잔 하자며 일리에서 만났다. 그냥 짧게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왜 그런 얘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연애도 좀 하시고...'라는 얘기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래서 그냥 웃고 넘겼다.

그렇게 그냥 웃고 넘겼던 그 얘기가 제주의 잠 못 이루는 밤에 문득 떠올랐다. '연애도 좀 하시고...' 무슨 의미로 그런 얘기를 꺼냈지?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낮에 그냥 웃지 말고 뭔가 얘기를 해줬어야 했나?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때 문득, '나이가 들어서'라고 대답을 해줬어야 했다고 직감했다. 근데 나이가 든 것과 연애를 안 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오랫동안 솔로로 지내는 사람들은 흔히들 연애세포가 죽었다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나는 연애DNA를 가져본 적도 없기에 죽었다라는 표현이 안 맞다. 연애세포가 죽은 것이 아니라, 애초에 연애DNA가 없었던 것같다. 나는 연애에 익숙치가 않다. 그런데 지금 연애를 시작한다는 것은 이유없는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이때 떠오른 문구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익숙치않은 것에 자신이 없어지는 것...'였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연애를 못한다'라고 말하면, 그렇다면 나이가 든 지금 여러 서비스나 트렌드에 대한 새로운/창의적인 생각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거 아니냐?라고 물어볼 수가 있다.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머리가 굳을만큼 나이를 쳐먹었으면서 파릇파릇한 어린 기획자에게 서비스에 대한 훈수를 둘 신선함/창의성이 아직도 네게 있냐?라고 상대가 생각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그런데 나는 그런 분야에서는 여전히 창의적이고 늘 새로움을 갈구한다고 자평한다. 그럼 나는 아직 나이를 먹지 않은 것일까? 그러면 연애도 시작하면 되겠네?라는 그런 생각.. 그런데 연애는 두렵다. 왜? 서비스나 트렌드에 대한 것을 말하는 것은 나에게 익숙한 일이지만, 목적과 이해를 위해서 여성을 만난다는 것은 나에게 익숙치 않은 일이다. 만약 더 어렸을 때, 미팅이나 소개팅에 나가보라고 했으면 못 이기는 척 나가봤을 법도 하지만, 지금은 그런 제안이 들어오더라도 선뜻 '네'라고 대답을 못한다. 이건 내게 익숙한 일이 아니다.

내가 하고 있는 업무나 분야에 더욱 깊숙이 파고들수록 다른 분야의 일을 하게 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5년, 10년 전이었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 그런 사소한 일들도 그렇다. 이제 익숙치 않은 환경에 놓이는 것이 불편한 나이가 되었다. 아직도 해보고 싶은 많은 일들이 있다. 그러나 무모하게 도전해본 적은 오래되었다. 익숙치 않은 그것들을 내 삶에 들려놓기가 무섭기 때문이다. 새로운 오름을 오르는 것은 익숙하나 새로운 악기를 배우는 것은 익숙치 않다. 이제 나에겐 익숙한 것과 익숙하지 않은 것으로 나뉜다. 그것은 또 두렵지 않은 것과 두려운 것으로 구분된다. 내 나이가 그렇다. 두려움은 나이와 함께 자란다. 앞으로 두려운 것들이 더 많아지겠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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