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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 되니 여러 가지 이슈로 많은 글을 적게 됩니다. 개인의 취미 생활에서부터 사회 문제까지 적고 싶은, 그것보다 적어야하는 글들이 쏟아집니다. 일전에 다음인들에 의한 제주사진전@한남에 대한 글을 올렸는데 (참고. 다송밤을 준비하며... (제주 사진전 at 한남)), 그것의 경과/결과에 대한 글도 적어야 하는데, 다른 글들 때문에 미뤄지거나 취소될 듯합니다. 어쨌든 지금 글은 사진전의 연장선에서 나온 얘기이고, 그리고 더 근본적인 대한민국의 현실에 관한 얘기입니다.

사진전을 준비하면서 저는 제주에서 있으면서 사진을 좋아하는 동료들에게 사진 기부를 독려하고 모아서 서울로 보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나머지 전시 관련 사항은 서울에서 알아서 하기로 했습니다. 처음 기획 단계에는 개별 회의실에 개인별로 전시를 하는 것으로 준비되었는데, 여건상 그냥 전체 공간에 일부 사진만 전시하자는 의견으로 수렴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여기까지만 들었고, 나중에 실제 전시된 사진을 보니 제주도 모양으로 사진들을 아름답게 붙여놓았습니다.

약 160 여장의 사진을 서울로 보내줬는데, 전시된 것을 촬영한 사진을 보면 약 6~70장 밖에 전시되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주도 외 (네팔 & 크로아티아)에서 찍은 사진도 빠져있는 것같았습니다. 그래서 전시공간이 부족하니 모든 사진이 전시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도 들었고, 또 주제가 제주 다음인의 생활이어서 제주도 사진만 선별했구나 정도로 이해했습니다. 저는 중간 과정을 알고 있었기에 현 상황을 이해할 수 있지만, 사진을 제출해주신 분들이 중간과정에 대한 설명이 없이 혹시 현재 전시된 것을 보면 자칫 오해하거나 서운해하실 것같아서, 중간 과정을 미리 설명을 못 드렸고 과정이 조금 변경되어 현재 전시된 것에서 모든 사람 / 모든 사진이 전시된 것같지는 않다는 이해의 메일을 적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일요일 저녁에 전체 참여자분들께 메일을 보내드렸는데, 서울에서 다송밤을 준비하셨던 분이 저녁 늦게 전화가 왔습니다. 자초지종은 이랬습니다. 제주에서 보내준 모든 사진이 전시되었는데, 한 곳에 모두 전시하면 공간도 부족하고 산만하고 보기에도 불편해서 두개의 제주도를 완성했고, 제주외 사진은 별도로 전시가 되어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월요일) 아침에 바로 전시된 모든 사진들을 찍은 사진도 보내주셨습니다.

중간 과정에 부분적으로 받았던 정보와 그리고 사진 한장으로 저도 오해 (문자 그대로 mis-understand)를 했고 또 다른 분들이 오해를 할 것같아서 해결하기 위해서 보냈던 메일이 또 다른 이가 오해를 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오해와 문제가 있는 상태에서 그냥 지나치지 않고, 또 바로 잡아주셔서 더 큰 오해가 생기기 전에 잘 해결되었습니다. (저는 잘 해결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바로 생각난 것이 '모든 커뮤니케이션 문제는 결국 커뮤니케이션으로 해결된다'라는 점입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많은 오해를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대부분의 오해는 잘못된 커뮤니케이션에 따른 오해입니다. 부족하거나 잘못된 정보가 전달된 경우도 있고, 전달된 정보를 잘못 해석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오해를 그냥 속으로 삭히거나 유야무야 넘겨서 감정의 골만 더 쌓고 지나친 경우가 많았던 것같습니다. 오해로 인해서 순간적으로 감정이 나쁠 수도 있겠지만, 잘 다스리고 바로 풀 수 있어야 한다는 나름의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지난 정권부터 계속 이슈가 되는 단어는 소통입니다. 이번 정권에 들어와서는 더 부정적인 불통으로 악화되었습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말이 안통하네뜨'라는 풍자는 현 상황을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지난 1년 간의 모든 사건들을 되돌아 볼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안녕들 하십니까?' 신드롬과 철도민영화 및 민주노총 강제진입 사건을 옆에서 목격합니다. 이것들은 모두 커뮤니케이션에서 오는 문제들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커뮤니케이션에서 오는 문제는 결국 커뮤니케이션으로 풀어야 합니다. '살려주세요'라고 외치는데 '너는 종북이야'라고 되받아치고, 여러 사회 이슈가 터질 때마다 다른 이슈로 덮어버리고 (그렇게 강하게 의심되고.. 참고 '아시나요, 2013?' 저는 이 시점에서 디스패치는 국정원이 만든 연예찌라시 언론이 아닐까라고 강력히 의심해봅니다.), 우선 대화를 해보다가 꼭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면 공권력을 사용해도 늦지 않은데 과거 방식으로 그냥 짚밟아버리고... 결국 해결되는 것은 하나도 없고 문제만 더 키워버리는 꼴이 되어 버렸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커뮤니케이션만이 커뮤니케이션의 해결책이다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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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unexperienc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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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주제에 대해서 일반화된 글을 적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지금은 일반화시킬 의도가 없습니다. 그냥 제가 적은 몇몇 단문들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하시는 분들이 있는 것같아서 그냥 글을 남기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글을 적을까도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글이 길어질 것같기도 하고, 또 트위터나 페이스북의 타임/뉴스라인은 또 너무 쉽게 묻혀버리기에 조금 더 영구기억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도 생겨서 블로그에 글을 적습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글을 적으면서부터 때론 의도적으로 또 때론 그냥 무의식적으로 짧은 글을 남기게 됩니다. 트위터는 잘 알듯이 140자의 제약이 있고, 페이스북은 트위터보다는 길지만 400자의 제약이 있습니다. 400자를 넘기면 노트로 넘어가기 때문에 긴 생각을 적을 때도 가능하면 400자 내에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또 3~400자가 넘는 글은 잘 읽지도 않기 때문에 페이스북에 글을 적을 때도 가능하면 1~2줄 내의 글을 적을려고 많이 노력합니다. 물론, 감상에 젖어들면 10줄 내외의 글을 적곤 합니다. (여기서 감수성BGM이 흘러나와야할 듯..) 이렇게 제한된 공간에서 의도적으로 핵심만 남기기 위해서 그 글을 적게된 주변 동기들을 모두 생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블로그의 글들을 보면 서론같지 않은 긴 서론이 특징입니다. 왜 이런 글을 적게되었는지에 대한 배경/부연설명이 없이는 제가 적는 글의 생명력이 없어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긴 서론을 남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는 그런 서론을 완전히 무시하고 단순히 1~2문장의 글로 제 생각을 표현하게 됩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또는 당시의 주변상황에 대한 설명, 즉 컨텍스트/문맥 정보를 생략한 글을 남기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컨텍스트가 없는 글/컨텐츠가 중의적으로 된다는 것은 필연입니다. (물론 제가 일부러 그런 중의성을 허용하기 위해서 일부러 컨텍스트를 빼버리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특히 은유적으로 감정을 표현할 때는 더욱더 컨텍스트를 빼버리게 됩니다. 표현은 하고 싶은데 너무 상세하게 적으면 나중에 부끄러워질 것같아서...) 이런 중의성을 가진 글은 당연히 읽는 사람들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하게 됩니다. 비록 의도된 중의성이었지만, 의도되지 않은 해석의 확대는 참 난감합니다.

 컨텍스트가 없는 글에 대한 글에 대한 대체적인 반응은 '누구야?'와 '어디가?' 정도인 듯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누구야'는 the one and/or every one and/or some one and/or any one and/or no one입니다. 경우에 따라서 다 다르기도 하고, 다 같기도 합니다. (아, 참고해야할 한가지.. 내가 보통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면 '나'에 대한 일반화다. 내가 그렇게 생각/행동하듯이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생각/행동할 것같다는 의미다.) 그리고, '어디가'는 지금 당장은 어디에 안 갑니다. 특히 이직과 연결짓는 경우가 있는데, 현 시점에서는 고려된 바가 없습니다. 물론, 제 인생 40에서는 전혀 다른 도전을 해보겠다는 것이 지난 10년의 꿈이었음을 감추지는 않겠습니다. 어제 페이스북의 비디오 클립에 적었던
그런데 용기란 가진 게 많을 때보다 가진 게 없을 때 필요한 것...
3년 전에 '욕심'이 내게 큰 주제였는데, 최근에는 '불확실성'이 주제.
꿈을 이루기 위해선 불확실성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위의 코멘트에 대해서 이직과 연결을 지으시는 분도 계시던데,... 무일푼의 세계여행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것일테니 당장 저의 특수성과 연결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욕심과 불활실성은 저의 욕심과 불확실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진짜 군집으로써의 '인간'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최근 세계경기의 급락의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서 꺼낸 카드가 인간의 욕심과 그리고 미래의 불확실성입니다. 물론 불확실성에 대해서는 더 개인적인 접근이 필요한 키워드이기는 합니다. (여러 책과 자료들을 읽으면서, [일부/전체] 인간의 지나친 욕심이 세계 경제의 급락을 부추겼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인간의 욕심이라는 것도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는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의도적으로 또는 우발적으로) 컨텍스트를 배제한 글을 적어서 괜한 확대해석이나 곡해, 오해를 불러일으킨 점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짧은 글을 자신의 컨텍스트 내에서 상대의 심정을 이해/해석하려는 시도도 참 위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최근에 자주 강조하듯이 컨텐츠보다는 컨텍스트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곤 합니다. (물론, 기술적인 부분에서의 컨텍스트는 아주 적은 몇 가지로 압축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의미에서의 컨텍스트로 확대...)

 요약하면... 인터넷 공간에서 의도적으로 컨텍스트를 배제한 (은유적인) 글을 적게 되지만, 그걸 지나치게 확대해석하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의 글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글을 적는 묘미가 아니겠는가. (머리 속의) 생각은 나의 것이고, (표현/공개된) 글은 나와 너의 것이고, 해석은 너의 것이다. 그런데 '해석 = 생각'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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