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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6.07 이미 있는 기능. Not Invented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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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아침에도 주제넘는 트윗을 해버렸다.
네티즌의 반응 중 가장 안타까운 것 하나.. "이미 있던 기능" (참고링크)
 
 지난 새벽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애플의 WWDC (WorldWide Developers Conference)가 열렸다. 애플 생태계에 기여하는 많은 개발자들이 모여서 애플이 최근에 개발한 OS나 개발툴 등을 소개하고 시범운영하는 행사다. 최근에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성공으로 iOS를 기반으로 한 개발자들이 많이 늘었기 때문에 예전보다 더 많은 참가자들이 다양한 세션에 참석하는 듯하다. 내가 애플에 관심을 처음 가졌던 것이 2004년부터였는데,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매년 6월에 정기적으로 열린다. 그리고, 1월에 맥월드도 열리지만, 애플이 더 이상 맥월드에식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니 어쩌면 애플이 주관하는 최대 행사는 WWDC가 유일하지 싶다. 보통 맥월드에서는 행사명에서도 유추가능하듯이 맥에 초점을 맞춘 행사다. 그래서, 보통 애플의 신상 하드웨어는 주로 맥월드를 통해서 소개된다. 반면 WWDC도 이름에서 유추되듯이 하드웨어보다는 개발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신제품이 발표된다. 올해 WWDC에서도 애플 맥/PC의 차기 OS인 라이언, 아이폰/패드/팟의 차기 OS인 iOS5, 그리고 아이클라우드 iCloud가 소개되었다. 애플의 신제품 발표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지만, 앞서 말했듯이 겨울에는 하드웨어 중심의 발표 그리고 여름에는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발표한다. 그리고 간혹 중간중간에 소규모 컨퍼런스/기자간담회를 통해서 몇몇 개선된 하드웨어들을 발표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겨울에는 맥PC, 여름에는 아이폰/팟 위주의 발표를 많이 했기에 이번 발표에서 아이폰5나 아이폰4GS 등이 발표될 거라는 루머/기대도 있었지만 원래 컨퍼런스 취지에 맞게 키노트에서는 두 종의 OS와 클라우드 서비스만 발표되었다.

 애플의 키노트는 많은 이슈를 양산한다. 4~5년 전만 하더라도 단지 맥유저 (또는 소위 맥빠)들만 애플에 관심을 가졌는데, 아이폰의 충격 이후에는 일반 시민들도 애플의 신제품과 스티브 잡스의 키노트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것같다. 그렇기에, 잡스의 키노트 이후에 국내 IT 신문이나 블로그에는 애플의 신제품 소식으로 넘쳐난다. 내가 처음에 애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그 당시의 분위기와는 진짜 많이 변했다. 내가 2004년도에 파워북을 산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보였던 반응 (내가 1996년에 친구가 맥킨토시를 산다고 했을 때 보였던 내 반응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이나 2005년에 한국에 귀국했을 때도 학교에서 맥 유저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2008년도에 회사에 들어오니 주위에 맥PC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물론 2008년도는 아직 아이폰이 보급되기 전이지만, 그래도 개발자들 사이에는맥이 많이 보급되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2011년도 지금은 회사에서 소규모 미팅을 하게 되면 대부분이 맥북/프로/에어/아이패드를 들고 회의에 참여하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잠시 이야기가 옆으로 샜지만 그만큼 지금 애플과 애플의 제품/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을 실감한다. 지난 가을에 학교에서 강연을 해주면서 IT/과학 섹션의 뉴스의 절반 이상이 애플과 관련된 뉴스다라고 과장해서 말한 적도 있지만, (사실 느낌상 50%이상인 듯도 하다. 실제는 외국의 경우 15~20%정도가 애플뉴스다.) 적어도 애플의 신제품 발표 이후에는 국내지면의 50%이상이 애플 이야기로 넘쳐나는 것같기도 하다.

 단순히 애플의 신제품을 소개하는 뉴스도 있고, 그런 서비스가 IT 생태계나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심도깊게 분석한 글도 있다. 그런데 가장 한심한 기사로는 단순히 트위터나 블로그 등에서 올라오는 소비자들의 반응만 짜집기해서 뭔가 대한한 뉴스인양 글을 송고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데, 그런 네티즌의 반응 중에서 재치있는 반응들도 있지만 참 안타깝고 한심한 반응들도 많이 본다. 그런 반응 중에서 가장 한심하고 안타까운 반응으로 '이미 있던 기능이네'라는 반응이다. 그래서, 글이 길어졌지만 도입부에 던졌던 트윗을 하게 되었다. 내가 그들의 반응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오늘 라이언이나 iOS5에 소개된 많은 기능들이 안드로이드나 다른 여러 제품들에존재하던 기능들이다. 굳이 이걸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단순히 이전에 존재하던 기능들이다라고 폄하하기에는 그런 말을 너무 쉽게하는 자신들의 무지나 편협함을 어쩔건지 모르겠다. 나는 그냥 애플 애호가이지만, 남들이 보면 애플빠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무조건 애플의 발표를 옹호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이제껏 보여줬던 애플의 철학에 심히 공감을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애플을 방어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이전에 존재하던 기능을 애플이 구현했기 때문에 찬사를 보내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최고의 창조적인 기업이라는 찬사를 듣는 애플이 기존에 다른 기업들이 일부 구현했던 것을 자신들의 스펙 내에 포함시켰다고 그걸 마치 대단한 것인양 자랑하는 것이 낯뜨거워 보이기도 한다. 

 이전에 존재하던 기능... 애플 제품에 그런 기능이 없었다면 그걸 구현해서 조용히 집어넣으면 되지 왜 그렇게 호들갑이냐?라고 묻는다면 이 말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이전에 존재하던 기능을 자신들의 철학에 맞게 재해석해서 자신들만의 것으로 만들어냈다면 그건 칭찬할만한 일이다. iOS4가 처음 소개될 때, 멀티태스킹이나 폴더 등과 같은 기능도 그 전에 안드로이드나 탈옥된 iOS에서 모두 구현되던 기능이다. 그래서, 국내 IT에서는 나름 유명한 구글의 한 직원의 트윗이 회자된 적도 있다. (그 트윗은 그런 기능들이 이미 안드로이드에서 다 구현되었다는 식의 글이었다. 나의 첫 반응은 'So What?' 이었다. 그걸 표면적으로 반응하지 못했던 점이 아직도 아쉽다. 그래서 이 글을 적는지도 모르겠다.) 개별 기능들이 존재한다고 해서 전체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뽐내기 위해서 제품 전체의 그림에 어긋나는 것들을 마구 수셔넣는 것은 나쁜 짓이다. iOS4를 발표하는 당시에 스티브 잡스가 자신들도 예전부터 멀티태스킹 기능을 넣고 싶었지만, 제대로된 멀티태스킹 기능을 넣고 싶었기 때문에 이전 버전에는 넣지 못했다는 뉘앙스의 말을 했다. 어쩌면 몇몇 선진 기능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했던 자신들을 변호하는 발언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때 잡스의 발언을 신뢰한다. iOS4가 소개되기 전에 탈옥된 iOS상에서 지원되던 멀티태스킹은 우리가 wired PC에서 보던 멀티태스킹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폰에 특화된 것이 아니라, 단순한 기능적인 멀티태스킹이었다. 지금도 아이폰의 멀티태스킹이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전의 탈옥 멀티태스킹은 훨씬 조잡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거다. 자신들의 제품 철학에도 맞지 않으면서 단지 소비자들이 원할 것같으니 조잡하게 구현해서 제품에 넣는 것은 기업이 저지를 수 있는 죄악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애플이 OS들을 개발해나가면서 멀티태스킹이나 폴더 등과 같은 기본 기능은 처음 디자인 단계부터 고려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많은 기능들은 처음에 생각지도 못했지만 탈옥된 OS나 다른 OS들의 기능들을 보면서 새롭게 배웠을 기능들도 있을 거다는 것을 부정하지도 않겠다. 처음 디자인 단계부터 고려되었던 많은 기능들이 여러 여건 때문에 뒤로 늦춰졌으리라 생각한다. 시간이나 인력 등의 현실적인 여건일 수도 있고, 아니면 잡스의 완벽주의에 기반해서 불완전한 버전을 배제시켰을 수도 있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만이 창의성은 아니다. 유에서 나만의 유를 재정의하는 것도 창의성이다. 요즘은 표절이라는 이슈에 민감하지만, 과거 우리 선조들은 한폭의 수묵화를 그리기 위해서 선대의 우수한 작품들을 수도없이 배끼면서 자신만의 실력을 터득해 나갔다. 모방을 통한 창조.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때로는 모방이 최고의 창조도구가 될 때가 있다. 문제는 모기업들처럼 창조에 이르지 못하고 모방에 거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업경영에 관한 책들을 읽어보면 과거 실패한 기업들 (어느 개그맨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집스러운 기업들)의 공통 특성 중에 하나가 NIH, 즉 Not Invented Here라고 한다. 즉, 자사에서 개발된 기능이 아니면 자사의 제품/서비스에 넣지 않는다는 거다. 그래서 더 좋은/완벽한 기능/솔루션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걸 자신의 것으로 체화시키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가끔 지적재산권이나 특허 때문에 사용을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자신들이 직접 개발한 것이 아니면 배척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애플도 한때 그런 문화가 있었지만, 몇 번의 실패 끝에 굳이 더 좋은 대안이 있을 때는 그걸 사용하자라는 교훈을 배웠다고 한다. (<아이리더십>에서 애플 부사장이 그렇게 밝혔다.)

 이미 존재하던 기능이라고 해서 생각없이 별것 없네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적어도 애플을 믿기 때문에, 키노트에서 이미 존재했던 기능이지만 그들이 키피쳐라고 뽑았을 때에는 그만큼의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 잘 개선해서 자신들만의 것으로 만들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NIH에서처럼 우리는 더 좋은 외부의 기능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는 메시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일 수도 있고, 아니면 오래 전부터 선보이고 싶었던 것인데 어쩌다보니 남들보다 늦춰졌지만 그래도 우리의 오리지널리티를 확신한다는 것을 내세우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단지 기존 버전에서 없던 기능 중에서 눈에 띄는 몇 개를 생각없이 제시했을 수도 있다. 여러 다양한 이유/속사정으로 그들이 대표특징으로 뽑았으리라 본다. 적어도 나는 믿는다. 그들이 단지 기능을 구현한 것이 아니라, 그런 기능을 통해서 (사용자들에게 전해주는) 가치를 만들어냈으리라고... 사용자들에게 가치를 줄 수만 있다면 자신들의 자존심을 버리고, 남들이 개발해뒀던 우수한 기능을 수용하는 것은 기업의 미득이다. 그러나 나는 절대 단순 모방이나 표절에 관대하지 않다. 오해는 없기를 바란다.

 제발 '이미 존재했던 기능'이라고 쉽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35년이 평생인 나의 삶 속에서 항상 내 생각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았다. 솔직해지자. 내가 내놓은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전적으로 100% 내것이 아니었던 적이 더 많다. 소두유. 

 사실 오늘 소개된 대부분의 기능들이 예전부터 기대/예상했던 것들임. 그런데 이전에 존재했고 충분히 예상되었던 기능들인데, 왜 애플이 구현/제시했을 때만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느냐?에 대한 질문에 해답을 찾지 않으면 경쟁사들은 어려움을 겪을 듯함. '우리는 이런 거 왜 못 만드나?''라고 묻는 거나 '기존에 있던 기능이네'라는 반응은 같은 맥락의 다른 표현임.
 
P.S. 음.. 그런데 만약 어제 발표가 애플이 아니라, 구글이나 삼성의 발표였고 네티즌들의 반응이 그랬다면 내가 지금 같은 논리의 글을 적고 있을까? 나이는 공으로 먹지 말고, 균형잡힌 시각이 필요한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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