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리즘'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2.03.28 사회를 위한 잉여 네트워크 More than Fun
  2. 2012.03.27 비이해관계
Share           Pin It

원래 어제 적고 싶었던 본 내용을 적으려고 합니다. 어제 적은 비이해관계에서는 사회가 진화론적인 적자생존의 경쟁을 부추기고 그래서 동료 및 공동체가 파괴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삭막한 시대일수록 더욱더 각자의 이해/이득/경쟁에 기반하지 않은 비이해관계의 구축이 필요하다/절실하다는 것이 주요 요지입니다. 이런 비이해관계로 구축된 공동체를 뭐라 부를까 고민하다가 '잉여 네트워크'라는 말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잉여들을 위한 공간'정도의 의미를 가집니다.

잉여 네트워크의 호혜주의 reciprocity에 기반을 합니다. 나의 존재와 활동이 타인에게 이득을 주고 또 타인의 행위의 결과가 나에게도 이득을 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익뿐만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편하게 여김으로써 공동체의 분위기가 가볍고 밝아지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경쟁 또는 타도 상대로 여기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고 보살펴주는 것입니다. 네트워크에서 하나의 노드가 실패하면 때로는 이웃 노드로 그것이 파급되어 전체 네트워크의 실패를 도래하기도 하지만, 하나의 노드가 실패하더라도 이웃 노드들이 서로 그것의 부족분을 보완해서 전체 네트워크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적자생존의 경쟁 네트워크에서는 최후에는 몇 개의 대형노드만 남게 되겠지만, 상보적인 잉여 네트워크에서는 실패한 노드도 재생시켜줘서 최후에도 전체의 균형 balance를 유지시켜 줍니다.

여기에서 자발적 기부라는 개념도 등장할 수 있을 듯합니다. 정의상 '잉여'는 남는 것을 뜻합니다. 경쟁체제에서는 내게 부족한 것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획득하고 남아도는 자원은 그냥 허비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호혜체제에서는 자신의 남는 부분을 사회/공동체에 기부해서 이웃의 부족분을 매꿔주게 됩니다. 그런데 아직은 이런 (재능)기부에 대한 플랫폼이 제대로 갖춰져있지 않은 듯합니다. 물론 그런 재능기부플랫폼이 잉여 네트워크이고, 잉여 네트워크의 한 결과물이 그런 재능기부플랫폼이 될 듯합니다. 그래서 결국 잉여 네트워크 또는 잉여 공동체는 사회를 위한 그리고 공익을 위한 서비스/커뮤니티인 셈입니다. 그리고 잉여의 기부이므로 모든 노드가 동일한 수준으로/일괄적으로 기부를 해야 한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넘치는 부분을 허비하지 않고 사회에 귀속시키는 것이지, 자신을 살신성인해서 퍼주는 것이 아닙니다.

잉여 네트워크가 추구하는 가치는 social responsibility입니다. 노드는 전체 네트워크에 속하기 때문에 네트워크 내에서의 책임을 다 해야 합니다. 최근에 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사회책임)이 강조되는 것과 비슷한 취지입니다. 그런데 각 노드 또는 전체 네트워크가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네트워크가 지속가능해야 합니다. 공동체가 지속가능 (sustainability)하다는 것은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네트워크를 유지할 에너지를 계속 공급받아야 된다는 소리와도 일맥상통합니다. 국내외의 많은 NGO들은 국가나 개인들의 기부로 운영을 계속 해가지만, 잉여 네트워크에서는 스스로의 힘으로 에너지 (a.k.a., 돈)를 생산/자급자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 한다고 하더라도 기업을 유지할 자본을 획득하지 못하면 결국 그 기업은 지속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결국 잉여 네트워크는 '좋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뻔한 결론에 이릅니다. 그리고 잉여 네트워크는 공동체라는 순수성을 영속시켜야 합니다. 구글이 초기에 <Don't be evil>로 선하게 돈을 번다 (또는 윈윈)는 것을 내세웠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에는 결국 하나의 주식회사 (직원과 고객보다는 주주의 이득을 대변하는 회사)로 바뀌면서 여느 기업 못지 않게 사악해져가는 것을 반면교사 삼아서, 공동체가 끝까지 순수하게 남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처음부터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잉여 네트워크의 정신은 해커리즘 또는 아마추어리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해커'는 남의 시스템에 불법적으로 침투해서 정보를 빼가거나 시스템을 파괴하는 자로 인식됩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순수하게 '잉여자들의 저항정신'정도로 약간은 미화된 개념이 받아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Mark Zuckerberg's Hacker WayHacker Culture: The Key to Future Prosperity 등의 글에서 해커문화 또는 해커의 순수성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해커와 크래커 Cracker는 구분이 되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미화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순수한 해커란 결국 아마추어 Amateur를 뜻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노동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즐거움/재미를 위해서 취미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마추어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순수한 즐거움을 넘어서야 합니다. 더이상 아마추어를 Just for Fun으로 정의하면 안 됩니다. 이제 More than Fun으로 정의내려야 합니다. 프로츄어라는 신조어가 생겼듯이 아마추어의 취미활동을 통해서 개인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유익에 앞장 서야 합니다. 이제는 Social Responsible Amateur의 과잉이 필요합니다.

다른 글에서 지속가능을 위해서는 자발성 Spontaneity 민주성 Democracy 다양성 Diversity가 필요하다고 적었습니다. (참조. 지속가능 웹생태계 조성자들) 벌써 3년 전에 생각했던 속성인데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만들어야할 잉여 네트워크도 자발적 참여에 의해서 조성되고, 민주적 방식으로 운영되고, 다양한 재능들이 모여서 성장해야 합니다. 여기에 앞서 말했던 순수성과 호헤성이라는 개념을 더 하면 될 듯합니다.

며칠 전부터 구상하고 있는 간단한 서비스가 있습니다. 조만간 그 서비스에 대한 내용도 잉여의 공유라는 취지에서 글을 남기겠습니다. No sooner than...

댓글을 달아 주세요

비이해관계

Gos&Op 2012.03.27 11:26 |
Share           Pin It

어제 오후에 회사분과 얘기하면서 잠시 스친 생각입니다. 회사에서 생활하다 보면은 이제 더이상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동료가 아닌 경쟁자라는 느낌을 자주 받습니다. 지금 많은 회사들은 연봉제와 인센티브제도에 기반해서 동료가 좋은 성과를 내어 좋은 평가를 받으면 상대적으로 내가 나쁜 업무평가를 받는 구조입니다. 많은 경영서적들은 동료 간의 협력체계가 굳건하면 전체 팀이나 조직이 좋은 퍼포먼스를 낸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같은 팀에 소속되어있지만 각자의 성과지표 KPI를 맞추기 위해서 경쟁하는 경쟁관계가 되어있습니다. 선의의 경쟁이 존재하지만 경쟁이 과열되면 전체의 조화보다는 개인의 성과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동료도 이제는 경쟁관계이고 이해관계가 되었습니다. 경쟁관계와 이해관계가 똑같은 의미는 아니지만, 언제나 자신의 이해에 따라서 동료와 협동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용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냥 무시해버리기도 합니다.

같은 회사나 같은 팀에 속한 경우에도 서로가 서로를 이해관계로 여기기 시작했는데, 만약 다른 팀이나 다른/경쟁 회사에 속한 사람들과의 관계는 더욱 이해관계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비협력게임 Non-cooperative game에 익숙해져있습니다. 자신이 가진 정보는 철저히 보호하면서 남이 가진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때로는 자신이 가진 정보의 양이 자신이 가진 힘의 크기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자신이 가진 정보를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이에게 공유하면 자신의 힘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합니다. 한 조직 내에서도 경영자들은 자신이 구상하는 조직의 미래 청사진/장기 비전을 제대로 공유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그런 경우 아래 직원들은 장기 마스트플랜에 따라서 전략적으로 움직이기 보다는 단기 성과를 위해서 임기응변식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무한경쟁과 약육강식이라는 회사/사회 내에서의 우리들이 이해관계가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 듯합니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는 우리는 비이해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문수학한 대학에서도 서로 좋은 학점을 얻기 위해서 경쟁을 펼칩니다. 고등학교에서도 서로 더 좋은 내신을 얻기 위해서 경쟁을 하고, 서로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경쟁을 합니다. 그런 경향은 점점 더 어린 세대들에게 전이되고 있습니다. 중학생들도 고등학교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초등학생은 중학교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그 이하의 유아들도 서로 더 좋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배당되기를 위해서 경쟁을 합니다. 어쩌면 산부인과 선택에서부터 그런 경쟁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릴 적을 회상해보면 동네 친구는 그냥 친구였습니다. 먹을 것이 있으면 같이 나눠먹고, 심심하면 서로서로 불러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기꺼이 가르쳐주고 또 상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이 다릅니다. '잘 모르겠는데요'라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자신을 한수 접고 들어가는 것으로 비쳐집니다. 때로는 상대를 속이기 위해서 '잘 모르겠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여러 서적들을 읽어보면 비이해관계를 통한 사회개혁을 이룬 사례들을 자주 봅니다. 그런 사회활동들이 멋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현실에서 나는 그런 비이해관계를 맺어서 더 숭고한 꿈을 성취하기 위한 활동을 할 가능성이 너무 낮습니다. 늘 마음으로는 이웃을 돕고 싶은데, 내가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돈을 허비해버리면 옆의 동료들에게 뒤쳐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늘 조급해집니다. 매일 잠들기 전에는 조금 더 느리게 조금 더 심플하게 살고 싶다고 말하지만,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어떤 일을 빠릴 해치울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내가 줄 수 있는 것보다는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에 더 마음이 빼았깁니다.

처음에 글을 시작할 때는 이런 무거운 분위기의 글보다는 발전적인 글을 적을려고 구상했는데 어느 순간 신세한탄으로 빠져버렸습니다.

이 사회에서 비이해관계를 맺으며 지속가능한 사회를 꿈꾸는 모임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에 허심탄회하게 서로를 도와주고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공유하고 또 내가 가진 재능을 기부하는 그런 모임말입니다. 늘 내가 만들고 있는 서비스에만 관심을 두다 보니 내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하는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나의 잉여 자원을 사회에 기부하고 또 남의 잉여 자원을 수혈받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모임이나 플랫폼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직업의 세계에서는 스스로 프로페셔널이 되기에 전념을 하지만, 그외의 삶의 일상에서는 스스로 즐거움에 심취한 아마추어리즘에 빠져보고 싶습니다. 어쩌면 사회의 진화는 프로들의 노력에 의한 것이겠지만, 사회의 지속은 아마추어들의 즐거운 기여에 의한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주변을 좀더 관찰해보고 이런 활동에 관심이 있는 많은 잉여들을 집결하는 일을 해봐야겠습니다. 먹고 사는 일에 대한 문제보다는 사람으로 사는 삶에 집중할 때입니다.

처음에는 비이해관계를 잉여와 아마추어리즘에 연결하고, 또 그것을 해커문화로 연결한 글을 적고 싶었는데, 이해관계/경쟁관계에 대한 한탄이 너무 길어서 더 발전적인 글을 적지 못했습니다. 생각을 더 정리해서 조만간 다시 글을 적겠습니다.

P.S. 원래 이 글은 'The Big Bang Theory'라는 미드를 가지고 글을 전개할 예정이었습니다. 시즌2에 나오는 'Friends with Benefits'이라는 단어가 적당한 시작포인트로 생각했는데, 글의 전개가 달리 흘러가서 그냥 그렇게 적었습니다. (참고로, Friends with Benefits은 위키백과에서도 설명하듯이 결혼이나 약혼 등의 깊은 관계를 전제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벼운 성관계를 맺는 친구사이 정도로 설명하는 단어입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