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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새벽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2014년도 월드컵 챔피언인 독일 대표팀을 상대고 2:0으로 승리했습니다. 아래의 골닷컴에서 개시한 카툰처럼 최근 5번 월드컵에서 4팀의 디펜딩 챔피언이 조별 라운드에서 탈락해서 일찍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우연히 유럽의 강호 4팀입니다. 게중에는 월드컵 전후의 유로에서도 우승을 했는 당대의 전성기를 보내던 팀들도 디펜딩 챔피언의 저주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걸까요? 이게 우리의 삶에서 어떤 시사점을 줄까요?

사진 출처: 골닷컴 페이스북 (https://goo.gl/3Ntyu6)


많은 전문가들이 공언했듯이 이들은 당대 최고의 팀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차기 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하지 못하고 초라하게 짐을 일찍 사야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들이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들이 챔피언이기 때문입니다. 정점에 있기 때문에 내려와야 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이들이 챔피언이기 때문에 변화의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입니다. 현재 전력을 유지하면 4년 뒤에도 우승을 할 수 있다는 일종의 자신감을 넘은 자만심이 이들을 변화시키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아트 사커의 지단도 4년동안 나이가 들었고, 견고하던 이태리의 빗장수비도 수비진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헐거워졌고, 샤비와 이니에스타로 대변되는 티키타카 스페인도 꽤 오랫동안 정상을 호령했지만 나이가 들어감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독일팀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4년 전의 멤버와 지금의 멤버에 큰 차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멕시코와의 첫 경기를 보는 순간 이번 대회에서 독일이 위험하다는 직감했습니다. 대회 전까지만 해도 모든 전문가들이 우승 확률 1순위로 점찍은 팀이었지만, 첫경기를 보면서 그들의 선수구성에서 이번은 어렵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16강은 진출해서 아주 잘하면 4강까지는 가겠지라고 생각했지만, 16강을 밟지 못하고 탈락했습니다.

변화를 못하는, 어쩌면 변화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모든 팀이나 조직은 결국 시간의 역습을 받습니다. 우수한 선수를 한두명만 더 추가하면 더 완벽한 팀이 될 것처럼 보이지만, 겉으로 더 날카로워지는 것처럼 보이는 그 순간 밑바닥에는 균열이 이미 생겼습니다. 한동안은 관성으로 그 균열이 보이지 않지만, 결정적인 순간 와르르 무너집니다. 단순히 내가 챔피언이다라는 그런 류의 자만심이 아니라, 주변의 모두가 추켜세워주기 때문에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없는 그런 자만심입니다. 간혹 형편없던 팀들이 깜짝 활약해서 얻는 단기간의 자만과는 종류가 조금 다릅니다. (2002년 이후의 대한민국처럼... 물론 나름 황금기를 보내기도 했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최강의 팀이기 때문에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자만이지만, 결국 끝을 향해가는 것입니다. 자만해서 변화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변화를 추구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은 흐러고 주변 환경은 바뀝니다. 모든 팀들이 전대회 우승팀과 경쟁하기 위해서 그들을 분석해서 파해법을 찾아냅니다. 챔피언은 불해히도 그런 기운을 감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만하다고 표현했습니다.

고인 물이 썩는다. 아주 적절한 표현은 아니지만 변화가 없을 때, 심지어 변화를 거부할 때 결국 다음의 상태는 실패의 나락뿐입니다. 변화는 늘 있었는데 그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변화에 편승하지 못하면 결국 고인물이 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 그래서 간혹 성공의 가장 큰 적은 성공이다라는 말을 합니다. 성공했던 그 기억에 도취해서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거나 변화를 거부합니다. 그래서 이전의 성공의 방식을 그대로 미래에 적용하지만 늘 같은 결과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전 성공과 미래의 성공 사이에 큰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미래에는 미래의 성공 방식이 존재합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실패의 원인은 구체적으로 잘 정리할 수 있지만, 성공의 이유는 그렇게 명확하게 말하기 어렵습니다. 많은 성공이 운에 따른 경우도 많고, 우연히 그리고 의도치 않게 찾아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무리 사후에 자세히 분석해도 그냥 결과가 성공일 뿐 왜 성공했는지 파악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그런 우연의 성공을 필연의 성공이라 믿으며 과거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이들은 결국 더 큰 실패에 이릅니다. 그래서 세상이 참 재미있습니다.

축구 얘기로 시작했으니 축구 애기로 마칩니다. 프로축구에서도 당대를 호령하던 팀들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부의 편중이 심해져서 강팀과 약팀이 확연히 구분되는 경우가 많지만, 과거의 당대의 축구팀들의 전성기도 보통 길면 5년을 못 넘겼습니다. 그 중심에는 특출난 슈퍼스타 선수가 있었거나 감독이 있었거나 뭐 그런 경우가 많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맞추다 보면 결국 팀이 변해야할 시점을 놓칩니다. 한두 시즌은 그 스타 플레이어의 마법에 의지해서 팀이 유지되지만 권불십년이라는 말처럼 전성기를 5년 이상 유지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성공의 이유였던 그 슈퍼스타가 결국 그 팀의 나락에서도 함께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레전드를 대우해주는 것은 옳은 정책이지만, 그 선수에 휘둘리면 결국 팀은 망합니다.

성공을 당연히 여기지 않고 늘 주변을 경계하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데 타이밍을 잡는다는 게 늘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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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카카오톡 치즈'의 사전 예약 이벤트가 시작됐다. 새로운 앱/서비스를 외부에 공개하기에 앞서 내부에 CBT (Closed Beta Test) 버전을 우선 공개해서 최종 테스트를 거친다. iOS CBT 버전을 최근에 몇 차례 사용했다. (아직 사진 결과물을 외부에 공개할 수는 없다.) 내가 원래 이런 종류의 앱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많이 테스트해보지는 않았다. (이런 종류 = 사진을 왜곡시키는) 치즈의 개발이 결정되기 훨씬 전부터 카카오에서도 카메라/사진앱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가졌지만, (최근 유행하는) 이런 형태/컨셉의 앱은 아니었다. 여행가서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듯이 프렌즈 캐릭터와 함께 사진을 찍는 그런 형태 (오프라인 스토어에서 캐릭터 인형과 함께 사진을 찍듯이)를 생각했고, 그래서 '프렌즈 캠'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프렌즈 = 친구 & 프렌즈 캐릭터, 캠 = 카메라 & 캠코더)

아래는 일종의 카카오 사내 게시판인 아지트에 올렸던 글이다. 제목은 '치즈는 성공할 수 있을까?'지만, 치즈에 국한한 얘기는 아니고 여러 미투 (카피캣) 또는 트렌드에 편승한 서비스/앱들에 대한 비판이다. 어쩌면 나의 관점이 틀렸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내부인을 위해서 가볍게 적었던 글임을 고려하고 읽기를 바란다. 전체를 그대로 옮겼지만 일부 내용은 수정한다.

* 치즈는 이 글의 계기일 뿐, 치즈의 성패를 논하는 글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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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는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물론 1천만명, 1억명의 사용자가 사용하는 서비스가 될 수는 있다. 그렇다 치더라도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다. 현재 트렌드와 프렌즈 캐릭터 로열티를 고려하면 실패하지 않은 서비스는 될 수가 있지만, 실패하지 않음이 성공했음과 동의어가 될 수가 없다. (*주, 현재 카카오에는 '1천만'이라는 괴물이 살고 있다.)

서비스에서 후발 주자들이 늘 하는 실수가 있다. 피타고라스정리처럼 마치 교과서에 공식이 나와있는 것 같은 동일한 실수를 반복한다. 반복되는 실수라면 실수가 아니라 실책이다. A라는 서비스가 갑자기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 같은/비슷한 개념을 가져와서 B라는 네이밍의 서비스를 만든다. 여기에 더 많은 기능을 추가한다. 더 많은 기능, 특히 무료 기능을 전면에 내세운다. 더 많은 기능은 보통 복잡도만을 증가시킬 뿐, 서비스의 유니크함을 주지는 않는다. (*주, 보통 개념의 차별화가 아닌 중요하지 않은 기능의 추가를 차별화 포인트로 내세운다. 그래서 실패.)

모바일 시대의 다음 Daum의 역사가 그랬다. 단문에 사진을 함께 올릴 수 있다는 걸 강조한 서비스가 요즘이었는데, 요즘은 지금 없다. 다른 정책적 판단 미스가 있기도 했지만 다양한 무료 스티커를 제공하고 더 편한 기능이 많았던 마플도 현재는 없다. 더 많은 용량을 제공하는 클라우드도 결국 비용 압박만 줬을 뿐 퇴출의 순수를 걸었다. 이정도만 얘기해도 머리 속에 떠오르는 많은 서비스들이 있을 것이다. 토픽은? 플레인은? 쏠을 기억하는 분들이 계시려나? 위드는? 150은? 해피맘은 아직도 있나? (*주, 그래도 발버둥이더라도 다양한 시도를 계속 했다는 점은 높이 산다. 그러나 다양한 시도가 개념과 방식의 다양화였으면 현재 유산으로라도 남았을텐데...)

물론 치즈는 악세사리에 가까워서 앞서 언급한 것들과는 조금 다르다. 귀걸이가 있다고 해서 다른 귀걸이를 구입하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스노우나 다른 카메라 앱들이 있다고 해서 치즈를 설치 안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이를 성공이라고 표현할 수도 없다. 그저 악세사리 중에 하나일 뿐이다. 자동차나 집이 될 수가 없다는 거다. 유행이 지나면 안 입고 결국 버려지는 옷... 명품으로 기억될 수는 있지만 더 이상 유행에 맞지 않는... 물론 명품이라면 유행을 거슬러야 한다.

서비스를 기획하고 디자인하고 개발하는 사람들이 너무 안일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치즈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카카오가 뉴스 서비스를 만들면 성공할 거라고 내놓은 것이 토픽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없다. (*주, 그리고 대부분 완성도도 떨어졌다. 그렇다고 영원한 베타 형식으로 꾸준한 개선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건 새로운 개념을 구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만약 치즈가 실패하고 철수했을 때, 치즈를 개발하면서 얻었던 경험이 다른 서비스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그래야 한다. 새로운 도전이 중요하지만 실패한 도전이 새로운 도전의 밑거름이 돼야 한다. 그런데 최근 몇년의 기억을 되돌아보면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페이퍼는 실패했지만 그 팀이 그대로 남아서 인스탄트 아티클을 만들었다는 것에 교훈을 얻어야 한다. 게임 개발에는 실패했지만 플리커와 슬랙이라는 유산을 남긴 걸 생각해야 한다. 트렌디한 서비스만 쫓다보면 무형의 경험도 유형의 유산도 남지 않는다.

후발 주자 중에서도 충분한 자금과 인력을 가지고 뚝심있게 밀어붙이는 패스트팔로워들이 있기는 하다. 그리고 그들이 시장을 점유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상에 선 그 순간이 바로 한계의 순간이다. 그런데 보통 자금이나 인력을 가진 거대 조직이라고 해서 후발주자로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고, 실패한 사례가 더 많다. 결국 개념과 철학의 부재는 비전을 모호하게 만들고 실행력을 갈아먹을 뿐이다.

보통 후발주자가 성공한 경우는 다른 외부적 요인(규제) 때문인 경우가 더 많다. 한글화라는 로컬라이징도 그렇고, 현지 실정법이라는 규제도 그렇다. (*주, 카톡은 일종의 한글화/현지화였고, 카택은 우버의 반사이익이 컸던 측면이 있다. 물론 이렇게 단순하게 정리될 사안은 아니지만...)

실패하지 않은 서비스가 성공한 서비스는 아니다. 비록 수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서비스가 되었다손 치더라도... 지금 당장 사금을 얻을 수 있다고 해서 대형 다이아몬드 원석을 발굴하는 노력과 가공하는 기술을 연마하는 노력을 게을리하는 우는 범하지 않아야 한다. 카카오에도 다시 천만요정의 가호가 있기를... (*주, 1천만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괴물이 될 수도 요정이 될 수도 있다.)


=== Also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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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이 계약된 일부 언론사의 기사 전문을 뉴스피드 내에서 바로 볼 수 있는 Instant Articles라는 기능을 아이폰용으로 먼저 선보였습니다. Instant Articles는 작년에 페이스북에서 선보였던 Paper를 만든 팀이 관여한 것이라고 합니다. Paper 앱은 아이폰용으로만 만들어졌고, 참신한 UX로 호평을 받고 초기에 주목을 받았지만, 이내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났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초반에는 페이퍼 앱으로 페이스북 글들을 읽었지만, 한달이 채 안 돼서 다시 원래 페이스북 앱으로 돌아왔습니다. 여전히 유용하게 사용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페이스북의 명성에 비하면 실패한 앱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그 페이퍼 앱을 만든 팀에서 다시 Instant Articles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결과는 두고 봐야겠지만, 페이스북의 뉴스피드에 네이티브로 제공된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낮을 듯하고, 더 많은 메이저 업체들이 Instant Articles를 통해서 기사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즉, 페이스북이 폭망하지 않는 이상은 성공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실패한 (것으로 추정되는) 페이퍼 앱을 만든 팀에 Instant Articles를 만들었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실패가 다음으로 이어진다면 그건 실패가 아니고, 성공이 다음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그건 성공이 아니다.'

단독 앱 또는 서비스만을 생각한다면 페이퍼는 분명 실패했지만, 페이퍼를 만들었던 경험과 노하우가 이제 Instant Articles에 녹여졌습니다. 인스턴트 아티클즈가 성공한다면 페이퍼 앱도 실패했다고 말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한 번의 실패가 그대로 끝난다면 그 실패는 확정되는 것이지만, 그 실패의 경험이 다른 도전으로 이어진다면 아직 실패가 끝난 것은 아닙니다. 물론 다음 도전이 성공하기 전까지는 실패가 여전히 이어지는 것이지만, 최종 실패는 아직 아니라는 말입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라는 상투적인 표현이 있지만, 실패가 다른 도전/성공을 낳지 못한다면 어머니가 될 수 없습니다.

역의 경우도 성립합니다. 한번의 성공 이후에 다른 성공이 이어지지 못한다면 그 성공이 과연 성공이었을까?를 재평가해야 합니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우연히 얻어 걸린 작은 성공에 도취되어 성장을 지속하지 못하거나 다음 성공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작은 기업뿐만이 아닙니다. 다음(카카오)도 초기의 한메일과 카페의 성공 이후로 제대로된 성공을 경험하지 못했고, (다음)카카오도 카톡과 카스 후에 잠시 주춤했었습니다. 삼성도 갤럭시S3 이후에 근근이 현상유지하는 정도입니다. 최근 S6가 대성공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작은 성공 이후에 대망 또는 작은 연속된 실패들이라면 결국 실패라고 봐도 무방할 듯합니다. (물론 그 이후에 다시 큰 성공을 터뜨릴 수도 있으니, 앞의 논리에 따라서 실패 확정은 아닙니다.)

실패를 실패로 만들지 않는 것, 성공을 계속 성공으로 이끌어가는 것... 핵심은 그 다음 도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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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을 되돌아보며 후회되는 것 중에 하나가 독서량이 많이 줄었다는 거다. 독서할 시간이 없었다기보다는 독서할 의욕이 없었다가 맞다. 왜 의욕이 부족했느냐?고 묻는다면 — 이미 몇 번 밝힌 듯하지만 — 재미있는 책을 읽지 못했다는 것이다. 분수에 맞지 않게 어려운데 두꺼운 책을 한 두번 읽기 시작하면 재미도 떨어지고 독서속도도 떨어진다. 자연스레 책은 뒤로 미루로 TV나 인터넷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평소와 다름없는 방식으로 책을 선정했다고 생각했지만, 2013년에는 책선정에 실패한 경우가 많았었다. 굳이 또 변명하자면 올해는 유독 500페이지 이상의 두꺼운 책을 많이 구입했던 것같기도 하다.

글의 제목은 마치 내가 2014년에 어떤 책을 읽을지 미리 알려주는 것같지만, 실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런 책을 읽어라라는 가이드를 해주려고 글을 적는다.

여러 번 밝혔지만 — 경험에서 우러나온 — 제가 읽지 않는 두종류의 책이 있습니다. 이건 저만의 편견일 수도 있으니 참조만 하세요. 저는 저자가 한국인이거나 일본인이면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읽지 않습니다. 대부분 원천적인 내용이 없거나 깊이가 없는 일종의 실용서라서 읽지 않습니다. 두번째는 자기계발서도 읽지 않습니다. 한동안 많이 읽어봤지만 내용이 대동소이하고 결국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덧붙여서 제목에 '마케팅'이 들어간 책도 이제는 구입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더 나아가 책의 키워드에 '성공'이 들어간 책은 읽지 말라는 당부를 하기 위해서 굳이 이 글을 적습니다. 요즘 많은 책들이 명시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성공을 말하고 성공을 보장한다. 그러나 그런 책들은 결국 당신의 성공이 아닌 저자와 출판사의 성공만을 보장해줄 뿐이다. 단기적인 성공이라는 키워드에 현혹되어 돈과 시간만 낭비하고 얻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내가 자기계발서나 마케팅 서적을 멀리한 이유도, 한국인과 일본인 저자의 책을 멀리한 이유도 모두 성공만을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공 키워드의 책을 읽은 양으로만 따지면 나는 벌써 거니제 부럽지 않은 억만장자가 되어있어야 한다. 그건 당신들도 마찬가지다.

노장 스타플레이어를 다룬 축구 기사에서 가끔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라는 빌 샹클리의 말을 자주 인용한다. 고전은 읽어야할까 말아야할까? 요즘처럼 트렌드가 급변하고 신기술이 쏟아지는데 고전을 읽어야할까?라는 말성임이 있다. 문학작품이라면 당연히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같다. 오디세이를 비롯한 고전의 서사 구조가 현대에까지 이어지고 있고, 현대와는 또 다른 소재의 재미가 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선택과 집중으로 픽션을 잘 읽지 않는다.) 그런데 넌픽션의 경우 고전을 읽어라라고 조언하기가 쉽지가 않다. 한의학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동의보감은 읽어야겠지만, 경제학을 배우는 사람에게 굳이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라라고 말할 수 있을까?

논픽션의 고전인 경우 이미 몇 문장, 심지어는 한두 단어로 압축, 요약된다. 연구논문이나 책에 인용하기 위한 연구자나 집필자라면 고전을 당연히 읽어봐고 인용해야 한다. (읽지 않고 어줍짢게 인용하는 것도 부정행위 Plagiarism 다.) 국부론은 절대우위론이나 분업화 등으로 요약될 수 있고,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도 패러다임 시프트정도로 압축된다. 물론 정확한 뜻을 파악하기 위해서 전체를 읽어봐야 한다. 대표적으로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Invisible Hands'이라는 표현은 국부론에서 한번인가 두번밖에 등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국부론과 그의 전작인 '도덕감정론'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자유시장주의 논리를 옹호하기 위해서 오용된 면이 있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국부론을 처음부터 읽어보겠다고 마음 먹은 사람은 보이지 않는 손이란 표현이 어디에 등장하고,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패러다임 시프트라는 말이 어디에 등장하는지 찾아보려고 집중해서 읽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그런 표현은 그냥 지나가는 글에서 잠시 언급되는 경우도 있고, 또 핵심 용어가 추후에 다른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경우도 많다. 번역본의 문제였는지 아니면 내가 대강 읽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과학혁명의 구조를 읽으면서 패러다임 시프트라는 표현을 못 찾았던 것같다.

그래서 고전을 읽어야 하나? 문학작품이라면 읽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논픽션의 경우 이미 최신의 다양한 책을 통해서 과거의 사상/생각들이 잘 정리된 것들을 확인했고 최신의 기술방향까지 파악했다면 굳이 고전을 읽을 필요는 없을 것같다. 그러나 연구자나 집필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한다. 고전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지는 말고, 연구/사상의 원류 또는 맥락을 짚어본다는 차원에서 만족했으면 한다. … 원서와 같이 고전은 읽는 것이 아니라 꽂아놓는 거잖아요.

(한 템포를 쉬었다가 다시 글을 적으니 아래부터는 문체가 바뀌었습니다.)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성공' — 자기계발이나 돈벌어주겠다는 것들 — 키워드를 가진 책은 시간낭비다라는 말을 적으려다가 고전 얘기만 주야장천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 읽기 전에는 파악하기 힘든 경우지만, 처음 몇장만 읽어도 나머지 내용 전부가 파악되는 책은 처음에는 꾸역꾸역 읽어나가지만 금방 지쳐서 그냥 덮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수는 많지만 그냥 저자가 이 책을 적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연구를 했느냐만을 보여줄 뿐, 그 이상을 얻기가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짧게 적었으면 그래도 가볍게 읽고 해치울 수도 있는데, 그런 책일수록 장황하게 적힌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원래 어려운 내용을 다루거나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경우도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 읽히지 않는 번역본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할까요?

제가 책을 고르는 — 책의 존재를 파악하는 — 방법은 세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을 보고, 둘째는 미디어다음의 문화섹션 하위에 책 섹션에 소개된 새책들을 보고, 세번째는 온라인서점에서 경제/경영학 카테고리의 신간 목록을 봅니다. 독서를 위해서 별도의 SNS를 가동하지는 않지만 이런 저런 소개글 중에서 관심이 가는 책을 찜해두거나 신간 뉴스를 보면서 찜해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놓쳐버리는 책들이 있기 때문에 경제/경영 섹션에서 주기적으로 신간을 확이합니다. 간혹 놓쳐버린 것이 있을 수 있으므로 베스트셀러도 확인해보지만, 요즘에는 괜찮은 책을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 이미 읽은 경우도 있지만 베스트셀러의 이유를 모르겠는 경우도 많음 — 찾기가 힘듭니다. IT트렌드 쪽에 관심이 많지만, IT 카테고리에는 프로그래밍이나 각종 툴 사용법을 다룬 책들이 대부분이고 제가 관심을 가질만한 것들은 대부분 경제/경영 카테고리에도 올라옵니다. 사회 쪽 책도 가끔 보지만, 매우 잘 적은/번역된 책이 아니면 저의 전문성과 멀어서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제가 최근에 읽은 책들은… 사회경제의 현상/전반을 포괄적으로 설명해주는 책, IT트렌드나 특정 기술회사의 역사/전략을 잘 정리해준 책 (애플, 구글, 아마존 등), 유명인물의 평전/전기 (스티브 잡스, 카리얀, 로스차일드 가문 등)를 주로 읽습니다. 업무에 필요한 책은 당연히 읽어야 하는 것이고, 디자인, 창의성/혁신, 경영 관련 책들도 종종 읽지만 이제는 이런 종류도 자개계발서적들처럼 너무 일반적인 또는 차별성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잘 포장된 표지와 제목, 저자와는 달리 실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간혹 저자의 유명세만 믿고 구입하는 경우에도 실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명도가 기대감을 갖게 하고, 그게 오히려 독이 된 경우입니다.

읽읅 책들은 많고 시간과 관심은 한정되어있기 때문에 문학서적은 잘 읽지 않습니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국내에서는 참고서, 문제집, 자기계발서 및 실용서를 제외하면 책 종류가 너무 빈약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에서 트렌드성 이슈를 담은 책들을 제외하면, 사회현상을 심도깊게 파헤쳤거나 좀더 다양한 세상을 보여주는 책들은 거의 찾기가 힘듭니다. 책이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문화적 깊이와 다양성이 너무 부족합니다. 문제집과 실용서들이 늘어나는 것은 그것들이 잘 팔리고 수요가 많다는 반증입니다. 이런 것들이 베스트셀러의 상단을 차지할수록 더 다양한 관점의 글들은 뒤로 밀려납니다.

글이 방만해졌는데.. 앞서 밝혔던 책 배제 규칙, 책 선택 규칙, 그리고 아쉬운 점들을 종합해서 2014년도에도 꾸준히 읽어나갈 겁니다. 일주일에 한권씩만 읽어도 52권인데, 그것보다는 많이 읽어야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나만의 책고르는 법이나 독서법을 각자 만드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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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와 방향

Gos&Op 2013.05.27 09: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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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TV강연이나 블로그 등에 좋은 글이라고 소개된 것들을 보면 성공하기 위해서는 속도보다는 방향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목표한 바가 확고하다면 믿고 느리더라도 묵묵히 가라는 메시지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저 이미 성공했던 사람들의 자기 방어에 불과하다. 요즘과 같은 불확실한 시대에는 방향보다 속도가 더 중요하다.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은 올바른 방향을 처음부터 알 수가 없다. 재벌가의 자녀로 태어나거나 어릴 적부터 악기나 운동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지 않는 이상 사람이 성공하는 방향을 절대 알 수가 없다. 어느 게 맞는 방향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방향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공허한 울림에 불과하다.

방향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속도가 중요하다. 느림의 미학도 존재하고 완급의 묘미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빠를수록 좋다. 처음부터 올바른 방향을 잡았다면 빠르면 빠를수록 빨리 목표지점에 도착할 수 있고, 방향을 잘못 잡았다면 빠르면 빨리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파악하고 방향을 바로 수정할 수가 있다. 그런데 방향이 중요하니 그곳을 향해서 느리더라도 지치지 말고 나아가라라고 말한다면 그 방향이 맞을 때는 괜찮지만, 만약 방향이 조금이라도 잘못 되었다면 온갖 수고를 다 하고 나서 결국 잘못된 곳에 도착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방향이 맞더라도 속도가 느리면 의미가 퇴색되는 경우가 많다. 올림픽 100m 달리기에서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은 방향이 틀려서가 아니라 속도가 느려서이다. 목표를 완성하기 위해서 방향이 시작이라면 속도는 끝이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의미가 있지만, 끝이 없으면 시작의 반은 헛수고에 불과하다.

서비스나 제품의 개발 방법론도 방향과 속도에 대비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기획 중심의 개발은 방향을 중시하는 방법론이고, 실행 중심의 개발은 속도를 중시하는 방법론이다. 이전 글들에서도 밝혔지만, 개인적으론 (일반적으론) 실행 중심의 개발 방법론이 맞는 것같다. 적은 초기 리소스를 들여서 실험하고 검증해보고 더 큰 리소스를 들려 완성하면 된다. 초기 실패가 전체 실패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잘못된 기획은 자칫 많은 리소스만 허비하고 결국 전체 실패로 귀결될 수가 있다. 물론 잡스와 같이 천재적 기획자가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스스로 나는 또는 우리 팀은 천재적인가?를 자문하고, 조금이라도 의심이 든다면 개발, 속도 중심의 접근법을 택할 것을 권한다.

빨리 실패하고 작게 실패하고 많이 실패하는 것이 성공의 밑걸음이 된다. 단, 실패에 익숙해지면 안 된다.

(2013.05.24 작성 / 2013.05.27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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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종류

Gos&Op 2013.04.25 08: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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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발표되어 인기를 끈 두 곡이 있다. 바로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이다. 음악 관점에서 보면 완전히 다르지만, 많은 이들의 뇌리에 남겼다는 공통점이 있다. 소위 성공한 노래다. 그런데 이 둘의 성공의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잘 알다시피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짧은 순간에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다가 이제는 소멸 단계에 들어갔다. 어느 시골 클럽에 가면 여전히 노래가 울려퍼지겠지만 유튜브에서 직접 찾아서 듣지 않는 한 더 이상 강남스타일을 들을 일이 없을 것같다. 반면에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은 작년 이맘 때에 발매되었지만 다시 봄바람/(벚)꽃바람과 함께 인기를 얻었다. 싸이만큼의 파급력은 없었지만 아마도 내년에 벚꽃이 피면, 그 후에도 벚꽃이 필 무렵이면 여전히 우리는 벚꽃엔딩을 듣고 있을 것이다. 즉, 강남스타일은 공간적으로, 횡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고, 벚꽃엔딩은 시간적으로, 종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그래서 이 둘의 성공 방식 중에 뭐가 더 나을지 궁금해서 어느 게 나을까?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이런 저런 댓글로 대화하다보니 강남스타일은 로또에 당첨되는 것과 비슷하고, 벚꽃엔딩은 연금복권에 당첨된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1등의 금액 규모는 차이가 나지만...

우리는 살면서 대부분 성공을 꿈꾼다. 성공이나 그런 인위적인 것에 초연한 사람들도 있지만, 어느 정도는 사업이나 학업에서 성공을 거두고 싶어하고 적어도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꿈꾸는 성공이 강남스타일일까 아니면 벚꽃엔딩일까? 짧고 강하게 확타오르는 불길 인생을 살 건지 아니면 긴 생명력을 가지고 꾸준히 타들어가는 인생을 살 건지...? 우리는 스스로의 목표를 정하면서 그 목표의 성격 또는 종류도 정의내려야 한다.

현실적으로는 뭐가 되었던 한 번은 제대로 된 성공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뿐이겠지만... 로또 1등이 되었든 아니면 연금 1등이 되었든 어느 하나는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심이다. 그런 욕심을 제한다면 성공의 성격을 규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준비하고 노력해야 한다.

추가. 싸이와 버스커버스커에 더해 '조용필'의 경우도 있습니다.

(2013.04.17 작성 / 2013.04.25 공개)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unexperienc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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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밤에 문득 든 생각이다. 여느 때와 같이 아무런 근거는 없다. 그냥 문득 든 생각일 뿐이다.

카카오톡의 이른 성공이 오히려 해가 되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카카오톡을 게임플랫폼으로 개방하고 우연히 애니팡이 국민게임이 되고 그래서 예상 외로 빨리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철저한 계획에 의한 성공이라면 대단한 것이지만, 내 생각에는 단지 그냥 운에 따른 수익화로 보인다. 모네타이징까지 최소 1년 정도는 더 기다려야하지 않을까 예상했다. 모르긴 몰라도 카카오 경영진들도 그렇게 예상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순식간에 애니팡이 국민게임이 되어버렸고 경쟁이 붙은 조급한 사용자들은 친구들에게 구걸하는 것을 넘어서 돈을 주고 하트를 구입했다. 이후의 몇몇 게임들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 불안 요소라면 게임의 인기 주기가 너무 짧다는 것정도다. ** 댓글을 통해서 '이른 성공'이라기보다는 '갑작스런 성공'이 맞는 표현이라고 말씀해주시네요. '벼락 성공'이 어쩌면 더 적합한 표현인 듯합니다.

그냥 이 느낌을 조금 중성적으로 다음과 같이 페이스북에 올렸다.

스타트업이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 적절한 시점에 모네타이징에 성공해야 한다.
그런데 너무 이른 모네타이징이 오히려 독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운에 따른 너무 이른 성공의 부작용...

스타트업에게 지속적인 성장과 견고한 BM은 숙명의 과제다. 스타트업들의 대다수가 적절히 성장하지 못해서 결국 문을 닫는다. 간혹 SNS나 뉴스기사에 한번이라도 언급된 서비스라면 그나마 성공이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의 서비스/제품은 이름 한번 불려보지 못하고 그냥 사라져 버린다. 간혹 잘 만들어진 서비스/제품은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서 성장의 궤도에 오른다. 초기 안착 및 성장에 성공했다 손치더라도 수익화라는 두번째 장벽을 만난다. 성공적인 펀딩은 성장을 위한 밑걸음일뿐 안정적인 수익화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펀딩에 성공해서 기업가치가 높게 매겨져도 적절한 수익모델이 없으면 결국 또 시장에서 사장된다. 그나마 잘 풀린 케이스는 큰 기업에 인수되어 제품, 기술 또는 인재가 흡수되는 경우다. 물론 초기의 성장과 수익모델이 영원한 성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시장의 상황이나 경쟁자의 등장 등의 많은 변수들이 존재한다. 어쨌든 성장과 수익모델은 스타트업이 결국은 풀어야할 숙제다.

구글이 지속적인 성공을 이룬 이유도 초기에 우수한 랭킹기술을 통해서 사용자 및 규모의 성장을 경험했고, 또 적절한 타이밍에 검색광고라는 BM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도 어느 대학 내의 인맥관리에서 시작해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뒤에는 꾸준한 성장과 (간혹 분석가들의 예상치에는 못 미치지만) 광고를 통한 수익이 꾸준히 발생하기 때문이다. 트위터의 경우는 초기에 안정적인 -- 서비스 가용성 측면에서는 불안정한 -- 성장을 거뒀지만, 여전히 수익모델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핀터레스트도 성장은 성공했지만 여전히 수익화에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트위터와 핀터레스트의 미래가 조금 걱정되기도 한다. 그 외에 많은 서비스들이 안정적으로 성장했지만 적절한 수익을 내지 못해서 여전히 발버둥치기도 하고 적당한 가격에 다른 기업에 인수되기도 한다. 포스퀘어는 전자이고 인스타그램은 후자다.

국내에서는 카카오톡이 초기 성장 이후, 최근의 수익화까지 이뤘다. 그러면 앞서의 논리대로라면 카카오의 앞날은 창창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냥 감으로 말하면 긴가민가하다. 수익을 내기 전에는 엄청난 운영비가 들어가기 때문에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를 걱정했다. 그러나 다행히 게임 컨텐츠 판매로 안정적인 수익을 발생시켰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른 수익화가 아닌가?라는 의문이 든다. 물론 수익이 빨리 나면 좋은 거다. 그런데 이것이 단지 운에 따른 수익화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긴가민가하다. 여전히 서비스는 성장하고 수익을 계속 낼 수는 있겠지만 그 이후의 성공 스토리를 이어갈 수 있을까?에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모든 성공에는 이유가 있다. 이유가 명확한 경우도 있고 모호한 경우도 있다. 구글의 성공 및 수익화는 명확했다. 그런데 내 느낌에 카카오의 성공은 조금 모호하다. 예상했던 결과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거다. 예상보다 빠른 성공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성공 또는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하는데, 이유가 모호하니 교훈을 얻을 수가 없다. 어쩌다 얻어걸렸는데 '어쩌다'를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러면 성공을 재현할 수가 없다. 무료 메시징 서비스가 단지 시대가 필요했던 기능일 뿐이면 후속 성공을 보장하기 힘들다. 다음의 한메일이나 카페가 그런 경우였다. 다음이 최근 어려움을 겪는 이유도 한메일이나 카페의 성공 원인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냥 시기를 잘 맞았을뿐, 성공에 따른 교훈을 얻을 수가 없다. 철저한 분석과 준비를 통한 성공이 아니라 시기와 운에 따른 성공은 그래서 위험하다. 카카오도 어쩌면 비슷한 상황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지금 이런 글을 적고 있다. 이유가 있는 실패가 이유가 없는 성공보다 낫다.

그리고 이른 성공에 따른 자만과 헛된 자신감도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우연한 큰 성공 이후에는 -- 인간이기에 -- 그냥 우리가 만들기만 하면 대박이 터질거야라는 생각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카카오를 직접 사용하지 않아서 그들의 후속 서비스가 어떤지 잘 모르겠다. 카카오스토리의 PV가 페이스북보다 앞선다는 그런 종류의 기사는 가끔 나오지만, 그래서 이게 수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페이스북도 모바일에서 여전히 수익화에 고전중이다. 모바일 페이지만 있는 카카오스토리는 페이스북보다 더 못한 상황이라고 봐야할 듯하다. 컨텐츠 판매는 여전히 모호하다. 지금은 도토리를 판매하던 시절이 아니다. 결국 광고 사업을 나서게 될 것인가? 카톡의 성장과 수익화에서 교훈을 얻었으면 당연히 카스에서도 같은 성공을 벌써 이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런 얘기는 아직은 못 들어봤다. 오히려 경쟁자들의 부상 및 해외시장에서의 한계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들려올 뿐이다.

카카오의 미래를 알 수 없으니 이런 글을 적을 수가 있다. 부디 성공하길 바란다. 실패에는 이유가 있지만 성공에는 이유가 없다. 그래서 불안하다.

(2013.03.13 작성 / 2013.03.20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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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companyjit.tistory.com BlogIcon 컴퍼니제이 2013.03.20 12:38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새로운 시각의 글이네요.. 모두가 카톡의 성공에 대해서 찬양만 할때 이런 관점도 필요하다 생각됩니다^^

  2. Favicon of http://freeover.tistory.com BlogIcon FreeOver™ 2013.03.20 12:58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요즘 보면 게임은 카카오를 대통합되는 분위기는 합니다~

이런 거 LIKE THIS

Gos&Op 2012.07.10 19: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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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이런 거'로 적고 나니 재작년에 SNS에서 회자되던 뉴스가 생각납니다. 오마이뉴스에 강인규 기자가 적었던 '우리는 이런 거 왜 못 만드냐고?'라는 기사입니다. 당시에 해당 기사에서 발달된 글을 하나 적었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습니다. 그냥 제목을 적고 보니 저 기사가 생각나서 인트로에 다시 소개합니다.

몇 일 전에 페이스북에 글을 하나 올렸습니다. 공감을 표하신 분들도 계셨고, 또 어떤 분들은 또 지랄하고 있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때 적었던 글을 그대로 옮기면 아래와 같습니다.

이런 걸 한다고 좋아지겠어?라는 생각과
이런 것도 안 하면서 좋아지겠어?라는 생각. 
이런 거는 같은 거...
타인의 머리에서냐 아니면 내 머리에서냐의 차이.
실행하고 실수하고 실패하고 그래야 성공하고 성취하고 성장하겠지.

from http://www.facebook.com/falnlov

이 글을 좀 더 자세히 적어야 하나?라는 생각에서 글을 시작했지만 그냥 위의 문장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공개된 트위터가 아닌 닫힌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이라서 그냥 일반에 공개하겠다는 의미에서 이 포스팅을 시작합니다.

왜 저런 글을 적었을까요? 어쩌면 당사자가 글을 읽으면 조금 서운할 수도 있겠지만... '세상을 즐겁게 변화시키겠다'는 모토로 시작해서 성장한 다음이 내부에서는 즐거움을 잃어가고 있다고 많은 이들이 느끼고 있습니다. (저의 글도 비슷한 논지가 많았고 더 자세히 적으면 길어질까 두렵습니다.) 그런 위기 의식에서 시작해서 어떻게 하면 초심을 찾을 수 있을까? 또는 즐거운 일터 (일터가 즐겁다는 말은 모순이겠지만)를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내부 고민이 많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직원들의 문화적 욕구를 조금이라도 해소시켜줄까? 아니면 일하는 방식을 좀더 창의적이고 재미있게 만들어볼까? 예전에 시도했지만 좋은 성과를 못 냈던 프로그램이나 프로세스를 개선해서 다시 살려볼까? 아니면 외부의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방식을 사내에 도입해볼까? 등의 고민과 (반공식) 토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다음에서의 실천공동체, 린스타트업, 오픈이노베이션 등에 대한 초안을 누군가 준비하고 있고, 그 초안에 대한 피드백을 요청받았습니다. 짧으면 짧은 글이었지만, 저는 읽으면서 참 길고 재미없고 지루하고 어렵게 글을 적었네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거를 한다고 뭔가 좋아지겠어?'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났습니다. 의도도 좋고 나름 검증된 개념들을 설명하고 있었지만,그 글 자체만 보고서는 희망적인 피드백을 주기도 어려웠습니다. [왜? 읽는데 지루했기 때문에.] 그리고 몇 년간 이어온 이런 저런 모습들이 겹쳐지면서 저걸 하다고 우리가 좋아질까?라는 반응은 어쩌면 너무 당연했습니다. 그 순간 또 제 머리를 스쳐지나갔던 생각이 있습니다. 요즘은 좀 잠잠하지만 지난 5년 동안 무수한 의견을 개진해왔습니다. '너희는 이런 것도 안 하면서 어떻게 좋아지기를 기대하냐?'는 식의 글이었습니다.

내가 말한 '이런 거'는 장미빛 희망을 전달해주는 거였고, 남이 말한 '이런 거'는 쓰잘데기없는 쓰레기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입에서 나왔던 이런 것도, 남의 입에서 나왔던 이런 것도... 모두 더 좋은 미래를 위한 다양한 시도였을텐데, 왜 내 생각은 탁월한 생각이고 네 생각은 그냥 그런 쓰레기로 여기게 되는 걸까?라는 순간적인 반성이었습니다. 넉넉히 잡아서 모든 생각의 반이 성공한다고 가정한다면... 내 머리에서 나온 생각도 반은 성공할테고, 남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도 반은 실패할텐데 (의도적으로 이렇게 적은 것임.)... 왜 자신의 생각은 그냥 성공을 보장하는 것이고 남의 생각은 그렇게 반신반의하며 거부해야하는 것일까요. 내 생각은 충분히 시도해볼만한 것이고, 네 생각은 그냥 검토도 하기 귀찮은 것이고... 살다보면 이런 마인드세트를 생각하고 행동할 때가 많은 것같습니다. [조금 변명하자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생각에 100% 확신을 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많은 것들을 실행하다보면 분명 많은 실수도 저지르게 되고 그런 실수들로 인해서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실행을 하지 않으면 단 하나의 성공의 열매도 얻을 수가 없고, 실수를 하지 않으면 그것을 통해서 교훈도 얻을 수 없고, 실패를 하지 않는다면 꼭 성공하겠다는 오기도 안 생길 것입니다. 그렇게 실수하며 실패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실행하고 실행하다보면 어느 아이디어는 소 뒷걸음질치다가 성공 스토리가 나올 수도 있을테고, 그렇게 하나 둘 성공하다보면 성취감을 얻게 되고, 또 그런 실패와 성공에서 여러 교훈을 얻으면 스스로 성장하고 성숙해가겠죠. "삼실삼성" 실행하고 실수하고 실패하고 그래야 성공하고 성취하고 성장한다.

이런 생각의 흐름 때문에 반성과 다짐을 더해 위의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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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1일은 내가 다음이라는 회사에 직원으로 첫 출근한 날짜다. 4년을 꽉 채우고 이제는 5년째를 시작했다. 3년 위기설이라는 게 있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을 읊는다'는 속담과 같이 한 분야에서 3년 정도의 시간을 보내면 그 분야를 훤히 꿰뚤어보게 된다. 그 순간 갈림길을 만난다. 전문가가 되기도 하고 아니면 방관자가 되기도 한다. 일이 몸에 배다보면 일을 더욱 효과/효율적으로 하게 된다. 그런데 이 전문성 또는 효율성이 다양성과 새로움을 가로막는다. 그리고 개도 경을 떼고 나면 서당이 지겨워질 거다. 3년 위기설의 이유는 현재의 상태에 익숙해질수록 현재에서 새로움을 얻기가 어렵고 일종의 나태에 빠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난 1년을 그렇게 보낸 것같다. 길은 직선으로 곧게 뻗어있는데, 그래서 재미도 없고 이정표도 없다.


일의 지루함에서 벗어나는 손쉬운 방법은 이직인 듯하다. 링크드인 LinkedIn을 사용하다 보면 친구요청을 가끔 받는다. 가입한 초기에는 학교나 회사 지인들을 친구로 추가해서 넣기도 하지만, 현재 친구목록의 절반이상은 헤드헨터들이다. 잊을만하면 친구요청이 온다. 언젠가는 쓸 데가 있을까 싶어서 굳이 거절하지는 않는다. (페이스북에서는 오프라인에서 연결되지 않은 경우는 대부분 친구요청을 거절하지만... 늘 그렇듯이 미인은 제외.^^) 그리고 가끔 헤드헌터들로부터 메일이나 전화를 받으면 '나도 나름 남들이 탐내는 고스펙인간이구나'싶어서 뿌듯하기도 하다. 현재까지는 업무가 지루해졌다고 해서 이직을 고려한 적은 없다. 딱히 갈만한 곳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직은 아니지만 그냥 때려치울까라는 생각은 가끔 해본 것같다. 연봉계약서에 사인을 할 때마다 사표나 이력서를 작성한다는 어떤 분의 말에 공감이 간다. 나도 나름 고스펙이고 경력도 있고 능력도 있는데 이런 대우에 만족해야하나?라는 자괴감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리고 같이 일하던 동료가 새로운 도전을 준비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흔들린다. '나무는 가만 있고자 하데 바람이 가만두지 않는다'라는 말이 단순히 '효'를 말하는 표현은 아닐터... 떠나는 물결에 함께 휩쓸려 떠나고 싶은 충동.

삶의 목표가 성공은 아니었다. 적어도 배부른 동안에는... 2004년도에 미국의 NIST (National Institute of Standards & Technology)라는 곳에서 게스트로 있는 동안 6개월 정도 체류연장을 결정하던 때의 일이 생각난다. 보스로 있던 분이 나에게 몇 가지 물었는데, 그 중에서 연장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행복'이라고 했다. 내가 일을 더 많이/잘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곳에 머무르면서 행복한가?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 이후로 나도 여러 사람들의 고민을 들으면서 '네가 만족하고 네가 행복하면 그걸로 됐다'라는 식의 충고를 해주고 있다. 안정적인 삶과 도전적인 삶은 양자택일이 아닌 것같다.

최근 상황이 참 복잡하다. 일은 많이 지루해졌고, 별로 중요치도 않은 문제로 중간중간에 인터럽트가 들어오고, 스타트업에 참여하라는 주변의 꾐도 있고, 대기업에 자리가 있으니 지원해보라는 헤드헌트들의 메일도 자주 오고, 떠나가는 동료들도 늘어나고, 혼자서 떠들어도 전혀 회사는 꿈쩍도 하지 않고, 그러는 회사는 나의 존재감에 신경을 쓰지도 않고 보상도 안 해주는 것같고, 조직은 개편되어 어수선하고, 뚜렷한 목표나 비전을 공유하지도 않고,... 지금이 이적의 적기인가?에 대한 고민보다는 '나는 지금 행복한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나는 행복의 사다리를 올라간다고 생각했는데, 늘마음 깊은 곳에는 성공의 사다리를 갈망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지루해진만큼 내 성장도 정체된 것같고, 내가 올라갈 성공의 사다리도 없는 것같고... 그럴수록 행복이 아닌 성공에 집착을 하게 되고 사회/회사에 불만이 커져만 가는 것같다.

일은 더욱 복잡해져간다. 모두가 가는 길과 대부분이 가는 길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아버지의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것같다. 더 가까이에 가서 살아야할까? 아니면 이럴수록 더 안정적인 삶을 살아야할까? 이것도 고민이다. 혼자 살지 말라는 압박도 크다. 왜 안 하냐면 싫어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싫은 상황에 빠지기 싫어서 내면에서 거부하고 있는 것같다. 여기가 내가 있을 최선의 장소인가?에 대한 고민도 깊어진다. 모두가 가는 그 길을 가시는 아버지 곁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대부분이 가는 그 길을 가기 위해서 또는 안 가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안정을 택해도 나는 그저그런 회사의 부속품이 되어버릴 것같고, 도전을 택해도 나는 그저그런 사회의 부속품이 되어버릴 것같다.

제대로 이룩한 것도 없으면서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도 두렵다. 행복의 사다리는 분명 성공의 사다리와 다르다. 그러나 나는 성공의 사다리에 집착하고 있다. 다음 단계가 높으면 높을수록 더 집착에 빠진다. 이 또한 두렵다. 갑자기 <The Pursuit of Happyness>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그런데 나의 꿈은 뭐였더라? 내가 지금 여기서 뭘하고 있는 걸까? 바람에 흩날리는 연기같은 삶을 살고 싶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는 행복해라고 혼자서 연기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렇게 꿈을 연기해버리고 연기처럼 사라지고 있다. 오늘도 삶의 넋두리가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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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혁신은 왜 경계밖에서 이루어지는가 Seizing the Whitespace (마크 W. 존슨)'을 읽고 있습니다. 책의 내용은 뻔합니다. 책에서 말한 Whitespace, 즉 현재의 주력부분이 아닌 영역을 개척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내부의 화이트스페이스 white space within, 외부의 화이트스페이스 white space beyond, 그리고 중간에 있는 화이트스페이스 white space between을 발견하라는 메시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객가치명제 customer value proposition를 제대로 정의하고, 이익창출공식 profit formula를 정의해서, 그것에 맞는 핵심자원과 핵심프로세스를 수립해서 기업이 고객과 자신에게 가치를 전달하도록 하면 된다는 어떻게 보면 너무 뻔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는 부분이 있어서 소개를 할려고 합니다. 책의 후반부에 '혁신을 가로막는 문제들을 극복하는 법'이라는 챕터에 소개된 내용입니다. 책에서는 예화를 들고 있습니다. 개의 품종을 개량해서 고품종 개육성 업체인 도그코프 DogCorp라는 성공한 회사가 있는데, 고양이 품종육성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수용하지 못하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이렇게 성공한 기업이 새로운 사업기회를 가로막는 3가지 전형적인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 개가 아니어서 겪는 딜레마 Non-dog dilemma
  • 고양이를 개로 만들기 Dogging the cat
  • 고양이를 직접 공격 (Attacking the cat? - 책에 영어 설명이 없네요.)

 먼저 '개가 아니어서 겪는 딜레마'는 기업이 기존에 주력하던 사업영역과 다르기 때문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꺼리는 경향을 말합니다.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한 잠재가치를 파악도 하기 전에 새로운 프로젝트가 기존의 것과 다르다라는 사실을 파악하면 새로운 프로젝트에 관심을 끊어버려서 유야무야되는 것입니다. 책에서는 미니컴퓨터에서 두각을 내던 DEC Digital Equipment Corporation과 PC사업에 실패한 사례를 들고 있습니다. 즉, PC는 기존에 주력으로 삼던 미니컴퓨터와 다른 제품입니다. 그래서 최사는 PC개발비용에 20억 달러이상을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PC시장에 너무 늦게 진출해서 지금은 회사 자체가 사라진 경우입니다. 다른 사례로 코닥을 예시로 들고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코닥은 인화용 카메라 필름으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최초로 필름없는 카메라, 즉 디지털 카메라를 만든 회사입니다. 그렇지만 '필름이 필요없는'이라는 수식어 때문에 기존의 주력상품인 필름사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서 디지털 카메라 사업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했지만 그것을 상품화하는데는 너무 늦어서 지금 (디지털 사진이 주력이 된 상황에서)은 법정관리 (파산지적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참고로 디지털 카메라에 대한 원천특허는 코닥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 애플이나 삼성 등의 스마트폰용 카메라에 대해서도 특허권을 요구하고 있는 소송도 진행중입니다. 기술과 특허는 가지고 있지만 기업 자체는 이제 역사 속으로...

 두번째 '고양이를 개로 만들기'는 말 그대로 고양이 자체의 특성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개의 특성을 고양이에 투영시키는 오류입니다. 그러다보니 개를 닮은 고양이를 만들어버려서 고양이의 특수한 성질을 잃어버리고, 고양이 시장도 만들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채게서 제시하는 예시는 미군에서 10여명의 군인을 가볍고 빠르게 작전 지역으로 수송하는 무장 병력 수송 차량인 브래들리 전투 장갑차 Bradley Fighting Vehicle의 실패사례를 들고 있습니다. 원래 목적은 10여명의 군인을 빠르게 수송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사업이 진행되면서 대전차 무기를 장착하기 위해서 수송인원은 6명으로 줄어버렸고, 정찰활동의 기동성을 위해서 외피를 가볍고 약한 알루미늄으로 바꾸는 바람에 폭탄 한방에더 쉽게 파괴되는 "병사는 수송할 수 없는 수송차량이자, 정찰을 수행하기에는 너무 눈에 잘 띄는 정찰차량이자, 제설기보다도 철갑이 얇지만 워싱턴DC의 절반을 날려버릴 만큼 충분한 탄약을 장착한 유사 탱크'로 만들어졌습니다. 총 17년의 개발기간과 130억달러 이상이 투자되었지만, 초기의 무장병역수송차량에서 (쉽게 파괴되는) 유사탱크가 되어버려서 사업이 실패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고양이를 직접 공격'은 기존에 자리를 잡은 부서들이 자신들의 시장이 잠식되는 것을 우려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공격하는 형태입니다. 어찌 보면 코닥의 경우와 비슷한 경우입니다. 책에서는 HP에서 개발하던 키티호크 Kittyhwak라는 1.3인치 하드디스크 드라이브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지금은 많은 모바일 기기에 작은 하드디스크가 많이 들어가 있고 (물론 현재는 플래쉬 메모리로 대체되는 추세임), 1990년대 초반에는 1.3인치라는 작은 하드디스크에 대한 수요가 거의 없던 상황입니다. 닌텐도 게임보이나 PDA 등의 새로운 시장에 들어갈 소형 하드디스크라는 새로운 시장인데, 정작 기존 부서들은 PC에서 사용할 3.5인치 하드디스크에 초점을 맞추느라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지도 못하고 소형하드디스크 사업을 접도록 만들어버렸습니다.

 이렇듯, 성공을 경험한 기업들은 (또는 시장 지배자) 종종 기존의 사업영역을 지키기 위해서 새로운 사업영역 개발에 주저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 교수님이 자주 말하는 파괴적 혁신 Disruptive Innovation에서 예시로 들고 있는 하드디스크사업 (5인치 -> 3.5인치 -> 2.5인치 -> 1.3인치 -> 플래쉬/SSD)에서 이런 경우를 자주 봅니다. 새로운 파괴적인 기술은 초기에는 비용도 많이 들고 품질도 좀 떨어지고 어떻게 보면 시장성자체도 의심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개선되고 새로운 시장을 모색하다보면 그런 (초기에) 조잡하던 새로운 제품이 기존 제품을 완전히 잠식해버리게 됩니다. 성공을 맛봤던 기업들이 자신의 사업영역을 지키고 싶은 욕구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게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고 발버둥치다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를 버려야 된다.' 어쩌면 '하나를 버리면 하나 이상을 얻게 된다'입니다. '모든 창조 행위의 시작은 파괴다'라는 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의 성공이 미래의 방해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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