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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카카오톡 치즈'의 사전 예약 이벤트가 시작됐다. 새로운 앱/서비스를 외부에 공개하기에 앞서 내부에 CBT (Closed Beta Test) 버전을 우선 공개해서 최종 테스트를 거친다. iOS CBT 버전을 최근에 몇 차례 사용했다. (아직 사진 결과물을 외부에 공개할 수는 없다.) 내가 원래 이런 종류의 앱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많이 테스트해보지는 않았다. (이런 종류 = 사진을 왜곡시키는) 치즈의 개발이 결정되기 훨씬 전부터 카카오에서도 카메라/사진앱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가졌지만, (최근 유행하는) 이런 형태/컨셉의 앱은 아니었다. 여행가서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듯이 프렌즈 캐릭터와 함께 사진을 찍는 그런 형태 (오프라인 스토어에서 캐릭터 인형과 함께 사진을 찍듯이)를 생각했고, 그래서 '프렌즈 캠'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프렌즈 = 친구 & 프렌즈 캐릭터, 캠 = 카메라 & 캠코더)

아래는 일종의 카카오 사내 게시판인 아지트에 올렸던 글이다. 제목은 '치즈는 성공할 수 있을까?'지만, 치즈에 국한한 얘기는 아니고 여러 미투 (카피캣) 또는 트렌드에 편승한 서비스/앱들에 대한 비판이다. 어쩌면 나의 관점이 틀렸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내부인을 위해서 가볍게 적었던 글임을 고려하고 읽기를 바란다. 전체를 그대로 옮겼지만 일부 내용은 수정한다.

* 치즈는 이 글의 계기일 뿐, 치즈의 성패를 논하는 글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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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는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물론 1천만명, 1억명의 사용자가 사용하는 서비스가 될 수는 있다. 그렇다 치더라도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다. 현재 트렌드와 프렌즈 캐릭터 로열티를 고려하면 실패하지 않은 서비스는 될 수가 있지만, 실패하지 않음이 성공했음과 동의어가 될 수가 없다. (*주, 현재 카카오에는 '1천만'이라는 괴물이 살고 있다.)

서비스에서 후발 주자들이 늘 하는 실수가 있다. 피타고라스정리처럼 마치 교과서에 공식이 나와있는 것 같은 동일한 실수를 반복한다. 반복되는 실수라면 실수가 아니라 실책이다. A라는 서비스가 갑자기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 같은/비슷한 개념을 가져와서 B라는 네이밍의 서비스를 만든다. 여기에 더 많은 기능을 추가한다. 더 많은 기능, 특히 무료 기능을 전면에 내세운다. 더 많은 기능은 보통 복잡도만을 증가시킬 뿐, 서비스의 유니크함을 주지는 않는다. (*주, 보통 개념의 차별화가 아닌 중요하지 않은 기능의 추가를 차별화 포인트로 내세운다. 그래서 실패.)

모바일 시대의 다음 Daum의 역사가 그랬다. 단문에 사진을 함께 올릴 수 있다는 걸 강조한 서비스가 요즘이었는데, 요즘은 지금 없다. 다른 정책적 판단 미스가 있기도 했지만 다양한 무료 스티커를 제공하고 더 편한 기능이 많았던 마플도 현재는 없다. 더 많은 용량을 제공하는 클라우드도 결국 비용 압박만 줬을 뿐 퇴출의 순수를 걸었다. 이정도만 얘기해도 머리 속에 떠오르는 많은 서비스들이 있을 것이다. 토픽은? 플레인은? 쏠을 기억하는 분들이 계시려나? 위드는? 150은? 해피맘은 아직도 있나? (*주, 그래도 발버둥이더라도 다양한 시도를 계속 했다는 점은 높이 산다. 그러나 다양한 시도가 개념과 방식의 다양화였으면 현재 유산으로라도 남았을텐데...)

물론 치즈는 악세사리에 가까워서 앞서 언급한 것들과는 조금 다르다. 귀걸이가 있다고 해서 다른 귀걸이를 구입하지 않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스노우나 다른 카메라 앱들이 있다고 해서 치즈를 설치 안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이를 성공이라고 표현할 수도 없다. 그저 악세사리 중에 하나일 뿐이다. 자동차나 집이 될 수가 없다는 거다. 유행이 지나면 안 입고 결국 버려지는 옷... 명품으로 기억될 수는 있지만 더 이상 유행에 맞지 않는... 물론 명품이라면 유행을 거슬러야 한다.

서비스를 기획하고 디자인하고 개발하는 사람들이 너무 안일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치즈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카카오가 뉴스 서비스를 만들면 성공할 거라고 내놓은 것이 토픽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없다. (*주, 그리고 대부분 완성도도 떨어졌다. 그렇다고 영원한 베타 형식으로 꾸준한 개선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건 새로운 개념을 구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만약 치즈가 실패하고 철수했을 때, 치즈를 개발하면서 얻었던 경험이 다른 서비스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그래야 한다. 새로운 도전이 중요하지만 실패한 도전이 새로운 도전의 밑거름이 돼야 한다. 그런데 최근 몇년의 기억을 되돌아보면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페이퍼는 실패했지만 그 팀이 그대로 남아서 인스탄트 아티클을 만들었다는 것에 교훈을 얻어야 한다. 게임 개발에는 실패했지만 플리커와 슬랙이라는 유산을 남긴 걸 생각해야 한다. 트렌디한 서비스만 쫓다보면 무형의 경험도 유형의 유산도 남지 않는다.

후발 주자 중에서도 충분한 자금과 인력을 가지고 뚝심있게 밀어붙이는 패스트팔로워들이 있기는 하다. 그리고 그들이 시장을 점유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상에 선 그 순간이 바로 한계의 순간이다. 그런데 보통 자금이나 인력을 가진 거대 조직이라고 해서 후발주자로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고, 실패한 사례가 더 많다. 결국 개념과 철학의 부재는 비전을 모호하게 만들고 실행력을 갈아먹을 뿐이다.

보통 후발주자가 성공한 경우는 다른 외부적 요인(규제) 때문인 경우가 더 많다. 한글화라는 로컬라이징도 그렇고, 현지 실정법이라는 규제도 그렇다. (*주, 카톡은 일종의 한글화/현지화였고, 카택은 우버의 반사이익이 컸던 측면이 있다. 물론 이렇게 단순하게 정리될 사안은 아니지만...)

실패하지 않은 서비스가 성공한 서비스는 아니다. 비록 수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서비스가 되었다손 치더라도... 지금 당장 사금을 얻을 수 있다고 해서 대형 다이아몬드 원석을 발굴하는 노력과 가공하는 기술을 연마하는 노력을 게을리하는 우는 범하지 않아야 한다. 카카오에도 다시 천만요정의 가호가 있기를... (*주, 1천만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괴물이 될 수도 요정이 될 수도 있다.)


=== Also in...

F: https://www.facebook.com/unexperienc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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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KAKAO U

Gos&Op 2015.12.01 1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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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글은 의도치 않은 오해 소지의 표현이 포함돼있을 수 있습니다. 특정 서비스명은 예시일 뿐 디스는 아닙니다. 11월 27일에 초안을 작성했습니다. 그 사이에 변경된 내용은 일부 수정했습니다. 그리고 원래 카카오 내부용 글이라서 일부 민감한 또는 불필요한 내용은 삭제했습니다. 참고로 각주가 붙은 것은 블로그를 위해서 붙인 것이고, '*주.'로 된 것은 원문에 포함된 주석입니다.

긴 호흡의 글이 필요할 것같아서 적습니다. 합병 전 (다음컴 시절)에는 일년에 한두차례만 공개적으로 글을 적었기 때문에 주변에서 발견한 누적된 문제와 묵힌 생각을 펼칠 수 있었는데 요즘은 짧더라도 매일 글을 적다보니 생각을 누적하는 것이 조금 힙듭니다.[각주:1] 빛바랜 생각을 털어버리고 또 새로운 방향감으로 병신년을 맞이하는 것이 좋기에 지금 생각을 정리해봅니다.

이 글을 통해서 우리가 앞으로 어떤 서비스를 준비해야 되는지와 같은 예측은 하지 않습니다. 그게 가능하다면 제가 여기서 글을 적고 있을 것이 아니라 벌써 창업했을 것입니다. 역으로 어떤 서비스를 접어야 한다라는 의미도 포함돼있지 않습니다. 그런 권한이 제겐 없습니다. 순간순간 스쳐갔던 생각을 풀어보는 것이지 각각 생각 단편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 좋고, 그저 누군가 이런 생각도 하는구나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됩니다. (카카오뱅크는 아니라고 봄. 제가 틀렸음을 증명해주기 바람[각주:2])

이 글을 준비하면서 며칠 몇주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생각 단편만 나열하다가 이제 글로 엮으려고 하는데, 아직은 어떤 순서로 어떤 논리로 글을 적어야할지 결정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늘 그렇듯이 떠오르는 대로 적어나갈 것이고, 공개 전까지는 끊임없는 추가 삭제 수정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완성된 생각이 아니라 계속 진화하는, 즉 더 발전될 가능성도 있고 역으로 사멸시켜야할 필요성도 있는 생각입니다.

최근의 많은 기업들이 — 구축하긴 어렵지만 안정적인 캐시카우가 되는 — 플랫폼이나 생태계를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카카오 내부에서도 늘 들려오는 구호가 ‘우리는 플랫폼이다’입니다. 플랫폼이 잘 만들어지면 생태계가 자연스레 형성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집니다. 오랜 경험과 관찰한 바는 생태계가 그냥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플랫폼을 넘어 생태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 오랜 시간동안 축적된 신뢰라는 기저 위에 —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필요하고 그들이 지속할 수 있는 자양분이 필요합니다. 남극 대륙이나 사하라 사막이 땅은 넓지만 버려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 물론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종들이 있지만 — 플레이어들이 활동할 주변 환경이 잘 갇춰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카카오를 중심으로 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외부 플레이어들이 카카오의 플랫폼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앱스토어에 앱을 올려놓고 다운로드받게 하는 것은 단순 마켓플레이스이지, 플랫폼도 그 이상의 생태계도 아닙니다. 더 크고 유용한 마켓플레이스가 등장하면 모두 새로운 곳으로 몰려가기 마련입니다. 사용자를 서비스에 락인 lock-in시키듯이 플레이어들을 카카오에 락인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 락인의 요소가 결국 카카오 생태계의 자양분입니다.

저는 결국 그것은 다양하고 사용하기 편한 API, 오픈소스 라이브러리 및 SDK, 그리고 잘 기술된 베스트 프랙티스라고 생각합니다. 작년 합병할 때 브라이언은 O2O를 화두로 던졌고, 최근 지미는 온디멘드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O2O 서비스든 온디멘드 서비스든 모든 것을 내부에서 만들어서 구색을 맞춘다고 해서 카카오 생태계가 형성되는 것도, 많은 사용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것도 아닙니다. 유기적 생태계 eco-complex를 만들기 위해서 모든 걸 우리가 할 수도 없고 우리가 해서도 안 됩니다. 그걸 대신할 플레이어를 찾고 설득해야 합니다. 단기적으론 자금이나 트래픽으로 유혹할 수도 있겠지만, 기술적으로 접근해서 쉬움과 확장성 등으로 유혹했으면 합니다. 우리 생태계에서 핵심이 되는 플레이어 및 서비스가 있다면 정당하게 M&A를 통해서 인수하면 되지, 우리가 그 대체제를 직접 만드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플랫폼도 기술이 아닌, 결국 신뢰가 만듭니다.

* 주. S2Graph의 아파치 인큐베이션 프로젝트가 된 것은 축하합니다. 더 다양한 오픈소스가 카카오의 이름으로 배포될 것을 희망합니다.

카카오 파머가 최근에 런칭했습니다. 그걸 통해서 더 큰 농수산물 유통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가졌고 실행하는 것이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우리가 시장은 조금 더 키울 수 있을지 몰라도 전문 플레이어가 될 수 있을까부터 걱정입니다. 그렇지만 O2O를 준비하는 많은 스타트업들에게 카카오 파머를 오픈소스로 배포한다거나 그런 서비스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프로토타입 및 프랙티스로 활용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카카오 API를 이렇게 활용해서 카카오 파머를 만들었다’와 같은 성공사례와 가이드를 제공한다면, 더 많은 플레이어들이 자연스레 카카오 API를 활용해서 다양한 O2O 서비스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모든 서비스들이 카카오 생태계에 기여합니다.

물론 우리가 자체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작은 스타트업들이 다루기에는 규모가 너무 큰 경우도 있고, 수익이 보장되지 않지만 사회적으로 기여하는 서비스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서비스조차도 완성 후에는 오픈소스로 풀고, 또 그 노하우를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파머의 예에서와 같은 이유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오픈하는 그런 대범함이 필요합니다. 카카오 API를 이용해서 만들어진 다양한 O2O든 다른 컨셉의 서비스들이 카카오를 중심으로 모이고, 이런 서비스들을 사용자들이 계속 사용한다면 그게 카카오 생태계입니다. 사용자들이 락인된 서비스가 또 카카오에 락인된 형태입니다. The step after ubiquity is invisibility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야 합니다.

다양한 서비스군은 외부 플레이어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플랫폼의 핵심 기능 및 인프라에 집중해야 합니다. 간편하고 안정적인 결재 메커니즘을 만든다거나 강력한 개인화 및 추천 엔진을 만든다거나 빠르게 데이터를 분석하고 가공해서 리포팅해준다거나… (카스 타임라인 또는 카톡 대화창에서 바로 구매하기 버튼이 아직 노출시키지 못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플랫폼의 공통 부분 또는 개별 서비스가 신경쓰기 귀찮은/어려운 부분을 채워넣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 돼야 합니다. API 개발 및 개방이 만능은 아니지만, 플랫폼이 갖춰야할 최소한의 요건입니다. 그리고 카톡의 3/4탭이든 카스의 타임라인이든, 다음앱의 지면이든 가능한 모든 영역을 우리 플레이어들에게 개방하는 것도 당연히 함께 진행해야 합니다. 컨텐츠와 광고를 직접 선별해서 노출시키는 전략에서 그냥 지면을 임대해주는 전략으로 선회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API와 지면을 오픈한 후에 이제 더 이상 개별 서비스 및 컨텐츠의 생산에 주력할 것이 아니라, 어떤 서비스/컨텐츠를 어떻게 가져와서 배치할 것인가 (필터링, 랭킹 & 큐레이션)를 고민하고, 부정 사용 (어뷰징)을 걸러내고, 그런 서비스와 컨텐츠로 어떻게 수익화 (모네타이징)을 해서 그것을 외부 플레이어들과 공유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수익의 공유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건강한 플레이어가 없으면 안정된 유기적인 플랫폼/생태계가 만들어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내실을 키우는 것과 함께 플레이어들의 내실을 함께 키우는데 노력해야 합니다.

최근 ‘회사에서 기술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같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IT 회사에서 기술에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 무슨 헛소리냐라고 반문할 수 있겠으나, 앞서 말한 오픈API 및 오픈소스에 기여하는 부분도 지지부진한 것같고, 더욱이 딥러닝으로 대변되는 인공지능과 같은 선도적인 기술에 뒤쳐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세계 유수의 기술 기업들은 앞다투어 오프디멘드의 시대를 개척해가는데 지금 최고경영자가 온디멘드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나오는 것에 우려를 표합니다. 오프디멘드란 말 그대로 사용자의 요구가 발생하기 전에 그들의 욕구와 기호에 맞춰서 먼저 제시하는 형태이고,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인공지능의 연구가 필수입니다. 기술기업에서 선도 기술의 부재는 결국 필망입니다. 많은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원천 기술을 개발하거나 그걸 가진 기업들을 인수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서비스의 규모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술의 역량을 응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 기술기업에서 비기술CEO에 대한 우려가 있습니다. 물론 조직이 규모를 갇춰서 관성으로 치고 나가는 순간에는 경영 기반의 CEO가 유리하기는 합니다.
*주. 기술과 사람이 아닌 서비스나 제품을 위한 M&A도 지양해야 합니다. 물론 핵심 서비스와 연계한 다각화를 위한 서비스 인수는 필요합니다.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이나 왓츠앱을 인수했던 것과 같은...

그런 의미에서 카카오의 다운사이징을 고려해야 합니다. 단순히 구조조정, 인력감축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카카오의 핵심을 제외한 영역/서비스들은 스핀오프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스핀오프의 대상은 힘이 떨어진 서비스들이 아니라, 가장 힘차게 치고 나가는 서비스들이어야 합니다. 현재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카카오택시가 가장 좋은 대상이라 생각합니다. 라인이 여전히 네이버의 자산이듯이, 카카오 택시가 스핀오프하더라도 여전히 카카오의 자산입니다. 그리고 올해 그랬듯이 현재 서비스들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계속 진행하고 핵심만 남기고 또 리소스를 재배치하는 것도 끊임없이 실행해야 합니다. 혹시 접는 서비스가 발생한다면 그런 서비스는 또 다른 형태로 오픈소스화 (외부에 유무상으로 이관)하는 것도 전략화했으면 좋겠습니다.

*주. 체질 개선 과정에서 인간적 케어도 당연히 함께 진행돼야 합니다.
*주. 그러면 카카오의 핵심이 뭐냐? 노코멘트.

기술 기업이지만 그 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결국 사람입니다. 서비스란 결국 사람을 위한 무엇입니다. 서비스를 위한 서비스가 아닌 사람을 위한 서비스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을 이해해야 합니다. 많은 서비스와 기능이 선보이지만 가끔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듭니다. 그런 느낌을 받는 서비스들은 또 대부분 결과도 좋지 않습니다. 내가 만든 서비스를 사용하는 객체가 아닌, 내가 사용할 서비스를 만드는 주체가 됐으면 합니다. 인문학 예술 그리고 딴짓이 인간의 창의력에 어떤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지는 정량화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것들이 필요한 이유는 최소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딴짓하는 것에 죄책감을 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단, 전제 조건으로 당신이 프로라면… 프로 = 적어도 돈받은만큼은 벌써 일을 끝마침)

서비스를 기획, 개발할 때 ‘가치’에 대해서 더 깊은 고민을 해야 합니다. 과연 이 서비스가 사용자들에게 어떤 가치를 주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지금 서비스들이 그런 고민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한 서비스들은 가치 부여 및 창출에 실패한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형태가 다른 서비스가 아니라 다른 가치, 즉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 수 있는 서비스여야 합니다. 새로운 카테고리를 정의하는 것은 분명 어려운 작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깊이 고민하고 더 치열하게 토론해야 합니다. 특히 다른 팀으로부터 오는 피드백이라면 이미 검토했던 사안이더라도 다시 검토해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상상한 고객이 아니라 실제 고객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가치를 염두에 둔 서비스에는 혁신이 따라옵니다.

또한, 최근 그리고 앞으로 나올 서비스들은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더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서비스를 기획, 개발함에 있어서 사람을 더 잘 이해하는 것과 함께, 데이터 마인드와 알고리즘 싱킹도 필요합니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적용한 서비스가 당장은 부족하더라도 근원적인 개선이 아닌 운영이라는 미봉책으로 해결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기계가 당장 사람의 감성을 터치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 부족분만 우선 운영이 채워줄 수는 있지만, 계속 그러면 그 서비스는 더 성장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서비스와 관련된 지표를 온전히 이해하고 또 추가적인 지표를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새 글이나 많이 본 글 이상으로 컨텐츠를 피쳐링해줄 수 있는 로직을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 최소한의 고민으로도 서비스에 새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놀라운 점 하나는 회사의 — 자신이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면 — 서비스보다는 경쟁사의 서비스를 더 잘 이용한다는 점입니다. 벤치마킹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부족하더라도 함께 사용하는 최소한의 노력/성의는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동업자 정신을 발휘해서 PV를 올리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의 서비스가 직접 고객들을 대면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가 최종 베타테스터가 돼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저도 제 성향과 맞지 않은 서비스는 이용하지 않습니다. 의도적으로 대중 음악을 듣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카카오 뮤직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제주에서 자가 운전하기에 카카오 택시를 이용하지 않습니다. 카페같은 커뮤니티 서비스도 잘 이용하지 않습니다. 상황이나 성향에 따라서 사용하지 않는 서비스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경쟁사의 서비스를 많이 사용한다면 가끔씩이라도 회사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문제점이나 개선점을 알려주는 것은 최소한의 동료에 대한 예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두세번 사용할 때 카스나 플레인을 한번씩만 사용해줘도… 단지 주식 몇 주 가진 사람들한테 주인의식을 바라는 것도 무리지만, 시킨 일만 하는 그런 노예근성으로 회사를 다니는 것도 서로 간에 불행입니다.

마셜 맥루한은 ‘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더 나아가 ‘사람이 미디어고, 곧 사람이 메시지다’라고 말하려 합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특정 서비스나 플랫폼에 의존해서 정보나 재화를 유통했습니다. 소셜 미디어가 일상화된 지금은 그런 미디어를 사용하는 사용자 자체가 미디어이고 그들의 생각과 행위가 메시지가 됩니다. 광고를 예로 들면, 기존처럼 광고를 실을 새로운 매체나 인벤토리를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 사용자들이 광고를 전달하는 매체로 만들어야 합니다. 다음뷰를 기획했던 고준성님이 만든 텐핑과 같이, 내가 페이스북 등의 타임라인에 광고를 자발적으로 올리고 그런 광고에서 클릭이 발생했을 때 수익을 공유하는 모델이 단적인 예입니다. 과거에는 다음탑에 올리기 위해서 티스토리나 카페 등의 컨텐츠를 생산했지만, 이젠 그런 컨텐츠에 반응한 사용자들이 포털을 통하지 않고 자신의 타임라인에 자발적으로 올려서 유통하는 것이 뉴노멀이 됐습니다. 뻐꾸기알 전략을 잘 연구할 필요가 있고, 쉽게 채집할 수 있다면 가두리에 넣어서 키울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서비스나 BM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준비하면서 ‘카카오는 잡음이 없는 회사가 아니라, 울림이 있는 회사였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크고 작은 잡음 (갈등)에 두려워하지 말고 큰 울림 (임팩트 및 기여)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2016년 그 시작이 될 수도 있지만 진짜 병신같은 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철학이 있는 리더와 문화를 만드는 공동체. 그게 카카오였으면 좋겠습니다. 절대 절대 절대로 금지된 (& 명문화된) 것이 아니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감히 해봅시다 (dare to do).

=== Also in...



  1. 회사 내부에 개인 아지트를 개설해서 매일 글을 하나씩 적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2. 카카오는 겨우 10%만 투자하는데 왜 이름은 카카오뱅크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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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는 서비스다.

TSP 2015.04.09 09: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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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데이터 분석을 전문으로 하던 팀에서 광고를 제공하는 팀으로 트랜스퍼를 했습니다. 제가 하는 기본 업무의 성격을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기존에 검색, 쇼핑, 미디어 관련 데이터 분석 업무에서 광고 관련 분석으로 바뀐 것 뿐입니다. 오랫동안 인터넷 비즈니스에 관심을 가지며 지켜봐왔고, 다른 서비스 분석 업무를 진행하면서 광고도 주의깊에 살펴봐왔습니다. 광고를 중심으로한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에 나름 조예가 있다고 자부하지만, 외부인의 시각에는 한계가 분명 있습니다. 어쩌면 이 글에서는 그런 외부인의 한계로 인한 오해를 배설할 수도 있고, 앞으로 비즈 업무를 대하는 자세나 방향성에 대한 다짐일 수도 있습니다.

인터넷 업계에는 나름 내부 알력 싸움이 있습니다. 서비스를 담당하는 쪽과 돈을 버는 (보통 광고) 쪽 사이의 긴장이 늘 존재합니다. 서비스 쪽에서는 가능한 사용자들에게 불필요한 요소를 모두 배제해서 깔끔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하고, 광고 쪽에서는 가능한 많은 광고를 다양하게 노출시켜서 매출을 올리고 싶어 합니다. 서비스의 성격과 흐름에 크게 방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다양한 광고를 노출하고 최적화하려고 서로 협력하겠지만, 서비스 지향 기획/개발자와 비즈 기반의 기획/개발자의 생각이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습니다. 비즈를 담당하는 쪽도 매출에 대한 압박 때문에 악역을 자처하는 것은 잘 알지만, 기획자와 개발자 사이의 간격보다 서비스와 비즈 사이의 간격이 더 커 보입니다.

어쩌면 제가 광고 외부인의 시각으로 봤을 때는 당연히 서비스가 먼저이고 나중에 광고같은 비즈니스 모델을 잘 붙이면 된다는 입장이었지만, 이제 광고 내부인으로 어떻게든 매출을 올려야 하는 입장으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적어도 인터넷 업계에서는, 서비스가 먼저다라는 기본 전제가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외부인의 시각에서 광고는 그저 서비스의 아름다움을 해치는 요소에 불과했고, 그렇게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광고에 집중하기로 한 시점에 다시 광고를 더 깊이 생각하게 되고, 광고가 그저 서비스의 발목을 잡는 걸림돌이 아니라 광고 자체가 하나의 서비스로써 역할해야 한다는 관점을 가지게 됩니다.

외부인의 오해일 수도 있으나… 광고인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어떻게든 최고의 매출을 올리면 된다라는 사고를 지녔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랫동안 검색 분야에서 일해왔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더 컸습니다. 사용자가 입력한 키워드에 적정 정보를 노출하기에 앞서 불필요한 광고가 더 많이 노출되는 경우가 많았고, 계속 그런 광고를 걷어내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광고쪽의 반대로 무산되다고, 최근에서야 일부 키워드 군에 대해서는 광고 우선 전략을 폐기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다음카카오 검색에서 정보 컨텐츠보다는 광고가 우선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광고쟁이들의 궁극 목적은 매출을 극대화하는 것이다라는 오해 아닌 오해를 오랫동안 가졌습니다.

보통 인터넷 광고에서 매출을 높이는 전략이라면 크게 단가가 높은 광고를 노출시키는 것과 많은 클릭을 받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물론 광고의 형태에 따라서 다양한 과금 체계를 가지고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성과형 PPC (Pay Per Click)를 기준으로 봤을 때 클릭을 많이 발생해서 매출을 올리거나 한 클릭에서 많은 수수료를 부과하거나 그 둘이 큰 틀입니다. 광고 최적화의 목적식도 보통 '단가 x CTR'을 높이는 형태로 정해집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더 비싼 광고를 더 클릭할 수 있게 만들 것인가?가 광고팀들의 미션이었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광고의 궁극적인 목적은 광고사로부터 최대한의 매출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광고도 하나의 서비스입니다. 즉 광고(주)와 고객을 연결시켜주는 서비스입니다. 광고주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그것이 필요한 고객에게 연결시켜주는 것이 광고입니다. 남녀를 연결시켜주는 것이 데이팅 서비스이고, 친구들을 연결시켜주는 것이 SNS이고, 사용자가 필요한 정보를 바로 찾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검색 서비스이듯이, 광고는 광고주 또는 그들의 서비스/제품과 고객을 연결시켜주는 서비스입니다.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할 때 자연스레 발생하는 것이 클릭이고 매출입니다. 광고가 어떻게 해서라도 클릭을 유도해서 매출을 올리게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과 서비스를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배달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광고는 필요와 필요를 (때론 욕구와 욕구를) 연결시켜주는 것입니다.

그런 연결을 매개해주는 모든 것은 서비스입니다. 그래서 광고도 서비스입니다. 그래서 제가 앞으로 할 일도 어떻게 하면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좋은 (광고) 서비스를 만들어줄까입니다. 고객 (광고주와 사용자 모두)을 만족시키는 것이 서비스의 목적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광고주와 사용자를 잘 연결시켜주는 방법을 더 깊이 고민할 것입니다. 광고주의 필요와 사용자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것을 통해서 결국 서비스 제공자의 필요도 충족된다고 믿습니다. 어떤 광고를 노출시켜줄 것인가?를 판단함에 있어서 단가가 높을 것인가 또는 클릭이 많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인가를 기준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광고주가 원하는 사용자, 또는 사용자가 원하는 광고/정보/서비스를 찾아줄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할 것입니다. 고객이 광고를 찾게 만들 것입니다.

광고 서비스를 하는 사람으로써 매출을 무시할 수는 없겠으나 그것이 제 1의 목적이 될 수가 없습니다. 광고 또한 고객의 만족을 먹고 자라는 서비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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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omenam.tistory.com BlogIcon 방배동외톨이 2015.04.30 20:3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슬픔이라는 사치

Gos&Op 2014.10.27 2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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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 예방 접종으로 오늘은 풋살도 못 가고 확인할 데이터도 있어서 저녁 늦게까지 사무실에 홀로 있는데, 문득 카톡 메시지가 옵니다. 가수 신해철씨가 결국 사망했는데, 지금 테스트 중인 서비스 화면에 관련 기사가 노출되고 있는지 확인해달라는 메시지였습니다. 신해철씨 또는 그의 음악에 대한 호불호가 존재할 수도 있지만, 우리 대한민국민들은 그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무서워서 쉬쉬하고 있는 이슈에 대해서도 그는 거침없이 발언했고 그래서 다시 우리를 환기시켜줬던 적이 많습니다. 모든 문제가 온전히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의 발언에서 우리는 저항할 수가 있었습니다. 어쨌든 그런 신해철씨의 사망 소식은 참 슬픕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런데 이런 슬픈 소식이 터졌지만 가장 먼저 지금 테스트 중인 서비스에서 관련 소식이 제대로 나오는지가 먼저 궁금해지고 찾아보게 됩니다. 그 외에 회사의 다른 서비스에서는 이 소기을 제때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지 확인하게 됩니다. 저는 조금 빗겨나있지만 뉴스를 다루는 팀에서는 고인에 대한 회상이나 슬픔은 뒤로 미루고 어떤 뉴스를 어떻게 내보낼까를 먼저 고민하게 됩니다. 서비스를 확인하면서 서비스를 다루는 우리에게 슬픔이란 감정은 참 사치에 불과하구나라는 걸 깨닫습니다.

세월호 이슈가 한참 일 때도 애도에 동참하기에 앞서 기사나 글이 제대로 나오고 있는지가 먼저 궁금해지고, 이런 대형 악재 앞에서 일부 서비스를 닫아둬야하는게 아닐까?라는 고민부터 하게 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봉사이며 사명이기는 하지만, 슬픔이나 아픔 등의 감정 앞에서도 감정을 꾹 눌러야 하는 것은 우리의 숙명인 걸까요? 간혹 연예인들이 자신이 맡고 있는 프로그램 녹화, 특히 생방송 때문에 슬픈 가정사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방송을 지켰다라는 얘기를 종종 합니다. 삐에로의 눈물이 이런 것일까요?

슬픔을 뒤로 하고, 기사가 제대로 나오면 다행이다라고 생각하고, 그렇지 않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지부터 고민하게 됩니다. 고인과 관계자분들께는 참 죄송하지만,…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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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는 자신이 가진 솔루션을 적용할 문제를 찾고 엔지니어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솔루션을 찾는다라는 말로 과학(자)과 엔지니어링을 구분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적절한 구분인 것같다. 데이터 분석/마이닝도 같은 관점에서 구분할 수 있을까? 문제에 맞는 솔루션을 찾는 사람은 데이터 마이너고, 알고리즘에 맞는 문제를 찾는 사람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라고 부를 수 있을까? 별로 좋은 구분인 것같지 않다.

최근 빅데이터나 데이터 사이언스 등에 관심이 조금 쏠리고 데이터 기반의 무엇 (Data-driven X)이라는 표현을 자주 접하게 된다. 선무당이 사람잡는다는 말도 있지만, 데이터와 연결된 용어들이 범람하면서 데이터 선무당들도 많이 늘고 있는 것같다. 간혹 지난 몇 년동안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를 모아놓았는데 이걸로 빅데이터 분석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는 류의 질문을 받곤 한다. 가혹 (데이터 분석의 생리를) 알만한 사람들도 비슷한 요청을 한다.

앞서 엔지니어와 과학자를 구분하면서 문제와 솔루션 중 어느 것에 익숙한가로 정했다. 데이터 마이닝이 과학이냐 엔지니어링이냐를 구분하기는 문제와 솔루션이 적당한 측도는 아니지만, 데이터를 접근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좋은 설명이 될 것같다. 데이터 마이닝은 문제와 솔루션 사이에 데이터가 존재한다. 데이터가 문제와 솔루션 사이를 연결한다고 봐도 좋다. 그래서 크게, 문제(서비스)에 맞는 데이터를 수집해서 적당한 솔루션을 찾는 방향과 솔루션이 적용될 문제를 찾아서 데이터 인사이트를 얻는 방향이 있을 수 있다. 서비스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나이브하더라도 그것에 맞는 알고리즘을 찾아서 적용해보고 필요하면 더 나은 알고리즘을 찾거나 기존 것을 개선하면 된다. 반대로 알고리즘에 익숙하다면 서비스를 조금씩 이해하가면서 자신의 솔루션을 끼워넣으면 된다.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다른 접근법이 있기는 하다.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것인데, 가장 이해하기 힘들고 피했으면 하는 접근법이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한테 데이터가 많이 있으니 괜찮은 서비스 하나 만들어볼까요?라는 접근이다. 데이터만 (많이) 있으면 서비스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많은 경우 데이터 접근법이 실패한다. 모든 것은 컨텍스트 내에서 정의된다. 데이터의 컨텍스트는 서비스다. 유능한 사람은 데이터 더미에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겠지만, 나같은 범인은 그러지 못한다. 데이터가 많다고 데이터 기반의 실행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 데이터가 많기는 한데 데이터 분석에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언젠가 필요할 것같으니 다 모아두자는 식으로 데이터를 쌓아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많은 회사에서 그런 데이터조차도 관리하고 있지 않지만... 불필요하게 공간만 차지하는 필드들도 많고, 정작 필요한 데이터는 애초에 없는 경우가 많다. 데이터를 분석하고 적용하려면 처음부터 다시 데이터를 모으거나 필요한 형태로 가공해야 한다. 데이터가 잘 정립된 곳에서도 데이터를 가지고 새로운 분석을 하거나 서비스를 만들 때 5할은 데이터 정의/변환에 소요되는데, 그냥 데이터만 쌓아둔 경우라면 9할을 여기에 허비하게 된다. 그러면서 서비스를 이해하게 되는 경우도 발생하지만, 깔끔하지는 않다. 어디에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목적없이 데이터를 수집해서 분석가들을 힘들게 만들지 않았으면...

데이터에 맞는 문제, 데이터에 맞는 솔루션은 없다. 데이터가 왕이 아니라, 왕이 될 데이터는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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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테크기업에서 일하다보니 가끔 듣는 얘기가 있다. 외국의 유수 테크기업들은 기획자라는 포지션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데, 한국에만 특이하게 기획자라는 직군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한국에서 기획자들의 역할을 대략 생각해보면 개념을 디벨롭해서 서비스/제품을 디자인하고 프로젝트의 일정을 관리하면서 결과물에 대한 품질 검수(때론 운영)까지 다양한 일을 한다. 그런데, 구글이나 페이스북같은 서비스 회사에서는 개발자들이 (직접 프로토타이핑하면서) 개념을 디벨롭하고, (중간) 매니저들이 일정이나 리소스 관리 정도를 해주고, 자동화된 테스팅 툴이나 특화된 QA 조직에서 품질검수를 해준다. 애플같은 회사에서는 개념 디벨롭이 디자이너들에게 많은 권한이 넘어가있다는 특징도 있다. 이렇게 보면 기획이라는 특화된 직군이 필요가 없고 누구나 기획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분업/전문화되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서비스를 담당하며 다양한 기획자들과 일하다보면 기획자들만이 가지는 특장점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즉, 이 글의 목적이 기획자가 필요없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특히 개발자들과는 다른 다양한 분야/전공에서 오는 (다양성의) 장점을 발견할 때가 많다. CS나 공학을 전공한 사람이 볼 수 없는 다양한 면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만인을 위한) 서비스/제품을 개발하는데 분명 도움이 된다.


(세부 업무를 무시하고) 얼핏 생각하면 기획자는 큰 틀에서 서비스나 제품의 밑그림을 그려야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은연중에 받는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기획자는 큰 그림을 그릴 수가 없다. 기획자 개인의 능력이나 자질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권한을 얘기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주니어 기획자가 괜찮은 서비스에 대한 아이디어를 낸다고 쳤을 때, 그 아이디어가 바로 실현될 가능성이 몇 퍼센트나 될까? 2, 3년 내에 비슷한 서비스가 만들어진다면 그나마 괜찮은 편에 속할 것이다. 대부분의 아이디어는 두세단계 위로 올라갈 기회조차 없다. 일명 그냥 까인다. 결국 (큰 조직에서) 서비스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 그리고 그려야하는 사람들은 힘있는 경영자나 창업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급변하는 사회에서 늙은이들의 생각은 신뢰하지 못하겠다.) 관리자가 관심을 가지는 아이템에 대해서 살을 붙이고 구체적인 채색을 하는 것이 실무 기획자들의 몫으로 내려온다.

현실이 그렇기에, 내가 기획자들에게 바라는 큰 두가지는 [첫째] 가능성이나 현실성을 염두에 두지 말고 다양한 상상을 하는 것과 [둘째] 서비스의 디테일을 챙기는 것이다. 서비스나 기능의 가능성은 개발자가 검토하고 리소스나 일정은 관리자가 걱정/조율하면 된다. 대신 기획자는 자신의 서비스에 대한 다양한 모습을 상상하고 시나리오를 만들어내는 것이 첫째 미션이다. 그리고 실제 개발된 서비스나 제품이 고객들에게 전달되기 전까지 그리고 전달된 이후의 세심한 디테일을 모두 챙기는 것이 둘째 미션이다.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렇게 믿는다.

이것이 나의 1001번째 생각이고, 함께 일하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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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와 해법

Gos&Op 2013.11.25 19: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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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 짧게 적었던 글을 좀 길게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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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밤에 읽은 책에서 (전체 내용과 관계가 적으므로 책 제목은 생략합니다) "과학자는 해법을 찾은 뒤에 그것을 적용할 문제를 고민하는데 반해, 엔지니어는 문제를 규정한 이후에 해법을 찾는다는 차이가 있다"라고 적혀있었다. 순수학문과 응용학문의 차이를 잘 설명해준다.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고민을 오랫동안 해왔다. 나는 또는 내가 속한 팀은 기술 스택에 집중해서 다양한 기술을 연마하거나 알고리즘을 개발해서 서비스 분야에 접목을 시켜야 할지 아니면 서비스 스택에 더 집중해서 도메인/비즈니스 지식을 쌓은 후에 다양한 기술/알고리즘을 차용해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했다. 현재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에 머물러 있어서 갈피를 못잡고 표류하고 있는 듯하다.

인터넷 서비스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매일 새로운 기술이 쏟아지고 트렌드는 급변하는 상황에서 기술적 완성도도 어정쩡하고 서비스의 디테일도 어정쩡한 상태에 이른 경우가 많을 것이다. 기술에 집중하자니 발등에 떨어진 불이 너무 커고, 그렇다고 발등의 불부터 꺼자니 시대에 뒤떨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작은 조직에서는 이 둘을 동시에 해결해야하기 때문에 어렵다. 그러나 웬만큼 큰 조직에서는 팀별로 성격을 나눠서 전문성을 가질 수 있고, 또 가져야 한다. 그래야지 기술 스택과 서비스 스택이 명확히 세워지고, 필요에 따라서 서로 결합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가 있다.

우리 팀의 핵심이 뭘까?를 항상 고민한다. 윗선에서 제대로 된 비전을 보여준다면 그것을 믿고 따르면 되겠지만, 최근 분위기가 녹록치가 않다. 그렇기에 혼자서 고민하는 것같다. 팀의 정체성은 팀이 맡고 있는 서비스일까 아니면 팀이 가지고 있는 기술/지식일까? 팀의 core competence가 뭘까를 고민하게 된다. 팀의 핵심 역량을 정하고 그것을 극대화시킨 이후에, 다른 영역에 적용을 하거나 아니면 다른 영역의 기술을 차용해야 방향이 잡힌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실질적으로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확실한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웬만한 문제에는 적용이 가능하고, 또 괜찮은 서비스/문제를 쥐고 있으면 또 다양한 기술들을 적용해볼 수가 있다. 그렇기에 (큰) 조직에서는 기술스택과 서비스스택을 명확히 구분해서 서브유닛별로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특화된 유닛끼리는 문제/상황에 맞도록 적절히 조화를 이뤄서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내거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스페셜리스트보다는 제너럴리스트를 더 선호하지만, 한두가지의 스페셜한 기술이 없는 제너럴리스트는 결국 허상을 쫓게 되고, 역으로 일반적인 시각이 없는 스페셜리스트도 그 길이 잘못되었다고 (늦게) 판명이 나면 필망에 이른다.

올바른 해답은 올바른 문제/질문에서 시작된다. 물론 문제가 옳다고 해서 옳은 해답을 찾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잘못된 문제에서 옳은 해답을 찾을 수는 결코 없다. 그렇다면 올바른 문제부터 찾아야 하는 걸까? (기술에 특화된 조직이 아닌 또는 원천기술이 없는) 작은 조직이라면 문제를 먼저 찾아야 한다. 투명하게 정보 (지식)가 공유되는 요즘 시대에, 문제가 잘 정의되면 적당한 답을 찾는 것은 별로 어렵지가 않다. 그러나 그런 경우 자기만의 해답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저의 개인적인 성향은 서비스 오리엔테이션입니다. 그리고 요즘은 데이터 사이언스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현실에서 데이터마이닝은 데이터 엔지니어링에 더 가깝고, 그래서 비즈니스/도메인 지식과 데이터 자체에서 오는 인사이트가 많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좀더 사이언스적인 접근을 해보고 싶다는 욕구도 있습니다. 팀 자체의 아이덴터티가 예전과 많이 바뀐 상황에서 여전히 한두개의 서비스에만 매여있으면 안 될 것같습니다.

글을 적다보니 논점이 자꾸 흐려진다. ... 어쨌든 현재 나 또는 우리 팀은 해법을 찾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분위기가 그렇지 못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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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의 실종

Gos&Op 2013.06.24 09: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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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무실에서 사원증 패용 때문에 조금 시끄럽다. 유치한 캠페인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있고, 이번/지난 주는 일제검점기간 -- 일제고사도 아니고 -- 으로 설정해두고 조금 강압적인 분위기마저 연출하고 있다. 사원증이 출입증의 역할 외에도 내외부인의 구분 및 직원의 식별ID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의도치 않은 보안사고를 미연에 막을 수도 있다. 그런 취지를 잘 이해하고 있지만 이를 실행하고 종용하는 강압적인 분위기에 반감을 가지게 된다. 누군가의 불만에 그저 틀에 박힌 FAQ만 게시판에 올려놓는 것에서도 거부감이 든다. (보안)사고는 불시에 일어나기 때문에 미연에 모든 가능성을 점검하고 가능하면 일어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맞다. 그러나 이를 실행하는데 왜 그렇게 사무적이고 관료적인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보안 관련 부서의 (업무의 특성에서 기인하고 체화된) 사고의 경직성만이 문제가 아니라, 이것이 이 회사 전반에 뿌리 박힌 고질적인 병폐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원증 패용이나 VPN 연결 등은 크리티컬한 사안이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가 있지만, 그 외에 가벼운 사안들에 대해서도 과정이 비슷했던 것같다. 갑들에게는 '결정하면 따르라'라는 것이 깊이 각인된 것같다. 그런 사고가 내부의 분위기만 망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 전달되는 서비스에도 그대로 투영되어있다는 느낌이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다음의 위기설은 단순히 재무재표의 문제나 성공한 서비스의 부재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답을 미리 정해놓고 적당한 문제를 찾아 끼워맞추는 것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요즘 대한민국 전반에서도 감지되는 것이지만, 회사 내에서도 설득의 과정이 실종된 것같다. 결론없는 토론이 토론없는 결론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모든 결정에서 토론의 과정, 즉 이해시키고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생략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고,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굳어지고 있는 것같다. 나름 결정권이 있는 사람들이, 그리고 전문성이 있는 사람들이 고민해서 해결책을 제시했겠지만, 그 결정이 100% 맞다손치더라도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키고 동참시키는 과정이 생략되면 결국 정답이 오답이 되고 만다. 그냥 결정하고 공지하고 (공청회도 아닌) 설명회 한두번 하고 실행하는 것에서는 새로운 변종, 즉 창의와 창발이 없다.

말했듯이 그런 내부의 분위기는 그대로 외부에 투사된다. 바로 기획하고 개발하고 운영되는 서비스를 통해서 나타난다. 좋은 것을 만들었으니 너희들은 그냥 와서 사용하기만 하면 된다라는 인식으로 서비스를 기획하고 개발하는데, 어떻게 사용자들이 기쁜 마음으로 서비스를 이용하겠는가? 리더십이 팔로워들을 포용하고 설득시키듯이, 서비스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그 서비스 고객들을 포용하고 설득시켜야 한다. 그래야 사용자들이 그 서비스를 제대로 이해하고 결국 애용하게 된다. 최근에 다음이 만든 대부분의 서비스들이 별로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게중에는 트렌드를 잘 못 읽었거나 기획이 나쁘거나 개발이 개판이었던 것도 있다. 그러나/그렇더라도 결국 서비스가 실패한 원인은 사용자를 제대로 설득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비스라는 것이 그냥 오픈해서 이벤트 한번 한다고 해서 저절도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기획단계에서는 시대의 트렌드도 분석하고 사용자들의 니즈도 파악하고 또 더 근본적인 사용자들의 욕구를 제대로 잡아내야 한다. 그렇게 서비스의 컨셉을 제대로 잡아서 빨리 만들어서 시장에 내놓으면 성공했다. 10년 전에는... 경쟁 서비스들도 많고 시장도 불확실한 요즘에는 완벽한 컨셉의 서비스를 제때 출시한다고 해서 시장에 바로 안착시킬 수가 없다. 과거에는 오픈이 레이스의 끝이었지만, 이제는 오픈이 레이스의 시작이다. 이제부터는 지나하게 사용자들을 설득시켜야 한다. 이미 사용하고 있는 다른 서비스보다 더 낫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하고 새로운 서비스가 마음에 들 것이라고 꾸준히 보여주면서 유저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의 성공신화는 잊어야 한다. 신화는 신화일 뿐이다. 낫다는 것, 빠르다는 것, 좋다는 것이 성공을 보장하지 못한다.

다음이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은 -- 여러 번 주장했듯이 -- 문화의 실패라고 말하고 싶다. 겉으로 보이는 조직도가 아니라, 그 조직 내면에서 꿈틀대고 있는 정신과 철학 -- 때로는 정치 -- 의 문제다. 그런 정신과 철할이 문화라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그런 (창조적인) 문화는 결국 서비스라는 제품으로 형상화된다. 다음에 잘못 정립된 많은 것들이 있지만, 나는 이 글에서는 설득의 과정이 생략되고 공감과 동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이것을 콕 집어서 말하고 싶다.

유저를 이해하고 설득하고 기다리지 못한다면 다음이 그 어떠한 우수한 서비스를 만들더라도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그런 이해와 설득과 기다림은 내부에서 체득된 문화를 통해서만 발현될 수 있다.

이유가 없는 현상은 없다.

(2013.06.18 작성 / 2013.06.24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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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에의 집착'과 '위대함은 충분함의 적이다'에서 이미 다뤘던 내용이지만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빈번히 함정에 빠지기 때문에 다시 적는다. 지난 글에서 있으면 좋을 법한 온갖 기능들을 모두 갖춘 그런 완벽한 서비스를 생각하고 개발에 들어가지만 많고 상충되는 요구조건들 때문에 서비스 리드타임은 증가하고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결과물이 나와서 사용자들로 외면받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적당해도 되는 것은 적당히 끝내고, 중요한 것에 더 집중해야 된다고 말했다.

내가 말하는 완벽한 서비스란 필요한 또는 필요할 것같은 기능들을 모두 갖춘 서비스를 뜻한다.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사용자의 피드백을 받으며 차츰 진화해서 필요에 따라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거나 기존의 기능이 수정/제거되어서 완벽한 모습/기능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이런저런 기능을 모두 집어넣어서 만든 서비스를 말한다. 마치 모든 자물쇠를 열 수 있는 만능키/마스터키같은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욕심은 기획자나 개발자나 이상주의자나 현실주의자나 누구나 갖는 것같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런 서비스를 만들 수가 없다. 아니, 그런 서비스는 존재할 수가 없다. 우선 사용자의 니즈나 취향이 바뀌고, 주변 환경과 트렌드가 계속 바뀐다. 기획 초기에는 맞던 컨셉/기능이 런칭 단계에서는 불필요한 것이 될 수도 있다. 더 끔찍한 경우는 한참 개발하고 있는 중에 니즈나 트렌드가 바뀌어서 개발 방향을 바꿔야하는 경우다. 완벽한 서비스를 꿈꾸면서 기획/개발하다 보면 그런 상황이 오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있어야할 기능을 빼고 출시한다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헛된 자존심이 프로젝트를 망하게 만든다.

처음부터 서비스는 완벽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사용자에게 전달되는 모든 서비스는 완성품이어야 한다. 불완전한 서비스는 사용자의 관심을 끌 수가 없다. 완성된 또는 완전한 서비스는 기능의 많고 적음이나 서비스의 규모 등의 문제가 아니다. 작은 기능이더라도 사소한 서비스더라도 단독으로 애초에 의도했던 기능 또는 서비스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완성된 서비스다.

여러 관점에서 완성된 서비스를 설명할 수 있겠으나, 적어도 다음의 3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서비스의 컨셉이 완전해야 한다. 여기서 완전하다는 것은 컨셉이 깔끔하게 설명이 되고 많은 사람들이 바로 수긍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미션/비전 스테이트먼트처럼 보일 수 있으나) 구글이 내세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체계화하겠다'라거나 트위터의 '140자로 소통하겠다' 또는 페이스북의 '모든 사람들을 연결하겠다'와 같이 짧지만 명확하게 셜명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하면서 억지로 짜낸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저 경쟁사의 서비스와 차별화를 위해서 억지 기능을 추가하기도 하고, 현실성이 없는 목표를 세우는 것은 완전한 컨셉이 아니다. 주변에 실패한 많은 서비스들이 대부분 컨셉 자체가 불완전하고 누더기같은 경우가 많다.

둘째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컨셉이 완전하면 기본에 충실하지 않을 수가 없지만, 그래도 기본은 늘 강조되어야 한다. 꺼내고 싶지 않은 예지만, 마이피플이 처음에 카카오톡을 이길 기회는 많았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 마플과 카톡의 기본은 친구와의 자유로운 수다다. (자유롭다는 말에 공짜라는 의미도 있다. Free is free.) 다른 글에서도 적었지만, 아이폰이 보급된 초기에는 무료문자보다도 그냥 잘 만들어진 (초성검색이 가능한) 주소록이 필요했다. 그때 모든 아이폰에 제대로 된 주소록으로써 마플이 설치되고, 이를 기반으로 무료문자기능이 업그레이드되었다면 초반에 카톡과의 경쟁이 재미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플이 출시된 이후에도 -- 카톡의 급성장으로 서비스가 불안정하던 시기에 -- 안정된 서비스만 제공해줬더라도 역전의 기회가 있었다. 당시에 그런 메시징의 안정성보다는 무료(화상)통화라는 추가 기능에만 집중했던 과오가 있다. 말했듯이 카톡이나 마플의 기본은 '자유로운 메시징'이다. 자유롭다는 말에 '공짜'를 내포한다고 했지만, 자유롭다는 말에 '안정적'으로의 뜻도 포함되어있다. 꼭 되어야할 기능이 부실한데 화려한 추가 기능은 오히려 역효과만 낸다.

세째는 디테일이 살아있어야 한다. 이전 글에서 말했듯이 명품과 짝퉁을 구분짓는 것은 디테일에 얼마나 충실했느냐에 달려있다. (실제 사용되는 재료가 다르지만) 사용된 재료와 가공 방법이 똑같더라도 명품과 짝퉁은 보이지 않는 곳의 디테일에서 결정이 난다. 바로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서 명품과 짝퉁을 구분하기 어렵다. 그러나 속을 자세히 들려다 보면 구분이 된다. 이태리 장인의 한땀 한땀 바느질 손길이 느껴지는 것이 명품이고, 짝퉁은 그냥 공장에서 대강 박음질해서 쏟아진 것같은 느낌을 받는다. 기본에 충실해야 된다고 말했지만, 신규 서비스라고 대대적으로 홍보되어서 사용해봤는데 접속이나 로그인도 제대로 안 되고 맨날 장애만 일으키는 서비스는 성공할 수가 없다. 서비스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작은 버그까지도 없는 그런 서비스가 완성된 서비스다.

모든 사용자의 니즈를 모두 충족시키겠다는 그런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서 명확한 컨셉을 바탕으로 기본에 충실하고 디테일까지 신경을 쓴 그런 서비스에 집착해야 한다. 세상의 어떤 것도 절대 완벽해질 수 없다. 가능한 모든 모습과 기능을 상상하고 검토해봐야겠지만, 모든 것을 넣을 필요는 없다. 지금 만들고 있는 서비스를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다면 재고해야 한다. 지금 기본 기능보다 부가 기능에 눈이 돌아간다면 헛수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디테일을 무시하고 그냥 대충대충 넘어간다면 결과는 이미 예견되어있다. 기획과 개발은 과정일 뿐이다. 사용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그 모든 수고가 허사가 된다. 일반 사용자는 DIY를 원하지 않는다.

(2013.05.03 작성 / 2013.05.13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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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시대마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키워드가 있다. 지난 2월에 한 시대를 마감하고 또 다른 시대를 준비하는 시점에 '소통에서 진정성으로'라는 글을 적었다. 지금은 진정성이 시험대에 오른 시대다. 이런 진정성의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또 고민하게 된다.

가볍게 TV예능 얘기로 시작하자. 지난 토요일에 무한도전 8주년 기념으로 무한상사가 방송되었다. 무한상사에서 보여준 정리해고라는 삶의 무게에서 느껴지는 우리네의 삶과 애환이 무겁게 다가온다. 무한도전이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감싸는 것은 그 속에 담긴 진정성을 빼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잘 알다시피 무한도전은 리얼버라이어티 시대를 개척했다. 리얼버라이어티는 돌발성이라는 리얼리티를 추구하지만 기본적으로 버라이어티라는 틀을 유지하고 있다. 잘 짜여진 대본은 없더라도 전체 맥락과 상황을 구성하는 작가들이 존재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의도된 미션들이 주어지고 그것을 수행해나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돌발성 때문에 리얼리티가 보여진다. 무한도전 이후로 쏟아졌던 많은 예능들 -- 1박2일, 패밀리가 떴다, 런닝맨, 정글의 법칙 등 --은 무한도전의 카테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무한도전의 진정성이라고 표현했지만 리얼버라이어티의 기본은 소통의 문제였다. TV 속에만 등장하는 스타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네의 일상 생활 속에서 부대껴 살아가는 이웃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 리얼버라이어티였고, 그것이 일종의 시청자와의 소통이었다. 실제 많은 에피소드에서 연예인들만의 말장난, 몸장난이 주를 이룬 특집보다는 일반 시민들과 부딪히는 상황이 많았던 특집이나 사회문제/시대정신을 반영한 특집들에서 더 큰 호응을 얻었다는 것은 TV 속의 연예인과 일반 시민들 사이의 교감/교류, 즉 소통의 핵심성을 잘 보여주었다.

그리고 더 최근에 방송의 한 꼭지를 차지했던 다양한 오디션 프로그램들에서는 TV스타가 아닌 재능을 가진 일반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일반인들과 연예인들의 묘한 비중의 차이에서 프로그램의 성패가 결정된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일반인이 연예인으로 발굴되고 성장해가는 것도 일종의 큰 벽이 허물어지는 소통의 정점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오디션 프로그램이 성숙할 수록 더욱 부각되는 것이 진정성이었던 것같다.

리얼버라이어티와 오디션의 시기를 넘어서 최근에 보여주는 트렌드는 말 그대로 '진정성'을 핵심 개념으로 내세우는 것같다. 최근에 새로 시작해서 호응을 얻고 있는 프로그램들의 특징은 리얼버라이어티에서 보여줬던 시나리오가 무시되고 있고, 버라이어티가 아니라 그냥 리얼리티를 주무기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소위 말하는 관찰카메라, 즉 그냥 다큐버라이어티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아빠 어디가' '나 혼자 산다' '진짜 사나이' '인간의 조건'에서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컨셉이 그냥 스태프들은 상황을 관찰할 뿐이다라고 말한다. 큰 틀에서 미션이 주어지거나 상황이 설정되기는 하지만, 이전의 무한도전이나 1박2일에서보다는 자유도가 훨씬 더 높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글의 법칙'은 과도기적인 작품이었던 것같다.) 미션은 주어지지만 아이들의 돌발성을 그대로 허용하는 아빠 어디가, 주제만 정해놓고 일주일간 그냥 관찰만하는 인간의 조건, 군대/내무반이라는 상황만 존재하는 진짜 사나이, 그리고 그냥 혼자 잘 살고 있는 독거남들의 집에 카메라만 설치한 나 혼자 산다 등의 최근 프로그램들은 그냥 현실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그런 가공되지 않은 현실이 진정성이다. (최근 정법 뉴질랜드편에서 제작진들이 애써 변명하려했던 것도 일종의 그런 진의를 재설정하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한다.)

무한도전으로 시작된 리얼버라이어티에서 보여줬던 소통의 정신이 슈스케를 통해서 더욱 부각이 되어 나는 혼자산다로 이어지면서 만들어진 여과되지 않은 현실성이라는 키워드가 비단 TV예능의 트렌드로 끝날 것같지가 않다.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적인 문제에서 소통이 중요한 키워드였듯이 이제는 진정성이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용하고 만들어갈 IT 서비스들도 그런 사회 분위기/트렌드에 맞춰져야 한다. 이 시대와 세대가 요구하는 것이 진정성이라면 IT서비스도 진정성의 구현에 초점을 둬야 한다. 사실 진정성없는 소통은 무의미하고 소통이 없는 진정성은 보여질 수가 없기 때문에 소통과 진정성을 별도의 개념으로 떼내어 얘기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소통의 정신과 진정성이라는 시대정신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정도로만 얘기를 해두자. 그리고 잘못된 소통은 소음에 불과하다. 현재 논란의 중심에 있는 층간 소음이 그렇고, 계층간 소음이 그렇다. 진정성이 없는 소통은 그냥 소음에 불과하다.

지난 글에서 밝혔듯이 지난 정권에서는 소통이 가장 큰 화두였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MB정권은 소통의 부재의 시대가 아니라, 신뢰의 부재, 즉 불신의 시대였던 것같다. 그런 내재되고 억압된 신뢰라는 문제가 -- 그는 소통이라는 키워드로 의제를 설정했으나 -- 진정성이라는 키워드로 정리된 것이다. 그런 분위기가 TV방송에서 그대로 나타나는 것같다. 새로운 정권이 시작하기 전에 진정성의 시대를 잘 맞이해야 된다라고 말했는데, 몇 달이 지난 지금 진정성이 크게 훼손된 것을 본다. 공약이 공약이 되어버렸다. 어떻게 해서 국민들이 그렇게 세뇌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공주님은 약속을 잘 지키는 정치인이다라는 신기루같은 믿음이 있었고, 어쩌면 그런 허상 때문에 지금 여제가 되었다. 그런데 이제 실제 보여지는 여과되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그래서 언론과 대중에 잘 노출되려하지 않는다) 진정성이 의심받기 시작했다. (의심받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나마 불행중 다행이다. 꿈에서 벗어나는 길은 먼저 잠에서 깨어나야하기 때문이다.) 시민이 주인이 되지 못하는 경제민주화라든가 실체가 없는 창조경제라는 용어로 여전히 국민들을 꿈꾸게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실망하고 있다.

MB시대를 거치면서 가장 각광을 받았던 서비스는 촛불과 함께 아고라라는 공론의 장이 이슈가 되었고, 이후에 아이폰의 등장과 함께 각종 SNS라는 연결과 소통의 서비스가 주를 이뤘다. 인터넷이 처음 대중화되던 시절에는 오프라인의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대체되었듯이 스마트폰의 시대를 맞으면서 모든 온라인 서비스들이 모바일 최적화가 이뤄졌고, 그런 모바일 퍼스트의 핵심은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중심으로 어떻게 (서로를 -- 정보와 사람, 사람과 사람) 연결해서 묶을 것인가?가 시대의 화두였던 것같다. 소통의 시대에 소통의 도구가 각광을 받았던 것은 당연하다. 아고라가 그랬고, 트위터가 그랬고, 페이스북이 그랬고, 카카오톡이 그랬다.

소통의 시대에서 진정성의 시대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 새롭게 등장하는 서비스들도 소통이 핵심이 아니라 진정성이 핵심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제 소통의 도구는 그냥 기본이 되었다. The step after ubiquity is invisibility라는 말이 생각난다. 이제 모든 서비스의 기본에 모바일과 소통의 정신이 체화되어버려서, 모바일이나 소통을 전면에 내세울 필요가 없어졌다. 소비자들은 으레 새로운 서비스가 나오면 모바일에서도 잘 작동하겠지 또는 친구들과 공유하는 것이 편하겠지라고 생각한다. 지난 몇 년동안 중요하게 생각되던 기능들은 이제 모든 서비스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 시점에 역트렌드로 모바일무시 또는 고립된 서비스를 만들어서 특정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도 있다. 어떤 측면에서 개인정보와 프라이버시 문제와 함께 그런 역트렌드 서비스가 오히려 진정성의 구현으로 각광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소통의 기능이 기본이 되어버렸다면 이제 새로운 차별화 포인트가 필요하다. 진정성의 시대에 그런 차별화 포인트는 당연히 진정성일 듯하다. 개인의 진정성을 표출할 수 있는 공간/기능/서비스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안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여전히 진정성은 모호한 개념이다. 적어도 소통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가 있지만, 진정성은 겉으로 표현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굳이 표현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진정성이라는 단어의 개념부터 제대로 정립해야겠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면 어느 정도 정리될 것같다. 적어도 진정성의 여부를 사람들이 판단하는 기준은 생길 것같다.

일상 속의 진실된 나의 모습을 알리는 서비스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아주 사소한 생각이나 활동이더라도 그것이 나 자신을 제대로 반영하는 것이라면 일기를 적듯이 표현하는 그런 서비스일 수도 있다. 진정성의 시대에는 개인이 개인으로써의 브랜드가 중요해질 것같다. 평판이라 불리는 그것이 개인에게 더 중요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의 평판을 관리하는 서비스가 마련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역으로 평판 세탁을 도와주는 서비스도 성행할지도 모르겠다. 공인들의 말과 행동을 감시해서 그 사람의 진정성을 관찰, 평가하는 것들도 등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정치인들이 했던 모든 말을 모아서 그 사람의 일관성을 측정해보고 실제 선거철에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고, 선거 공약으로 등장했던 것들이 얼마나 제대로 지켜졌는지에 대한 것도 점검될 것이다. 그런 공인들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것이 그저 깨어있는 시민단체를 넘어서 대중에게 퍼질지도 모르겠다.

이제 단순 연결보다는 속깊은 신뢰가 더 중요해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런 신뢰 진정성의 시대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짧은 설을 내부인들에게 짧게 펼치고 싶어서 글을 적으려고 했는데 너무 장황하게 흘러갔고 또 본론/결론은 미약해졌다. 그냥 시대의 정신이 소통에서 진정성으로 넘어가고 있으며, 새로운 서비스는 그런 흐름에 맞춰야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내 글이 늘 용두사미로 끝나지만, 구체적인 액션플랜을 제시하기보다는 그냥 시대(정신)의 흐름을 말해주고 싶었다.

(2013.04.28 작성 / 2013.05.06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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