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적 잉여'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2.08.16 생산적 잉여가 되자
  2. 2012.04.24 생산적 잉여 ProPlus를 기대하며...

생산적 잉여가 되자

Gos&Op 2012.08.16 23:30 |
Share           Pin It

언제부턴가 '잉여'라는 단어가 좋은 뜻으로 해석되다. 예전에는 잉여라고 하면 나머지 공부를 하는 사람이나 아니면 동네 놀이에서 깍두기같이 핵심 멤버가 아닌 사람을 뜻하거나 아니면 뭔가를 만들고 남은 짜투리같은 어감이었는데, 요즘은 뭔가 자신만의 취미 생활을 폼나게 하고 가족들에게도 헌신적인 뭔가 럭셔리한 느낌을 받는다. 맨날 야근을 하고 주말에는 쇼파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는 그런 산업화 시대의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라, 회사에서도 인정받고 칼퇴근을 해서 어학이나 여러 기술들을 별도로 습득하기도 하고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캠핑도 가고하는 그런 책임감있고 가정적인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잉여는 여유로움을 뜻하고 잉여는 자유로움을 뜻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 잉여로운 사람이라면 남는 시간과 자원을 그냥 허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더 숭고한 목표를 가지고 사회에 헌신을 하는 그런 사람으로 비춰진다. 그래서 이제는 잉여로움은 칭찬의 말이 되었다.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는 해커정신도 잉여의 다른 모습이고, 오픈소스나 프리소프트웨어 등도 잉여의 결과물이고, 프로츄어나 프로슈머라는 신인류의 모습도 잉여의 결실이다. 실리콘밸리의 많은 전설적인 회사들의 창업 스토리에는 매번 그런 잉여의 전설이 따른다. 70년대의 히피의 모습이 어떻게 보면 현대인들이 꿈꾸는 잉여스로움의 극치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자유로우면서도 반사회적인 문화 속에서 만들어진 홈브루컴퓨터클럽과 같은 아마추어 엔지니어들의 모임이 오늘날의 실리콘밸리를 만들었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지만, 홈브루에서 자랑질을 하기 위해서 워즈니악이 밤잠을 설치지 않았다면 애플이라는 회사도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잠시 죽을 쓰고 있지만 (Zucked = 저크버그꼴이 되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크버그가 IPO를 단행하기 전에 보낸 공개서한에서 밝힌 해커리즘에서 잉여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그외에 많은 실리콘밸리의 회사들이 처음부터 '돈을 벌어야겠다'라는 목표에서 시작하기 보다는 '재미있고 의미있는 서비스를 만들어야겠다'라고 시작한 경우가 많다. (물론 많이 미화되어있다.)

잉여에 대한 사소한 얘기는 이 정도에서 마치자. 잉여도 다 같은 잉여는 아니다. 그래서 4가지로 잉여를 구분해봤다.

  • 소비적 잉여 Consumptive Surplus. 이건 진짜 아무 짝에도 없는 잉여다. 사실 아무 짝에도 없다는 표현은 잘못되었다. 의미없는 잉여는 없으니... 겉으로 드러나는 구체적인 결과물이 없다는 의미에서 그런 표현을 했다. 소비적 잉여는 말 그대로 그냥 잉여의 시간과 자원을 허비하는 거다. 퇴근 후에 쇼파에 누워서 TV만 시청하면서 빈둥빈둥 시간만 보내는 그런 부류를 뜻한다. 이게 의미없는 잉여가 아니다라는 말한 이유는 그런 쉼/휴식이 우리 삶에서 중요하기 때문에 분명 의미가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뒤에 남는 흔적이 없기 때문에 아무 짝에도 없다고 표현했을 뿐이다. 그런데 TV를 보면서 여유롭게 다양한 생각을 하고 또 복잡한 머리와 마음을 정리한다면 의미없는 허비가 아닐 수도 있고, 말했듯이 심신을 재충전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다.
  • 유희적 잉여 Playful Surplus. 유희적 잉여는 취미생활을 하는 등의 즐거움을 위해 시간을 보내는 부류를 뜻한다. 운동을 한다거나 책을 읽는다거나 어쩌면 그냥 어학학원 등에서의 학습도 유희적 잉여에 속한다고 볼 수가 있다. 회사 업무에 필요한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거나 학원수강을 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냥 책읽는 것이 취미라서, 그리고 그냥 운동, 어학이나 요리, 목공 등과 같은 스킬을 배워두고 싶어서 학원에 다니는 부류를 뜻한다. (업무와 관련되어서 책읽고 학원을 다니는 것은 이 글에서 말하는 잉여의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 그냥 즐기기 위해서 남는 시간과 자원을 소비한다. 주말에 가족과 같이 캠핑이나 소풍을 가는 것도 유희적 잉여 활동에 속한다고 볼 수가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유희적 잉여는 그냥 즐거움을 위한 잉여다. Just for fun.
  • 창조적 잉여 Creative Surplus. 창조적 잉여는 잉여 시간/자원을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직접적인 업무와 관련되지는 않지만, 자신의 잉여 에너지를 더 창의적인 것에 투자하는 거다. 이노센티브에 등록된 아마추어 전문가들의 활동이나 아마추어 발명가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간혹 이런 창조 잉여자들에게서 대박 사업 아이템이 나오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런데 창조적 잉여는 말처럼 쉽지가 않다. 대박 아이템은 그냥 신기루일 가능성도 많다. 그래서 자신의 잉여의 시간을 창조활동에 무조건 투자하라고 조언하고 싶지는 않다. 조금은 현실성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는 그런 현실성없는 일에 몰두하는 것도 재미있다.
  • 생산적 잉여 Productive Surplus. 생산적 잉여는 창조적 잉여과 구분하기가 좀 애매하다. 애매하다기보다는 내가 제대로 구분해서 설명할 수 있을까 걱정이다. 창조성이 뭔가를 새로운 것을 간헐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생산성은 꾸준히 만들어내는 것이다 정도로 구분하면 될까? 업무와 무관한 모바일 앱을 만드는 아마추어 개발자라던가, 오픈소스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꾸준히 피드백을 제공하는 컨트리뷰터라던가, 목공 등의 기술로 생활필수품을 만들어서 사회에 기부하거나 벼룩시장에 판매하는 사람들이 이 생산적 잉여에 속하는 듯하다. 창조적 잉여가 대박 아이템이라면 생산적 잉여는 중소박 아이템정도랄까? 취미로 만든 제품/서비스를 통해서 그냥 사회에 꾸준히 기여를 하는 것이 생산적 잉여로 보면 될 것같다.

소비적 잉여는 피로 및 스트레스 해소 외에는 결과적으로 남는 것이 없고, 유희적 잉여는 특정 스킬을 배움으로써 자기 만족에 불과하다. 창조적 잉여는 겉으로 보기에는 멋져보이지만 말처럼 쉽지도 않고, 그 결과물이 직접적으로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에 기여하는 바도 커 보이지 않는다. (대박 아이템으로 발전한다면 한방에 기여하겠지만) 그렇지만, 생산적 잉여의 결과물은 대박 아이템이 아닐 뿐이지 우리의 생활에 꾸준히 기여를 한다. 혁신의 측면에서는 생산적 잉여는 점진적 혁신 incremental innovation이고, 생산적 잉여는 파괴적 혁신 disruptive innovation이다. 장기적으로 파괴적 혁신이 맞다. 그러나 파괴적 혁신 이후의 점진적 개선의 과정이 없다면 파괴적 혁신 또한 빛을 바랜다. 또 창조적 잉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창조계급에 목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생산계급에서 더 실용적인 솔루션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또 중요한 코멘트는... 소비적 잉여와 유희적 잉여가 특별한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말했지만, 그런 누적된 소비/유희 과정이 창조와 생산의 밑걸음이 된다.

각자의 특성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전략적으로 소비, 유희, 창조, 생산을 위해서 잉여 시간과 자원을 배분할 필요가 있다. 대략 2 : 3 : 1 : 4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잉여의 시간 중에 일부는 쉬는데 할애를 하고, 일부는 앎/지식을 축적하는데 할당하고, 일부는 대박 아이템을 구상하고, 또 나머지는 현실적인 솔루션을 만들어가면 될 듯하다. 업무에서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이라면 소비에 5할을 할당할 수도 있을 것이고, 사회 기여에 더 큰 의미를 둔다면 생산에 5할 이상을 할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블로깅을 하는 것은 과연 소비인가 유희인가 창조인가 아니면 생산인가? 나 혼자만의 자기만족이라면 그냥 소비와 유희 활동일테고, 누군가 읽고 공감을 한다면 생산 활동일테고, 또 누군가 감명을 받고 생활에 영향을 줬다면 창조 활동이겠지. 블로그는 저의 생각의 배출구이며 수다의 수단이기 때문에 당장은 소비와 유희의 활동이 맞습니다.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의미가 있는 새로운 깨달음/각성의 메시지가 있기를 바라며 이런 헛소리는 계속됩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Share           Pin It

잉여의 사전적 의미는 '쓰고 남은 나머지'이다. 일반적으로 잉여라는 말을 들으면 부정적인 생각부터 난다. 나머지, 이미 욕구가 충족되어서 더 이상 필요가 없는 것. 깍두기, 놀이에 별로 도움이 되지도 못하지만 버리긴 아까워서 그냥 끼워주는 것. 쓰레기, (좀 과장된 듯하지만) 그냥 갖고 있기에는 짐이 되니 그냥 버리는 것. 부족의 시대를 살아오면서 절제의 미득을 내세우는 문화에서는 흘러넘치는 것은 일종의 수치로 생각하기도 한다. 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는 이야기도, 무모한 욕심을 부리지 말고 부족하더라도 만족하며 살아라라는 그런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잉여'가 긍적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냥 '잉여 문화'로 검색하니 '창의적 잉여 문화가 뜬다'라는 기사가 바로 보인다. 남아서 그냥 버리는 것이 잉여였는데, 이제는 문화코드가 되었다. 치열한 삶의 경쟁에서는 프로가 되는 것이 최선이었지만, 삶의 여유를 얻은 이후로는 건전한 아마추어 문화를 동경하기 시작했다. 잉여 그리고 아마추어 앞에는 재미 Just For Fun이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고, 창의 Creative라는 말이 붙기 시작했다. 남는 시간이나 생각, 자원, 노력 등을 생존이 아닌 더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곳에 투자한다는 인식이 깊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잉여가 단순히 개인의 재미, 즉 그냥 새로운 것을 만들어서 혼자 만족하는 그런 단계에서 벗어나야할 때다. 그래서 창의적/창조적 잉여 Creative Surplus (Creaplus)가 아닌, 생산적 잉여 Productive Surplus (Proplus)의 시대를 준비해야 된다고 말하고 싶다. 생산 Production은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의미에서 Creation과 같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생산적이다와 창의적이다의 약간의 뉘앙스의 차이를 인식했으면 한다. 창의적이다는 그저 기존의 방법과 다른 또는 새로운 시각으로 뭔가를 보게 되고, 그걸 만들어내는 것을 뜻한다면, 생산적이다는 굳이 새로운 방법이 아니더라도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의미가 있다. Mass Production이라는 말은 있지만 Mass Creation이라는 말은 없다. (대량과 창의성이 연결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단순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많은 부분에서 그냥 재미를 위한 행위다. 창의의 결과가 특별히 남을 이롭게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생산은 나만을 위한 행위는 아니다. 구체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그것들이 주변에 전파되어 사용되어야 한다. 생산의 이유가 그것이다.

생상적 잉여라고 말을 붙인 이유는 이제는 잉여 문화가 자신의 남는 시간과 자원을 단순히 자신 또는 좁은 이너서클에서의 재미를 얻는 행위를 넘어서, 그런 활동의 결과물이 주변과 이웃, 그리고 세계에 가치 value와 효용 utility을 제공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지난 번에 잉여 네트워크라를 말을 꺼낸 적이 있다. (참고. 사회를 위한 잉여 네트워크 More than Fun) 여기서 잉여네트워크가 단순히 재미를 얻기 위한 동호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회에 기여를 하는 그런 생산적인 그룹을 뜻했다. 물론 생산적인 잉여는 창의적인 잉여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기존의 가치 이상의 새로운 가치를 창의하지 못하면서 단순히 기존의 가치를 재생산하는 그런 잉여는 별 매력이 없다.

지금 잉여 네트워크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미안한 말이지만 구체적인 것은 아직 밝힐 단계는 아니다.) 이 네트워크가 단순히 이너서클에 포함된 우리들의 만족만을 얻기 위한 Just for fun으로 끝나지 않기를 희망한다. 우리의 시간과 자원을 투입했다면 그에 따른 구체적인 결과물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너무 부담을 가지 필요는 없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사회와 세계에 기여해야 한다. 재미 이상의 무엇 More than fun을 추구하는 그런 생산적 잉여 네트워크들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현재는 그리고 미래에는 그런 생산적 잉여 그룹들이 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다.

논의 중인 모임에서도 그저 인맥의 구성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1차적으로는 생각과 아이디어가 글이라는 형태의 정보화가 이뤄졌으면 좋겠고, 그리고 발전 후에는 서비스나 제품 (굳이 팔리는 생산품을 뜻하지는 않는다)의 형태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 이것을 실현할 수 없다고 깨닫는 순간 그 모임과는 이별을 고할 수 밖에 없다. 기대만큼 우려가 크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