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Pin It
그 날 이후로 인문학에 대한 화두는 대한민국 사회를 휩쓸고 있다. 인문학에 대한 긍정적 기대와 기성 세대의 인문학 팔이에 대한 회의가 겹쳐서 여전히 논쟁의 중심에 있다. 어쩌면 '중심에 있다'는 표현은 맞지 않는듯하다. 대한민국에서 공학이나 과학과 비슷하게 인문학도 논의의 중심에 놓인 적이 단 한번도 없다. 단지 조금 더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중심으로 들어온 것처럼 보일 뿐, 여전히 변두리에 머물러 있다. 정치 또는 경제가 아니면 대한민국의 중심에 놓일 수가 없다. 간혹 스포츠가 중심에 놓인다. 그러나 그건 정치의 조작에 따른 왜곡된 현상일 뿐이다.

Canon | Canon PowerShot SD1100 IS | Pattern | 1/13sec | 0.00 EV | 11.6mm | ISO-250 | Off Compulsory | 2010:01:27 02:32:48그날


오랫동안 공학에 발을 담고 있는 나는 여전히 인문학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 정확한 방법을 모를 뿐 뭔가 변화를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힐링이라는 말과 함께 기성세대들의 생명연장을 위한 지나친 인문학 마케팅은 여전히 경계한다.

그런데 인문학이란 무엇일까? 한자로 풀어보면 사람을 뜻하는 인, 글자/문자를 뜻하는 문, 그리고 배움을 뜻하는 학으로 이뤄졌다. 즉 사람과 글과 배움이다. 문자 그대로 사람에 관한 것이고, 글에 관한 것이고, 또 배움에 관한 것이다. 사람 글 배움... 

먼저 문이란 결국 글이다. 즉 글을 적는 능력, 글을 읽는 능력, 글을 해석하는 능력, 글을 응용하는 능력 등으로 볼 수 있다. 더 깊게 들어가면 생각하는 능력이다. 문을 영어로 표현하면 liter(al)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같은데, 조금 의역하면 art로 표현될 것같다. (영어권에서도 liberal art라고 표현했지 않은가?) Art란 흔히 예술이라 표현하지만 기술을 뜻하기도 한다. 즉 예술과 기술은 같은 것이고 이는 모두 사람들이 인위적으로(artificial) 만든, 즉 natural의 반대 개념이다. 결국 문은 사람이 만드는 모든 것이다. 그래서 결국 문은 인에 포함된다.

학의 주체는 결국 사람이다. 배우지 않은/못하는 이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도 있다. 배움이란 사람이 가지는 기본 소양이고 사람을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거다. 같은 결론으로 학도 인에 포함된다고 말하고 싶은 거다. 사람 그 자체가 인문학이고, 사람에 관한 것이 인문학이고, 사람이 만든 모든 것이 인문학이다. 그렇기에 인문학에 대한 이상 과열 현상이 진짜 이상하다.

결국 인문학에서 사람만 남았다. 사람 또는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이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이래야 한다는 많은 주장들이 있지만 그 속에 사람이 없으면 그것은 인문학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내가 인문학에 기대하는 이유도 혹시나 사람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다시 사람의 가치를 되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역으로 인문학에 경계를 하는 이유도 다시 인간의 존엄성보다는 수단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 때문이다. 잘 알려진 많은 인문학 마케터들은 인간이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밖에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여전히 잘 팔린다.)

인문학에 대한 무지 또는 오해가 인문학을 무용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문학에 대한 무지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무지가 맞다. 사람에 대한 존중이 없이 인문학을 배우고 전파한다는 것은 자기 모순이다.

학문적으로는 오래 됐지만 그 효용이 끝났다라고 판단했던 알고리즘이 있다. 물론 일부 분야에서는 좋은 성능을 보여준다고 믿었지만 대부분의 영역에서 다른 더 나은 알고리즘으로 대체됐다고 판단했던 알고리즘이다. 바로 신경망이라 알려진 뉴럴네트워크, 더 정확히 말하면 인위적 뉴럴 네트워크 (Artifical Neural Network, ANN)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인위적으로 사람의 신경망을 은유해서 만든 머신러닝 기법이다. 수식으로 깔끔하게 표현되지 못해서 비판을 받고 또 다른 대체제들보다 더 낫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자연스레 사장되고 있었다. 나도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최근에 딥러닝 Deep Learning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뉴럴네트워크를 처음 제안했던 사람들의 꾸준한 연구와 그리고 구글이나 페이스북같이 충분한 컴퓨팅 파워와 데이터를 확보한 거대 인터넷 기업들이 적절한 사용처를 찾아내면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딥마인드라는 회사가 구글에 인수되면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기술적으로 4세대 뉴럴네트워크인 Restricted Boltzmann Machine이 딥러닝이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어차피 대부분 관심이 없을테니 그냥 아는 척 한 거다.

어쨌든 딥러닝 또는 뉴럴네트워크의 성공 이면에는 결국 사람에 대한 이해를 바탕에 두고 있다. 사람의 신경망이 어떻게 작동할까?를 고민한 끝에 나온 모사가 뉴럴넷이기 때문이다. 뉴럴넷같은 소프트웨어/알고리즘 뿐만 아니라, 많은 로봇공학이 사람이나 동식물들의 움직임 또는 기능을 관찰해서 얻은 통찰에 바탕을 두고 있다. 물론 기계/로봇으로 동물을 그대로 모사할 수 없기 때문에 유기체와 다른 형태로 구현될 수 밖에 없다. 어쨌든 유기체의 기능을 이해함으로써 새로운 것 또는 더 나은 것을 얻고 있다.

인문학이 던지는 화두는 사람에 대한 본질에 대한 이해이고, 딥러닝이 던지는 것은 사람의 기능에 대한 이해다. 사람의 본질과 기능.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 어제 적은 '성공하는 서비스'에서 밝힌 AC도 결국 사람이다.

==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unexperienced   


댓글을 달아 주세요

Share           Pin It

지난 밤에 에어컨을 틀면 춥고 꺼면 후덥지근해서 그냥 밖에 나가서 산책을 했습니다. 한참 걷다가 문득 저녁에 온 메일이 생각났습니다. 최근에 그분을 만나서 직접 질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당신께서 생각하는 다음의 꿈은 뭔가요?'라는 질문을 하고 싶다고 줄곧 생각하더 차였습니다. CEO가 된지도 몇 년 지났고 또 그런 종류의 메일도 이미 여러 번 보냈기에 지금정도는 당신께서 생각하는 그래서 우리가 함께 꾸고 이룰 다음의 꿈을 얘기할 때도 된 것같아서 내심 기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래서 '다음의 꿈이 뭐냐?'라는 추상적인 질문보다는 더 현실적인 질문으로 바꿨습니다. 일이 잘 되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결정의 순간이 왔을 때, 다음에서 꼭 남겨야할 (또는 바로 접을) 서비스 3가지를 고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를 물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산책하면서 저도 어떤 서비스를 남길까 곰곰히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돈을 벌고 있는 캐시카우 검색? 아니면 사용자들이 많이 찾는 미디어다음? 아니면 다음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카페나 메일? 또는 미래를 위한 포석인 모바일? 등의 서비스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리석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습니다.

결정의 순간이 왔을 때 필히 남겨야할 3가지는 위에서 나열한 그런 서비스들이 아니라, 사람, 꿈/비전, 그리고 가치/철학입니다. 현재의 서비스들이 아닌 그것들을 가능케했던 사람, 꿈, 그리고 가치를 지켜야 합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가치(관)/철학은 다음이 이제껏 걸어온 것이 집약된 다음의 과거입니다. 사람은 지금의 다음의 모습을 보여주는 다음의 현재입니다. 그리고 꿈은 다음이 앞으로 나가야할 다음의 미래입니다. 이런 가치, 사람, 꿈이 아닌 유물/서비스에 집착을 한다면 다음의 과거도, 다음의 현재도, 다음의 미래도 없습니다.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unexperienced

댓글을 달아 주세요

Share           Pin It

HBR에 올라온 기사를 정리 및 첨언한 것입니다. John Coleman이 적은 Six components of a great corporate culture라는 글에서, 제목과 같이 위대한 기업문화를 만드는 6가지 요소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글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겟습니다. (일부 의역 및 개인 생각/표현이 첨가됨)

모든 기업마다 고유의 기업 문화가 있습니다. 많은 경영학책에 보면 유명한 기업들의 조직 및 문화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들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그것들을 벤치마킹해서 자신들에게 접목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흉내는 낼 수 있으나 완전히 이식하는데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비용만 들어가고 전보다 더 나빠지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이것은 기업마다 가지고 있는 케미스트리라고 표현되는 고유함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기업문화에 공통적으로 작용하는 공통점이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다음의 6가지를 설명합니다.

  1. Vision. 가장 먼저 좋은 기업은 그 기업이 나아갈 방향이나 이상에 대한 명확한 비전 Vision이 있습니다. 간혹 미션 mission이란 말과 혼용됩니다. 간단하지만 명확한 미션은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를 대변해주고 목표를 설정해줍니다. CEO에서부터 말단 직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직원들에게 공유된 숭고한 비전은 스스로에게 열정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런 열정은 다시 그 기업의 고객이나 관계사, 및 주주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글에서 예시된 '알츠하이머가 없는 세상'이라는 비전을 가진 알츠하이머 연합이나 '빈곤없는 세상'이라는 비전을 가진 옥스팜의 예가 나옵니다. 이와 같이 비전 또는 미션은 짧지만 핵심을 파고드는 비전선언문/미션선언문 statement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그런 비전/미션 아래 조직의 문화가 만들어집니다.
  2. Value. 비전이 기업의 목적을 명확히 해준다면 가치 Value는 그 비전을 이룩하기 위한 행동 및 마음가짐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합니다.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 또는 기업이 고객과 세상에 제공해주는 기여에 대한 공감이 없이 온전한 기업 문화가 자리잡기 어렵습니다. 구글의 'Don't be evil'을 글에서 예로 들고 있고, 'Ten things we know to be true'는 더 구체적인 구글의 value입니다. 많은 가치들이 있지만 진정성 authenticity가 제일이라고 합니다.
  3. Practice. 많은 기업들이 거창한 미션이나 가치를 내세우지만 그런 비전에 맞게 행동하거나 가치를 제공해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실천 Practice가 없기 때문입니다. '안전제일'이라는 문구 아래서 일어나는 수많은 안전사고들이나 '고개제일주의'라는 말이 무색한 고객서비스는 좋은 문구가 없어서가 아니라 실천이 없어서입니다. 모든 기업의 비전과 가치는 명확한 리뷰기준과 promotion 정책들로 뒷받침되어, 매일의 행동원칙이 되어야 합니다.
  4. People. 다음으로 기업의 비전과 가치를 실천할 사람 People들이 필요합니다. 기업의 비전을 공감하고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를 제공하는데 기꺼이 동참하려는 직원들이 있을 때만이 건전한 기업문화가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직원을 채용할 때부터 단순히 지원자의 능력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직원의 태도와 신념이 기업이 추구하는 기업문화와 맞는지를 함께 평가한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기업문화와 맞는 직원은 7%나 낮은 연봉도 받아들이고, 그런 팀은 턴오버 비율이 30%가 낮다고 합니다. 기업문화에 공감하는 직원이 그런 기업문화를 더욱더 공고히 합니다.
  5. Narrative. 기업은 나름의 스토리/역사 Narrative가 있습니다. 창업부터 현재까지 기업이 쌓아왔던 성취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줌으로써 그 기업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고 그런 역사를 계승발전시키겠다는 사명감을 갖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역사관을 만들어서 내외부인들에게 공개합니다. 무엇보다도 구전되는 창업신화만한 내러티브는 없을 듯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창업할 때의 이야기를 술자리 안주로 삼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살아있는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키워줘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패배감을 떨쳐버릴 꾸준한 성공이 필요한 듯합니다.
  6. Place. 마지막으로 기업문화를 펼칠 장소 Place입니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은 단순히 비용측면에서 보면 어리석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런 공간에서 우연히 마주쳐서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창발합니다. 창의력의 창발성은 다양함이 부딪혀야 발생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만날 수 있어야 하고, 그런 공간이 필요합니다. 픽사에는 화장실이 캠퍼스 정중앙에만 존재한다는 얘기는 이런 의미에서 시사점이 큽니다. (캠퍼스가 커져서 현재는 아니라는 말이 있음) 사람들 사이의 공감을 나눌 공간이 없으면 문화가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위의 HBR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기업은 어떻습니까? 건전한 기업문화라는 것이 있습니까? 다음은 엄청난 문화가 있는 듯합니다. 그 연봉을 받으면서 꾸준히 만족하는 직원들을 보면은...

(2013.05.08 작성 / 2013.05.16 공개)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unexperienced

댓글을 달아 주세요

존재의 이유

Gos&Op 2012.05.05 18:49 |
Share           Pin It

The Proof of Existence. 임정욱님의 다음 제주 오피스의 강연에 연관된 세번째 글입니다. 특별한 이슈가 없으면 마지막 관련글이 될 것같습니다. 오늘은 기업문화보다는 기업을 구성하는 사람 그리고 그가 만든 제품/서비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정욱님의 발표 중에 -- 그리고 애플과 스티브 잡스의 생애에서 꼭 등장하는 에피스드 중 하나인 -- 스티브 잡스가 1997년에 애플에 복귀해서 단행한 제품의 라인업 정리에 대한 일화가 있습니다. 애플과 그들의 제품이 시장에서 영향력을 상실해가고 있지만, 여전히 경쟁력이 없는 수많은 제품들을 생산/판매하고 있었습니다. 데스크탑만 하더라도 10여가지 모델이 생산되고 있었고, 그 외에도 프린트사업이나 PDA 뉴튼 사업 등도 있었습니다. (뉴튼은 실패한 사업으로 알려졌지만, 애플의 규모 및 기대치에 맞지 않았을 뿐이지 그 자체로는 실패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초기 제품의 결함음ㅠㅠ) 잡스가 복귀 후에 경여진들을 모아놓고 발표를 하면서 우리가 지금 많은 제품들을 생산하고 있는데, 가족이나 친구가 컴퓨터를 하나 추천해 달라고 부탁하면 (제품의 종류가 너무 많아서) 우리 제품 중에서 어떤 제품을 추천해줘야할지 결정할 수가 없다고 말하면서, 양산되고 있는 제품을 모두 접고 (PC의 경우) 데스크탑과 랩탑을 기준으로 소비자제품과 프로페셔널제품 두종류씩 총 4개의 라인업으로 정리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지금의 제품명으로는 데스크탑은 iMac이라는 소비자제품과 MacPro라는 프로제품을 남기고, 랩탑의 경우 MBP와 맥북이라는 프로/소비자제품으로 정리했습니다. 그외에도 뉴튼이나 프린터 사업 등도 함께 접었습니다.

그리고 정욱님의 경우에도 라이코스에 -- 이건 강연 이후의 담소 중에 나온 얘기같음. 다른 강연에서도 밝혔던 내용 -- 처음 갔을 때 불필요한 서비스들을 접고 많은 사람들을 내보내는 뼈아픈 구조조정을 단행했다고 합니다. 그때 구조조정/다운사이징의 어려움도 다시 밝히셨지만, 그 이후에도 경쟁력을 거의/완전히 상실한 제품/서비스를 그만 두기가 너무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유는 그 서비스의 담당자들이 절대로 해당 서비스를 죽이면 안 된다고 강경하게 버티고 있고, 조금만 개선을 하면 수익을 내는 서비스로 탈바꿈할 수 있다고 끊질기게 설득을 한다는 것입니다. 해당 서비스를 접으면 마치 자신의 존재 이유를 상실하는 듯이...

실제 많은 레이아웃을 단행되면서 제품/서비스 라인업과 함께 해당 제품/서비스를 담당하던 이들이 함께 퇴사를 권고받아왔던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 하에서 자신의 제품/서비스를 끝까지 지켜내는 것이 회사에서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인식되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물아일체 (내가 만든 제품/서비스와 나는 하나다)의 결의가 제품/서비스에 대한 오너십 ownership을 키워주는데는 좋은 역할을 하지만, 역으로 그 서비스를 종료시킬 때는 강력한 반발을 직면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과연 '제품이 사라지면 나도 사라진다'에 대한 생각을 언제까지 가져야할까요? (앞서 말했지만 경험상 그래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고, 인수합병 시에도 고용승계 등의 조건을 내거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겠지만...) 자신이 만들고/담당하고 있는 제품/서비스가 과연 그들의 회사 내에서의 존재이유일까요? 왜 제품/서비스에 의존해서 살아가야만 할까요? 회사에서 자신의 존재이유를 제품/서비스에 둘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둬야 합니다. 제품/서비스 라인업이 사라지더라도 여전히 필수불가결한 irreplaceable로 남을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능력이 있다면 벌써 자신만의 스타트업을 시작했거나 경영진들이 좋은 조건으로 계속 잡아두려고 했을 법도 하지만...

회사에서의 자기 자신, 즉 '사람'이 존재이유임을 증명해준 케이스도 1997년의 애플에 있습니다. 당시 라인업을 정리하면서 잡스가 강조했던 것은 고객들을 유혹하는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외부의 유명 디자이너들을 섭외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렸습니다. 그러나 결국 잡스가 선택한 인물은 이미 애플의 디자인팀을 이끌던 조나단 아이브 Jonathan Ive였습니다. 아이브가 직접 잡스를 찾아가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보임으로써 그는 여전히 애플의 영혼이 투사된 제품을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죠니는 천재잖아?'라고 반문한다면 저는 더 이상의 답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내'가 존재이유가 되어야지, 내가 만든 '무엇'이 나의 존재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그 무엇은 그저 나의 일부가 투영된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간혹 스타트업들이 적절한 시점에 회사 또는 기술을 다른 기업을 넘겨주지 못하고 결국 낙마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물론 그 반대로 끝까지 지켜서 더 좋은 기업으로 성장시킨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페이스북이 그런 사례입니다. 구글이나 MS의 끊질긴 구애에도 여전히 마크 저크버그는 새로운 자신만의 성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트위터가 뜨기 전에 Digg의 기세가 무서웠습니다. 당시에 구글이 Digg를 인수하려고 끊임없이 구애를 펼쳤는데, 결국 좌절했습니다. 그 후에 트위터 등의 실시간SNS의 주가가 높아지면서 Digg의 쇄락이 시작되었습니다. (최근에는 페이스북의 Apps 인터페이스 때문에 다시 재기하고 있다고 합니다.) 디그의 창업자들도 저크버그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겁니다. 더 성장할 수 있는 제품을 그냥 대기업에 넘길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앞서 말했듯이 내가 만든 제품 또는 창업한 회사는 나와 운명을 같이 해야된다는 그런 인식 때문에 (어쩌면 가격이 맞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지만) 디그를 구글에 넘기지 못하지 않았나라고 추측해봅니다.

'제품/서비스 = 나'라는 등식에서 조금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나의 존재이유는 나이지 내가 만든 그 무엇이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이 사회에서도 내가 만든 그 무엇으로 내가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써의 '나'로 평가를 받는 풍토도 갖춰져야 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회사에서 존재의 이유가 당신입니까? 결국 자신이 자신의 존재 이유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대체불가, 즉 유니크 unique해지는 수 밖에 없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문화가 서비스다.

Gos&Op 2012.04.27 11:32 |
Share           Pin It

주의
당신이 이 글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할 반응은 '뭐야 이거?'일거다라고 추측한다. 논리로 글을 읽지 않기를 바란다.

사람 
서비스는 사람이다. 사람으로 향하는 것이 서비스고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서비스다. 언제부턴가 기술 중심의 제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 제품은 그저 제품일뿐 서비스가 아니다. (편의상 글에서 제품 또는 서비스는 인터넷 제품/서비스를 뜻한다.) 서비스한 사람의 경험에 바탕을 둔다. 그저 제품을 만들어 놓으면 사람들이 그걸 잘 활용하는 걸로 착각한다. 그렇게 나온 많은 제품들이 사람들의 주목도 받지 못하고 사라졌다. 제품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서 제품이 나온다. 그렇게 경험에서 나온 제품이 서비스다. 사람을 향한 제품이 사람을 위한 서비스가 되고, 사람으로부터 나온 제품이 사람을 위한 서비스가 된다. 경험이란 한번의 실행에서 얻는 것이 아니다. 꾸준히 누적된 일관된 실행이 패턴이 되고, 경험이 된다. 그런 경험이 시대에 전해지고 세대에 전파되면 문화가 된다.

문화
다음이라는 회사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있다. 이 사람들은 정말 고집스럽게도 카페와 메일을 사랑한다는 거다. 벌써 성장의 모멘텀과 변화의 시기를 놓쳐버린 그걸 끝내 손에서 놓지 않는 모습을 보며 기대가 절망으로 바뀐 순간이다. 카페라는 것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이 오프라인에서 편하게 모여서 담소를 나누는 공간에서 비롯되었다. 메일이라는 것도 형태가 이메일이나 웹메일로 바뀐 것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으나, 그보다는 사람들 간의 소통의 경험이 새로운 수단으로 변화된 거다. 아고라라는 토론의 장도 결국은 광장이나 시장과 같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 그리고 그 장소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모습이 제품이 된 거다. 카페, 한메일, 아고라 등의 나름 성공했던 모든 제품들은 사람의 경험이 새로운 형태로 바뀐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다음
언제부턴가 다음에서 새로운 제품 또는 서비스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에 의해서 성공한 제품이 벤치마킹이라는 이름으로 카피캣이 되는 경우는 많았지만, 새롭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왜 새로운 서비스가 나오지 못하는가?에 대한 힌트를 얻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제품 (또는 회사)을 바라볼 때 기술중심인가? 아니면 사람중심인가?를 묻곤한다. 단언컨대 다음은 기술중심의 회사는 아니다. 기술은 그저 거들뿐... 그렇다고 사람중심의 회사인가? 그럴뻔은 했었던 것같다. 가끔 사람들 사이에 '다음은 뭘 하는 회사지?'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검색에 종사하고 있지만, 다음은 그냥 검색도 하는 미디어회사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과연 다음이 미디어 회사인가?라고 직설적으로 묻는다면 또 망설여진다. 그런데 어제 대화 (거의 듣는 수준이었지만) 중에 다음의 시작이 문화였다는 얘기에 나름 힌트를 얻었다.

시작과 끝
다음이 초기에 인터넷 갤러리를 시작했다. 오프라인의 갤러리라는 경험을 인터넷의 서비스로 만들었다. 그런 서비스를 통해서 사람들은 또 다른 경험을 했다. 오프라인에서의 친목모임이라는 경험을 통해서 카페를 만들 수 있었던 것같다. 그와 같은 경험들이 한메일도 만들었고, 아고라도 만들었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다음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인터넷 전반에서 같은 현상이 발생했다. 마을 공동체에서의 품앗이 전통이 서로 묻고답하고 하는 지식iN이 되었고, 굳건한 단일민족이니 친족중심의 문화가 1촌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되었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이후에도 카카오톡이니 몇명 성공한 제품들이 여전히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 이후가 문제다. 이제는 더 이상 욹어먹을 문화적 토양을 상실한 느낌이다.

핀터레스트
처음 이 글을 적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핀터레스트 Pinterest'때문이다. 큐레이션이라는 개념이 전혀 생소한 것이 아니다. 핀터레스트 이전에도 대한민국에 비슷한 제품이 나왔어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어째서 미국에서 핀터레스트가 발전할 수 있었을까? 궁금했다. 약 1년반정도의 미국 생활에서 나름 힌트를 얻었다. 대부분의 공공건물 입구에는 게시판이 놓여있다. 대학/연구소의 소식을 알리는 경우도 있고, 축하메시지를 알리는 경우도 있고, 개인적으로 파티를 알리는 경우도 있고, 벼룩시장이나 구인구직을 알리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게시판이 핀터레스트라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한국의 대학에도 다양한 게시판들이 있었는데, 그걸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던 것같다. 단순히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당국의 일방적 통보의 장으로 활용되었지 속의 사람들끼리의 친목을 위한 공간은 아니었던 것같다. 가끔 대자보는 붙지만, 그것은 당국에 대한 저항정신의 표현일뿐...

즐거움
언제부턴가 우리는 즐거움을 잃었다. 다음이라는 곳이 그냥 치열한 삶의 전쟁터가 되었다. 그렇게 문화의 토양이 잠식당했다. 그 이후부터 새로운 서비스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 문화는 전쟁의 산물이 아니라, 유희의 산물이다. 즐거움이 없는 곳에서 새로운 문화가 나올 수 없고, 빈약한 문화적 토양에서는 문화를 누림으로써 얻는 경험이 없고, 그렇기에 경험이 서비스가 되지 못한다. 그냥 사람들을 가정하고 제품만 찍어낼 뿐이다. 그런데 그런 제품들은 사람들이 외면한다. 다음을 떠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속으로는 박봉이니 승진의 기회가 없다느니 등의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명분은 '재미가 없다'라는 거다. 재미는 태생적으로 일의 결과물이 아니다. 어쩌면 결과물만을 바라는 사람들의 시각에 문제가 있다. 

결실
재미는 그냥 결실이다.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부대낌을 통해서 조금씩 쌓여갔던 삶의 패턴들. 그 일상들이 모여서 하나의 문화가 된다. 다양한 패턴들이 다양한 문화를 이룬다. 그런 인고를 통해서 얻어진 문화. 그걸 누리면서 만들어낸 결실이 재미다. 그런 재미가 사라졌다고 한다. 도전을 원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도전은 모든 사람들이 공통된 욕구가 아니다. 그냥 새로운 문화를 경험해보고 싶다는 것이상의 의미가 없다. 더이상 새로운 문화적 충격을 줄 수 없는 곳에서 새로운 재미를 기대하기가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떠난다. 문화의 존재가 새로운 서비스라는 결실을 만들듯이, 문화의 부재가 사람을 떠나게 만든다.

이식
문화의 부재는 어쩌면 조직의 경화에서 온건지도 모르겠다. 부드러움을 상실한 조직은 새로운 문화를 만들지 못한다. 다양함을 잃은 조직이 새로움을 창발시킬 수 없다. 입에 자유가 없는 인간에게서 몸의 자유를 기대할 수도 없다. 그렇게 조직이 굳어지고 사람은 그 조직에 적응한다. 적응하면 그냥 만족하고 그렇지 못하면 처음에는 욕도 해보지만 결국 사람들의 눈치를 보다가 떠난다. 그렇게 또 하나의 조직의 안전이 지켜진다. 이렇게 경화된 조직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공신들부터... 그러나 산에서 거목을 옮겨심는 경우는 없다. 어린 묘목을 옮겨심는다. 어린 묘목을 심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가꿔나가야지 새로운 푸른 산을 만들 수 있다. 잘 가꿔진 거목은 문화재가 되고, 그렇지 못한 거목은 그냥 뗄감이 될 뿐이다. 푸르고 푸른 우리의 강산은 거목이 아닌 어린 묘목에 달려있다.

희망
그렇기에 새로운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린 묘목들에게 기대를 해야 한다. 그들에게 역사를 알려주고 문화의 가능성을 심어줘야 한다. 그런데 교육을 통해서는 문화가 만들어질 수 없다. (그래서 조만간 교육의 시대는 끝났다라는 글을 적을 예정이다. 아님 말고) 어린 세대에게서 새로운 희망을 기대한다. 그들이 새로운 문화를 만들 수만 있다면 다음이라는 회사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도 희망이 있다. 지금은 희망의 씨앗을 뿌릴 때... 중세의 암흑기 이후에 르네상스의 시기가 도래했다. 해뜨기 직전의 새벽이 가장 어둡다. 대설과 한파 이후에 봄이 찾아온다. 지금은 분명 대한민국 인터넷의 중흥기는 아니다. 그저 오래 전 유물을 그냥 사용만 하고 있을 뿐, 미래를 위한 새로운 유물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희망을 노래한다.

무논리
참 글을 길게 적었지만 논리도 없고 핵심도 없다. 이런 글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는데... 어제 밤에 글을 적다가 지웠던 이유가 있었다. 말이 되든 그렇지 않든 간에 하고 싶었던 말은 서비스는 문화의 결실이고, 경험의 결심이고, 사람의 결실이다라는 거다. 기술은 그 다음이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Share           Pin It
지금 <이노베이터 DNA>를 계속 읽고 있습니다. 책의 전반부에는 혁신가들의 특성 DNA와 발견스킬을 익히는 방법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다면, 후반부에는 혁신적인 조직/기업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책의 후반부에 소개된 혁신적인 기업은 혁신적인 사람 People들이 존재하고, 혁신을 장려하는 프로세스 Process가 있고, 그런 혁신에 대한 척할 Philosophy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2012:02:22 16:47:07

혁신기업의 3P (사람 프로세스 철학) 프레임워크


 사람 People
 혁신 기업에는 발견능력이 탁월하고 주저함 없이 실험을 해보고 여러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네트워킹을 잘하는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특히 창업주가 그런 발견능력과 추진력이 좋은 경우가 많습니다. 기업의 창업주나 리더가 혁신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능력과 활동을 장려하게 됩니다. 그러면 주변에도 혁신능력 또는 발견능력이 큰 사람들이 모이고 도전에 주저함이 없어집니다. 기업을 다양하게 설명할 수 있겠지만, 결국에는 기업도 사람들의 군집입니다. 혁신적인 제품/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기업이 혁신기업이 아니라, 그런 제품을 만들 수 있는 혁신적인 인재들이 모인 기업이 혁신 기업입니다. 그런 인재를 많이 모으고 그들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장려하는 기업이 혁신기업입니다.

 프로세스 Process
 혁신적인 인재가 모여있다고 해서 그런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기회를 주지 못한다면 혁신적인 기업이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많은 똑똑한 사람들을 보지만 큰 뜻을 가지고 입사한 회사에서 제 뜻을 펴지 못하고 외롭게 밀려나거나 또는 그런 회사를 박차고 나오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이는 그 회사에서 그런 혁신적인 인재를 제대로 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즉, 혁신적인 프로세스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창의력이 풍부한 사람들이 체계적으로 질문하고, 관찰하고,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또 실험하는 것을 장려하고 첵계화시켜놓은 기업, 즉 그런 혁신프로세스를 가진 기업이라면 미래에도 계속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샘솟고 혁신적인 제품/서비스가 끊임없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항상 'why?' 'why not?' 'what if?' 등의 의문을 던질 수 있는 풍토가 있고, 그런 의문에 대한 적절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체계화시켜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철학 Philosophy
 혁신 기업의 발견프로세스는 직원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험해보도록 용기를 주는 4대 철학을 중심으로 운영되다고 합니다. 바로 1. 혁신은 모든 사람들이 해야하는 일이다. 2. 파괴적 혁신은 혁신 포트폴리오 구성요소 중 하나이다. 3. 작지만 여러 혁신 프로젝트 팀을 적절한 규모로 구성하여 활용한다. 4. 혁신을 추구하면서 스마트한 위험 감수를 한다. 이상의 4가지 철학을 바탕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제품/서비스의 연구개발이 이뤄져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철학은 단지 연구개발 부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사에 이런 철학이 공유되어서 누구든지 새로운/다른 생각에 빠져들 수 있고, 그것들을 팀/회사와 공유하고, 또 새로운 제폼/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책에서 소개한 혁신기업의 DNA가 사람, 프로세스, 철학이 맞다면 결국 '혁신도 문화다'라는 말이 성립하는 것같습니다. 혁신은 혁신적인 사람이 있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단지 혁신적인 프로세스를 갖췄다고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업 사규에 혁신적인 철학/비전을 세겨놓는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상의 창의적인 사람들이 바른 철학을 공유하며 그것의 바탕 위에서 체계적인 혁신 프로세스를 거치는 기업이 바로 혁신의 중심에 설 수 있는 것같습니다. 사람 프로세스 철학이라는 세가지 축에서 어느 하나만 월등히 뛰어나거나 아니면 어느 하나가 월등이 뒤떨어진다면 그런 기업/조직이 혁신문화를 가졌다라고 말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문화를 만든다는 것이 말로는 쉽지만... 노력하면 어떻게 잘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혁신문화를 가진 기업이 혁신기업입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