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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4.21 현실적 고민과 비현실적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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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현실적 고민'이라는 글을 적은 이후에 주위의 반응은 '너 퇴사할려고 하니?'였고, 또 얼마전에 적은 '미리 적어보는 사직의 변'을 올린 이후에도 비슷한 우려 또는 반응이 있었습니다. 에둘러 말해서 둘다 개인의 사정과 무관하지도 않겠지만, 둘다 개인의 신변에 대한 직접적 관련성은 없는 글이었습니다. 특히 '현실적 고민'이 좀더 일반론적인 글을 적을려고 시작했는데, 개인의 생각과 감정이 글에 표현되다보니 전적으로 제 개인의 문제로 비춰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사직의 변'에서는 제목에서와 같이 그냥 '미리 적어보는', 즉, 사람들이 미리 유서를 적어보듯이 내가 사직의 변을 적으면 어떨까?라는 상상에서 시작했던 글인데 주변의 반응은 '제 좀 위험해. 그러니 미리부터 잘 관찰해봐.'정도였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참 실망스럽습니다. 제가 평소에 주변에 주는 시그널이 그 정도밖에 안 되구나라는 생각에 실망했고, 주변분들도 저를 그정도밖에 평소에 생각하고 있지 않구나라는 생각에 또 그들도 실망스러웠습니다.

늘 관심이 있어서 관련된 책들을 많이 읽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게임이론'입니다. 직접적으로 죄수의 딜레마나 공유지의 비극, 또는 내쉬균형 등과 같은 게임이론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들도 관심이 있지만, 게임이론에서 파생된 여러 사회현상에 더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경제학 문제에서의 게임이론이라던가 개인의 심리와 행동에 관한 여러 가지 실험과 결과들도 늘 관심이 있습니다. 협력게임이니 비협력게임, 완벽한 합리서 또는 역으로 완벽한 무지 등의 여러 가지 사안들은 늘 관심의 대상입니다. 특히 합리성과 비협력게임에 대한 부분을 외부에서 보기에는 참 어리석어 보이면서도 내가 그 내부에 속하면 어떻게 행동할까?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서론에서 '현실적 고민'이나 '사직의 변' 글을 언급한 것도 바로 합리성과 협력/비협력게임 때문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저나 주변의 현실적 고민으로 '젊었을 때 조금이라도 더 일해서 돈을 더 많이 모아둬야하지 않을까? 그런데 나는 지금 여기에서 이정도 대우에 만족해야하고, 또 제주라는 세상과 동떨어진 공간에서 안주하고 있어야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난 주에 '편해서 삼성전자에서 네이버로 옮겼다'라는 말에 공감을 가는 분들도 있지만, 반대로 돈을 더 벌기 위해서 'XX에서 삼성으로 옮겼다'라는 말에 공감을 표하는 분들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연봉'이라는 일차원 축에서만 생각한다면 저는 지금 전혀 합리적이지 못합니다. 아직은 저에 대한 수요가 있고, 더 좋은 대우를 약속할 것같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우를 해줄 거냐고 물어본 적이 없어서, 전적으로 제 가정에 따르면) 곳들도 많이/조금 있습니다. 제가 (충분히) 합리적이고 1차원적이었다면 저는 고민할 필요도 이유도 없습니다. 가능한 빨리 액션을 취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옵티멀 솔루션입니다. 이후에 더 좋은 오퍼가 오면 또 다시 움직이면 됍니다. 그런데 돈 이외의 다른 축 (삶의 질이나 인간관계 등)을 생각하면 도시에서의 삶과 제주에서의 삶 사이에 갈등이 옵니다. 1차원 축에서 내 점이 조금만 더 0에서 멀었다면 그냥 아주 만족해하면서 행복해할 건데라고 생각할 겁니다. 글을 시작하면서 여러 차원에서 내 포지션이 어디인가?를 적을 예정이 아니었습니다.

주중에 잠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제주를 벗어나면 조금 더 좋은 대우와 인정을 받지 않을까? 그리고 부모님도 더 쉽게 자주 만나뵈러 갈 수 있지 않을까? (이건 오래 전부터 생각하던거지만...) 그런데 내가 굳이 제주에 더 오래 머무를 이유가 있을까? 여기에 대한 답으로 '협력게임'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제주에 더 머무른다면 1차원적인 욕망에 대해서는 분명 손해이고, 완전 머저리같은 비합리적인 바보일 겁니다. 그런데 내가 제주에 머무르기 때문에 전체 sum은 더 커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1차원 욕망을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제 주변의 분들이 제가 제주에 있음으로써 얻는 다른 혜택들이 있을 것같다는 생각말입니다. 제가 잃는 손해와 주변에서 얻는 혜택을 더 해보면 혜택이 더 커질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협력게임에서 합리적인 개인이라면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 같이 가장 좋은 곳으로 옮기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특정 문제가 개인에게는 비협력게임으로 보이지만, 사회 전체로 확대해보면 협력게임으로 바뀌게 됩니다. 나의 만족 utility와 전체의 만족 사이의 고민으로 바뀝니다.

협력게임에서는 개인이 손해를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전체가 이득을 보게 됩니다. 그런 전체 이들이 언젠가는 다시 개인으로 돌아가게 되고, 그러면 개인이 입은 초기 손해가 상쇄되어야 합니다. 지금 제가 여러 면에서 손해를 보는 것이 정말로 전체에게 이득을 주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런 이득이 긍정적 피드백루프 positive feedback를 만들어서 제게로 다시 돌아올까요? 어찌 되었건 서론의 현실적 고민과 사직의 변에 대한 주변의 반응에 대한 지금 당장의 제 답변은 '제주에 당분간 더 있는다'입니다. 제 삶을 1차원으로 보기를 원치 않습니다. 1차원에서는 손해지만 2차원, 3차원 이상에서는 분명 이득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 전체를 봤을 때도 분명 이득을 보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의 답은 너무 간단하게 나옵니다. 물론 환경변수가 어떻게 바뀔지는...

개인의 1차원에서는 모든 문제는 현실적입니다. 그러나 더 옳은 문제의 해법을 얻기 위해서는 차원을 높이고, 주변과 사회 전체로 시야를 돌려야 합니다. 전체를 고려한 해답은 합리적인 해답입니다. 그런데, 전체에게는 합리적인 해답이 개인에게는 대부분의 경우 비합리적이고 비현실적인 해답이라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자신의 문제를 풀 때,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답을 얻었다면 더 큰 차원에서는 그것은 어쩌면 바른 답이 아닐 가능성도 높습니다. 다시 더 생각해보고 같은 답을 얻었다면 그때는 바로 실행할 때입니다. 그 전에는 계속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합니다.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 절대 아닙니다. 개인의 협실적인 답을 사회의 합리적인 답이라고 우기는 그런 합리화의 과정보다는 처음부터 더 큰 차원에서 문제를 다시 풀어보는 것이 더 생산적입니다. 아, 비협력게임에서 개인에게 합리적인 답은 문제의 최적해 optimal solution이 아니라 내쉬균형에 있는 한 점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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