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과 면역력

Gos&Op 2013.02.27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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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9일, 마의 41화에서는 두창 (천연두)에 걸린 숙휘공주에 대한 이야기가 전파를 탔다. 급속히 전염되는 치사률 높은 두창은 좀처럼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첫 환자의 병증이 호전되는 것에서 힌트를 얻어서 일단 가장 시급한 발열부터 잡기로 한다. 발열을 잡아야 된다는 얘기를 하는 중에 민초들은 오랜 기근으로 허약해져서 독한 약을 감당할 수가 없다고 말하고, 숙휘공주는 오랫동안 궁궐이라는 안전한 보호막 속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다양한 병에 대한 면역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현재 병증이 호전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온실 안 화초라는 표현이 있듯이 항상 격리되어 생활하다보면 일반인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에도 쉽게 상처를 받게 된다. 흙 위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더 건강하고, 모진 풍파를 맞은 나무들이 더 오래 살아남는다. 숙휘공주는 안전한 궁궐이 오히려 화가 된 경우다.

이 에피스도를 보면서 가장 먼저 갈라파고스가 생각났다. 흔히 일본을 IT기술의 갈라파고스라고 말하곤 했고, 최근에는 대한민국이 갈라파고스가 되어간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다. 갈라파고스는 잘 알려졌듯이 남아메리카에 있는 외딴 섬으로써 다윈이 이곳에 격리되어 독립적으로 진화한 동식물들을 관찰한 이후에 <종의 기원>을 집필하고 진화론을 완성시킬 수가 있었다. 그렇게 외부와 격리된 곳에서 독자적인 진화가 발생했듯이, IT기술도 외부의 기술이나 트렌드가 유입되지 않고 독자적인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외부/세계와 전혀 다른 환경이 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갈라파고스에 비유한다. 일본의 독보적인 첨단기술이 시간이 흐른 후에 오히려 독이 된 것을 잘 알고 있다. NTT 도코모로 대표되는 독자적인 모바일환경이 현재의 스마트폰환경과 격리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대한민국에서는 조금 다른 이유 -- 잘못된 규제 -- 로 갈라파고스가 되어간다고 많이 경고한다.

갈라파고스는 일종의 순수혈통주의와도 닮았다. 백인우월주의라든가 게르만민족주의같은 것이 예다. 유럽에서는 파쇼나 나치가 순혈주의를 내세워서 홀로코스트로 대변되는 비극을 만들어냈고, 미국에서는 KKK로 알려진 인종청소, 남북전쟁 등의 어두운 역사가 있다. 일본의 망상적인 천황주의도 아시아 근대사에 대못을 박은 경우다. 대한민국의 역사에서도 순혈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진골성골로 알려진 신라의 골품제도라든가 특정 성씨에 의해서 통치가 대물림되는 왕족도 일종의 순혈주의이고, 또 사농공상으로 구분되는 양천의 구분도 일종의 순혈주의의 형태다. 인도의 카스트를 굳이 예로 들 필요가 없이 세계 곳곳에는 이런 순혈주의가 판을 친다. 그러나 고인 물은 섞는다는 말이 있듯이 순혈주의가 사회를 암흑기로 만든 것을 우리는 목격했다. 앞서 말했던 모든 순혈주의의 결과는 전쟁이나 패망, 사회적 위화감 및 긴장 조성으로 끝을 맺었다.

특정 기업 내에서의 순혈주의도 경계해야 한다. 과거의 개국공신과 같이 각 기업마다 창업공신들이 있다. 회사가 성장하다보면 창업자의 비전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창업공신들에 의해서 너무 좌지우지되는 모습을 자주 본다. 더이상 기업에 발전적 에너지를 공급하지 못하는 창업공신들이 즐비하다. 개국공신들을 쉽게 내치지 못하듯이 기업에서도 창업공신들을 내치지 못한다. 때로는 3대 4대를 거치면서 창업자의 자손들이 실권을 휘두르는 경우를 많이 본다. 아니,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여전히 창업자의 일가에 의해서 경영되고 있다. 물론 포드의 사례에서 보듯이 전문경영인보다는 창업자의 후손들이 더 책임경영을 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시스템이 잘 갖춰진 미국의 얘기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순혈주의는 폐착이 될 것이다. 그리고 혼맥이라 알려진 그들만의 리그도 아직은 그들에게 든든한 방패막, 성벽을 제공해주고 있지만, 결국은 그 성안에 갇혀버리는 신세가 될 것이 뻔하다.

평소에 적당히 더러운 것을 경험하지 못했던 숙휘공주가 면역력이 약해져서 전염병에 쉽게 걸렸듯이, 갈라파고스나 오스트레일리아의 동식물들이 대륙과는 별개로 진화되었듯이, 일본이 기술외톨이가 되었듯이, 전쟁과 내분으로 격화된 각종 순혈국가들의 운명에서 보듯이… 결국 순수만을 내세우다보면 다양성이 부족해진다. 처음에는 특화가 진화의 정수처럼 보인다. 그러나 결국에는 다양성이 이긴다. 근친 간의 혼례를 막는 이유는 유전자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근친교배를 통해서 순수, 우수혈통을 만들어내는 것이 맞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유전자가 획일화된 후에, 특정 유전병에 취약함이 발견되고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 전체 일족이 파멸에 이른다. 잡종교배를 통해서 유전자가 분산되면 열성유전도 생겨난다. 그러나 다양성 때문에 특정 종이 병에 취약하더라도 다른 수많은 종들은 여전히 살아남는다.

순혈주의는 엘리트의식과 배타주의와 연결되어 있다. 백인우월주의가 백인은 더 우수하다는 그런 엘리트의식에서 시작되었고 중세의 십자군전쟁을 포함한 많은 식민개척이 미개인들을 교화시킨다는 명목하에 자행되었고 일본의 천황의 군대도 그렇다. 그렇기에 그들은 카미카제를 감행할 수 있었다. 일부 과격 이슬람들의 자살폭탄도 나는 신에게 돌아간다는 그런 잘못된 세계관에서 비롯되었다. 흑인 노예제가 당연시 되었고 양반은 천민을 막 부려도 되고 고용주는 노동자를 부속품처럼 사용해도 된다는 그런 저변에 깔린 의식이 나는 너보다 우수하다는 그런 우월주의의 결과가 아니겠는가? 오랜 시달림을 받았던 백의 민족 -- 스스로 백의 민족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엘리트의식의 결과다 -- 이 지금은 제3세계의 노동자들에게 폭압을 가하는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다. 그런 엘리트주의는 열성그룹에 대한 배타성을 내비친다. 나는 우수하고 너는 열등하다는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너는 내 곁에 올 수 없다는 그런 배타성으로 표출된다. 기술업계에서 나타나는 NIH현상, 즉 Not Invented Here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가 된다. 우리가 최고인데 어디서 열등한 인재 또는 기술이 투입되는가?라는 그런 저급한 생각이다. 일본의 갈라파고스도 최첨단 일본이 저급한 미제문화나 아시아문화를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비극이다.

다름이 열등함으로 표현되는 사회분위기는 그 사회를 좀먹게 된다. 이너서클로 표현되는 그런 집단의식이 과거 나치나 파쇼와 다를 바가 없다. 너는 다르고 새로우니 우리에게 활력을 줄 거야라는 그런 생각보다 너는 열등하고 또라이니 우리에게 해를 끼칠 거야라는 그런 인식이 강해지면 결국 그룹의 순수성을 따지게 되고 우리가 최고라는 엘리트의식이 태어나고 그러니 너희는 우리와 어울릴 수 없다는 그런 배타성이 발로된다. 이너서클이 아웃사이더들과 적절한 교류가 있을 때 더 강해진다. 다름, 즉 다양함은 깨달음의 원천이고 창발성의 기폭제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다름에서 시작해서 같음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같음에서 시작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다름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러면 너와 나는 안 어울려라는 생각이 형성된다. 이질성은 결국 동질성을 향한 첫 걸음이다.

NIH 때문에 실패했던 많은 사례들도 있지만 NIH를 극복해서 새로운 시대의 조류를 만들어낸 케이스도 많이 본다. 대표적으로 애플의 마우스나 GUI개발 일화이고, P&G의 C&D 전략이 그렇다. 많은 기업들이 M&A를 실패하는 이유가 단지 승자의 저주 때문만은 아니다. NIH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기업의 인수합병은 기업과 기업의 물리적 결합 이전에 사람과 사람의 교감과 문화와 문화의 화학적 결합이 기저에 있다. 그러나 많은 사례에서 그런 보이지 않는 역학은 무시하고 단지 보이는 기술이나 제품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인수한 기술이 시간이 흘러 결국 우리 회사와 맞지 않음이 판명나면 결국 실패한 인수합병인 것이다. 또 피인수자들도 결국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새로운 도전을 찾아서 떠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인수합병에서도 다양성의 포용이 그래서 중요하다. 정과 반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합에 이르는 것이 아니다. 그냥 결과로써의 합이라면 언제든지 존재하지만 양의 합이라는 보장이 없다. 오늘날의 오픈소스 환경 및 최근의 스타트업들은 애초에 NIH 장벽을 무너뜨린 것같다.

아직 이 글의 결론에 이르지 못했지만 글을 적다보니 너무 많은 생각이 떠올라서 글을 잇기가 힘들다. 드라마 에피소드에서 시작한 생각/글이 너무 길어져서 내용이 중구난방이다. 재미있는 생각거리가 많으니 나중에 더 자세히, 세부 토픽별로 글을 적어봐야겠다. ... 글을 공개하기 전에 비슷한 글 (순혈의 함정 - 유전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기업의 경영 그리고 스타트업 (2/21), 당신이 혁신적일 수 없는 이유 (2/22))이 올라와서 공유한다.

오늘은 여기서 끝.

(2013.02.20 작성 / 2013.02.27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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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실시간 6.2 지방선거는 여로모로 이슈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현 MB정권의 중간심판이니 북풍, 노풍이니 이런 이슈는 제 블로그에서는 별로 중요한 이슈가 아니니 그런 겻가지는 생략하겠습니다. 지난 100년을 되돌아보면 선거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미대선에서 20세기 초에 라디오의 등장으로 루즈벨트가 인기를 얻었고, 20세기 중반에는 TV의 등장과 함께 케네디라는 시대의 스타를 얻었고, 20세기 초에는 인터넷의 등장으로 한국에는 노무현, 미국에는 하워드 딘과 버락 오바마라는 인터넷 정치스타를 만들어냈습니다. 하워드 딘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그 시대의 기술을 잘 이용해서 대통령에까지 올랐습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인터넷의 위력은 대단했는데, 그 중에서도 트위터 등의 실시간공유서비스의 위력이 부각된 것같습니다. 그래서, 여러 선거독려캠페인도 전개되었고, 투표사진을 공유하자는 운동도 일어났습니다. 그러던 중에, 조금 우려되는 사건이 발생해서 기사화되었습니다. 바로 "미료, '투표지' 셀카 공개... 엇나간 '트위터' 사랑"이라는 기사가 유독 제 눈을 끌었습니다. 단순히 유명스타 (미료는 브라운아드걸스의 멤버임)가 투표용지를 찍은 셀카를 인터넷에 공개한 것이 선거법위반인지 여부에 많은 이목이 집중되었지만, 전 그녀의 행위가 선거법위반 여부는 별로 중요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적어도 제가 지금 글을 적는 컨텍스트 내에서는) 여담/참고. 선과위에서는 아직 선거도장이 찍히지 않은 사진을 공개한 것은 선거법 위반이 아니다라는 유권해석을 내렸습니다. 제가 위의 기사에 주목했던 점은 디지털 네이티브들의 정보공개 본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기자의 우매함에 한번 놀랐고, 트위터가 외산 서비스이기 때문에 '엇나간 사랑'이라는 저속한 표현을 사용한 기자의 경망함에 두번 놀랬습니다. 

 돈 탭스콧의 책 <디지털 네이티브>를 보면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태어나서 자라난 세대, 즉 현재 10대 후반에서 20대, 30대 초반을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정의했습니다. 이들은 이전 세대, 즉 현재 장년층인 베이비붐세대라던가 PC산업의 태동기를 거쳤던 3~40대들과 많은 모습에서 다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책 참조) 특히, 이들에게 나타나는 특색 중에 하나가 인터넷 등의 매체를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스스럼없이 밝히고 정보들을 공유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정보공개/공유를 위해서 이 세상에 나타났다고 표현해도 과하지가 않습니다. 최근 페이스북을 중심으로한 개인정보/프라이버시 문제도 30대 이상의 기성세대들의 눈에는 심각한 범죄로 보일 수도 있지만, 디지털 네이티브들에게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현상인지도 모릅니다. (참조: 프라이버시와 통제권) 브아걸의 미료는 81년생으로 디지털 네이티브의 초기세대입니다. 그런 그녀에게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 그리고 자신의 말을 인터넷 공간에 공개/공유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이 세대의 많은 이들이 이를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런 것을 일종의 문화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대가 조금 차이나는 이들이 보기에는 저들의 그런 공유본능이 참 한심스러워보이기도 할테고, 위험해 보이기도 할테고, 부자연스러운 것이 당연합니다. 처음 기사를 적은 기자도 자신의 얇팍한 지식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흥미를 끌만한 기삿거리를 건졌다는 심정으로 기사를 작성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처음에 어떤 경로로 기사를 작성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는 디지털 네이티브들의 공개/공유문화를 전혀 이해할 수가 없는 기성세대라는 것은 명확해 보입니다. 만약 그의 나이가 20대라면 애늙은이라 불러도 좋을 것같습니다.

 두번째로, '엇나간 트위터 사랑'이라는 표현이 참 눈에 거슬립니다. 제가 처음에 기사를 읽으면서 만약 '미투데이'에 투표지를 공개했다면 제목에 '엇나간 미투데이 사랑'이라고 적었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성세대들 중에는 아직까지 무조건 국내의 서비스만을 이용하는 것이 애국이다라는 그런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이 있는 것같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삼성제품을 사용해야 하고, 차는 현대차를 타고다니는 자신이 마치 애국자인양 자부심을 느끼는 이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런 이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이 지금의 대한민국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애용하던 삼성과 현대는 국내의 소비자들을 마치 봉으로 여깁니다.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제품가격을 높게 받고, 서비스는 엉망으로 제공합니다. 그러면서, 만약 그들이 어려움을 겪으면 항상 들고나오는 카드가 바로 '애국심 마케팅'입니다. 그런 쓰레기같은 생각으로 국내 소비자들을 생각하는 회사인 삼성이나 현대 등의 대기업을 왜 우리 국민들은 항상 사랑의 눈으로만 봐야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만약 트위터가 국내의 대기업의 서비스라면 기자가 감히 저런 '엇나간 사랑'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까요? 신문사 광고 수익의 대부분이 현대, 삼성, SK 등의 대기업에서 벌어들이는 신문사와 그들에게서 급여를 받고 있는 기자들이 그런 대형광고주들의 눈밖에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오늘날의 신문이나 방송이 정보를 제공해주는 통로가 아니라 광고주들에게 아부나 하는 그런 장으로 바뀐지 오래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여담으로, 그런 의미에서 더욱더 순수한 블로거, 시민기자들의 역할이 더 중요합니다.) 외산 서비스나 제품들에 대해서 더이상 나쁜 시각으로 볼 필요가 없습니다. 기사들을 보면, 마치 아이폰이 삼성을 망하게 만드는 것처럼 말하는데, 전 늘 생각하기로 '아이폰의 국내 도입에서 가장 큰 혜택을 받은 것은 삼성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구태의연한 삼성이 아니라 다시 뛰는 빠릇빠릇한 삼성으로 변모시켜준 것이 아이폰입니다. 다른 수입차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보다 더 저렴하고 서비스가 좋은 외산차들이 많이 들어올수록, 더 큰 혜택은 현대/기아차가 받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지금은 21세기입니다. 쇄국의 시기는 끝났습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구글의 국내 진출로 기존의 다음, 네이버, 네이트 등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과 직접 대면해서 경쟁하고 또 면연력을 키우면서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외제를 사용하면 나쁜 사람이라는 오래된 헤게모니는 이제 버리고, 진정 애국이 뭔지를 다시 생각할 시점입니다.

 분명 미료의 행동은 부주의했습니다. 그래도 이를 기사화하기 위해서는 그들 세대만의 문화와 철학은 이해하면서 기사를 쓰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인터넷 공간을 항상 죄악의 소굴인양 좌경시하는 그런 시각도 버려야지 소비자들이 공감을 하는 기사를 쓸 수 있습니다. 스스로 오피니언 리더 및 전파자라고 자처하는 수많은 기자양반님들, 제발 공부 좀 하고, 좀 다양한 시각에서 글 좀 쓰주세요. 쓰레기 글만 쏟아내니깐 신문/방송산업이 몰락하는 거에요. 인터넷이 신문산업의 적이 아니라, 속에서 썩고 있는 사주와 기자들이 신문산업을 몰락시키고 있는 거랍니다. ... 결론은, 시대를 좀 배우고 공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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