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는 메시지다

Gos&Op 2013.02.12 09: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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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셜 맥루한이 말했다. 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처음 들으면 의아해한다. 그러나 살면서 경험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수긍이 간다.

우리에게 전달된 메시지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3C/3Cont*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첫번째는 메시지 그 자체, 즉 컨텐츠 Content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두번째는 그 메시지를 감싸고 있는 환경정보, 즉 컨텍스트 Context를 이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메시지를 담고 전달하는 매체, 즉 컨테이너 Container를 알아야 한다. 미디어가 메시지다라는 말이 이 컨테이너의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컨텐츠에 대한 긴 설명은 필요없을 것같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방송, 신문, 인터넷 등을 통해 전달되는 대부분의 정보가 컨텐츠다. 당연히 컨텐츠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컨텐츠 자체를 이해해야 한다. 문제에 답이 있다는 말과 같이 컨텐츠에 그 의미가 없다면 컨텐츠로써의 역할을 못한 것이다. 컨텐츠라고 해서 모두가 정보적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유희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들도 있고, 때로는 해를 입히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들도 있다. 의미가 명확하고 중림적인 것이 있는 반면, 깊이 파고들어야지 겨우 의미를 깨닫는 모호한 것들도 있다. 의미가 모호할 때는 주변 정보와 결합해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컨텍스트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컨텐츠의 의미 파악이 힘들고 모호할 때 필요한 추가 정보가 있다. 그것이 바로 컨텍스트다. 근년에 부상했던 인터넷 업체들은 대부분 컨텍스트를 잘 다뤄서 성공했다. 인터넷 초장기에는 그저 정보를 제공해주는 신문사 홈페이지, 그런 기사 등을 그저 모아서 제공해주던 포털 사이트, 그리고 숨은 정보를 찾아주는 구글과 같은 검색 서비스가 주류를 이뤄지만, 최근에는 한결 복잡해졌다. 트위터로 대표되는 실시간 서비스, 포스퀘어로 대표되는 위치기반 서비스, 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사람관계 서비스, 그리고 국내의 카카오톡으로 대표되는 모바일 서비스 등은 모두 컨텐츠 뿐만 아니라 컨텍스를 잘 활용한 경우다. 시공인을 제외하더라도 다양한 컨테스트가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사용자의 과거 히스토리나 배경지식이 컨텍스트고, 현재 날씨나 분위기/기분상태 등도 컨텍스트에 해당된다. (기사 등에서) 정보가 가치를 가지려면 육하원칙에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육하원칙이 바로 언제, 어디서, 누가 등에 해당된다. 그런 컨텍스트가 없는 컨텐츠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래서 컨텍스트가 컨텐츠를 정의한다.

마지막으로 그런 컨텐츠가 어떤 경로를 통해서 전달되는가도 컨텐츠를 해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셜 맥루한이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말을 했던 것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매체에 의해서 메시지의 의미가 제대로 파악된다는 점이다. 만약 이 글이 블로그가 아니라, 유명한 미디어/인터넷 전문가의 블로그나 신문/잡지에 실렸다면 그 가치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실려있기 때문에 처음 이 글을 (저자를) 접하는 사용자라면 이 글에 대한 신뢰성이 낮을 것이다. 특히 뉴스 기사의 경우에도 매체가 중요함을 절실히 깨닫는 경우가 많다. 같은 기사라도 조중동에 실렸을 때와 한겨레나 경향에 실렸을 때 사람들은 다르게 받아들인다. 간혹 조중동에 실린 좋은 기사를 보면서 저네들이 왜 이 기사를 작성했을까?라고 기사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경우가 있다. 역으로 한겨레에 실렸다면 뭔가 이유가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 기사의 진의가 매체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현실이 그렇다. 글쓴이의 평판처럼 매체의 신뢰도가 컨텐츠의 질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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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적고 싶었는데 시작이 어려우 이제서야 적었다.

(2013.02.02 작성 / 2013.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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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의 오해와 이해

Gos&Op 2012.12.15 14: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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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SNS의 메카니즘에 대한 글을 적고 싶었지만, 굳이 다 아는 내용을 내가 또 적는 것도 일종의 공해가 될 것같아서 계속 미뤘다. 그런데 어제 시사IN에 올라온 <박근혜 후보, SNS 여론전략 보고 직접 받았다> 기사에 포함된 동영상 (아래 참조)을 보면서, 스스로 SNS 전문가라고 자평하는 사람이 SNS의 기본적인 메카니즘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또는 일부러 왜곡시켜서) 발표하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그런 잘못된 부분을 보면서 뭔가 대단한 것을 보고 있는 듯한 표정의 참가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더이상 미뤄둘 주제가 아닌 것같아 결국 이렇게 글을 적습니다. 발표내용을 들어보면 SNS에서 N이 Network의 약자임을 모르는 것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P를 중심으로 한 새누리나 군대의 일종인 ROTC라는 백그라운드를 생각해보면 그들이 생각하는 Network는 그냥 다단계, 즉 피라미드 Pyramid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면 발표의 내용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오해 하나.
가장 기본적인 오해는 산술적 팔로워수의 계산에 있습니다. (그냥 수치는 예로 들겠습니다.) 100명의 팔로워를 가진 100명의 사람들이 나를 팔로잉하면, 나의 2차 팔로워의 숫자는 10000명 (100 * 100)이다. 이 말은 얼핏 보면 맞다. 산술적으로 전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나의 팔로워 100명이 서로 팔로잉을 전혀 하지 않고, 그들의 팔로워들도 서로 팔로잉을 전혀 하지 않는다면 10000명의 2차 팔로워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전혀 불가능한 수치다. 단적으로 내가 나를 팔로잉한 100명을 맞팔로잉을 했다면, 적어도 2차 팔로워수는 1만명에서 100명 (나)을 제해야 한다. 그리고 나를 팔로잉했는 사람들이라면 나와 학교나 직장 등에서 관계가 있거나 적어도 관심사가 비슷하기 때문에 그들끼리도 서로 연결되었다고 가정하는 것이 합당하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피라미드 구조에서는 100*100은 1만이 되지만, 네트워크는 그렇게 일방향 트리가 아니다. 서로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네트워크라고 부른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2차 팔로워의 숫자는 예상치보다 많이 낮을 수가 있다.

오해 둘.
이해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 피라미드로 가정하자. 즉, 나의 2차 팔로워의 숫자가 10000이라고 가정하자. 그러면 내가 적는 글이 그들 10000명에게 온전히 전달될 수가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져야 한다. 상명하달식의 군대조직에서는 대장이 말한 내용이 일반 사병에게까지 저대로 전달되어진다. 그러나 일반적인 SNS에서는 이게 불가능하다. 일단 내가 적은 글이 나의 팔로워100명이 모두 봤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그들 100명이 리트윗/RT을 하지 않는다면 내 트윗은 나의 팔로워 100명에게서 생을 마감한다. 정보가 네트워크를 통해서 전파/전달된다는 말에서 기본 가정은 그들이 자발적/비자발적으로 메시지/정보를 계속 전파시킨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 글을 본 사람들이 전혀 RT를 하지 않는다면 내 글은 단지 100명에게만 효력을 미쳤다. 그리고 100명 중에 몇 명이 RT를 했다면 수명이 조금 더 연장이 되었겠지만 산술적으로 10000명은 아니다. 물론 네트워크는 더 복잡하고 RT된 것이 또 RT되고 하면서 더 넓은 세상으로 전파되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냥 산술적인 수치를 마구잡이고 진실인양 말하는 것은 현실을 전혀 모르거나 아니면 일부러 숨기는 처사다. 많은 SNS 마케팅 회사들의 브리핑에 속으면 안 된다.

오해 셋.
진짜 내가 유명인이거나 내 글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내 글을 읽은 모든 사람은 리트윗할 수 밖에 없다고 가정하자. 앞의 가정에 중요한 문구가 있다. 바로 '내 글을 읽은 모든 사람'이다. 나의 팔로워 모두가 아니라 '내 글을 읽은 팔로워'다. 즉, 100명의 팔로워를 가졌다고 해서 그 100명이 모두 내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팔로워 중에서 오직 나만 팔로잉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그는 내 글을 읽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는 100명정도 팔로잉하는 사람이더라도 과거글을 뒤저보면서 내 글을 읽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1000명을 팔로잉을 하는 팔로워가 내 글을 바로 읽었다라고 가정하기 어렵다. 사이비 SNS 마케터들이 저희는 수만명의 팔로워를 확보했습니다라고 자랑을 한다. 그러나 마케팅 메시지가 그 수만명에게 온전히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오해 넷.
세번째의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내가 글을 적으면 100명이 언젠가는 읽을 거라는 그런 안일한 생각도 틀렸다. 트윗이나 실시간 메시지는 시간과 함께 흘러간다. 그냥 흘러가는 정보다. 즉, 지금 읽지 않으면 전혀 읽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3에서처럼 너무 많이 팔로잉을 해서 그래서 그들이 쏟아내는 모든 글을 읽지 못해서 내가 적은 글이 그 글무더기 속에 파묻혀서, 그 글파도에 휩쓸려서 함께 사라진다. 물론 내가 진짜진짜 유명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내가 진짜 흉악한 범죄를 저질러서 내 글을 모두 전수 조사를 한다면 내 글이 나중에도 읽혀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그런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차라리 로또를 기대하는 것이 낫다. (물론 로또는 수동적이지만, 내 글을 읽혀지기 위해서 심각한 범죄는 능동적으로 저지를 수가 있기는 하다.) 지난 총선에서 김용민씨와 김구라씨의 과거 발언이 회자된 것과 같은 일은 일반인들에게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의 서버나 다른 여러 인터넷 아카이브에 내 글이 아카이빙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서 빅데이터라는 말을 많이 하기는 하지만 마음먹고 찾아나서지 않는 이상은 내 글의 생명력은 수분에서 수시간, 길어도 며칠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적는 경우는 좀더 긴 생명력을 가질 수가 있다. (그래서 단문의 트윗 전문가보다는 여전히 긴글을 양산하는 (전문)블로거들이 마케팅에 더 도움이 된다.)

오해 다섯.
그리고 네트워크에서 시간이 흐를수록/흘러도 연결이 지속/강화/확대된다는 이상한 믿음이 있다. 한번 친구를 맺어놓으면 가두리 양식처럼 내 영향력 밑에 놓여있을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내게 연결될 거라는 헛된 믿음이 있다. 일반적으로 연결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고 연결수/밀도가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이 문장에서 '일반적'이 중요하다. 그 사람 (노드)가 진짜 일반적인 경우에 그렇다는 거다. 트윗을 자주해서 파워트위터러같은데 헛소리만 계속 한다면, 또는 내 관심과 무관한 이야기만 계속 올린다면, 또는 너무 과도하게 글을 올린다면 등의 다양한 경우에 대해서 연결이 끊어지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단순히 온라인에서 관심사로 맺어진 연결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 형성된 학연, 지연, 혈연의 관계가 있더라도 온라인에서 연결이 영구하다는 보장이 없는 것을 자주 본다. 또라이 집단에서 그들 사이의 연결은 강화될지 모르나, 다른 집단/개인과의 연결의 결속력이 생기느냐는 다른 문제다. 특히 위의 발표자에서처럼 특수 목적을 가진 사람, 일반적인 경우에는 (제품/서비스/행사) 마케터는 홍보성의 쓰레기글만 양산하기 때문에 처음에 어떻게 관계를 맺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연결이 끊어질 가능성이 더 높다. 지금 100명의 팔로워를 가졌다고 자랑해도 내일 모두 떠나버릴 수 있는 것이 네트워크다. 마케팅의 입장에서 새로운 시장으로의 연결이 중요하지, 기존 고객과의 메시지 전파는 큰 의미가 없다. (고객관리의 의미가 아님) 네트워크는 진화하고 변화무상하다. SNS의 관계도 그렇다.

내가 아무리 좋은 글을 적어도 전혀 호응이 없을 때가 많다.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내 글이 그들에게 전달되었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들을 뭐라고 탓할 수도 없다. 그리고 그들이 나의 일부가 좋아서 팔로잉을 했지 나의 모든 것이 좋아서 팔로잉을 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특정 이슈에 대해서 반응하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어쩌면 지금처럼 정보가 쏟아지고 관계가 복잡한 중에 내 글의 일부라도 누군가의 관심을 끌었다면 그것이 더 기적같은 일이다. 나도 수천명을 팔로잉하면서 모든 트윗을 같은 비중으로 관찰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항상 스마트폰을 옆에 두고 모든 글을 읽지도 않는다. 그냥 몇 시간에 한두번씩 접속해서 그 순간에 첫페이에 올라온 몇 개의 트윗에만 눈길을 돌리고, 또 다른 일에 정신을 팔아버린다. 나도 이러는데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어제도 글을 적었지만, 인터넷과 SNS는 큰 가능성과 도전을 우리에게 줬다. 그러나 아직으 가능성 중에 아주 일부만을 사용하고 있다. 지나친 과신은 피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SNS 및 SNS 마케팅을 하시는 분들은 제발 네트워크에 대한 기본 지식은 갖고 사기를 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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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인터넷은 미래의 미디어인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현재의 미디어는 아니다. '현재의 미디어는 아니다'라는 말은 틀렸다. 더 엄밀히 말하면 '아직은 세상을 단독으로 변화시킬 미디어로써의 힘을 가지지 않았다'가 더 적합한 표현이다. 다른 말로 하면 아직은 인터넷이나 SNS보다는 신문 방송 등의 올드미디어의 힘이 더 커다는 거다. 10년 전에 최초의 인터넷 대통령이라 불렸던 고 노무현 대통령도 나왔고, 미국에서는 하워드 딘의 약진과 더 최근에는 SNS를 이용한 오바마의 당선 및 재선을 보면서도 아직 인터넷이 멀었다고 말하느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아직은 '그렇다'라고 대답할 거다. 인터넷과 SNS의 가능성은 여전히 무궁하다. 그래서 많이 양보해도 '인터넷만으로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말이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그냥 회사에서 동료들이랑 저녁을 먹으면서 TV에 비친 박근혜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렇게 직감했다. 현재의 여러 정황을 보면 지금 치뤄지는 대선은 5년전의 것보다 더 극단적인 원사이드 게임으로 치뤄져야 했다. 소위 전문가들 -- 양심을 판 전문가들을 포함해서 -- 의 말을 종합해보면 적어도 경제적인 측면에서 지금이 5년 전보다 더 낫다라고 감히 말할 수가 없다. 경제를 제외하고, 정치만을 생각해도 5년 전에 비해서 좋게 평가해서 정체되어있고, 사회 문화 측면에서도 여전히 미개하다. 양극화라는 말로 잘 표현된다. 양극화는 경제적인 부의 양극화뿐만 아니라, 정보 소유에 대한 양극화, 정치적 발언권의 양극화, 문화 향유의 양극화, 교육 및 기회의 양극화 등의 사회 전반적인 이슈에 대해서 말할 수가 있다. 지난 5년 간 더 나아진 점이 없다면 지금 대선은 지난 5년에 대한 평가이고 그래서 향후 최소 5년에 대한 준비이다. 그러나 현재 여론조사상으로 (본인은 여러 번 밝혔지만 여론조사의 결과를 믿지 않는다. 최종 결론이 현재 여론조사의 수치와 거의 일치할 수도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현재의 여론조사는 진실을 숨기고 있다.) 두 후보 사이의 초박빙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5년 전에 6:4정도로 게임이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지금도 4:6 정도의 차이가 났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고 처음부터 5:5의 싸움을 해오고 있다. 새누리이 선거에서 전략적으로 잘 대응했다고 반대로 민주당이 뻘짓을 많이 한 것도 맞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이유는 신문 방송 등의 기존 미디어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MB가 그렇게 발악해서 방송사를 장악하려 했다. 조중동의 메이저신문사들은 어차피 그들의 편이었으니...

인터넷이 미디어로써의 힘은 막강하다. 그러나 아직은 단독으로 세상을 바꿀 힘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현실에서 보고 있다. SNS를 통해서 다양한 정보들이 유통되고 있으며 또 잘못된 정보들이 바로 잡혀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기존 미디어에 편승해있다. 인터넷 단독의 힘은 여전히 미약하다. 현재 인터넷의 가지는 힘의 큰 부분은 여전히 올드미디어에 기대어있다. 컨텐츠 유통만을 본다면 인터넷은 거의 독립적이다. 그러나 컨텐츠의 생성 측면에서는 여전히 갓난아기에 불과하다. SNS를 통해서 전파되는 모든 정보듸 7~80%이상은 여전히 기존미디어의 것을 실어나르거나 그것에 조금 코멘트를 첨가한 것들이다. 수많은 댓글들이 달리지만 실제 소수에게만 소비되는 그래서 거의 무의미한 컨텐츠다. 개인블로그나 트윗이 더 많이 생성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개별적으로 신뢰성을 얻기에는 여전히 미흡하고 특정 이슈에 대해서 파급력이 여전히 부족하다. 가혹 트위터를 통해서 제일 먼저 소개되고 특종이 되는 경우도 존재하지만, 사실 그런 것들은 아주 간혹 일어나는 현상이고 그래서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있어서 왜곡된 기억일 뿐이다. 트위터가 특종을 냈더라도 올드미디어의 후속 보도가 없으면 시간이 지나고나면 그저 인터넷 뜬소문정도로 남게 된다.

한국대선으로 돌아와보자. 현재 그래도 초박빙의 승부를 펼치는 것은 그래도 조중동, KMSY 방송사에 대항하는 SNS와 인터넷의 힘이 아닌가?라고 물을지도 모른다.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겨레, 경향신문, 시사iN 등의 대척점에 서있는 미디어의 뒷받침없이 가능했을까?를 묻고 싶다. 순전히 새롭게 나온 나꼼수나 나꼽살, 뉴스타파 등을 통해서 만들어진 컨텐츠들이 그저 블로그를 통해서 확대되고 트위터를 통해서 유통되고 검색을 통해서 소비된다고 가정했을 때 지금의 초박빙이 가능했을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또 현대의 초박빙 대선이 이상하다고 말하듯이 5년 전의 대선이 원사이드게임이 되었던 것도 사실 기존미디어의 힘이 아니었으면 그럴 수가 없었다고 본다.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정착된 웬만한 나라에서는 두개의 거대집단이 맞붙으면 거의 50:50에서 결판이 난다. 많으면 5.5:4.5 이상의 차이를 낼 수가 없다. 물론 현재의 사황만을 봤을 때, 대한민국은 비정상 민주주의니 6:4 이상도 가능하기는 하다. 미국에서 치뤄지는 많은 대선이나 총선에서 시대의 흐름에 맞는 정당이나 후보가 힘을 얻는 것을 보지만, 큰 차이에 의해서 갈리지도 않고 결과에서도 어느 정도 힘의 균형을 유지한다. 오바마 재선에서의 (대의원) 특표 차이가 비정상적인 결과이고, 실제 투표의 결과는 50:48.5정도로 거의 50:50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단순히 인터넷 여론만을 봤을 때는 이미 야권의 승리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못하다. 물론 내가 뻘짓을 하는 미개인들을 팔로잉을 끊음으로써 내가 받아들이는 정보가 한쪽으로 치우쳐져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최근 쏟아지는 여러 이슈들을 본다면 문에게 저정도의 악재들이 쏟아졌다면 그는 이미 사퇴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악재가 박을 향해있지만 여전히 50:50 싸움이다. 인터넷에서는 결판이 났지만, 올드미디어에서는 잘 숨기고 포장하고 있기 때문에 인터넷의 날것이 비인터넷 인구들에게 소비되지 못하고 있다. 비인터넷 인구란 단순히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여전히 서툰 노년층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인터넷은 사용하지만 게임이나 쇼핑 등의 유희의 수단으로만 사용하는 그들을 모두 포함해서 말이다. 국민의 8~90%가 인터넷을 사용한다지만 실제 사회 정치 경제 시사 등의 심각한 문제를 소비하는 인구는 극히 제한되어있다. 인터넷이 아무리 큰 힘을 가졌더라도 그런 비인터넷 인구들에게는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물론 신문 방송의 경우도 그런 비미디어 인구들이 존재한다. 그런 비미디어 인구들에게 유일한 미디어 수단은 실제 만나서 대화하는 것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비미디어 인구들에게 컨텐츠를 제공해주는 사람들이 현재의 인터넷파겠는가? 아니면 신문방송 등의 올드미디어파이겠는가? 후자일 가능성이 더 높다. 그래서 여전히 커버리지 측면에서 인터넷보다는 올드미디어가 더 넓은 듯하다.

...

아직은 갈 길이 너무 머니 설레발을 치지 말라는 소리도 아니고 아직은 올드미디어에 바짝 엎드려서 굽신거려라는 말도 아니다. 그냥 현상이 그렇다는 거다. 인터넷은 미디어로써 참 매력적이다. 컨텐츠가 자유롭게 생성/재생산되고 자유롭게 유통되고 또 자유롭게 소비된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인터넷의 가능성 중에 아주 일부만을 보고 있고 이용하고 있다. 더 큰 세계가 펼쳐져있지만 우리가 상상하지 못함으로써 여전히 우리의 미래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냥 TV를 보면서 생각했던 한 가지 점을 가지고 긴글을 적으려니 논리의 비약도 심하고 빈틈이 많다. 그냥 이런 생각을 했다는 점을 아시고, 여기서 각자 더 생각을 전개해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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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 5 우리는 이미 너무 멀리 와있다. 저자의 식견에 감탄하지만 그가 제시한 대부분이 이미 과거가 되었다. 책에서는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의 만남을 컨버전스로 자주 언급하지만, 진정한 컨버전스란 미디어와 사람의 만남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컨버전스 컬처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헨리 젠킨스 (비즈앤비즈,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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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미디어는 뉴미디어가 아니다.  
 
 우리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것 중에 하나가 미디어인 것같다. 아주 오래전에는 동네 어귀에 걸려있던 방이나 홍보물에서부터, 아니 마을회관이나 어느 집의 사랑채에서 세상돌아가는 이야기를 전해주던 보부상들이 미디어였다. 오늘날에는 (수요는 많이 줄었지만) 신문잡지 등의 출판물에서 부터, 거의 매일 빠짐없이 시청하는 TV, 그리고 이젠 우리 삶의 일부가 된 인터넷, 더우기 스마트폰을 포함한 모바일환경은 모두 미디어로 정의내릴 수 있을 것같다. 여기서 신문이나 방송을 보통 올드미디어라 표현하고,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뉴미디어로 주로 표현한다. 항상 시작은 별개의 것에서 출발하지만, 두 세력의 싸움과 결합은 역사의 숙명이었다. 올드 미디어와 뉴 미디어는 서로의 영역에서 세를 확장하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그 영역이 겹쳐져서 때론 싸우고 때론 결합되고를 반복하는 것같다. 이렇게 싸움의 과정과 화해의 과정 모두 통합, 즉 컨버전스 과정의 일환인 것같다. 책에서도 소개되지만, 10여년 전에는 시청자들은 절대로 TV에서 일어나는 일을 방해할 수가 없었다. 겨우 참여한다는 것은 1주일 뒤에 발표될 음악/가수의 순위를 매기기 위해서 편지를 보낸다거나 ARS 전화를 거는 것이 전부였다. TV 드라마의 시나리오는 전적으로 작가와 연출자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어떤가? 지금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와 버라이어티쇼에 대한 시청자들의 평이 바로바로 올라온다. 설령 잘못된 모습이라도 보이면 사람들을 들고 일어선다. 오늘도 재미있는 사건이 있었다. '추노'라는 드라마에서 조금 선정적인 모습을 보인 것에 시청자들이 질타를 했다. 그랬더니 이번주에는 별것도 아닌 장면에 모자이크처리를 했다. (여담이지만, 괜히 모자이크가 생기면 이상한 상상에 빠지는 이들도 있으리라...) 이제 시청자가 드라마의 내용을 바꾼다. 아니 모든 것을 바꾼다. 책에 소개된 여러 TV 쇼의 경우는 이미 과거의 역사가 되었다. 미국의 리얼이티 프로그램의 스포일러가 활동하는 것이 대단한 일처럼 소개되었지만, 지금 몇 주후에 방송될 내용이 그 전에 이미 인터넷에 사진으로 때로는 동영상으로 배포되는 세상이다. 때로은 찌라시 신문들이 방송 내용을 미리 알려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실제, 지난 토요일의 '무한도전'의 정준하씨가 수행한 '쩌바타' 벌칙은 이미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었다. '스타워즈'의 여러 장면들이 패러디되고 각색되는 것에 높은 평가를 내렸던 책의 내용은 지금 본다면 초등학생들도 콧웃음을 칠 것이다. 오늘날에는 소위 아마추어들도 과거에 상상하지 못했던 영상물들을 만들어낸다. 인터넷이 가능하게 해줬고, 다양한 캠코더 사진기들이 이를 가능하게 해줬다. 그리고 수많은 핸드폰들은 이런 흐름의 방점을 찍었다. 하드웨어에서 다양한 기능들이 컨버전스되던 시절, 물론 오늘날에는 더욱 심하게 이루어진다,을 지나서 이젠 소프트웨어나 문화에서의 컨버전스도 빈번히 일어난다. 책에서 말하는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의 컨버전스는 이미 일상이 되어버렸기에 책에서 전하려던 인사이트와 저자의 식견을 실감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책이 너무 늦게 나온 것에 땅을 치고 후회를 해야할 것이다. 그런데, 책에서는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의 만남과 결합을 컨버전스로 정의를 내리고 있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현재의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진정한 컨버전스는 미디어와 사람의 만남이라고 재정의하고 싶다. 아니, 어쩌면 사람과 사람의 만남, 즉 소셜이 현대의 컨버전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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