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2.06.04 무시의 기술 The Art of Ignorance
  2. 2012.05.30 위험한 생각 그리고 적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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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기술의 진화는 (정보) 필터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 원래 정보기술이라는 것이 지식의 축적과 공유를 촉진시키기 위해서 발전해왔다. 그러나 더 많은 지식이 쌓이고 더 많은 정보가 공유될수록 나에게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얻는 것이 더 어려워진다. 그렇기에 지식의 축적과 공유의 축의 정보기술과 함께 정보의 제한 및 여과의 축의 정보기술도 함께 발전해왔다.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나 조선시대의 4대 서고와 같은 것은 활자형태의 지식을 축적/보관하기 위한 대표적인 사례이고, 서구에서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그리고 동양에서는 중국의 3대 발명품 중에 하나인 종이 (나머지는 화약과 나침반)라던가 우리나라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나 직지심경, 그리고 팔만대장경과 같은 인쇄술 등이 대표적인 지식의 공유의 도구였다. 그러나 지식을 더 쉽게 축적하고 공유를 할 수록 쌓여가는 지식의 양과 종류도 함께 늘어갔다. 그렇기에 축적된 인류의 지식 속에서 지금 내게 필요한 정보를 추려내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 그런 측면에서 듀이의 도서분류학이 등장했고, 두꺼운 사서에는 색인이라는 아날로그 정보필터가 등장했던 것이다. 도서관이나 인쇄술이 아날로그 버전의 지식축적과 공유 기술이었다면, 장서는 분류체계로 정리되고 개념은 색인으로 재정열되는 것은 아날로그 버전의 정보여과 기술이다.

정보의 디지털화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활자가 0과 1로 표현되어 무수한 디스크 위에 기록이 되고 있다. 개인 PC에 기록된 정보는 어느 순간 이메일이나 트위터 등을 비롯한 인터넷을 통해서 세계 도처로 분산되고 있다. 도서관의 형태가 인터넷 아카이브로 바뀌었다면 정보분류나 색인은 검색엔진으로 발전해왔다. 인터넷 초창기에는 야후와 같은 포털을 중심으로 정보 아카이빙이 주도를 해왔다면, 그 중흥기에는 구글을 비롯한 검색엔진이 왕좌를 차지한 것도 정보의 축적 및 공유 그리고 여과라는 양 측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검색엔진은 사용자의 쿼리에 반응해서 그리고 여러 랭킹요소에 의해서 정보를 정렬해주는 정보필터를 제공해줬다면, 최근에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의 소셜네트워크를 통해서 지인이 제공하는 또는 추천하는 정보라는 개념의 소셜필터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더 최근에는 핀터레스트로 대표되는 정보큐레이션이라는 형태의 정보필터도 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핀터레스트가 대표적인 큐레이션 서비스이지만, 기존의 카페/커뮤니티나 개인블로그 등도 큐레이션의 개념이 녹아있다.)

정보를 축적하고 공유하는 기술이 무한 발전해나가듯이 정보를 여과하는 필터 기술도 함께 발전해나가고 있다. 그런데 필터가 아직은 우리가 원하는 수준은 아닌 것같다. 많은 사람들이 정보라는 급류에 휩쓸려 거의 익사 수준에 이른 것같다. 하루에도 세계 도처에서 전달되는 이메일 (물론 스팸메일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뿐만 아니다. 핸드폰이 보급되면서 SMS의 범람을 경험했듯이, 스마트폰의 보급은 카카오톡이나 마이피플 등의 메시징도 시도때도없이 넘쳐난다. 그리고 다양한 스마트폰 앱의 알람/노티기능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일보다는 스마트폰에 더 집중하는 것같다. 간혹 마이피플의 그룹채팅을 하다보면 어떤 이들은 조용히 해당 그룹을 떠나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그 사람은 분명 관심도 없는 주제에 대한 메시지가 계속 쏟아지면서 스마트폰은 계속 알람을 울려대기 때문에 매우 성가시고 귀찮아졌는 것같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 심지어 특히 컴퓨터 프로그래머들까지도 -- 그렇게 쏟아지는 알람소리/진동을 제어하지 못해서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이쯤에서 이 글의 요지를 적어야겠다. "최고의 정보필터는 무시다." 그동안 검색엔진이나 소셜네트워크, 또는 큐레이션 등의 다양한 정보필터들이 소개되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강력한 최고의 정보필터를 우리는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같다. 바로 무시 Ignorance다. 언젠가는 필요한 정보일 수는 있지만, 쏟아지는 모든 정보가 현재 내게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저 그런 정보를 그냥 흘려보내는 기술을 습득할 필요가 있다. 바로 무시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는 거다. 나름 컴퓨터광들도 스마트폰의 알람/노티피케이션 기능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조금은 한심스럽기도 하다. 마이피플 그룹에서도 그렇다. 누군가는 A라는 인물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특정 그룹(채팅)에 포함시켰는데, A는 수도없이 울려대는 알람이 귀찮아서 그룹에서 탈퇴해버린다. 분명 A는 무시의 기술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듯하다. 스마트폰의 노티피케이션 기능을 꺼두면 스마트폰에서 조금의 해방감을 누릴 수 있다.

질문에는 모두 답변을 해줘야 한다는 불문률이 생긴 것같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모든 질문에 답변을 할 필요가 없다. 답변을 거부하면 매우 큰 결례를 범한 것이라고 인식하는 것같다. 그래서 들어오는 모든 메일에 답장을 보내야하고, 모든 메시지에 응답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겼다. 특히 SMS나 카톡/마플 등의 IM의 경우는 찰라의 여유도 없이 바로 반응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것같다. 그게 마치 대단한 에티켓으로 포장되고 있다. 그래서 스마트폰에서 마플/카톡의 노티피케이션을 꺼두지 못하는 것같다. 안스럽다.

트위터를 사용하면서 나는 비동기의 미학을 배웠다. 그리고 또 무시의 지혜를 터득했다. 흘러가는 모든 물길을 댐이나 보로 막을 필요도 없고, 4대강사업처럼 새로운 물길을 만들 이유가 전혀 없다. 흘러가는 강물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최선일 수도 있다. 정보도 그렇다. 그냥 흘러갈 정보라면 그냥 가둬둘 필요가 없다. 그냥 흘러가고 또 흘러가고... 그러다가 언젠가 필요할 때가 있으면 검색엔진 등을 이용해서 되살려내면 된다. 물이 고이면 썩듯이 기록된 지식은 그냥 죽은 지식이다. (죽었다고 무효하다 invalid는 의미는 아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또는 RSS리더기에 올라오는 모든 글을 읽고 기억할 필요가 없다. 그냥 그렇게 흘려보내면 된다. 그 정보가 정작 내게 필요한 것이라면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내게 전달된다. 그렇지 않더라도 수많은 대안 정보가 있다.

보를 만드는 기술만 배울 것이 아니라, 물길을 터주는 기술도 배워야 한다. 빅데이터의 시대에 무데이터의 정신을 발휘해보는 것은 어떨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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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그냥 적고 싶었던 글 중에 하나가 바로 '위험한 생각'이다.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뭔가 위험한 생각을 글로 적으려는 건 아니다. 딱히 나는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지도 않다. 그런데 나는 조금 반골기질은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뭔가를 생각하고 있다는 그건 위험할 거야라고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같기도 하다.

내가 적고 싶었던 글은 '위험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위험한 인물이 아니라,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이 위험한 인물이다.'정도의 한줄요약이었는데, 이를 어떻게 장황하게 기술할까를 고민하다가 늘 접었던 것같다. 사람들은 반골기질을 가진 사람을 보면 그냥 피하거나 (뒤에서) 욕하거나 뭐 그러는 것같다. 또 그런 사람이 정당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냥 삐딱한 생각의 결과로 받아들이는 듯도 하다. 그런 주변의 인식이나 시선을 의식하면서 나는 전혀 위험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꺼집어내는 것같다. 방송인 노홍철이 초기에 방송국에서 사람들을 보면서 '해치지 않아요'라고 말을 했다고 하듯이 나도 '저는 위험한 사람이 아니에요'라고 항변하고 싶었던 것같다.

정작 위험한 사람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위험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위험 인물이다. 너무 당연하다. 내가 나름 위험한 생각을 했다손치더라도 그냥 블로그나 게시판에 그저그런 글을 적는 것 이외의 위험한 행동을 한 적이 없다. 그런데 나는 사람들 사이에 위험인물로 찍혀버렸다. 익숙해질만도 한데... 그리고 정작 주변에서 조심해야할 사람들은 위험한 생각을 하는 이들이 아니라,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이들이다. 주변의 불의를 보면서도 그냥 지나쳐버리는 사람들, 더 나은 개선안이 있을텐데도 관심을 보여주지도 않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 이건 내 일이 아니야라고 애써 외면하는 그들이 진정 위험한 사람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또 하나 적고 싶었던 글은... 한 때 트위터에서 어느 일본인이 적었다고 해서 유명해진 글인데 "사람이 변하기 위해서는 시간대를 바꾸거나 장소를 바꾸거나 만나는 사람을 바꿔야 한다. 그냥 변화해야겠다는 다짐만으로는 바뀌지 않는다." 뭐 이런 류의 글이었다. 지금은 트위터에서도 지워졌는 것같은데, 한 때 꽤 회자되었고 또 지금도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 환경을 바꾼다는 것이... 사람이 새로운 환경에 들어가면 적응하게 된다. 그런 적응이 변화라고 말한다면 뭐라 말할 수 없겠으나... 나는 기본적으로 적응이라는 것은 참 무서운 단어라고 생각한다. 적응하다 순응하다... 그래서?

적응이란 그냥 살아남기 위한 기술이지, 살아가기 위한 기술이 아니다. 새로운 장소에 들어가서 그 장소에 적응하고, 새로운 시간대에 들어가서 그 시간에 적응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들과 적응하고... 그냥 새로운 장소, 시간, 사람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한 과정이 적응일 뿐이다. 적응을 통해서는 미래를 살아갈 기술을 얻을 수 없다. 미래를 회귀적으로 본다면 적응은 살아가는 기술일 수도 있다. 그러나 미래는 회귀적이지도 않고 선형적이지도 않고 어쩌면 연속적이지도 않다. 그렇기에 함수 y = f(x)에 특정값 x를 넣는다고 해서 확정된 y를 얻을 수 없다.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적응할 것이 아니라 개척해야 한다. 또 혁신이나 창조/파괴로 생각이 넘어가는 것같다.

적응을 통해서는 창조할 수 없다. 그냥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그것에 최적화될 뿐이다. 적응이 불확실성에 뭔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별도의 글을 적을 것같지가 않아서 그냥 이 글에 덧붙인다. '무시의 기술'이라는 제목의 글을 적을지도 모르겠지만.. 정보의 홍수에서 구글이나 트위터/페이스북 등의 다양하고 강력한 정보필터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세상의 수많은 정보필터 중에서 가장 강력한 정보필터는 '무시 Ignorance'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모든 정보를 수용할 이유가 없다. 필요없다면 그냥 무시해라. 어쩌면 필요하더라도 필요이상으로 정보를 흡수하려 노력하지 마라. 그냥 무시해라. 무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글을 적고 싶이서 시작했고 그렇게 글을 적고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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