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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의 시즌.

Gos&Op 2012.06.12 13: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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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로 시작하는 이육사의 청포도. 회사마다 시기는 조금 차이는 나겠지만 6월을 전후로 상반기 업무평가를 한다. 평가가 좋으면 인센티브를 받을 수도 있을지도 모르고 (내가 받아봤다고 해서 받았다고 말할 수도 없고, 한 번도 못 받아봤다고 해도 쪽팔려서 말할 수가 없는 그것...) 적어도 하반기 평가와 함께 내년 연봉을 결정하는 것이니 신경이 안 쓰인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 업무평가다. 해가 길어지면서 움추려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고 그리고 이 시기를 지나면 또 금새 까먹어버리는 것도 재미있는 현상 중에 하나.

업무평가에서 개인의 업무와 관련해서 자기평가를 하고 팀장이 또 부하직원을 평가하고 또 그 위에서 최종 컨펌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프로세스인 듯하다. 그리고 업무평가에서 동료평가라는 것이 꼭 끼어있다. 동료평가의 취지는 알겠는데 실제 회사생활에서 별로 무의미해보이는 거였다. 그런데 동료평가의 결과가 내 업무평가의 최종결과에 조금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것같다는...) 이 소리를 듣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 대부분 그럴 거라 짐작한다 -- '나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 동료평가 점수를 짜게 줘야하나?'였다.

나는 보통 동료평가에서 DK를 주는 경우가 아니라면 5.0만점에 4.5점 이상을 준다. (일단 모두 5점을 준 이후, 2~3개 정도를 4점으로 끼워맞춘다. 그리고 내가 그들을 (낮게) 평가할 자격이 없다.) 내가 마음이 후해서 점수를 잘 주는 것은 아니다. 사실 평가항목을 잘 이해를 못하겠다. 평가항목을 보면 Professional, Open Communication, Integrity, Creativity, Fun, Passion으로 이뤄져있다. 이걸 어떻게 평가하란 말인지 도통 이해를 할 수 없다. 그래서 높은 평가점수를 줄 수 밖에 없다. Professional은 뭘로 평가하지? 돈을 받은 만큼 일을 해주면 당연히 프로페셔널한 거 아닌가? Open Communication은? 얼굴에 '대화사절'이라고 붙여놓고 다니는 사람도 없고, 너는 내 경쟁상대기 때문에 내가 가진 정보를 줄 수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는데 그렇다면 다 기본적으로 오픈되었다고 봐야하는 거 아닌가? 뭔가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하고 개발하면 모두 Creative한 거 아닌가? 이 회사에서 재미가 없으면 그 사람은 벌써 나갔겠지. 그렇다면 아직 남아있다면 (자리가 높거나 진짜 고액연봉자가 아닌 이상에는) 그 사람의 Fun이나 Passion 점수는 높게 줘야하지 않을까? 특정인이 회사에서 Integrity가 없다면 그 사람은 HR에서 짤랐어야지 왜 그걸 동료들이 평가를 해야할까? 설령 어떤 직원이 회사의 요구조건을 맞추지 못하는 경우는 있다. 그렇다면 이는 그 사람을 채용한 사람들 (팀장, 본부장 및 HR 등)의 잘못이다. 왜 그들이 잘못한 것에 대한 수습을 직원들에게 떠넘기는지 모르겠다.

업무평가 직전에 올라온 유정식님의 '직원들 성과를 정규분포에 껴맞추지 마라'라는 글에 일부 공감이 간다. 특정 회사나 조직에 선발된 사람들이라면 능력이나 성향 등이 정규분포를 따르지 않는다. 그냥 랜덤샘플링을 한 것이 아니라, 미리 이력서 검토를 통해서 학력이나 경력을 조사했을 것이고, 인성면접을 이미 거쳤고, 때로는 구두/필기시험 등을 통해서 그 사람의 능력을 대략 파악했을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뽑힌 사람들이라면 깨끗한 Bell Curve를 그리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여담으로, 직원을 뽑을 때는 뭔가 대단한 일을 할 것처럼 -- 실제하는지는 모르겠으나 -- 큰 비전을 보여주면서, 정작 채용된 이후에는 전혀 그런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회사는 누가 평가해주나?라는 생각도 든다.

동료평가가 잘 된다면 원만한 조직을 만들 수 있기도 하다. 특정인의 단점 아닌 단점을 지적해주므로 그것을 깨닫고 고치는 과정은 필요하다. 그러나 개인의 성향, 즉 개성을 가지고 이 사람은 말을 잘 안하기 때문에 나쁜 사람, 저 사람은 말이 너무 거칠기 때문에 나쁜 사람, 저 사람은 너무 잘난체 나대기 때문에 나쁜 사람... 그래서 낮은 인사고과... 이건 아니다. 그리고 모두가 동등한 Peer인 네트워크인줄 알았는데, 어느날 한 사람은 평가자가 되고 다른 사람은 피평가자가 된다면 어떤 현상이 발생할까? 나는 너를 평가할 힘이 있는 사람이야라는 잠재의식이 생기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또는 이버에는 내가 너한테 점수를 잘 줬어라고 말하면서 혹시 다음에 내가 피평가자가 되면 그때 잘 봐줘라는 무언의 압력이 작용하지는 않을까?라는 우려도 된다. 아니면 어떤 경로로 평가결과가 유출되어, 나는 널 좋게 평가했는데 너 왜 그렇게 낮게 평가했니?라는 식의 다툼이 발생하지는 않을까?하는 우려도...

'나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 동료들에 대한 평가점수를 짜게줘야하나?'라는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는 순간, 함께 일하는 동료는 더 이상 동료가 아닌 그냥 경쟁자가 된다. 일은 함께 하고 성과를 내지만, 점수는 내가 더 높아야해라는 이기심이 발동하지 않을까? (위의 유정식님의 블로그 글 중에도 비슷한 취지의 글이 있었던 것같다.) 왜 명칭은 동료평가인데, 동료를 동료가 아닌 경쟁자로 인식하도록 강요하는 걸까? 적어도 인성에 대한 정성평가라면 줄세우기 위한 도구로 전락되면 안 된다. 간혹 진짜 개새끼같은 직원이 있다면 그는 조직에서 격리될 필요는 있다. 그런 측면에서 진짜 나쁜 놈을 걸러내기 위한 동료평가는 가능하겠지만, 실제 업무 성과 외적인 특정인의 인성과 개성을 고과성적의 잣대나 연봉/인센티브의 잣대로 삼는다는 것은 좀 아닌 것같다.

만약 동료평가라는 명칭이 '경쟁자 평가'로 바뀐다면 나도 더 냉철해질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러고 싶지 않다. 동료가 아닌 경쟁자로 한 조직에 남는다면 내가 이곳에 머무를 이유가 없다. 세상에 작은 것이라도 기여를 하기 위해서, 그러기 위해서 함께 할 동지를 얻기 위해서 이곳에 왔지, 매일 얼굴을 마주보는 이들과 경쟁해서 내가 조금이라도 더 얻어내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비현실적인 대답을 얻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쉬균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협력해야 한다. 협력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경쟁자가 아닌 동료가 되어야 한다. 동료를 동료가 아닌 경쟁자로 만드는 평가와 적용은 지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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