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03.29 우리 매일 보잖아요.
  2. 2012.06.29 소통과 소외 (2)

우리 매일 보잖아요.

Gos&Op 2013.03.29 09: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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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대학 선배를 만났습니다. 몇 해 전에 선배도 제주도에 잠시 살았었는데 그때는 한번도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주에 일이 있어서 내려온 김에 잠시 얼굴을 봤습니다. 30분 정도 가벼운 대화를 나누다가 선배가 다른 곳에 볼 일이 있어서 헤어졌습니다. 헤어지면서 또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라고 배웅 인사를 했는데, 선배는 '우리 매일 보잖아'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 '우리 페이스북 친군데..'라며 말을 끝냈습니다. 그렇게 선배는 떠났지만 마지막 말은 계속 머리 속에 남습니다.

기차나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인간들의 물리적 이동 거리가 길어졌습니다. 가능한 이동거리는 길어졌다지만 그래도 자주 만날 수는 없습니다. 그러던 것이 전신이 발달하고 전화가 보급되면서 적어도 목소리를 통한 심리적 거리는 단축되었습니다. 한동안 미국에 머물면서도 장거리 국제전화 (당시 인터넷 전화가 처음 보급되던 시절임)를 통해서 일주일에 한번꼴로 한국에 전화를 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런데 이제는 인터넷을 통한 심리적 거리가 더 짧아졌습니다. 페이스북에 사진이나 동영상을 올릴 수도 있고, 페이스타임과 같이 화상연결도 쉽게 됩니다. 그렇게 우리는 떨어져있지만 연결되어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떨어져있어서 또 그렇게 물리적으로 언젠가는 만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선배는 이미 페이스북을 통한 연결을 염두에 두고 계셨습니다. 나름 인터넷 회사에 다니고 IT트렌드에서 빠싹하다고 생각했는데, 저는 여전히 아날로그적 사고에 빠져있나 봅니다.

이렇게 떨어져있는 가족, 친지와 쉽게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 전화와 인터넷의 최대 장점입니다. 그런데 역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목소리와 디지털 신호의 교환으로 직접 마주보며 얘기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듭니다. 제주도에 나와있어서 교통비가 비싸다는 이유로 공향 집에 계신 부모님을 자주 찾아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냥 월요일 저녁에 짧은 전화통화가 유일합니다. 그렇게 연결되어있지만 접촉은 없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대학을 진학하면서 학교가 달라져서 이제 연락이 끊긴지 오랩니다. 대학 친구들도 모두 각자의 생활전선에 뛰어들었고 각자의 가정을 꾸려서 만날 기회도 거의 없어졌습니다. 인터넷에 가끔 올라오는 글이나 사진 이상의 연결은 끊어진지 오랩니다. 가끔 결혼 등의 소식만 이메일로 받습니다. 카톡 대화방에서 많은 수다가 이뤄지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저는 카톡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 수다에도 참석한지가 참 오래되었습니다. 옛 친구들은 그저 인터넷에서 연결되고, 저는 저 나름대로 현재 생활에서 부대끼는 동료들과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매일 보잖아'라는 그 선배의 말을 들으면서 세상 참 좋아졌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또 세상 왜 이렇게 각박해졌지라는 이중적인 생각이 듭니다. 이미 여러 기사나 칼럼들이 기술을 통한 연결과 기술을 통한 단절을 얘기합니다. 저도 그 혜택과 피해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맞아요. 우리 매일 보잖아요. 그래도 우리 좀 더 자주 만나요."

(2013.03.21 작성 / 2013.03.x29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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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소외

Gos&Op 2012.06.29 11: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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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페이스북에 회자되는 글이 있습니다. 바로 박원순 서울시장님의 글입니다. 아래와 같이 시작하는 글입니다. 전문은 링크를 참조하세요.

그저께 오후에 귀국한 저의 트위터에는 몇 개의 글이 내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봉천 12-1 주택재개발구역의 23가구에 강제철거가 어제 예정되어 충돌이 예상되고 용산참사의 악몽이 상기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어서 아침에 일어나 본 한겨레신문에는 이런 내용이 상세하게 기사화되어 있었습니다.

<후략>

박원순 서울시장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 전문링크

요약하자면 트위터를 통해서 강제철거소식을 듣고, 이를 막기 위해서 긴급조치를 취했다는 글입니다. 저는 이 사건 -- 강제철거와 긴급조치 -- 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이 사건의 시작, 즉 박원순 시장님이 이 사건을 인지한 일에 더 관심이 갑니다. 예전부터 비슷한 종류의 글을 적어보고 싶었지만, 그냥 생각만 있었지 (어쩌면 중간중간에 짧게 다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딱히 글을 적어야 겠다는 동기가 없었는데 더 이상 미룰 필요가 없을 듯해서 그냥 생각난 김에 글을 적습니다.

박원순 시장님은 강제철거 소식을 매스미디어가 아니라 트위터를 통해서 인지했다고 글첫머리에 밝히고 있습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의 IT/SNS 기술이 기존의 매스미디어의 역할을 대체해간다는 얘기는 오래 전부터 있었던 얘기였고, 그것의 허와실 등에 대한 논의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점점 시민들의 자발적인 저널리즘이 기존의 저널리즘의 빈틈을 많이 메우기 시작했고, 어떤 분야에서는 대중매체를 넘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영향력이 더 커질 거라는 점은 부인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제가 우려하는 사항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 스스로가 빠져버린 함정이 있습니다. 트위터는 누구에게나 오픈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인터넷은 누구에게나 접속가능하다지만 누구나 접속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가정에 인터넷망이 깔리고, 과반수 이상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어떤 정보에나 접근이 가능하다는 식의 주장이 넘쳐납니다. 전세계적으로 아직 인터넷 인구는 10억을 넘어서 20억까지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많이 잡아서 20억의 인구가 인터넷을 사용하더라도 여전히 30%를 밑도는 수치입니다. 대한민국의 트위터 인구가 1000만명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인구의 20%만이 트위터를 사용합니다. 나머지 80%의 사람들은 트위터를 통해서 박원순 시장님과 연결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주변의 누군가가 목격하고 트위터에 올리고, 많은 이들이 호응을 한다면 연결이 될 수도 있겠으나...)

소통의 시대에 소외를 말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합니다. 소통과 소외는 어쩌면 빛과 그림자로 보입니다. 일전에 '모든 연결은 단절이다'라는 글을 적었습니다. 특정 인들과의 소통이 강해질수록 다른 이들과의 교류가 약해질 수가 있다는 점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더 전에 IT 엘리티즘 또는 선지자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내가 트위터 헤비유저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수준으로 트위터를 사용하고 있을 거라는 그런 쉬운 착각에 빠져버립니다. 지금 부당한 일을 목격해서 이것을 트위터에 올리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호응을 얻을 거라는 그런 착각에 빠집니다. 물론, 지금 나를 팔로잉하는 5000명이 제 글을 전혀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자유롭게 글을 적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쉽게 소통할 거라고 믿고 있지만, 그것보다 더 쉽게 소외받고 있습니다. 그것보다는 내가 연결되었기 때문에 연결되지 않은 사람들의 존재를 자각하지 못합니다. 박원순 시장님은 자신의 타임라인에 올라온 일반인들이 트윗들을 훑어보면서 강제철거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좀더 특수화시켜서 누군가가 박시장님께 직접적으로 트위터 멘션/DM을 보내는 상황에서만 연결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만약 강제철거 대상자들이 전혀 트위터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면 박시장님이 그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처음부터 들었습니다. 세상에는 억욱한 사연을 가진 이들이 많습니다. 우연히 그 사연이 대중매체나 포털에 공개되면 사람들의 주목을 받습니다. 그러나 더 많고 많은 사연들은 그냥 그렇게 묻혀버립니다. 인터넷 세상, SNS 세상은 세상과 소통하는 세상이다라고 믿고 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착각의 늪. 만약 내가 억울한 사연을 경험하게 된다면 그게 대중의 이목을 끌 수 있을까?를 한 번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소통의 세상에서 소외를 생각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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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myahiko.tistory.com BlogIcon 무량수won 2012.06.30 11:5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확실히 그것들이 소통의 전부는 아닙니다. 은근히 그런 정보에 대해 소외된 사람들도 많구요. 인터넷 접속을 하는 것부터 연령대와 익숙함의 차이가 나타나고, 컴퓨터를 소유했는지와 그렇지 못했는지의 차이가 벌어지지요.

    또한 인터넷을 한다고 해도 해당 되는 것을 이용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가 나타나지요.

    하지만 이 이야기의 경우는 또 다른 신문고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좋은 모습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용산참사가 재현된 다음에나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수도 있잖아요. ^^

    • Favicon of http://bahnsville.tistory.com BlogIcon Bahniesta 2012.06.30 15:52 신고 Address Modify/Delete

      네 동의합니다.
      긍정적인 부분을 무시하려는 것은 아니고,
      그런 긍정적인 부분을 너무 과대평가해서 오류를 일으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