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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정치적인 글도, 정치를 논하는 글도 아니다.

최근에 터져나오는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많이 분노했다. 이 글의 초안을 적어놓고 어제는 일찍 잠들었는데 많은 새로운 이슈로 아침을 맞이했다. 워낙 전방위적이라서 어떤 이슈는 제대로 쫓아가기도 힘들다. 예전에는 관련자와 이슈가 비교적 단순해서 '한 놈만 패면 돼'였는데, 요즘은 이슈도 멀티모달 multi-modal이다. 어제 저녁에 문득 이화여대와 관련된 이슈에 대해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1년을 기다리지 못했을까? 편법으로라도 들어갔으면 제대로 하던지...) 그 이슈와 관련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니라, 그럴 수 밖에 없었던 (<< 이 표현은 좀 이상하다) 대한민국 사회가 안타까웠다. 그래서 글을 적었다.

정유라씨는 승마 국가대표다. (그녀가 어떻게 국가대표가 될 수 있었는가는 논외로 한다.) 국가대표라는 것은 어떤 기술이나 기능에서 그 나라에서 최상위에 들어간다는 걸 의미한다. (실제 실력이 최상위인지는 모르겠으나) 쉽게 말해서 기술이나 기능의 최고 명장인 셈이다. 그런 최고 명장이 대학에 들어가서 학위를 구걸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우리는 주변에서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죽으라 애를 쓰는 모습을 자주 본다. 왜 그래야만 하는 걸까? 간혹 대학의 운동부에 들어가기 위해서 형식적으로 입학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미 어떤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가졌음에도 학위를 위해서 굳이 대학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본다. 때로는 자신이 가진 능력과 무관한 학과로... 이미 최고의 프로그래밍/해킹 기술을 가진 청소년이 컴공과로 진학해서 4년동안 더 배운다고 뭐가 달라질까? (배경 이론 지식은 더 배우겠지만...) 이미 장인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대학에 왜 굳이 가야만 하는 걸까? 왜 학위가 없으면 그들의 능력을 제대로 인정하고 대접을 해주지 못하는 걸까? 메시나 호날두가 대학 입학했다는 얘기를 들어봤는가?

스포츠 선수들은 불확실성이 크다. 부상 등의 이유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탑 클래스가 아니어서 프로나 실업팀에 입단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10년을 넘게 운동만 했는데 어느 순간 더 이상 그 기술로 먹고 살지 못한다. 운좋게 프로/실업팀에 입단했더라도 30대 중반을 넘기면서 은퇴를 하면 그 후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스포츠만의 얘기는 아니다. 어떤 일을 10년 20년 넘게 해왔는데 빠르면 20대부터 늦어도 4~50대부터 더이상 그 일을 할 수가 없다. 그 이후의 삶은 보장돼있지 않다. 즉, 삶의 안전망이 없다는 거다. 소위 말하는 복지가 없는 대한민국이 참 안타깝다. 재능의 다양성으로 먹고 살지 못하는 대한민국이 안타깝다. 첼로 영재가 자라서 설 수 있는 무대가 없어지고, 때론 첼로 강사하는 것도 힘들다. (특정 직업은 그냥 예시다.) 많은 취미 생활에 가까운 기술을 가진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그것만으론 기본 생활 자체가 불가능하다. 결국 자신의 재능이 아닌 다른 길로 빠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가진 재능과 안 맞는 일에서 보람도 의욕도 얻을 수 없다.

유수의 유럽 유스팀들은 선수들에게 의무교육을 시킨다. 그걸 이수해야지 훈련에 참여할 수 있고, 훈련 시간도 제한한다. 아마추어나 세미프로팀에 소속된 선수가 다른 직업 교육을 받는 사례를 다큐에서 종종 본다. 예체능 등에 종사했던 이들에게 사회 안전망을 줄 수가 없다면 어릴 때부터 대안 교육을 함께 시켜줬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지 못하는 것이 참 안타깝다. 운동부나 연예인 지망생들이 수업을 빠지는 것이 당연시 돼는 사회에서 그들이 그 분야에서 실패하면 그 후의 삶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저 낙오자로 낙인찍을 뿐이다. 때론 좋은 미끼가 된다. 운동선수나 연예인이 주변의 감언이설에 넘어가서 사업을 시작해서 실패하거나 사기를 당한 얘기는 수도 없이 듣는다. 바로 아래에 현대 교육을 비판하겠지만 그런 비판받아 마땅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이들에게 현재 대한민국은 기회를 주지 않는 (또는 줄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개인적으로 이제 대학이나 학위가 필요없는 시대가 됐다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10년 20년 뒤에는 대학의 존재 이유가 사라질 거라 생각한다. 아주 특수한 몇 개의 대학은 남아서 다른 역할을 하겠지만, 대중을 위한 대학 또는 학교 시스템은 그 효용 가치를 다 했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학교는 산업화, 즉 규격화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 찍어내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물건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지원하는 역할에 필요한 것들이 현재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다. 많이 암기할수록 자신의 효용가치가 그만큼 오래 간다. 창의력의 시대라고 말하는데 여전히 찍어내기에 바쁘다. 다르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더욱이 인공지능과 로봇의 부상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지식의 종말을 고한다. 내가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강의를 열심히 듣고 시험을 잘 봐도 컴퓨터가 제시하는 답 이상을 내놓을 수가 없다. 설마 알파고를 벌써 잊은 것은 아니기를 바란다. 최고의 두뇌도 모든 가능성을 계산한 것을 이길 수는 없다. 시대 정신이 바뀌는데, 굳이 대학에 들어가겠다고 아등바등하는 것이 안타깝다.

최순실과 주변 인물들은 뭐 때문에 불법/편법을 다 동원해서 정유라를 대학에 밀어넣은 것일까? 이미 충분한 권력과 금력을 가졌을 그들이... 대학이라는 이너서클이 필요했던 것일까? 뭐가 됐든 지금의 불연속의 시대가 정유라라는 괴물을 낳았다. 그런 시대가 참 안타깝다. 지금 대한민국의 괴물들이 지배하는 나라다.

내 걱정부터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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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서구의 개인주의가 창의력의 원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전히 사실인지 아니면 그냥 신화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Pixar 스튜디오에는 화장실이 건물 중앙에 한 곳에만 있다고 합니다. 누구나 생리현상은 해결해야 하고, 그럴려면 중앙에 있는 화장실로 모여야 합니다. 그렇게 모이고 부딪히면서 서로 얘기를 하다보면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갈 것입니다. 때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토로하는 경우도 있을테고, 때로는 최근에 자신이 했던 프로젝트나 잘 된 일을 뽐내기도 할 것입니다. 그렇게 우연히 마주친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줄 사람과 대화하기도 하고, 또는 그런 이를 연결해주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연에 의한 창발을 기대하며 화장실은 하나만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빌딩 숲 사이로 점심시간이 되면 삼삼오오 무리를 지은 사람들이 몰려나와서 수다를 떨면서 식당으로 향합니다. 웃고 떠드는 사이에 픽사의 그것처럼 서로 시너지를 일으켜서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샘솟아날 것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음성지원이 될 것같다.) 이렇게 무리를 지은 사람들을 찬찬히 확인해보면 이미 평소에 친하게 지내거나 같이 일하고 있는, 그리고 많은 경우 같은 부서, 팀원들끼리인 경우가 많습니다. 구내 식당을 이용할 때도 보통 팀원들끼리 같이 내려와서 같이 식사를 합니다. 같이 내려와서 따로 앉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다양한 이유로 한두명이 따로 앉게 되면 괜히 미안해하는 듯합니다. 간혹 혼자 내려오면 가장 먼저 누구랑 같이 먹을지 친한 동료를 찾기에 바쁩니다. 식사나 다과 자리에서 업무 얘기보다는 우스개 소리만 하면서 식사가 빨리 끝나기만을 초조히 기다립니다.

이 두 사례에서 어쩌면 서양의 개인주의 풍토가 오히려 그들에게 창의력의 원동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평소에는 각자 흐트져서 생활하다가도 또 모여서 일해야할 때는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모습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미국에 잠시 머무르는 동안 — 소수 그룹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었지만 — 한국인 게스트연구자들끼리는 매번 식당에서 모여서 식사를 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습니다.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늘 비슷한 일상을 얘기합니다. 물론 그런 관계가 나중에 중차대한 일에서 다른 창발성과 다양한 연결에 기여하겠지만, 얼핏 봐서는 이질성이 모여서 새로운 동질성을 만들어낼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서양인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외향적인 성격의 소유자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TV나 영화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그냥 평소에는 각자 생활하다가도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긴 대화가 이어지는 모습을 봅니다. (물론 영화적 설정일 수도 있지만…)

끼리끼리만 모이다보니 그 무리에 속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자연스레 배타적이 될 수 밖에 없고, 또 그 그룹 내에서 생각과 시각의 동질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룹 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한 인식과 해결은 가능하지만, 외부의 생각이나 현상을 접할 기회가 줄어듭니다. 그러나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곳에서는 평소에는 이기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각자가 다양한 경험과 견해를 가지고 특정 문제가 발생했을 때 새로운 팀을 바로 구성할 수 있는 것같습니다. 끼리 문화에서 누군가를 새로 받아들이는 것이나 또 한명이 다른 그룹에 내보내게 되는 것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원래부터 개인으로 활동했으면 필요에 따라서 뭉치고 흩어지는데 별다른 지장이 없어 보입니다.

다양한 연결에 의한 우연한 아이디어의 창발이 곧 창의성입니다. 빛과 그림자는 늘 상존합니다. 공동체 문화가 공동체 내에서는 좋지만, 또 제주의 괴당과 비슷하게 공동체 외부와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면역학/유전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현상이 하나 있습니다. 유전적으로 비슷해지면 예측치 못한 돌연변이의 발생이 잦아지고, 특정 유전병으로 인해서 그 유전자 그룹 모두가 괴멸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중학교 때였나 고등학교 때 생물책에서 읽은 유전적으로 비슷해진 치타 무리에 대한 우려의 글이 여전히 머리에 생생합니다. 동질감 때문에 평소에는 공동체를 이루지만, 그 동질감을 파괴하는 새로운 병이 발생하면 모두가 파멸의 길에 이릅니다. 한 때 화려했던 문명들이 갑자기 사라진 것의 이유 중에 유전적 동질성이 가장 먼저 제기되는 것도 이때문입니다. 유럽인들에 의해서 정복되었던 아프리카나 아메리카의 원주민이 멸종된 것도 면역/유전병에 이유를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너무 깨끗하면 병에 더 잘 걸린다는 말도 비슷한 케이스입니다.

일국의 대통령이 창조경제라는 정체불명의 말을 만들어낼만큼 '창조성' '창의성'은 중요합니다. 순수한 한 사람의 노력이나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기반한 창조성도 있지만, 요즘에는 다양한 연결을 통한 창발적 창의성이 큰 힘을 발휩합니다. 다양한 생각, 다양한 견해, 다양한 경험을 가진 개인들이 모여서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같은 생각끼리는 처음에는 뭉치기는 쉽겠지만, 새로운 진보를 예상하기는 힘듭니다. 적어도 IT분야에서 미국 또는 실리콘밸리가 왜 앞서갈까?를 생각해보면서 어쩌면 개인주의가 오히려 창조성을 자극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이런 여담은 하면 나중에 꼬투리 잡히는데…) 지금 창조경제를 주장하는 무리들이 모든 국민들을 하나의 틀에 맞도록 컨트롤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절대 창조성이 발현될 수 없습니다. 조금만 다른 생각을 하면 그냥 '종북' 딱지를 붙이는 세상에서 다름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으며, 그 상상된 것을 겉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다름이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렇다고 말살시키는 것은… 그리고 이중잣대로 사회를 판단하는 것도 창조성에는 별로 좋지 않은 듯합니다. 자유를 외치면서 나의 자유와 너의 자유를 동시에 보장하지 않고, 오로지 나의 자유만을 감싸는 것은 잘못되었습니다. 규제를 철폐하겠다고는 하지만, 1%의 이득에 관련된 것만 해당되고 나머지 대다수가 불편해하는 것은 늘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민영화된 포스코의 회장으로 정권의 사람이 내정되(었다)는 소문/현상을 후세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줘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민영화가 결국 이득의 사유화라는 것을 보여줄 뿐입니다. 민영화 및 경쟁체계가 좋다면, 대통령 등의 권한도 민영화하고 두명 이상을 뽑아서 경쟁시키면 우리 나라가 더 좋아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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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축된 세상

Gos&Op 2013.11.11 09: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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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올렸던 숨은제주라는 이름으로 ‘제주+사진’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이제 겨우 킥오프 미팅만 한번 가졌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활동할지도 정하지 않았고 첫 출사도 다녀오지 않았지만, 앞으로 어떤 곳으로 사진 여행을 다닐지도 준비할 겸 여느 때처럼 오늘도 혼자서 길을 나섰습니다. 평소에 즐기던 곳이나 새로운 곳을 한 곳씩 방문하면서 갑자기 우리의 삶은 여러 측면에서 압축되어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압축'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저는 컴퓨터에서 파일을 압축하는 것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요즘 세대들은 몇 (십) 기가나 되는 USB 메모리나 클라우드 서비스를 바로 사용하기 때문에 파일 압축에 대한 니즈가 별로 없겠지만, 제 또래만 하더라도 몇 메가짜리 파일을 압축해서 플로피 디스크에 담고, 한장에 모두 담을 수 없으면 분할 압축했던 기억들이 다 있을 것입니다. ARJ나 RAR 파일을 압축해제하기 위해서 프로그램을 다운받아서 설치하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요즘은 단순히 여러 개의 파일을 하나로 묶기 위해서 압축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용량을 줄이기 위해서 압축하지는 않는 듯합니다.

새로 시작하는 ‘제주+사진’ 프로젝트는 제주에서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진 찍기에 좋은 장소를 발굴해서 소개해주는 것을 목적으로 둡니다. 많은 관광객들이 제주로 여행을 오지만, 2박3일 또는 3박4일 동안 짧은 시간동안 유명한 관광지나 리조트만 쭉 둘러보고 제주를 떠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요즘은 인터넷/블로그이 발달로 다양한 광광지나 맛집 등이 소개되어 다양성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주요 관광지 위주로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거나 기념품을 구입합니다. 그래서 그런 관광객들을 위해서 유명한 관광지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곳들을 소개시켜주고 알찬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한 목적입니다.

제주에 여행을 와서 차를 타고 주요 관광지만을 돌아다니고 나서 제주 여행을 다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공간적으로 압축된 여행을 하고 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주의 전체, 일상, 다양성 등이 아니라, 그저 잘 알려진 몇몇 곳들만 점프하면서 찍고 찍고 찍고하는 형태를 보입니다. 이제 제주 정도는 쉽게 여행다니는 시대가 되어서, 제주를 자주 방문하시는 분들도 특별히 다른 곳들을 둘러보는 것같지는 않습니다. 겨우 지난 번에 미처 가지 못했던 다른 유명한 곳을 방문하면 여행 목적을 달성한 듯합니다. 올레가 개발되면서 그나마 느리게 걷기 열풍이 생겼지만, 여전히 빠르게 주요 포인트만 공략합니다. 이것은 공간적으로 압축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일상에서도 집과 회사를 왕복하고, 간혹 여가가 생겨도 평소에 즐기던 장소/카페/식당만 주로 이용합니다. 느리게 일상을 즐기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공간적으로 압축되어있습니다.

시간 측면에서도 압축되어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효율성이나 계획성을 따지면서 모든 것을 정해진 시간에 처리하고, 정해진 루틴대로 생활합니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서 밥먹고 출근하고 8~9시간 회사에서 보내고 다시 퇴근하고 자고… 매일의 일상입니다. 단 하루도 조금의 변형이 없이 틀에 박혀있습니다. 주어진 시간 안에 최대한 집중해서 일을 끝내고, 또 일을 하고… 어쩌다 여유 시간이 발생하더라도 새로운 놀이거리를 찾지 못하고 할 일이 없나 안절부절합니다. 여행이나 휴가를 와서도 짧은 시간 내에 처음에 목표했던 모든 곳들을 다 둘러보고 다 먹어봐야지 직성이 풀리고, 그래야지만이 성공적인 여행이었다고 자평합니다. 시간의 느림이 없이 항상 바쁘게 생활하는 것은 시간적인 압축의 삶입니다.

공간과 시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 즉 사람 사이에서도 압축 현상이 있습니다. 요즘은 SNS나 인터넷 포털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대화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대화의 많은 부분은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입니다. 서로 알고 있는 사이가 아닌 경우에는, 대부분 유명인들의 이야기만을 듣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에는 현대인의 삶은 너무 바쁩니다. 그리고 정보과다에 따른 필터링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영향도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듣고, 또 그런 사람들만 찾아 나섭니다. 오프라인 미팅에서도 다야한 사람들을 만나기 보다는 게 중에서 가장 유명하거나 알아두면 좋을 것같은 사람들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입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과 집중인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효율성을 위해서 다양성을 포기합니다.

공간적으로도 압축되어있고 시간적으로도 압축되어있고 인간적으로도 압축되어있습니다. 많은 문제나 상황에서는 그런 압축이 최대의 효율성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다양성이 부재하고 여유가 없고 전체를 (대강이라도) 살피지 못하면 결국 불확실한,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탈이 날 수 밖에 없습니다. 길게 보면 다양성이 이깁니다. 아무리 압축 기술이 좋아지더라도 원본보다는 좋을 수 없습니다. MP3나 이미지 포맷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여유와 느림, 그리고 다양성으로 조금이라도 덜 압축된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 될 것입니다.

사진을 찍으러 다니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좋다의 정의는 생략합니다.) 당연히 좋은 눈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좋은 발을 가져야 합니다. 새로운 곳을 찾아가고 주변을 느리게 관찰하면서 걷지 않으면 새로운 곳, 새로운 것을 사진에 담을 수 없습니다. 알려진 곳에서 좋은 눈으로 예쁜 사진을 찍는 것도 중요하지만, 덜 알려진 곳에서 새로운 사진을 찍는 것도 필요합니다. 압축이 해제된 삶이란 그렇게 새로운 곳으로 모험을 떠나고 천천히 주변의 모든 것을 누리는 것입니다. 효율성이라는 좋은 눈도 좋지만, 다양성이라는 근면한 발이 미래에는 더 필요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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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zion437.tistory.com BlogIcon 엑수시아 2013.11.11 09:24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사람 사이의 압축 현상.. 많은 공감이 갑니다. 솔직히 인터넷으로 인해 잃어버린게 많다고 생각하는 1인입니다.

    • Favicon of http://bahnsville.tistory.com BlogIcon Bahniesta 2013.11.11 09:34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저도 글은 이렇게 적었지만 (소수만을 선별적으로 접촉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경우도 많긴 합니다.

다양성과 면역력

Gos&Op 2013.02.27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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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9일, 마의 41화에서는 두창 (천연두)에 걸린 숙휘공주에 대한 이야기가 전파를 탔다. 급속히 전염되는 치사률 높은 두창은 좀처럼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첫 환자의 병증이 호전되는 것에서 힌트를 얻어서 일단 가장 시급한 발열부터 잡기로 한다. 발열을 잡아야 된다는 얘기를 하는 중에 민초들은 오랜 기근으로 허약해져서 독한 약을 감당할 수가 없다고 말하고, 숙휘공주는 오랫동안 궁궐이라는 안전한 보호막 속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다양한 병에 대한 면역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현재 병증이 호전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온실 안 화초라는 표현이 있듯이 항상 격리되어 생활하다보면 일반인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에도 쉽게 상처를 받게 된다. 흙 위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더 건강하고, 모진 풍파를 맞은 나무들이 더 오래 살아남는다. 숙휘공주는 안전한 궁궐이 오히려 화가 된 경우다.

이 에피스도를 보면서 가장 먼저 갈라파고스가 생각났다. 흔히 일본을 IT기술의 갈라파고스라고 말하곤 했고, 최근에는 대한민국이 갈라파고스가 되어간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다. 갈라파고스는 잘 알려졌듯이 남아메리카에 있는 외딴 섬으로써 다윈이 이곳에 격리되어 독립적으로 진화한 동식물들을 관찰한 이후에 <종의 기원>을 집필하고 진화론을 완성시킬 수가 있었다. 그렇게 외부와 격리된 곳에서 독자적인 진화가 발생했듯이, IT기술도 외부의 기술이나 트렌드가 유입되지 않고 독자적인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외부/세계와 전혀 다른 환경이 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갈라파고스에 비유한다. 일본의 독보적인 첨단기술이 시간이 흐른 후에 오히려 독이 된 것을 잘 알고 있다. NTT 도코모로 대표되는 독자적인 모바일환경이 현재의 스마트폰환경과 격리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대한민국에서는 조금 다른 이유 -- 잘못된 규제 -- 로 갈라파고스가 되어간다고 많이 경고한다.

갈라파고스는 일종의 순수혈통주의와도 닮았다. 백인우월주의라든가 게르만민족주의같은 것이 예다. 유럽에서는 파쇼나 나치가 순혈주의를 내세워서 홀로코스트로 대변되는 비극을 만들어냈고, 미국에서는 KKK로 알려진 인종청소, 남북전쟁 등의 어두운 역사가 있다. 일본의 망상적인 천황주의도 아시아 근대사에 대못을 박은 경우다. 대한민국의 역사에서도 순혈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진골성골로 알려진 신라의 골품제도라든가 특정 성씨에 의해서 통치가 대물림되는 왕족도 일종의 순혈주의이고, 또 사농공상으로 구분되는 양천의 구분도 일종의 순혈주의의 형태다. 인도의 카스트를 굳이 예로 들 필요가 없이 세계 곳곳에는 이런 순혈주의가 판을 친다. 그러나 고인 물은 섞는다는 말이 있듯이 순혈주의가 사회를 암흑기로 만든 것을 우리는 목격했다. 앞서 말했던 모든 순혈주의의 결과는 전쟁이나 패망, 사회적 위화감 및 긴장 조성으로 끝을 맺었다.

특정 기업 내에서의 순혈주의도 경계해야 한다. 과거의 개국공신과 같이 각 기업마다 창업공신들이 있다. 회사가 성장하다보면 창업자의 비전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창업공신들에 의해서 너무 좌지우지되는 모습을 자주 본다. 더이상 기업에 발전적 에너지를 공급하지 못하는 창업공신들이 즐비하다. 개국공신들을 쉽게 내치지 못하듯이 기업에서도 창업공신들을 내치지 못한다. 때로는 3대 4대를 거치면서 창업자의 자손들이 실권을 휘두르는 경우를 많이 본다. 아니,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여전히 창업자의 일가에 의해서 경영되고 있다. 물론 포드의 사례에서 보듯이 전문경영인보다는 창업자의 후손들이 더 책임경영을 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시스템이 잘 갖춰진 미국의 얘기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순혈주의는 폐착이 될 것이다. 그리고 혼맥이라 알려진 그들만의 리그도 아직은 그들에게 든든한 방패막, 성벽을 제공해주고 있지만, 결국은 그 성안에 갇혀버리는 신세가 될 것이 뻔하다.

평소에 적당히 더러운 것을 경험하지 못했던 숙휘공주가 면역력이 약해져서 전염병에 쉽게 걸렸듯이, 갈라파고스나 오스트레일리아의 동식물들이 대륙과는 별개로 진화되었듯이, 일본이 기술외톨이가 되었듯이, 전쟁과 내분으로 격화된 각종 순혈국가들의 운명에서 보듯이… 결국 순수만을 내세우다보면 다양성이 부족해진다. 처음에는 특화가 진화의 정수처럼 보인다. 그러나 결국에는 다양성이 이긴다. 근친 간의 혼례를 막는 이유는 유전자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근친교배를 통해서 순수, 우수혈통을 만들어내는 것이 맞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유전자가 획일화된 후에, 특정 유전병에 취약함이 발견되고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 전체 일족이 파멸에 이른다. 잡종교배를 통해서 유전자가 분산되면 열성유전도 생겨난다. 그러나 다양성 때문에 특정 종이 병에 취약하더라도 다른 수많은 종들은 여전히 살아남는다.

순혈주의는 엘리트의식과 배타주의와 연결되어 있다. 백인우월주의가 백인은 더 우수하다는 그런 엘리트의식에서 시작되었고 중세의 십자군전쟁을 포함한 많은 식민개척이 미개인들을 교화시킨다는 명목하에 자행되었고 일본의 천황의 군대도 그렇다. 그렇기에 그들은 카미카제를 감행할 수 있었다. 일부 과격 이슬람들의 자살폭탄도 나는 신에게 돌아간다는 그런 잘못된 세계관에서 비롯되었다. 흑인 노예제가 당연시 되었고 양반은 천민을 막 부려도 되고 고용주는 노동자를 부속품처럼 사용해도 된다는 그런 저변에 깔린 의식이 나는 너보다 우수하다는 그런 우월주의의 결과가 아니겠는가? 오랜 시달림을 받았던 백의 민족 -- 스스로 백의 민족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엘리트의식의 결과다 -- 이 지금은 제3세계의 노동자들에게 폭압을 가하는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다. 그런 엘리트주의는 열성그룹에 대한 배타성을 내비친다. 나는 우수하고 너는 열등하다는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너는 내 곁에 올 수 없다는 그런 배타성으로 표출된다. 기술업계에서 나타나는 NIH현상, 즉 Not Invented Here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가 된다. 우리가 최고인데 어디서 열등한 인재 또는 기술이 투입되는가?라는 그런 저급한 생각이다. 일본의 갈라파고스도 최첨단 일본이 저급한 미제문화나 아시아문화를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비극이다.

다름이 열등함으로 표현되는 사회분위기는 그 사회를 좀먹게 된다. 이너서클로 표현되는 그런 집단의식이 과거 나치나 파쇼와 다를 바가 없다. 너는 다르고 새로우니 우리에게 활력을 줄 거야라는 그런 생각보다 너는 열등하고 또라이니 우리에게 해를 끼칠 거야라는 그런 인식이 강해지면 결국 그룹의 순수성을 따지게 되고 우리가 최고라는 엘리트의식이 태어나고 그러니 너희는 우리와 어울릴 수 없다는 그런 배타성이 발로된다. 이너서클이 아웃사이더들과 적절한 교류가 있을 때 더 강해진다. 다름, 즉 다양함은 깨달음의 원천이고 창발성의 기폭제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다름에서 시작해서 같음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같음에서 시작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다름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러면 너와 나는 안 어울려라는 생각이 형성된다. 이질성은 결국 동질성을 향한 첫 걸음이다.

NIH 때문에 실패했던 많은 사례들도 있지만 NIH를 극복해서 새로운 시대의 조류를 만들어낸 케이스도 많이 본다. 대표적으로 애플의 마우스나 GUI개발 일화이고, P&G의 C&D 전략이 그렇다. 많은 기업들이 M&A를 실패하는 이유가 단지 승자의 저주 때문만은 아니다. NIH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기업의 인수합병은 기업과 기업의 물리적 결합 이전에 사람과 사람의 교감과 문화와 문화의 화학적 결합이 기저에 있다. 그러나 많은 사례에서 그런 보이지 않는 역학은 무시하고 단지 보이는 기술이나 제품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인수한 기술이 시간이 흘러 결국 우리 회사와 맞지 않음이 판명나면 결국 실패한 인수합병인 것이다. 또 피인수자들도 결국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새로운 도전을 찾아서 떠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인수합병에서도 다양성의 포용이 그래서 중요하다. 정과 반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합에 이르는 것이 아니다. 그냥 결과로써의 합이라면 언제든지 존재하지만 양의 합이라는 보장이 없다. 오늘날의 오픈소스 환경 및 최근의 스타트업들은 애초에 NIH 장벽을 무너뜨린 것같다.

아직 이 글의 결론에 이르지 못했지만 글을 적다보니 너무 많은 생각이 떠올라서 글을 잇기가 힘들다. 드라마 에피소드에서 시작한 생각/글이 너무 길어져서 내용이 중구난방이다. 재미있는 생각거리가 많으니 나중에 더 자세히, 세부 토픽별로 글을 적어봐야겠다. ... 글을 공개하기 전에 비슷한 글 (순혈의 함정 - 유전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기업의 경영 그리고 스타트업 (2/21), 당신이 혁신적일 수 없는 이유 (2/22))이 올라와서 공유한다.

오늘은 여기서 끝.

(2013.02.20 작성 / 2013.02.27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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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낚시다. 이 글에서 특정 도서의 이름은 전혀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트위터를 통해서 요청을 받았다. 대학생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들이 있나요? 작년 3월에 제 생각을 바꿔준 책 7권을 선정해서 글로 적은 적이 있다. (참고. 생각을 바꿔준 몇 권의 책) 내가 이렇게 몇 권의 기억남는 책을 선정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나의 관점과 경험에 맞는 책을 뽑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즉, 누구에게 추천해주기 위해서 선정한 것이 아니라, 그냥 내 얘기를 하기 위해서 선정했다. 그러나 누군가를 대상으로 책을 추천해주는 것은 나의 관점뿐만 아니라 추천받는 이의 관심사도 고려해서 책을 선택해야 한다. 더우기 대학생이라는 다양한 무리를 위한 책을 선정에는 더 어렵다. 그래서 나는 특정 책을 선정하지 않으려 한다. 각자의 관심사와 경험에 맞는 책을 선택해야지, 누군가가 던저준 책은 나중에 별로 기억에 남지도 않는다. 간혹 불후의 명저가 있어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경우는 있지만, 그런 책이라면 이미 모두가 알고 있을 법하다. (적다보니 그냥 ~하다체가 되어 따로 고치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신이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를 선정하는 방법에 대한 글을 적으려 한다.

지식 또는 즐거움
책을 선택할 때는 적어도 -- 책의 종류와 무관하게 -- 그 책을 통해서 지식의 폭을 확장시키고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거나 또는 인생의 즐거움과 다양함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인가?를 물어봐야 한다. 당연히 이 둘을 모두 충족시키는 재미있으면서 인사이트를 주는 책이면 더 좋다. 독서가 단순히 시간 떼우기의 역할을 한다면 그냥 수동적으로 TV를 보는 것이 더 낫다. 나도 예전에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그냥 독서라고 대답했던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한심한 대답이었다. 인생에 도움을 주는 즉, 지식을 주거나 즐거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떼우기 위해서 독서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시간낭비다. (간혹 시간을 떼우는 것 자체가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겠지만) 독서는 능동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독서가 간접 경험이 된다. 글 속의 주인공과 감정이 동화되거나 글쓴이와 지식이 동조 -- 동의가 아님 -- 되어야 한다. 그런 감흥이 없는 책은 읽지 않는 것이 좋다. 물론 이미 구입한 책이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꾸역꾸역 읽어나가는 내 모습이 한심할 때도 간혹 있다.

진실은 어디에나
어떤 특정 책이 아니라 모든 책을 읽어야 한다. 물론 그 책 속에 숨어있는 진실을 찾아내고 인사이트를 얻어야 한다. 요즘 신문기사들을 보면 진실을 교묘히 숨기고 왜곡된 사실/의견을 전달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책도 마찬가지다. 책의 내용이 모두 진실일 수는 없다. 그렇기에 어떤 책을 읽더라도 그 속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의심하면서 읽어야 한다. 그렇게 의심하고 고민하면서 책을 읽으면 그 속에 숨은 의미와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늘 주의해야 한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추천해준 어떤 책을 그냥 좋겠지 싶어서 의미없이 꾸역꾸역 읽어나가는 것보다는 손에 잡히는 어떤 책이라도 능동적으로 읽어서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더 낫다. 그렇게 발견한 진실/거짓에서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고 관점을 확장해나가면 된다. 좋은 책은 좋은 독자를 통해서 만들어진다.

안목은 투자다.
자신의 돈과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면 좋은 책을 얻을 수 없다. 많은 책을 읽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분야나 책을 찾아나서야 한다. 단지 전문가가 추천해줬다고 해서 무턱대고 읽는 것은 제발 피했으면 한다. 책의 표지에 적힌 서평은 대부분 쓰레기다. 그 서평대로 였다면 천지가 몇 번이나 개벽했을 거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책의 초반에 나오는 추천사 --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 적었더라도 -- 는 읽지 않는다. 책을 고르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다양한 책을 구입해서 읽어봐야 한다. 그래야 자신만의 필터링 규칙 또는 안목이 생긴다. 자기 돈을 들려서 책을 구입해야 책값이 비싸고 아까운 것을 알게 되고 (한정된 자원 내에서) 더 좋은 책을 선택하기 위해서 노력하게 된다. 경험상 그저 주어진 책은 잘 읽지 않는다. 책이 읽혀지지 않으면 그 속에 보배가 들어있어도 내 것이 될 수가 없다. 시간도 그렇다. 아깝다는 것을 인지해야지 어떤 책을 잡더라도 그 속의 알맹이를 꺼내기 위해서 악착같아진다. (정 아닌 책은 빨리 버리는 능력도 생긴다.) 그렇게 구축한 필터링 규칙으로 이제 좋은 책들을 선정해서 읽어나가면 마구잡이식으로 읽을 때보다 더 재미있고 많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필터링 규칙을 가졌다고 해도 3~40%이상 성공하지는 못한다. (지난 1년간 읽은 도서)

독서도 개성이다.
서두에도 말했지만 책 추천이 어려운 것은 나의 관점도 있지만 상대의 관심사도 충족시켜줘야돼기 때문이라고 했다. 좋은 책 한권이 모두에게 유용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능동적으로 읽는 방법을 습득하고, 또 자신만의 안목을 키워서 스스로 책을 찾아(내)서 읽어라고 조언을 해주는 거다. 어느 유명인이 추천해줬다고 또는 그냥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 해서 무조건 구입해서 읽는 것은 피했으면 좋겠다. 물론 전문가가 추천해주거나 베스트셀러에 올라왔으면 실패할 확률은 그만큼 낮다. 그러나 그런 전문가 또는 일반론이 내게 꼭 들어맞는 것이 아니다. 집단지성과 개인화는 항상 상존한다. 집단지성, 일반론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의 성향이나 환경에 맞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좋은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아직 독서 성향이 고정되지 않은 대학생들이라면 전문성보다는 다양성을 취하라고 충고해주고 싶다. 그런 후에 자신의 흥미, 전공, 업무, 상황에 맞춰서 그 폭을 좁혀서 전문성을 키워도 문제가 없다. 청소년들이라면 양서를 모아서 추천해줄 수도 있지만, 대학생들에게는 기성 사고로 그들의 사고영역을 제한하고 싶지도 않고 이제 그들 스스로가 독서와 생각의 폭을 넓혀서 자신의 길을 정할 때가 되었다. 사고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다양한 (직간접) 경험이 중요하고 그렇기에 추천 도서를 특정하고 싶지가 않다. 나중에 다른 분야로 진출하더라도 젊었을 때의 다양한 독서경험이 새로운 분야를 찾는데도 도움이 될 거다. 처음부터 한 우물만 파고 들어가다보면 다른 우물을 팔 엄두도 못 낸다. 힘이 있을 때 이곳저곳 뚫어보는 것도 경험이다. 어떤 기준으로 어떤 책을 선택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항상 책은 옆에 끼고 살았으면 좋겠다. 비록 시간 떼우기 용이 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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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olarhalfbreed.tistory.com BlogIcon ludensk 2013.01.16 11:0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대학생인데 낚였습니다.(...)
    아니 그것도 그거지만 대학생들이 요새 방학이라 더 바빠요;; 제가 좀 특수하게 철이 없어서 집에서 잉여짓하고있는것 뿐이죠(??)

    저는 적어주신 내용에 다 공감합니다. 그래도 사람들은(대학생도 포함입니다) 베스트셀러만 찾는다는게 함정이죠ㅠㅠ

다음의 길

Gos&Op 2012.11.19 1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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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회자되었던 '만년 2위 다음의 설움'이라는 글을 읽고 글을 하나 적고 싶었는데,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은 많았지만 글로 적기에는 미처 준비가 덜 되어 글로 표현하는 것은 그만 뒀다. 같은 날 올라온 '네이버의 차세대 검색 코끼리 프로젝트'라는 글을 읽고도 글을 하나 적어야 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괜히 오해를 살 것같고 '너네나 잘 하세요'라는 피드백을 받을 것같아서 또 그만 뒀다. 그외에 여러 글/기사들을 보면서 글을 적어야겠다는 마음을 자주 먹는데 매번 글을 적지는 못한다. 그 모든 반응글을 요약하자면 '글은 잘 적었는데 알맹이는 없네'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최근에 IT관련 재미있는 글들이 별로 없어서 심심했는데 그래도 재미있는 글이라도 발견했으니 다행이긴 하다. 그래도 알맹이가 없는 것은 없다고 말해줘야하지 않겠는가. 1년에 한번 정도는 회사/다음에 대해서 심하게 비판하고 나름의 비전에 대한 글을 적고 있다. 보통 연말이나 연초에 글을 적는데 올해도 마무리하면서 글을 하나 적어야 하나?를 계속 고민중이다. 사실 9월 말에 내부인을 위한 글을 한 번 적었기에 (참고. 합창성의 세계로 나아가라.) 올해는 그냥 조용히 넘어갈까?도 고민중이다.

그런데 주말에 봤던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과 어제 이슈를 모았던 케이팝스타의 심사진들 (케이팝스타는 보지 않음)을 보면서 이들에게서 얻은 교훈이 회사에 도움이 될 것같아서 글을 적어야 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오후 내내 혼자서 나름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었지만 (내년 상반기 또는 1년 동안 회사에서 무슨 일에 전념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그 고민에 대한 좋은 답은 얻지 못하고 이 글을 어떻게 적어야 할까?에 대한 생각만 계속 머리 속을 헤집고 다녔다. 그래서 업무 시간이 끝남과 동시에 이렇게 글을 적는다.

나에게 <무한도전>은 토요일 그 자체다. 오후 6시 전에 귀가하지 못할 것같으면 집을 나가지 않을 때도 있다. 몇 년째 그렇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상반기의 파업 중에는 나도 다른 토요일을 경험할 수도 있었다.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MBC에서 무한도전을 계속 본다는 것은 편치만은 않다. 지난 주말에 있있던 '못친소 페스티벌'은 단순히 재미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많은 회사들에게 영감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바로 무한도전이 갖는 아이디어 기획력과 실행력을 배워야 한다. 파업 기간 중에 돈독해진 멤버들의 무한 이기심을 되살리기 위해서 준비한 '네가 가라 하와이' 특집에서 정형돈과 유재석 사이에 오간 외모논쟁에서 시작된 것이 '못친소 페스티벌'이다. 무한도전이라는 예능의 특성상 정해진 포맷이 없이 매주 다른 이야기를 펼칠 수 있기에 가능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무한도전이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연히 흘러가는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고, 그 얘기를 다른 모든 멤버들이 모인 자리에서 다시 얘기를 하면서 하나의 아이디어로 발전시키고, 또 그런 아이디어를 그저 아이디어 수준에 놓아두지 않고 페스티벌이라는 이색적인 이벤트로 발전시켜 실행시키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우연이 만들어준 에피소드가 시청자들이 배꼽을 뽑았다. 그건 우연을 그냥 우연으로 남겨놓지 않고, 그걸 현실화시키는 무한도전의 기획력과 실행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하홍철대결이나 알래스카특집 등을 확인해보라.) 인터넷의 등장 이후, 그리고 최근에는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로 많은 서비스/회사들이 등장한다. 많은 것들이 성공보다는 실패로 귀결된다. 처음부터 대박 아이템만을 쫓으면서 만들어낸 많은 서비스들이 결국은 실패하는 것을 자주 본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도 그렇다. 그렇기에 서론의 '만년 2위'라는 그런 분석이 나온다.  최근 <일밤>에서 많은 프로그램들이 나왔지만 2~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모두 조기종영되는 것을 봤다. 어찌 그리 다음 그리고 많은 한국기업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지... 지난 못친소 페스티벌에서 보여준 무한도전의 기획력과 실행력에서 힌트를 얻어야 한다.

오늘 SM주가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기사를 읽으면서 한국 연예계/음악계의 3대 기획사에 생각이 미쳤다. 보통 하나의 산업 분야에서 1등이 50~70%를 먹고, 2등이 2~30%를 먹고, 나머지가 합쳐서 1~20%정도를 먹는다. 이동통신에서 SK, KT, U+의 시장비율이 그렇고, 인터넷 포털에서 네이버, 다음, 네이트 등이 그렇고, 전자에서 삼성, LG, 기타가 그렇다. 그 외에 많은 산업에서 1등과 2등과 3등 이하에서 이런 비율로 시장을 나눠갔는다. 그런데 음반기획사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SM, JYP, YG가 대형기획사이지만 이들이 5:3:2로 전체 시장을 나눠갖지 않았다. 이들 3대 기획사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기획사들이 나름의 성과 (인기있는 아이돌가수들)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들 3대 기획사 중에 어느 한 기획사가 다른 기획사보다 3~4배 규모가 크다고 말할 수도 없다. 왜 음반산업은 다른 산업과 다른 양상을 보일까?를 고민하게 된다. 최근에 아이돌 (및 댄스)를 중심으로 음악시장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이런 시장에서 SM, YG, JYP가 주요 플레이어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같은 아이돌가수를 양산하고 있지만, 이들 기획사들은 내세우는 스타일이 모두 다르다. 아이돌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3대 기획사를 묶기에는 (회사 및 소속 가수들의) 색깔이 너무 다르다. 이런 차별화가 음반시장에서 3사가 고르게 점유률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아닐까 생각한다. 네이버와 다음의 사업영역이 별로 차이가 없다. 이통사들의 사업영역이 다르지 않다. 핸드폰이나 가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음반시장에서는 같은 듯지만 고유의 나름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일종의 창조적 파괴다. 다양성이 상실된 영역에서는 서로 1등, 2등, 3등으로 규모의 경쟁을 펼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다양성이 인정되는 곳에서는 각자가 각자의 영역에서 1등이다. 이들은 경쟁관계이면서도 서로 보완관계가 된다. '군무'에 능한 기획사에서 굳이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랩'을 잘 하는 가수를 키우려고 하지 않고, 그냥 그런 가수는 '랩'을 전문으로 하는 기획사에 맡겨버리고 자기들은 더 나은 군무/댄스를 개발해서 차별화/전문화를 하면 된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에서 왜 YG는 자사의 많은 댄서/가수들을 놔두고 타기획사의 현아를 뮤직비디오/음악에 참여시켰나?라는 의문을 표하는 것을 봤다. 그냥 타기획사의 가수더라도 현재 프로젝트에 가장 적합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다른 영역에서 전문화/차별화를 가져야 한다. 그러면 극단의 치킨게임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고 공생할 수도 있다. 그리고 더 큰 시장이 만들어진다. 모두가 SM과 같은 영역에 욕심을 부렸다면, 아마도 지금 한국의 (아이돌) 음악시장은 훨씬 작았을 거다.

내가 이 회사 (다음)을 비판하는 주요 내용이 위의 사례에서 잘 나타나있다. 왜 다음은 만년 2위이고 그래서 설움을 겪어야 하냐고? 왜 다음은 네이버와 같이 차세대 검색에 대해서 고민을 하지 않고 있냐고? 왜 주가가 그렇게 반토막 나도록 뭘 하고 있었냐고? 그들이 가진 장점을 잘 모르고 또 강점을 잘못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수평구조의 장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다양한 실험을 해가면서 우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야 하는데, 그저 1위 기업인 네이버의 꽁무니만 쳐다보고 있으니 스스로 실험해서 새로운 길을 만들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된 기획력이 생길 수도 없고, 또 늘 실패하다보니 실행력도 무뎌졌다. 예전에 1위였던 한메일, 카페가 네이버에 밀린지가 오래고, 또 최근에 내놓은 서비스들이 다른 기업들에 밀리고 있다. 다음만의 컨셉을 가지고 다음의 서비스를 만들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늘 하게 된다. 트위터와 미투데이가 있는데 굳이 또 하나의 단문서비스인 요즘을 만들 것이 아니라, 그럴 바에는 국내에는 없는 텀블러/포스터러스처럼 중문/미니블로그를 만들어서 더 쉽게 퍼블리슁하고 모바일에서도 최적화된 서비스를 만들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초기에 주소록 기능만 가진 마이피플을 (빨리) 출시하고, 이후에 메시징, 무료통화 등을 순차적으로 업그레이드를 했다면 지금 카톡과의 싸움이 어땠을까?라는 생각한다. 우연에서 얻은 다양한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이미 공고해진 시장에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짓을 반복하고 있는 모습이 늘 안타깝다. 그리고 지금 다음은 대표서비스가 없다. 파란색 위에 녹색을 덧칠하면 일반 유저들이 다음과 네이버를 구분할 수 있을까?

물론 나도 잘 안다. 이렇게 공자왈 맹자왈 훈수를 두는 것은 쉽다고... 그리고 나도 어떤 서비스를 내놔야지 지금 바로 먹힐 수 있을지 또는 앞으로 5년 10년을 대표서비스로 키워갈 수 있을지에 대한 아이디어도 없다. 당장 내가 내년에 어떤 일을 할지에 대한 아이디어도 없어서 하루종일 고민했는데, 어찌 일개 사원따위가 회사 전체의 먹거리를 만들어내겠는가? 그러나 위의 '합창성의 세계로 나아가라'의 글에서처럼 회사 전체가 머리를 맞대고 모여서 아이디어를 좀 만들어냈으면 좋겠다. 경영진들만 늘상 모여서 이런 저런 슬로건만 만들어내면서 지난 몇년을 허비해버리지 않았는가? 그렇게 만들어낸 핵심사업영역도 서비스와 기술이 혼합되어 밑에 사원들은 진정 자신들이 뭘 해야하는지에 대한 이해도 하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사내 게시판에 다양한 재미있는 서비스 아이디어들이 끊임없이 올라오지만, 그것들이 실현되는 걸 제대로 보지 못했다. 처음 한두번 그렇게 아이디어가 무시되면 더 이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려 노력을 하지도 않고 또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굳이 공유하려들지도 않는다. 그렇게 직원들은 무기력에 익숙해진다. 그럴수록 회사는 더욱 수렁에 빠져든다. ... 글을 적으면 적을수록 그냥 욕하고 싶어지니, 여기서 그만.

말미에 헛소리를 길게 적었지만 "우연에서 힌트를 얻어 기획, 실행할 수 있는 힘을 갖고, 같은 시장이지만 다른 경쟁을 하는 그런 차별성/전문성을 키워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내가 지금 다음에 다니고 있으니 '다음'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어쩌면 당신 회사의 모습이 아닌가요?

Imagine Impossible Do Poss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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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처음 이 글을 구상했을 때 넣고 싶었던 내용이 생각나서 추가합니다.

며칠 전에 우연히 '한국 자영업이 망하는 이유'라는 그림을 봤습니다. (링크참조) 그림은 '피리부는 사나이'를 패러디한 것입니다. 2001년에는 피리부는 사나이가 PC방을 차려서 잘 되니 나머지들이 죄다 PC방을 창업하고, 2002년에는 치킨집을, 2009년에는 커피/카페를, 2011년에는 떡볶이 분식사업을, 2012년에는 닭강정업을 따라 하는 패러디 그림입니다. 하나가 잘 되니 그 소문을 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같은 업종에 뛰어들어서 시장이 포화되고, 결국 손님이 줄어들어 모두가 망해버린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그리고 다른 그림은 (원래는 따로 봤던 그림인데 위의 블로그에는 둘이 함께 포함되어있습니다.) 외국에서는 한 사람이 둥근 구를 만들면 다른 사람은 피라미드를 만들어서 누가 잘되는지 경쟁을 해보는데, 한국에서는 한 사람이 구를 만들어서 잘 되면 다른 사람도 구를 만들고, 또 그 사람도 잘 되면 또 다른 사람들도 획일적으로 구를 만들어서 경쟁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위의 SM/JYP/YG 기획사 얘기와 함께 이 에피소드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글을 적다보니 미처 글/그림을 넣지 못했습니다. 또, 싸이의 강남스타일 패러디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재미있기 때문에 따라하고 패러디 동영상을 찍을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개인이 인기를 끌면 TV에서는 그 사람의 모습밖에 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추가한 직후에 페이스북에 올라온 기사도 있습니다. '저예산 독립영화 58편 상영횟수, 광해의 25%뿐'이라는 기사입니다. 획일화 또는 다양성의 실종에 대한 좋은/나쁜 예가 될 듯합니다. 이러다가 대한민국의 모든 산업은 다 망합니다. 다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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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olarhalfbreed.tistory.com BlogIcon ludensk 2012.11.20 00:10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다음에서 텀블러나 posterous같은 중문블로그라... 괜찮은데요...!+_+
    제 주변에 IT쪽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텀블러를 쓰는걸 보면서 많이 놀랐던 기억이 있죠ㄷㄷ

    • Favicon of http://bahnsville.tistory.com BlogIcon Bahniesta 2012.11.20 00:1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요즘을 만들 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은 조금 늦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길은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가야할 곳도 한 곳만 있는 것이 아니니...^^

  2. Favicon of http://webostory.tistory.com BlogIcon 웹운영자 2012.11.20 14:3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내년에 뭘하지? 뭘 위해 뭐에 집중하지? 하는 생각 저도 합니다.

    제가 다음이라면 (ㅎ_ㅎ;;)

    오픈 교육 플랫폼

    지식을 전하려는 사람은 누구나 전할 수 있음
    최근 프로그래밍이나 오픈소스, 포토샵, 영어, 수학문제, 인적성 상식, 미술음악 등 예술상식, 다양한 취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식을 갈무리하고, 공유하려는 컨텐츠가 많음.

    컨텐츠생산자로서는 해당 분야의 전문성과 개인브랜드를 쌓아가고, 함께 지식을 공유하며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고, 동종분야 평균을 향상시켜 해당 분야를 발전시키고 인맥도 쌓으려는 의도가 있음.

    플랫폼의 역할은 카테고리화와 카테고리별 추천교육을 선별하여 보여주는 것임
    그리고 다양한 교육을 한데 모아주고, 컨텐츠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시켜주고 각각 역할과 명예를 부여해주는 것임

    컨텐츠소비자는 지식을 얻고자 하는 분야, 새로운 취미에 대해 쉽게 양질의 컨텐츠를 전수받을 수 있고 평가하는 역할도 즐겁게 수행하여 컨텐츠 퀄리티 선별에 도움을 주고 열렬한 피드백으로 생산자를 춤추게 하도록 함.

    포맷은 주어진 것 중 선택(블로그형/단문형/이미지형)하거나
    자율구성(소스넣거나 오픈마켓처럼 상단에 다음플랫폼 껍데기만 씌워지고 자체사이트나 개인운영블로그나 카페로 연결)

    이것은 교육 평등화, 누구나 원한다면 평등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진 세상이 되자는 대의 명분도 있음. (이런 컨셉에서 어덜트와 키즈를 나눠두겠음..)


    다음의 이미지는 2등이라는 것 이외에도 다음아고라와 티스토리로 오픈마인드 오픈소스 다 함께 잘사는 더 나은 세상을 지지한다는 이미지가 있음. (네이버의 잦은 조작 논쟁에 감사하며) 그리고 다음TV의 성과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것에서 얻은 컨텐츠의 주기(생명력)과 선별, 배치 - 잘 된 것을 추려서 보여주며 누적 점수(조회/댓글 등)를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최선인지(명예의 전당) 노하우를 살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함. 플랫폼으로서 컨텐츠를 제대로 케어하고 배치(서비스)하는 방법에 대한 이론을 (네이버를 포함한 다양한 서비스를 참고해) 갖고 싶음. 뚜렷한 베스트안을 찾는다면 한동안 잘 살 것임. (모바일과 웹은 다른 고민이겠지만)

    뭐 사내게시판에도 좋은 아이디어 많은데 안 된다고 하시면 어쩔 수 없지만요 ^^;; K스타트업 1등도 수학문제 자동생성 서비스라고 하고 비싼 돈 내는 영어교육도 많고, 정치권에서도 사교육 교육평등화 고민하니까 생각해봤어요~~

    • Favicon of http://bahnsville.tistory.com BlogIcon Bahniesta 2012.11.20 14:4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일단 제 (개인적인) 고민은 데이터분석 업무에 한 한 것이고요.
      그리고 어느 정도 큰 조직/기업에서는 후속 서비스의 규모 및 품질이 기존의 것과 적어도 엇비슷해야 된다는 그런 이상한 강박관념이 있습니다. 충분히 성공한 서비스도 기존의 경험에 비춰서 성과가 미미한 경우 (예를들어, 기존에는 1000만이 사용했는데, 새로 런칭한 서비스는 겨우 100만이 사용한다거나.. 그냥 예로들어서) 실패했다고 단정을 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내게시판의 소소한 아이디어들도 어떻게 보면 대박 아이템이 아니라 그저 사용자들에게 편의와 재미를 주자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서비스 담당자들의 입장이나 경영진들의 입장에서는 별로 매력을 못 느끼는 경우가 많아서 그냥 사양시켜버리죠. 초기 단계의 작은 아이디어/힌트를 그냥 작은 걸로 간주해버리지 않고 그걸 더 디벨롭해보면 생각보다 더 큰 대박은 아니더라도 중박 이상의 아이템으로 키울 수 있는데, 그리고 그런 것들이 또 미래에는 새로운 먹거리가 될 수 있는데 그런 기회들을 대박만을 쫓느라 놓쳐버리는 거죠. 그러는 사이에 스타트업이나 작은 기업들이 중박아이템을 잘 디벨롭해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해나가면서 기존의 대기업을 위협하게 되는 거죠. (물론 대기업은 규모의 강점이 있기는 하지만...) 길게 적을 내용이 아니라 여기서 줄입니다.

  3. Favicon of http://aliceblue.tistory.com BlogIcon aliceblue 2012.11.20 14:48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엇 저도 차라리 한국판 텀블러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시작은 그냥 저의 개인적인 니즈였지만. 블로그는 무겁고 길고 한물간것 같아서 싫고, 트위터는 너무 가볍고 , 페이스북은 너무 사적이고.. 결국 무언가 기록하여 남길 곳이 딱히 없더라고요. 다음 블로그도 티스토리도 요즘도 딱히 어떤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면 차라리 남이 안하는걸 하면 좋을텐데라는 생각을...
    여하튼 글 잘 읽었습니다!

    • Favicon of http://bahnsville.tistory.com BlogIcon Bahniesta 2012.11.20 14:51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이제는 좀 늦은 것같기도 합니다. (아닐 수도 있지만)
      이미 알 사람들은 모두 텀블러를 쓰고 있거나
      또 다른 중소 스타트업에서 이걸 그걸 기회삼아서 준비중인지도..^^

미쳐가는 사람들

Gos&Op 2012.05.26 23: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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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미치다'는 의미는 부정성보다는 긍정성을 더 많이 내포한다. 애플의 Think Different 광고에서 'Here's to the crazy ones'의 Crazy와 거의 동급의 의미로 사용될 예정이다. 그렇더라도 전적으로 긍정성만을 포함하고 있다고는 볼 수가 없다. 빛과 그림자는 한 쌍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점심시간에 회사 2층 테라스에서 밖을 내다보면서 스쳐간 생각이다. 옆의 사진은 그날 그때 찍었던 장면이다. 여러 글들을 통해서 나는 늘 다양성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날 밖을 봤을 때 여러 다양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그런데 왜 이들은 하나에 집중하지 못할까?라는 생각이 났다. 늘 다양성이 최고다라고 말하면서도 또 너무 다양하게 따로따로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다양성이 최고가 맞나?라는 생각이 났던 모양이다. 그래도 여전히 다양성이 중요하다는 지론에는 변함이 없다. 단, 그 다양성이라는 것이 필요에 따라서 서로서로 엮이고 하나로 집중될 수 있다는 가정 아래 그렇다. 하나로 묶일 가능성이 없다면 다양성은 우리가 극복해야할 장애물로 남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한 직후에 또 다른 생각이 이어졌다. 사진 속의 모두는 즐거워보였다. 즐겁게 자기가 선호하는 활동을 자발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이들은 미쳤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미쳐가는 것도 있지만, 늘 새로운 뭔가 놀이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그런 놀이거리를 찾기에 미쳐간다는 의미가 더 있다.

불과 2달 전에 GMC (Global Media Center, 지금은 다음의 자회사인 다음서비스의 직원들이 입주해있다.)의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 GMC에서의 모습은 물론 서울 등의 대도시의 회사생활과는 많이 다르지만 지금만큼의 다양성은 없었다. 점심식사를 마치면 한 무리의 숫컷들은 공을 들고 운동장에 모인다. 몇 명은 농구를 하고, 몇 명은 캐치볼 및 피칭연습, 펀고 등의 야구를 한다. 보통 여성이 다수인 무리 (팀 등)는 그냥 한 켠에 모여 수다를 떨고 있다. 간혹 산책을 나서는 사람들도 있지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제한되어있었다. 거의 이런 모습이 GMC에서의 모습이었다. 아, 그때는 공간 여건이 제한되어있어서 드립커피동호회는 활성화되었었다. 이 외에도 간혹 배드민턴을 친다거나 축구공을 가지고 논다거나 그리고 어디서나 담배를 피고 있다거나 등의 활동은 있었지만 놀이문화의 종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런데 다음스페이스.1으로 이주한 후에는 정말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다. 그리고 매일 또 새로운 놀이를 찾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있다. (참고로 GMC에서는 약 150~200명의 직원들이 있었고, 지금은 250~300명의 직원들이 있기 때문에 숫자가 늘어나서 자연스럽게 더 다양해진 면도 있다.) 단순히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지금 점심/저녁식사 후의 모습은 이렇다. 사실 너무 다양해서 다 적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진에서 보듯이 한 무리는 오피스 옆의 텃밭에 채소모종을 심거나 물을 주기에 바쁘다. GMC에서와 비슷하게 수컷들은 스포츠에 빠져있다. 농구는 디폴트이고, 이제는 족구를 하는 무리가 생겼고, 테니스를 치는 무리가 생겼고, 골프 퍼팅장에서 퍼팅연습족이 생겼고, 여전히 야구 피칭족들은 자신들만의 공간을 얻었다. (그러나 게이트볼장은 있는데 게이트볼을 하는 이는 아직 못 봤다.) 풋살도 빠지면 안 될듯하다. (내가 하는 거니까) 언제부턴가 잔디밭에는 프리스비를 주고받는 무리가 생겨났고, 주변의 경치나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찍는 이들도 생겨났다. 자전거를 타는 이도 있고 장난감 헬기를 날리는 이도 생겨났다. 그리고 주변에 탐험할 곳이 많아서 다양한 무리들이 산책을 선택한다. 어느날 갑자기 연을 날리는 이가 생겨났고, 또 며칠 후에는 스턴트 카이트 (위의 사진 중앙)가 등장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사내 행사를 위해서 준비되었던 즉석 텐트를 가져와서 치고 시간을 보내는 이도 생겨났다. 건물 안에서는 탁구를 치는 무리, 포켓볼을 치는 무리, 테이블 축구를 하는 무리, Xbox나 PS3를 하는 이들도 생겼다. 테라스에서 기타 연주를 하는 이도 있고, 여전히 커피를 드립하는 이들도 있다. 책을 읽거나 (담배/커피와 함께) 수다를 떠는 무리를 굳이 포함시키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에는 생각도 못했던 다양한 활동들이 늘어나고 있다. 두달 전까지 이런 다양성과 창의성을 어떻게 억누르고 살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무엇이 이들의 욕구를 터뜨려줬는지... 왜 이제서야...? 이들은 늘 새로운 놀이거리를 찾기 위해서 혈안인 것같다. 그래서 이들이 미쳐간다고 표현했다. 마치 어제까지 즐기던 놀이는 오늘 또 하면 그냥 도태되어버린다고 생각하는 것같다. 이들의 창조적 힘을 보는 것이 좋다. 늘 새롭고 다른 것을 찾고 갈구하는 모습이 좋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도 보기가 좋고, 다양한 것을 수용하는 것도 보기가 좋다.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런 다양성과 창의성을 우리가 기획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에 잘 반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단순히 즐기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이들의 창조 에너지가 우리의 서비스에도 녹아들어갔으면 좋겠다.

지금 이렇게 Just For Fun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조만간 그런 에너지가 모여서 More Than Fun으로 이어질 걸로 기대한다. 잉여는 단지 남는 시간, 허비하는 에너지가 아니다. 창조적인 잉여가 생산적인 잉여로 거듭날 것을 기대하며, 이 미쳐가는 사람들에게 축복을... 그리고 그들이 나와 같은 꿈을 꾸는 이들이길... 몇 주 동안 고민하고 있는 Here's to the dreaming ones를 조만간 공개하고 피드백도 받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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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전에 주제 넘게 '교육의 시대는 끝났다'라는 도발적인 글을 적었습니다. 그 글의 요지는 우민화, 즉 생산적인 근로자 양성을 목적으로 했던 근대 교육체계가 창의적인 인재를 요구하는 미래의 사회에 맞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낙담할 필요는 없습니다. 미래가 창의적인 인재를 요한다면 그런 인재를 키워내는, 아니 학생들이 그런 인재로 자라나게 하는 환경을 준비하면 됩니다. 근대 우민화 교육의 종말을 선언했을 뿐, 교육 그 자체의 효용성이 사라졌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저의 요지는 간단합니다. 학생들이 실생활에서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죽은 지식을 흡수하도록 내버려둘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경험을 스스로 창조하도록 내버려둬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버려둔다는 말의 함의는 그들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들의 창의적 자유를 허용하고, 또 생각할 기회를 준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의 호기심과 도전을 가로막는 교육은 이제 시효를 종료해야 합니다. 미래의 교육은 분명 뇌를 사용하는 것 (암기)이 아니라 뇌를 활용하는 것 (사고/창의)이 될 것입니다.

지금 제러미 리프킨의 신간 <3차 산업혁명>을 읽고 있습니다. 책의 말미에 교육에 대한 챕터가 따로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느끼고 있는 근대 교육의 문제와 그리고 해결책에 대해서 저와 비슷한 생각을 전개해놓은 것을 읽고 놀랬습니다. 리프킨도 근대 교육이 단순히 이미 죽은 그래서 더 이상 효용가치도 없는 지식을 흡수하는 것에 문제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리프킨이 분명히 밝히는 대안은 학생들에게 공감의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전작 <공감의 시대>를 읽어보면 더 도움이 될 듯합니다.) 공감한다는 것은 우리가 태어나서 자라는 환경은 자연과의 교감을 의미하고, 또 우리 주변의 살아있는 인간/동료와의 교감을 의미합니다. 물론 직접적인 교감에 더해서, IT기술 등의 현대의 이기를 이용해서 전 세계와의 교감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시야를 세계의 수준으로 넓히고 지구 반대편의 인류들과도 소통하라는 것임)

리프킨이 말하는 공감 또는 교감 또는 소통은 결국 interaction을 의미합니다. 자연과의 interaction, 그리고 사람과의 interaction입니다. Interaction이란 달리 표현하면 곧 '경험 Experience'입니다. 자연을 경험하고, 사람을 경험하는 것이 교육이라는 의미입니다. 자연을 경험하고 사람을 경험한다는 것은 또 달리 말해서 -- 저의 표현대로라면 -- 주어진 자연 환경 하에서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풍습, 즉 문화를 경험한다는 의미입니다. 책에 적혀있는 문자로 된 지식을 읽고 흡수하는 20세기의 교육방식에서 벗어나서, 주변의 문화를 직접 경험하고 또 더 나아가 다양한 문화를 직접 만들도록 허용해주는 것이 21세기의 교육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언제까지 학생들에게 풀이법을 던져줄 수는 없습니다. 그들에게 문제를 던져줘야 합니다. 그 문제를 보면서 스스로 생각하도록 해줘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새로운 가정 assumptions을 더 하거나 제약조건 constraints을 설정해서 문제를 단순화시킬 수도 있고, 더 발전하면 그런 가정이나 제약사항 중에 일부를 제거하면서 문제를 일반화시킬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면서, 문제를 풀어내는 방법을 스스로 사고하고 찾아가는 과정을 배워야 합니다. (경험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리프킨도 강조한 '토론'을 통해서 공동으로 사고하는 것도 필요하고, 또 인터넷 등을 통해서 전혀 새로운 세계의 학생들의 생각을 가미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말하자면.. 일전에 다음 제주에서 <인사이드 애플>에 대한 임정욱님의 강연 후에 적었던 <기업의 문화와 철학과 가치는 소중하다>라는 글을 적었습니다. 그 글에서는 쿨선언 The Cook Doctrine으로 알려진 'We believe in...'이라는 글을 소개했습니다. 그 글에 바로 정욱님께서 답글을 달아주셨습니다. 팀쿡이 즉석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팀쿡의 모교인 Auburn University의 신조인 Auburn Creed를 평소에 외우고 다녔고, 이 Auburn Creed이 'we believe in..'으로 시작하는 문장으로 이뤄졌다고 합니다. 

이는 미래 교육 (적어도 한국에서는)에 대한 중요한 힌트를 주고 있습니다. 바로 교육은 학생들에게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또 생각의 틀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팀쿡이 평소에 Auburn Creed를 암송하면서 수백 수천번 'we believe in...'을 반복했을 것이고, 그러면서 자신이 재직하는 회사의 신조는 무엇일까?를 계속 고민하고 생각하고 정리하도록 해줬을 것이라 유추가 가능합니다. Auburn Creed의 내용을 통해서는 학생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가치관이나 신념, 또는 정심을 심어주었고, 그 형식을 통해서는 생각의 틀을 만들어줬습니다. 추측하건데 팀쿡이 언젠가는 'we believe in...'로 시작하는 멋진 말을 해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주총회의에서 우발적으로 쿡선언으로 표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은... 결국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되어야 하고, 좋은 생각의 틀/템플릿을 제공해주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경험하고, 교감하고, 생각하고, 창조하고... 교육의 미래는 결국 미래 인재들의 창의성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체계를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들이 직접 만들어가야할 듯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조금 더 쉽게 만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하고 지원해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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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estima.tistory.com BlogIcon estima 2012.05.25 12:52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부환님은 참 생각이 깊군요. ㅎㅎ 잘 읽었습니다.

    • Favicon of http://bahnsville.tistory.com BlogIcon Bahniesta 2012.05.26 01:14 신고 Address Modify/Delete

      그냥 스쳐지나가는 생각들을 정리도 못하고 적는 것입니다. 요즘은 업무 외의 문화프로젝트 때문에 여러 분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또 중요한 단어나 개념들을 자주 듣게되고 그러면 또 그것과 관련된 다른 이야기들과 엮어서 글을 적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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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팀은 아니지만 같은 본부에 유능한 개발자 한 분이 있습니다. 검색엔진과 검색서비스를 개발하는데 오랜 경험을 쌓은 분입니다. 그 분과 얘기해보면 검색과 제반 사항에 대한 깊은 전문성과 디테일에 놀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배울 점이 참 많은 분입니다. 이 글의 시작은 그분과의 대화 중에서 관찰한 것을 적고 있지만, 나의 이야기이며 또 많은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바로 유능하고 경험이 많은 전문가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 분야에 많은 전문 지식을 습득하고 경험을 축적한 이들을 가리켜서 전문가라고 칭합니다. 세계가 발전하고 다원화되어 일은 더욱 복잡해지고 업무가 세분화되었습니다. 그래서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많은 경험 덕분에 해당 분야의 업무를 매우 효율적으로 처리합니다. 관록이 쌓이면서 일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디테일까지 매끄럽고 완벽하게 처리합니다. 그런데 한 분야에 오래 몸을 담고 있다보면 일종의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고 그동안 길들여진 업무스타일을 벗어나기 힘들고 새로운 분야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기에 어려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적응은 전문가로 가는 길이면서 또 (과거 스타일의 고수라는) 함정에 빠지는 첩경입니다. 전문가가 된다는 것이 효율성은 높아지지만 유연성이 떨어지고 그래서 다양성이 떨어지는 과정이 되면 안 됩니다.

'정의'를 영어 단어로 뭐냐는 물음에 인문학 계열의 학생들은 Justice라고 말하고, 이문학/공학 계열의 학생들은 Definition이라고 답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습니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이) 백그라운드에 따라서 세상이나 사물을 달리 바라보고 생각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의 가치관이 형성되면 다른 가치관으로 사물을 바라보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합니다. 하나의 확고한 가치관 또는 생각의 틀을 갖는다는 것은 성장에 매우 중요하지만,  타인의 의견이나 관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오늘 그 유능한 개발자와 얘기하면서 어떤 이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색인 Index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그 분은 검색엔진에서 사용하는 색인과 역색인 Inverted-Index이라는 용어로만 색인을 이해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분야에서 익숙한 단어나 개념에 쉽게 빠집니다. 

어떤 일을 진행할 때 중요한 세가지 물음이 있습니다. 바로 무엇 what을 어떻게 how 왜 why 하느냐?입니다. 그런데 왜?와 무엇?은 상대적으로 가지수가 적고 통일된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흔히 노하우 know-how라 부르는 어떻게?는 매우 많은 가지수를 가집니다. 그런데 전문가가 될수록 '어떻게'에서 가장 효율적인 베스트 프랙티스 Best Practice로 일을 처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베스트 프랙티스를 많이 알고 실행하기 때문에 관록이 있는 전문가라는 소리를 듣지만, 역으로 베스트 프랙티스가 아닌 방법으로는 전혀 시도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때로는 처음에 주어졌던 문제의 환경과 조건이 변경되었는데도 새로운 조건에 맞는 새로운 방법을 찾기 보다는 그저 과거의 비슷한 경험에 바탕해서 과거의 베스트 프랙티스를 꺼집어드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것이 맞는 방법일 수도 있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효율성의 극대화가 유연성과 다양성의 희생으로 얻어지면 곤란합니다.

실수를 적게 하는 이가 전문가지만, 실수를 통해서 새로운 경험을 얻지 못하는 것도 전문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보면서 새로운 실수를 경험하고 그리고 실수와 실패를 통해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할 수 있는 유연한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매번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봐도 예전 방식이 최선일 수도 있지만, 새로운 시도를 해보지 않으면 더 나은 방법을 영원히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전문가와 대화 또는 논쟁을 하면서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전문가이기 때문에 자신의 영역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풍부해서 자신의 의견이 100% 맞다고 확신을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문용어를 사용해서 전달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그들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용어에 익숙치도 않고, 그들과 다른 개념과 정의를 바탕으로 그들의 용어를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간단한 개념/단어에 대해서도 서로 생각의 충돌이 벌어지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일반 범인들은 시장의 언어를 사용하는데, 전문가들은 너무 고귀한 자신만의 언어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때로는 전문가들이 자신이 어려운 용어를 사용해야지 전문가로써 권위와 위신을 세울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장의 언어를 입에 담지 못합니다.)

ps. 친하다는 이유로 특정인을 미화시켜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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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ryuj.tistory.com BlogIcon GM.RyuJ 2012.07.29 19:3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정말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컴퓨터/IT 분야의 한 전문가로써 요즘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유연한 개발자가 되기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Favicon of http://bahnsville.tistory.com BlogIcon Bahniesta 2012.07.30 09:1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제 스스로 어리석음에 빠지기 않기 위해서 그냥 메모한 것인데,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이네요. 즐거운 하루되세요.

다양성의 실종

Gos&Op 2012.03.08 09: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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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가장 많이 생각하는 단어 중에 하나가 바로 다양성 Diversity이다. 건전한 생태계의 특징으로 다양성을 들 수가 있고, 창발적 창의력의 기저에도 다양성이 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다양성이 공격받고 있다. 제목과 같이 우리는 다양성이 실종된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회적으로 봐도 그렇고 개인의 삶을 봐도 그렇다. 점점 우리의 삶이 단조로워지고 있다. 잠시 자신의 하루 일과를 떠올려봐라. 우리가 얼마나 단조로운 삶을 살고 있는가? 아침에 일이나서 싣고 출근해서 시간을 보내다가 퇴근을 하고 그러고 나서 TV를 좀 보거나 독서를 한 후에 잠이 든다. 매일의 삶이 이렇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어떤가? 가족, 회사동료, 그리고 몇몇 어릴 적 친구나 동기동창들. 그외에 더 만나는 사람도 없다. 우리의 온라인 생활은 어떤가? 적어도 10년 전에 인터넷이 보급되던 시기에는 주요 인터넷 신문 홈페이지를 방문하던 것이 하루의 일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뉴스는 그냥 다음에 접속해서 보고, 그 외에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접속해서 글을 좀 올리는 정도가 전부다.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는 약 10개 정도의 사이트를 매일 접속했는데, 이제는 다음, 트위터, 페이스북정도만 매일 접속한다. 다른 사이트는 가끔 생각이 날 때나 이벤트가 있을 때만 접속한다. 하루의 일과, 만나는 사람, 온라인 접속패턴 등등의 우리/나의 일상을 살펴보면 진짜 단조로워졌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의 소셜네트워크 또는 소셜미디어를 소위 소통의 공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을 되돌아보면 그곳에서 제대로된 소통을 했던가? 트위터에서는 헛소리를 하는 부류의 글은 읽지 않는다. 처음부터 팔로잉도 하지 않는다. 나와 정치관이나 세계관이 다른 사람의 글을 집중해서 읽어 본적이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페이스북은 트위터보다 더 사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좀 무거운 주제의 글을 올리기도 어렵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내 생각을 짧은 글로 남길 뿐이지, 뉴스피드에 올라오는 다양한 글들을 모두 보지는 않는다. 물론 페이스북은 친구가 300명 미만이라서 어떤 글이 올라오는지는 대강 훑어보기는 한다. 그래도 모든 글을 자세히 읽고, 링크의 글을 모두 확인해보고, 또 친구의 글이나 사진에 모두 라이크하거나 댓글을 달지 않는다. 소통의 공간이라고 했지만 정작 나와 정치색이 비슷하거나 관심사가 같은 이들의 글만 보게 되고, 일방적으로 내 생각을 올려놓고 그저 라이크나 댓글을 기다리고 있다. 나만 그런가? (나의 온라인에서의 행동패턴에 대해서는 일전에 더 자세한 글을 올렸다. 참고: 온라인 활동의 범위가 좁아지고 있다.)

다양성을 뜻하는 단어인 Variety는 TV에서 연예/오락 프로그램을 뜻하기도 한다. 뉴스나 드라마처럼 주어진 장르가 아니라 매우 다양한 형식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이름인 듯하다.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대화도 하고 게임도 하고.. 참 다양한 활동을 한 프로그램에서 하기 때문에 우리는 예능프로그램을 버라이어티쇼라고 부른다. 그런데 최근의 예능프로그램이 다양한가? 무한도전을 시발로한 리얼버라이어티가 한동안 방송을 장악하더니, 이제는 슈스케를 시발로한 온갖 공개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넘쳐난다. 다양함에서 시작했던 버라이어티도 다양함을 잃어버렸는데, 다른 것들은 어떨까?

단조로운 삶을 심플라이프 Simple Life라 부르기도 한다. 보통은 복잡한 도시를 떠나서 전원에서의 삶을 묘사할 때 심플라이프라고 표한다. 그런데 실제 삶에서 전원에서의 삶이 도시에서의 삶보다 더 복잡하다. 우리가 도시의 삶을 복잡하다고 말하지만, 곰곰히 잘 생각해보면 도시는 영화 <모던 타임스>의 표현대로 톱니바퀴 돌아가듯이 단조롭다. 자고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쉬다가 자는 삶이 전부다. 평소에 만나는 사람들도 정해져있고, 자주 가는 곳도 정해져있다. 그러나 시골에서의 삶은 전혀 그렇지 않다. 단순할 것같지만 시골에서의 삶은 매일매일이 다르다. 크게는 춘하추동의 계절의 변화에 따라서 파종하고 물주고 비료주고 그러다가 가을에 추수하고 겨울에는 긴밤을 방에서 쉴 것만같다. 그러나 시골에서의 오늘의 행동패턴은 어제와 다르고, 내일의 패턴은 분명 오늘과 다르다. 날씨의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도시에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앞서 말한 삶의 패턴에 변함이 없다. 그러나 시골에서는 다르다. 매일매일의 내외부 상태에 따라서 삶의 패턴이 다르다. 만나는 사람도 오늘 만났던 사람을 (가족이 아닌 이상에는) 내일 만난다는 보장도 없다. 그런데 왜 시골에서의 삶을 심플라이프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서 귀농하는 이들은 심플라이프를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복잡한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거다. 그냥 자연의 순리와 흐름에 따라 살겠다는 것은 심플라이프가 되겠지만, 자연의 흐름이 좀 복잡한 것이 아니다. 어쨌던 인간이 산업화와 도시화에서 삶이 더 단조로워졌다. 도시에서의 삶에서 다양성을 찾기가 어렵다. 다양성... 어디 갔어?

흔히 사람들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고 말한다. 변화 그리고 적응. 이것을 진화라고 부른다. 진화론에서 말하는 것이 이거 아닌가?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객체는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객체는 멸종한다는 것이 진화론 아닌가? 그래서 '진화 = 적응'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같다. 그런데 이 적응이라는 것이 단조롭게 되는 과정이다. 적응한다는 것은 더욱더 능숙해지고 효육적이 되다는 의미다. 새로운 도시로 이주했을 때 처음에는 길도 모르고 아는 사람도 없어서 헤매고 다녔지만, 어느 정도 적응을 하면 가장 빠른 길을 알고 누굴 만날지 정해진다. 그렇게 적응을 하고 나면 굳이 새로운 길로 가지 않는다. 특별한 이벤트가 발생하기 전에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도 않는다. 관념적으로 '진화 = 발전'으로 알고 있는데, 그러면 '적응 = 진화 = 발전', 즉 '적응 = 발전'의 등식도 성립할 것같다. 그런데 적응이 발전일까? 적응은 발전이 멈춘 상태가 아닐까? 더 이상 새로운 것에 관심이 없고, 한두가지 일에만 최적화된 사람에게서 새로운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산업화와 도시화의 절정기에는 스스로 효율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최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은 그냥 그렇게 주어진 트랙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사람이 살아남는다는 보장이 없다. 물론 가장 빨리 달리 사람은 1등을 해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많기는 하지만... 이제는 그저 주어진 길을 가장 빠르게 또는 가장 짧게 가는 것에 만족하는 삶을 살면 안 되는 때가 온 것같다. 목표는 주어졌어도 그것을 이루는 방법은 참으로 다양하다. 그런데 하나의 해답을 얻고 나서는 그 해답이 전부인양 그것만을 바라보며 일방적으로 따라가는 경향이 짙어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길로만 다녀서는 새로움을 얻을 수 없다. 때로는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 새로운 곳에 눈길을 돌려야 한다. 그래서 다양한 것들을 보게 되고, 다양한 방법으로 주어진 목표를 해결할 수 있다. 물론 처음에 해답으로 알았던 방법이 가장 효율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참 재미는 없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다른 방법을 시도할 때 재미도 있고 같은 일이라도 또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그런데 우리는 한번 배운 것, 얻은 것을 포기하는 것에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삶이 더 단조로워진다.

다양성은 비효율이다. 그래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언어가 다양해서 말이 통하지 않기도 한다. 문화가 달라서 서로 오해하기도 한다. 종교가 달라서 때론 전쟁도 한다. (물론 나도 종교를 가진 사람으로 모두가 같은 종교를 가졌으면 하는 선교적 마인드가 있다.) 그러나 그런 다양성은 계속 존재해야 한다. 생태계에서 다양성이 없어진 이후에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을 자주 본다. 단지 한두 종류의 동/식물을 제거했을 뿐인데, 전체 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진 경우도 자주 본다. 그리고 동물들이 우성유전자를 가진 종으로 진화해서 한두종류의 동물종만 남게 되면, 그런 종들은 특정 질병 등의 면역체계에 문제를 일으킨다. 대대로 동성동본 등의 근친과는 결혼하지 않는 것이 단지 도덕윤리 때문이 아니라 종의 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자연의 순리에 따른 반응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던 다양성이 무너지면 전체 생태계가 함께 무너질 수 있다.

그런데 계속 말했듯이 우리의 삶과 문화에서 다양성이 실종되고 있다. 하나의 이념만이 옳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나의 방식이 최고라고 말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최고의 방법도 처음에는 다양한 방법들과 경쟁해서 살아남은 하나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처음부터 최고의 옵션을 찾을 수가 없다. 처음부터 최고의 옵션을 알고 있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다양한 종류의 씨를 뿌려야 한다. 다양한 시도로 나무를 가꿔봐야 한다. 그래야지 최고의 품질을 제공하는 품종이 어떤 것인지? 최고로 잘 자라게 하는 육종방식이 뭔지를 찾을 수가 있다. (물론 이제까지의 역사경험으로 이런 종류는 다 알고 있겠지만... 수사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새로운 문제는 만났을 때, 단지 처음에 그 문제를 해결했던 그 방법을 일방적으로 최고의 방법이라고 우기면 안 된다. 더 나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를 해보고 그 중에서 최선을 선택하면 된다. 처음부터 다양성을 가로막지는 말아야 한다. 창발적 창의의 근원은 다양성에 있다. Emergent creativity comes from diversity.

좀 간단하게 글을 적으려고 했는데 좀 길어졌다. 처음부터 글에서 하나의 결론을 보여줄 의도는 없었다. 그저 다양성이 존중받지 못하는 것같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러면 결국에는 더 큰 문제에 봉착할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화두를 던져보고 싶었다. ... 네, 그냥 그렇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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