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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제러미 리프킨의 <유러피언 드림>을 읽고 있다. (삼천포: 제러미 리프킨의 모든 도서들을 강력추천한다. 현재까지는 <소유의 종말>과 <공감의 시대>만 읽은 상태지만...) <유러피언 드림> 중에 유럽과 미국에서의 사형제도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 기술한 부분이 있다. (pp. 366-372)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인권을 중요시해야하는 세계인의 시각에서도 생각할 것이 많지만, 기도교인으로써 생각해봐야할 부분이 있어서 짧게나마 글을 적으려고 한다.

 책에서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은 사형제도에 대해서 가지는 생각이 전혀 다르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유럽인들은 사형제도를 반대하고, 미국인들은 사형제도를 찬성한다고 한다. 물론, 많은 미국인들도 사형제를 반대하고, 일부 유럽인들도 사형제를 찬성하겠지만, 전반적으로 유럽은 반대, 미국은 찬성 쪽이라는 얘기다. 유럽은 중세 이후에, 그리고 특히 20세기의 제 1차, 2차 세계대전/전쟁을 경험하면서 국가권력에 의해서 희생되는 개인들의 모습에 대한 일종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아우슈비츠'로 대표되는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도 대표적인 사례지만, 그 이전의 오랜 역사를 통해서 국가 또는 집단에 의해서 개인들의 삶과 생명이 짓밟힌 사례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 또는 사법기관에 의해서 한 사람 (범죄자)의 생명이 앗아지는 것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서부개척시대를 거치면서 개인의 사유재산과 안전이 중시되는 역사를 가졌기 때문에, 사생활을 침해당하거나 개인적인 손해를 받는 경우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대응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깊게 박혀 있다고 한다. 헐리우드의 서부영화를 보더라도, 강도떼 등의 범죄자들을 총으로 쏴죽이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고, 어떤 경우는 사법기관에 의해서 사형이 집행되는 모습을 종종 보기도 한다. 개척시대의 전통이나 그를 흉내낸 영화/스토리에 노출된 미국인들은 유럽인들보다는 사형에 대해서 더욱 가혹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같다. 그리고, <유러피언 드림>을 전체를 읽어보면 더 깊은 이해를 가지게 되겠지만, 유럽인들은 인종이나 복지 등의 전체주의 쪽에 대한 생각이 더 많지만, 미국인들은 사유재산과 사생활 등의 개인주의에 대한 생각이 더 많은 것 등의 여러 이유에서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의 사형에 대한 생각을 이해할 수가 있다.

 그런데, 내가 더 흥미롭게 발견한 것은 단순히 사형제에 대한 유럽인과 미국인들의 인식의 차이가 아니었다. 유럽에서 중세와 종교개혁을 거친 이후에 사실상 '기독교'의 신성이나 윤리는 폐기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물론 현재 유럽의 각 도시에 가면 오래된 카톨릭 성당이나 교회건축물들을 많이 접한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쪽에서는 카톨릭의 종교성이 큰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유럽인들의 의식의 밑바닥에는 여전히 기독교의 전통이 남아 있다. 그렇지만, 그들의 일상의 삶 속에서는 종교성이 많이 희석되었다. 대표적으로 주일/일요일에 교회를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인구비율이 매우 낮다는 통계도 있다. 반면에, 미국의 경우 대표적인 기독교 국가로 인정받고 있다. 물론, 현재는 전체 인구 중에서 기독교 인구가 50%미만이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기독교 국가는 아니다. 그러나, 카톨릭을 포함하면 여전히 미국 인구의 50%이상이 그리스도교를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유럽보다 (기독교) 종교성이 높은 나라라는 점이다. 책에서 나오지만, 구약시대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함무라비법전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의하면 그런 구시대적인 적대감의 폐기처분되었다. 즉, 신약시대에는 원수도 미움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의 대상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불르짓던 '아버지,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 저들이 지금 무슨 잘못을 하지는지 모르나이다.'라는 마지막 매니페스토에서 보이듯이, 원수도 내몸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

 깔끔하게 설명을 하지 못했지만, 위의 두 문단에서 느끼는 괴리감을 느끼셨나요? 기독교의 윤리가 일상의 삶에서 희박해진 유럽인들은 지금 가장 기독교의 전통인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하는데 (사형제 반대), 가장 기독교적이라는 미국에서는 신약에서 가르치는 그런 사랑과 관용이 아니라, 구약시대의 응징의 논리에 더 끌려서 살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을 보면서 제가 마음이 아픈 것은 지금 이 땅 (대한민국)의 그리스도인들도 미국인들의 시각에 물들어있는 것같다는 점입니다. 물론, 일신론의 종교에서 타종교에 대한 배타성은 인정해줘야 합니다. (저 역시 타종교에 대한 배타성이 강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이 땅에서는 '나'가 아니면 모두 '원수'로 보는 현상이 강한 듯합니다. 그런데, 그 '원수'가 단순한 원수가 아니라 '악/악마'로 보는 것같은 이상한 현상이 많이 벌어지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나 뿐만 아니라, 내가 원수라고 생각하는 모든 이들까지 포함해서 우리 모두를 위해서 돌아가셨는데, 지금 한국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나/우리 아니면 모두 '악'으로 규정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보면서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원수도 사랑하는 그런 가르침은 그저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고, 그저 일요일마다 설교에서만 언급되는 구시대적인 유물처럼 취급되고 있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의 삶에서 원수를 사랑할 수는 없을까요? 물론, 이런 말을 하는 저부터 많은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렇게 반성을 한다지만, 또 내일 어떤 미움이 제 마음 속에서 자라나게될지 모르는 상황인 것이 더욱 미안하고 안타깝습니다. 성경이 아닌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베푸는 그런 크리스챤을 꿈꿉니다. 한손에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그리고 또 다른 손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고 이 세상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그리고, 그 전에 스스로 회개합시다. 복음이 없는 사랑을 강조하는 세계을 질타하기 전에, 사랑이 없는 복음만을 강조하는 크리스챤들이 먼저 반성을 하고, 회개를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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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낙 2011.07.17 01:5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동감입니다
    저희남편이 늘 강조하는 것과 일맥상통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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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한다. 이들의 특징은 스스로 크리스챤이라고 부른다. 때로는 참 부지런하기도 하다. 매주일 교회에 나가서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고 장로니 집사니 하는 직분도 가진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이들의 중심에는 항상 '나'가 존재한다. (적당한 예는 굳이 들지 않겠다. 그분이다.)

어떤이들은 태초부터 계획된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께 이용당한다. 이들은 남들이 크리스챤이라고 부른다. 이들도 역시 교회 출석도 잘하고 봉사활동도 열성적으로 참여한다. 때론 그래서 직분을 받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이들은 그 직분이 자신의 옻을 입은 것이 아닌 양 불편해하기도 한다. 이들의 중심에는 '나'라는 개념 조차도 없다.

그런데 때론 나같이 어정쩡한 사람도 있다. 내게 주어진 사명도 외면한 체 내 멋에 취해서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 언젠가는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진노를 알면서도 제대로 쓰임을 받지도 그렇다고 제대로된 결단도 한번 못 하고 살고 있다. 10대와 20대 때는 꿈이 없었다. 그러나 20대의 마지막에 내게도 꿈이라는 게, 어쩌면 사명이라는 게 생겼다. 30대인 지금은 다시금 그 소중한 사명을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는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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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is the Gospel" No other comments are necessary.

하나님이 복음이다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존 파이퍼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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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기쁨주의"로 알려진 존 파이퍼 목사님의 저서다. 파이퍼 목사님이 스스로 밝히듯이 미국의 대표적인 신학자였던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의 영향을 많이 받으셨는데, 에드워즈 책만큼이나 어렵게 읽혀졌다. 내용의 핵심은 '하나님이 복음이다'라는 제목과 같이 아주 간단하게 요약이 되겠지만, 최근의 나의 영적 상태로는 그런 간단한 요약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고 굳어져가는 내 머리는 그 진리를 쉽게 받아들이려하지 않는다. 점점 더 세상에서 메말라가는 나의 영혼은 언제쯤 달콤한 단비에 젖어질지 참 걱정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인간이 지음을 받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삶 속에서는 나의 욕심만을 앞세우고 나의 자존심만을 앞세우는 허영심을 감출 수가 없다. 정욕에 너무나 쉽게 무너지는 그게 세상에서의 내 모습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반성하지 않을 수가 없다. 기독의 시간도 점점 짧아져만 가고, 기도의 깊이도 얕아지고 있다. 시간을 내어서 기도를 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고 예수님을 찬양하지 않고, 나의 욕심만을 채워달라는 철부지 어리광만을 피우는 그런 기도로 채워지고 있다. 나는 언제 제대로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있을 것인가? 나는 언제 구원의 확신을 가진 당당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있을 것인가? 너무나 비참한 현실의 내 모습이 부끄럽다. 하나님, 이런 저에게도 여전히 희망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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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여러번 밝혔지만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저서는 무조건 평점 5점이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왜곡된 기독교/신앙이 판을 치는 시기에는 그의 설교 한마디 한마디를 주의 깊게 읽어야 한다. 그와 동시대에 살면서 그의 설교를 직접 들을 수 없는 것이 아쉽지만, 그의 후대에 태어나서 글로써라도 그의 설교를 읽는 우리는 선택받은 자들이요 축복받은 자들이다.

성령 하나님과 놀라운 구원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마틴 로이드 존스 (부흥과개혁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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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 대해서...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교리 강좌 시리즈'의 두번째 편이다. 1권에서는 성부하나님에서부터 시작해서 많이 알고 있는 천지창조와 인간의 타락, 그리고 이를 위해서 이 땅에 성육신하신 성자하나님 (예수님)과 관련된 전반적인 교리를 다루었다면, 2권에서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시 전에 우리에게 약속하신 그리고 삼위의 한 위격이신 성령하나님의 전반에 대해서 개괄하고 있다. 성령하나님에 대한 정의에서부터 성령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사역하시는 일들 (이신칭의, 성화 등), 그리고 성령의 은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이쯤에서 존스 목사님의 로마서 강해설교집을 자세히 보고 싶어지는 욕구가 생기지 않는다면 책을 헛 읽은 것일 게다. 현재 책장에 있는 책들 (조나단 에드워드의 부흥론, 구속사, 신앙감정론 등)을 모두 소진하면 다음번 목표는 존스 목사님의 로마서강해 전권을 독파하는 걸 목표로 삼아야겠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1. God the Father, God the Son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교리강좌 시리즈 1권)
  2. Church and the Last Things 영광스러운 교회와 아름다운 종말 (교리강좌 시리즈 3권)
  3.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로마서강해시리즈 및 기타 설교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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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 미래를 먼저 보고 싶은 것은 인간의 욕망인지도 모른다. 미래학에서 말하는 심오한 미래의 예측 뿐만이 아니더라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나 지구종말적 예언들이 판을 치는 이유도 그런 인간의 말초적인 본능 때문일 것이다. 성경에서 대표적인 예언서로는 요한계시록이다. 물론, 구약에 더 많은 선지서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이나 일반인들은 구약의 선지서들의 예언들은 대부분 구약시대, 즉 예수님의 초림으로 대부분 끝났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현재까지 여전히 이어지는 예언들도 존재하지만) 그런 이유에서 신약에서의 거의 유일한 예언서인 요한계시록은 지난 2000년간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특별히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성경의 다른 본문들보다 요한계시록에 대한 연구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이견이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책에서 제시하는 요한계시록에 대한 해석이 절대적으로 맞다라는 말할 수가 없다. 책에서도 이전의 다양한 해석의 오류를 말하듯이 다른 연구자들도 역시 이 책의 내용을 하나하나 반박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섭리를 정확히/제대로 이해할 능력도 없고 그런 시도조차도 신성모독에 해당될 수 있을테지만, 성경의 문장 단위로 때로는 단어 단위에서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져야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특정 본문의 내용에 대해서 자신의 입장이 하나님의 섭리인양 단정시키는 그런 해석은 지양될 필요가 있는 듯하다. 100명의 학자 중에서 99명이 동의하는 내용이더라도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도 성경을 읽고 연구함에 있어서 주의해야할 사항이다. ...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본인은 책의 내용이 맞다 틀렸다의 입장을 취할 입장은 아니지만, 책에서 제시하는 귀납적인 방법으로 성경 텍스트를 라인바이라인으로 읽어가면서 해석을 하는 그런 접근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귀납적인 방법만을 적용한다면 또 다른 오류에 빠질 수도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아니 반드시 먼저 또는 같이 또는 이후에 읽어야만하는 책으로는 '성경' 밖에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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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k 2009.03.24 14:2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이 책을 안 읽어보긴 했지만.. 함께 읽으면 좋은 책으로 안토니 후크마의 '개혁주의 종말론'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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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인으로써 나의 삶에서 어떠한 회심의 증거도 발견하지 못하고 어떤 구원의 확증도 경험하지 못했는 것같다. 그러나 거짓된 그리스도를 경험하고 거짓된 회심과 구원의 확신 속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보다 매일매일 나 자신의 죄인됨과 어리석음 그리고 구원을 갈망하고 그리스도로부터의 확증 받기를 갈망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이 더 낫다. 확신의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확증의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또 마지막 날을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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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나에게 위대함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안긴 그의 삶과 신앙에 어떤 미사여구의 설명도 필요치 않다.

 너무나 평범한 한 사람이 태어났다. 성인이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제대로 깨달았다. 남은 1/3의 그의 생애를 그 이유에 맞게 살았다. 그의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은 악조건 속에서 선교사의 사명을 담당하던 때가 아니라 예수님이 마셨던 그 잔을 기꺼이 마시려 했던 그리고 그 길을 온전히 따가 가려던 그 마지막 순간이었는 것같다. 짐 엘리엇이 표현했듯이 그리스도인은 그의 믿음과 행위뿐만 아니라, 그의 존재만으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리스도인다움을 보여준다고 했다면 그런 표현에 가장 맞는 인물이 브레이너드가 아닌가 생각한다. 현대의 기독교에 많은 왜곡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물론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이 아닌 형식화된 기독교라는 종교라는 이름이 생긴 이후로 그런 왜곡와 적그리스도적 이단 행위들이 끊임이 없었지만... 이런 세태 속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예수님의 마지막 사명선언에 최선을 다했던 인물을 꼽으라면 분명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는 첫번째에 속하는 인물이 될 것이다. 나도 언젠가는 선교사의 사명을 감당하는 그런 날을 꿈꾸고 있지만, 그의 삶과 신앙의 모습을 본 후로는 내가 괜한 호기를 부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마저 든다. 내 삶이 제대로 회심을 했는지부터 시작해서 온전히 나의 모든 삶을 그리스도께 맡기고 의지해서 한걸음한걸음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있을까하는 사소한 것에 이르기까지... 
  세상 죄를 지고 나아가는 한 어린양을 온전히 따랐던 한 영혼의 삶과 신앙에서 나의 갈 길을 찾았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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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신약성경을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아주 잘 요약해놓은 책'이다. 어떤 종파를 불문하고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주 (Savior)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그를 통해서 우리는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예수님을 구주로 보는 시각과 함께 매우 중요한 시각은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 (Lord)라는 점이다. 현대로 넘어올 수록 두번째 사조는 점점 퇴색되어가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어쩌면 예수님의 주되심을 부인한 결과로 현대 기독교 문화가 형성되고 있는지 아니면 현대의 기독교 문화가 예수님의 주되심을 부인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현대의 많은 교회, 목사, 신학자들이 앞장 서서 예수님의 주되심을 부인하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안타깝다. 구주로써의 예수님은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가 있다. 우리의 삶에서 손해를 볼 것도 없고 말랑말랑해서 받아먹기가 참으로 좋다. 어떤 면에서 보면 예수님의 구주되심은 '권리'와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인 '의무'와도 같은 예수님의 주인되심은 쉽게 인정을 할 수가 없다. 온전한 크리스챤으로 남기 위해서 단순히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하셨다는 그 약속만을 믿고 받아들이면 된다는 아주 쉬운 교리를 전파하면, 세상의 믿지 않는 이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또 잘못된 교리 (교회 다니면 물질적으로던 어떤 형식으로던 복을 받는다는 기복신앙적인 접근)를 전파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주되심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의 모든 삶이 어려워진다. 이신칭의가 끝이 아니었어?라는 반응이 절로 나올 법도 하다. 이신칭의와 함께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성화의 과정에 대해서... 어떻게 보면 참으로 모진 긴 역경의 시간이 될 것이 뻔하다. 그러나 예수님의 주되심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얼핏보기에 역경으로 보이던 그것 (고난)이 오히려 기쁨이 될 수도 있다. ... 성화에 대해서 주되심을 부인하는 측면에서 이웃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단순히 기쁨의 표현일 수가 있지만, 주되심을 인정하면 단순히 나의 기쁨으로 이웃을 돕는 것 뿐만 아니라 당연히 주인되신 예수님의 명령이기에 의무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는 뜻임) 인간의 자의식은 누군가 간섭하기 시작하면 꼬이기 시작한다. 그것이 전능자의 간섭이더라도... 그렇기 때문에 현대의 많은 크리스챤들이 예수님의 주되심을 쉽게 인정하려들지 않는다. 괜히 인정했다가 뭐가 덤탱이를 덮어씌워지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러나 받아들이기 싫더라도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주되심을 부인하는 순간 이미 우리는 악마와의 계약에 도장을 찍고 만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구원의 문은 여전히 열려있다.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진리로 돌아오기를 기도한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 당연히 신약성경은 읽어야 한다. 
  •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로마서 강해' 시리즈를 읽어볼 것을 권한다. 저도 아직 읽지는 못했다. 그래도 조만간 전집을 구해서 차근차근 읽어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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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모든 기독서적에 대해서 5점 만점을 주는 것도 아니고 모든 추천저자들의 저서들에 대해서도 5점을 주는 것도 아니다. 단 하나의 분명하고 확실한 목적과 이유가 있다면 나는 어떤 대가라도 기쁘게 치를 것이다. 하나의 정당성이 그만큼 중요하다. 예수님께서는 단 하나의 목적과 이유 때문에 십자가의 수난을 당하셨고 인간만이 겪는 죽음을 맛본 것은 아니다. 여기 하나니의 기쁨주의를 전하는 죤 파이퍼 목사님은 단 하나의 목적과 이유가 아닌 50가지나 되는 예수님의 수난의 목적과 이유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죤 파이퍼 목사님이 전하는 예수님의 수난의 50가지 이유...
  1. 하나님의 진노를 한 몸에 받으시기 위해
  2. 하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3. 순종을 배워 온전케 되시기 위해
  4. 몸소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기 위해
  5. 하나님이 죄인들에게 베푸시는 사랑과 은혜의 풍성함을 나타내시기 위해
  6. 나를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시기 위해
  7. 나를 사납게 짓누르는 율법의 요구를 도말하시기 위해
  8.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 속죄하는 제물이 되시기 위해
  9. 나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10. 내가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시기 위해
  11. 나의 의가 되는 순종을 이루시기 위해
  12. 내가 정죄함 받지 않게 하기 위해
  13. 구원의 조건이던 할례와 모든 의식법을 폐지하시기 위해
  14. 나로 믿게 하고 나를 끝까지 보존하시기 위해
  15. 나를 거룩하고 책망 받을 것이 없는 온전한 백성으로 만드시기 위해
  16. 나에게 깨끗한 양심을 주시기 위해
  17. 나에게 선한 모든 것을 확보해주시기 위해
  18. 나의 도덕적 신체적 질병을 고쳐주시기 위해
  19. 믿는 모든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20. 나를 이 악한 세대에서 건지시기 위해
  21. 나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기 위해
  22. 나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기 위해
  23. 나를 그리스도 자신의 소유로 삼으시기 위해
  24. 내가 지성소에 담대히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
  25. 내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처소가 되기 위해
  26. 구약의 제사제도를 폐지하고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기 위해
  27. 인간의 연약함을 동정하고 도울 수 있는 제사장이 되시기 위해
  28. 나를 조상의 망령된 행실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29. 나를 죄의 사슬에서 해방시키시기 위해
  30. 내가 죄에 대해서 죽고 의에 대해서 살도록 하기 위해
  31. 내가 율법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해
  32. 나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그리스도를 위해 살도록 하시려고
  33. 십자가가 나의 큰 자랑이 되도록 하시기 위해
  34. 내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35. 결혼의 깊은 의미를 깨우쳐주시기 위해
  36. 선한 일에 열심인 백성을 세우시기 위해
  37. 겸손히 큰 사랑을 베푸신 예수님을 본받게 하시려고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제자들을 세우시기 위해
  38. 나를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시켜주시기 위해
  39. 나를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시켜주시기 위해
  40. 내가 죽을 때 즉시 주님과 함께 있도록 하기 위해
  41. 내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도록 하기 위해
  42. 사탄의 세력을 무장 해제시키기 위해
  43. 복음으로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시기 위해
  44. 민족 간의 적대감을 무너뜨리시기 위해
  45.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46. 전 세계에서 자신의 양들을 불러 모으시기 위해
  47. 나를 최후 심판에서 구하시기 위해
  48. 나와 함께 기쁨을 누리시기 위해
  49.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시기 위해
  50. 아무리 악한 상황도 선으로 바꿔놓으신다는 것을 입증하시기 위해
성경에서 얼마나 일관되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구약에서는 일관되게 그의 오심과 고난받으실 것을 예언하고 있다. 신약에서는 또는 일관되게 그 모든 것을 밝히 해석해주고 있다. 위의 이유들 중에서 하나라도 우리에게 맞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피할 어떤 정당한 이유도 없다. 그러나 위에 제시된 모든 것들, 그리고 그 이상의 이유들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미 몸소 그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한국에 돌아온 이후로 졸업을 준비하고 취업을 준비하고 또 취업해서 회사에 적응하는 동안 분명 나는 영적 침체기를 겪고 있다. 빨리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 참진리에 의해서 자유롭고 싶다.

죤 파이퍼 목사님,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 등의 저서나 설교집을 함께 읽을 것을 추천합니다. 당연히 성경은 기본적으로 읽어야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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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ayinme.tistory.com BlogIcon 사용인 2008.11.04 05:40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잘보고 갑니다.
    추천 한방 날리고 갑니다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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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설교자와 회중이 알아야하는 설교의 모든 것.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모든 설교와 책은 항상 만점을 줘야한다. 왜냐면 항상 진리를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교 (특히 한국의 기독교)가 가진 문제점은 진품이 아닌 사구려 복음을 들려주려는데 있다. 깊이 사고하고 시험해보지 않으면 우리는 사구려에 속아넘어갈 수 있다. 그러지 않고 싶다면 존스 목사님의 설교/책들을 조심스럽게 읽어보라. 책에서 목사님께서는 설교가 무엇이며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며 어떻게 준비해야 하며 또 어떤 자세로 전하고 들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의 많은 목사님들이 잊어버린 그 순수함을, 그리고 그 정직함을 다시 찾았으면 좋겠다.

특히 목회에 대한 비전이 있는 모든 분들 (신학생들 포함)에게는 특히 권합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깊이에 있습니다. 교회의 대형화는 잎사귀만 무성한 열매없는 무화과나무를 키워내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할 때입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추천 도서를 따로 정하는 것보다는 추천 저자를 말하는 것이 좋을 것같다. 성경 이외에 다른이들이 적은 모든 기독서적들을 읽지 않아도 좋지만, 아래에 나열된 분들은 (전기를 포함해서) 모든 책과 설교문들을 어떤 방법을 이용해서라도 구해서 필독할 것을 권합니다. 저도 아직 아주 일부만을 읽고 있지만 (사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책/사상은 너무 어렵습니다) 꾸준히 읽어나가려고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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