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3.02.14 김종욱찾기
  2. 2012.12.10 지금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3. 2012.12.05 100이라는 세계에서...

김종욱찾기

Gos&Op 2013.02.14 09: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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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김종욱 찾기'

영화 '김종욱 찾기'는 아련한 기억 속의 첫사랑의 연인인 김종욱을 찾아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의 일상 속에도 그런 김종욱같은 사람이 있다. 물론 이 글에서 김종욱을 첫사랑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글의 기본 내용은 오래 전부터 생각하던 것인데, 결정적으로 글로 표현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모든 전문가가 전문가는 아니다'라는 문장이 문득 떠오른 때다. 그렇다. 이 글에 말하는 김종욱은 나만의 전문가를 의미한다. 그저 유명하고 권위가 있는 인물이 아닌 내 주변의 전문가를 찾는 프로젝트가 바로 코드명 김종욱이다. (물론 실제 프로젝트가 진행중인 것은 아니다.)

인터넷이라는 것이 어느날 우리에게 찾아온 이후로 다양한 서비스들의 역습을 경험했다. 1996년 대학이란 곳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이메일 계정을 만들었다. 그 전에 OT기간동안 포스비라는 학내 사설BBS에 계정을 먼저 만들었던 것같다. 고퍼는 사용해보지 못했지만, 유즈넷은 가끔 사진이나 폰트를 찾는다고 이용했던 적도 있다. 지난 달 서비스를 종료한 나우누리의 기억도 새록새록하다. 1학년 겨울 방학 즈음해서 HTML을 배워서 홈페이지를 만드는 것에 푹 빠지기도 했고 JAVA라는 언어를 배운답시고 책부터 구매했던 그런 시절도 있었다. 홈피에 방명록을 붙인다고 CGI소스를 다운받아서 설치했던 것도 반평생 전의 이야기다. 그러던 중에 요즘도 많이 사용하는 웹메일이 등장하고, 웹기반의 커뮤니티와 지식서비스가 나왔고, 또 블로그라는 개인미디어는 홈피를 집어삼켰다. 웹2.0이라는 마케팅 용어 이후로 지금의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의 서비스들이 인터넷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대학을 다닐 때 만들어졌던 인터넷 1세대 그리고 대학원 이후에 나온 인터넷 2세대가 현재는 공존하고 있다. 인터넷에 다양한 서비스가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길어졌다.

인터넷의 많은 서비스들의 핵심은 데이터 (텍스트, 이미지, 동영상, 메타/통계 데이터 등)을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있다. 단순히 컴퓨터 화면/브라우저상에 어떻게 보여지느냐가 아니라, 사용자들의 만족효용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데이터의 정렬에 관한 것이다. 검색에서는 랭킹이라 불리고 다른 서비스에서는 추천이라고 불린다. 사람이 직접 관여해서 운영되는 경우도 존재하고, 알고리즘에 의해서 자동으로 이뤄지는 경우도 존재한다. 많은 서비스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차별화를 시도하지만, 결국에는 이 랭킹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로 집결된다. 구글은 페이지랭크를 선보이면서 인터넷의 절대강자가 되었고, 페이스북은 엣지랭크를 선보임으로써 유용한 사용자경험을 제공했고, 아마존은 개인화 추천이란 것을 선보였다. 인터넷의 등장 이후로 랭킹을 제대로 해결한 기업들이 결국 탑랭크되었다. 역사가 말해주고 또 말해줄 것이다.

랭킹. 문제는 참 단순한데 답은 꽤 복잡하다. 인터넷의 절대 반지다. 많은 사람들이 답을 구했지만 손에 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구글이 그랬고, 페이스북이 그랬고, 아마존이 그랬다. 그러나 아직은 완벽하지도 범용이지도 않다. 그래서 여전히 희망이 있고 새로운 웹도라도 (웹 엘 도라도)를 발견하기 위해서 많은 이들이 노력하고 있다. 그저 웹 세상에서는 구글이 평정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구글이 그저 컨텐츠와 집단지성을 이용하고 있을 때, 새로운 경쟁자들은 컨텍스트에 주목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트위터는 시간을 공략했고 페이스북은 인간을 공략했다. 포스퀘어가 공간을 지배할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공간정보는 그냥 범용이 되었다. 아, 소위 지식서비스라 부르는 Q&A도 구글의 거대한 알고리즘 틈 사이로 사람을 집어넣은 것이다.

랭킹이나 추천을 어떻게 할 것인가? 현재까지 사용되는 방법은 구글과 아마존으로 대표되는 집단지성, 지식iN으로 대표되는 전문지성 (일단, 답변자들이 전문가라고 가정하자.), 그리고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대표되는 지인지성이 있다.

집단지성. '많아지면 달라진다'는 말 (클레이 셔키의 책 제목)이 있다. 많은 사람이 선택을 했다면 '좋다' 아니 적어도 검증되었다라고 볼 수가 있다. 이를 가장 잘 활용한 곳이 구글과 아마존이다. 구글은 다량의 문서 네트워크에서 암묵적인 인커밍 허브를 찾아내는 방법을 활용해서 이를 페이지랭크라 불렀다. 아마존은 상품 구매자의 평점을 활용해서 개인화 추천 시스템을 만들었다. 특히 아이템 기반의 관련 컨텐츠는 이후 유튜브의 관련 동영상에도 사용되고 있다. 그외에 이베이의 판매자 평판 시스템도 명시적 집단지성을 잘 활용한 예다. 문제가 있으면 대중에게 물어보면 된다. 각자의 능력과 지식은 미흡할지 모르나 모이면 정답에 가까워진다. 물론 문제의 답이 정규분포를 따른다는 (일반적으로) 가정 하에 그렇다.

전문지성. 요즘은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그냥 구글에 검색해보거나 트위터/페이스북에 질문을 올리지만, 예전에는 가장 좋은 방법이 전문가를 찾아가는 거였다. 물론 유명한 전문가를 우리가 직접 만날 가능성이 매우 낮은 치명적 단점이 있다. 그러나 인터넷은 개념적으로는 그런 만남의 가능성을 높여놓았다. 아니, 우리 모두가 아는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재야의 고수들을 만날 수 있다. 개념적으로 전문가에게 질문을 하고 답변을 하사받는 시스템이 지식iN 또는 Q&A 서비스다. 물론 현재 인터넷에는 숨은 고수들이 많지만 사이비도 많다. 특히 마케팅/홍보로 오염된 경우가 많다. 어쨌든, (신뢰할만한) 전문가가 있다면 전문가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좋다. 아프면 인터넷에서 검색도 해보지만, 병원을 찾는 이유도 가운을 입은 의사가 전문가라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진짜 천재를 만나 고급의/정확한 전문지식을 얻을 수 있다면 집단지성보다 낫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우 그런 이를 만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전문지식에도 집단지성이라는 투표수나 공감수 등을 믹싱한다.

지인지성. 사실 일반 대중에게 묻거나 전문가를 찾아가는 것보다 더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엄마한테 물어보는 거다. 엄마가 갑이다. 나이가 들면서 엄마만으론 부족하기 때문에 주변의 친구들의 조언을 듣는다. 친구들은 내가 뭘 좋아하는지 또는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많이 알기 때문에 전문지식은 아니지만 친밀한 답변을 해줄 수가 있다. 나에 대한 컨텍스트 정보가 없는 전문지식이나 대중의 지혜가 쓸모없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경우는 너무 사소해서 전문가나 대중들에게 묻기가 부끄러운 경우도 있다. (물론 검색하면 대부분 나오지만… 구글은 신이니까)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가 이를 파고든다. 페이스북의 엣지랭크가 친구와의 친밀도 점수를 활용하고 있다.

집단지성은 대중성에 기반을 두고, 전문지성은 객관성에 기반을 두고, 지인지성은 친밀성에 기반을 둔다. 최근의 서비스들은 이들 모두를 잘 활용하는 듯하다. 어떠한 형태로든 원하는 답변을 얻을 수 있다면 별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중에 의해 검증된 지인의 진솔한 전문지식을 답변으로 얻는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집단지성이라는 대중적 검증과 전문지성이라는 신뢰하는 출처, 그리고 지인지성이라는 개인적 친밀감을 더 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래서 김종욱이 필요하다. 나와 아는 사람 중에서 검증된 전문가 김종욱을 찾는다. 프로젝트 김종욱. 참 복잡할 것같다.

(서론은 길지만 본론과 결론이 짧은 것이 내 글의 특징이다.) 검색이나 추천에서의 랭킹/순위는 다른 말로 관련성이라 표현할 수 있다. 내가 입력한 키워드와 나의 처지에 맞는 검색결과, 그리고 나의 개인적 취향에 맞는 제품/컨텐츠를 추천하는 것이 관련성이다. 그런데 이 관련성은 3가지로 세분화된다. 

  • 첫번째는 질문자 (나)와 답변자 (너) 사이의 관계다. 지인 네트워크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단순히 관심사로 묶인 관계일 수도 있다. 같은 물건을 구입했던 사람, 같은 노래를 듣고 있는 사람, 같은 기분/처지를 공유하는 사람 등등의 동질성을 가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친밀감이 온다. 
  • 두번째는 나/질문자의 관심사다. 답변은 나의 관심에 맞아야 한다. 아무리 전문가의 답변이더라도 또는 99%의 대중이 선택한 것이더라도 나 개인의 관심사와 맞지 않는다면 전혀 쓸모가 없다. 관심사는 평소 누적된 나의 행동에서 얻을 수 있다. 평소에 검색했던 검색어목록, 작성했던 글, 자주 읽는 기사, 또는 자주 가는 곳 등의 평소의 작은 행동들이 모여서 나의 관심사를 보여준다. 그리고 답변자의 관심사도 파악이 되어야 한다. 나의 관심사는 질문의 컨텍스트를 제공해주지만, 답변자의 관심사는 답변자의 전문성을 확보해준다. 
  • 세번째는 너/답변자의 관점이다. 관점은 다소 불명확한 개념이다. 그냥 겉으로 드러나는 답변만으로 부족하다. 답변자가 어떤 관점으로 그런 답변을 내놓았는지 알지 못한다면 답변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예를들어, '강정 해군기지의 문제점'이라는 질문에, 찬성론자는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부작용을 축소시켜서 답변을 줄 것이고 역으로 반대론자는 필요성/당위성보다는 환경파괴나 공동체파괴 등의 극단적 부정성을 강조하는 답변을 내놓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관점도 어필이 되어야 한다. 답변의 뉘앙스가 나의 관점에서 벗어난다면 답변의 만족도가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질문자의 관점이 나와 똑같야 된다는 말이 아니다. 상대가 어떤 관점을 가지고 답변을 주는지가 파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결론적으로 전문성의 가진 지인이 나의 관점에 맞는 답변을 해주면 베스트케이스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전문가를 김종욱이라 부르기로 했다. (여담. 회사 내에 동명의 인물이 있긴하다. 과연 그가 답을 하사해주고 떠날 것인가?)

프로젝트 김종욱의 결과물이 소셜Q&A 서비스인 Quora나 Aardvark 등과 닮았다. 그러나 Q&A 서비스는 온디멘드 On-Demand다. 즉 누군가 질문을 하면 그제서야 지인 전문가가 답변을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프로젝트 김종욱은 Q&A보다는 검색을 염두에 두고 있다. 즉, 지금 내게 필요한 정보/답변을 지인 전문가의 예전 글에서 찾아주는 것이다. 물론 현재 변화된 상황에 맞는 답변을 얻을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이건 검색이 가진 어쩔 수 없는 한계다. 그래도 비동기식 Q&A가 줄 수 없는 즉시성의 장점이 있다. 현재가 지나면 현재의 관심사도 없어진다. 아드바크의 초기 조사에서 응답시간이 수분 내로 매우 짧았다고 한다. 그러나 몇 시간, 며칠 이후에야 답변을 얻는 경우도 상당한 비율을 차지했다. 인터넷, 특히 모바일 세상에서 사람들은 참을성을 점점 상실하고 있다. 수초의 시간도 길다. 최근 페이스북이 그래프서치를 선보였다. 그걸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결국은 지인전문가 김종욱이 아니라, 김종욱이 전해주는 정보에 관심이 가는 것인 걸까? 영화에서도 결국 김종욱이 아닌 새로 만난 인연과 연결이 되었다. 김종욱은 구실일뿐...

(2013.02.02 작성 / 2013.02.14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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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업무방황기를 거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을 시작해야지 내년을 더욱 재미있고 알차게 보낼 것인가를 아직 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오고 가는 얘기들이 있지만 아직 정해진 것도 없고, 더우기 제가 마음 속으로 꼭 해봐야겠다는 일이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일이 생기고 또 길이 생겨서 이런 걱정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 최근 1년동안은 간헐적으로 계속 같은 고민에 빠집니다. 현재는 데이터마이닝팀에 소속되어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데이터분석에 초점을 맞춰서 글을 적을 예정입니다.

다음에 입사한지도 이제 만 5년이 다 되어갑니다. 5년 전에 입사를 위해서 지원서를 내고 면접을 볼 때는 어떤 생각을 가졌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합니다. 당시에는 인터넷 회사에 들어와서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들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직접 관여는 하지 않았지만 어떤 것들은 실제 서비스로 나오거나 기능이 추가되었고 또 어떤 것들은 이제 트렌드에 맞지 않는 구식의 아이디어가 된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5~6년 전부터 트위터와 비슷한 서비스를 구상했던 적도 있었고, 웹문서 전체를 클러스터렁해보자라는 생각도 했었고, (구글) 트렌드와 같이 그런 정보를 세상에 더 공유해보자라는 생각도 했던 것같습니다. 그 외에도 잡다한 많은 생각들이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데이터분석 측면에서 보면 지난 5년 (실제, 전반기 3~4년)은 새로운 일들이 끊임없이 밀려왔습니다. 한가지 일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새로운 것들에 대한 요구가 넘쳐났던 시기였습니다. 지금 되돌아보면 당시에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전혀 새로운 것들은 아니었습니다. 요구사항이 조금은 바뀌었지만 기존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에 파묻혀지내던 그 당시에는 모든 것들이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새로운 서비스를 개선하거나 런칭하기 위한 분석작업이 있었고, 같은 서비스더라도 새로운 데이터가 추가되어 분석의 내용이 바뀐 적도 있었고, 또는 새로운 분석 알고리즘을 적용하거나 분석툴이 생겨서 이를 기존의 서비스, 데이터에 적용하는 식이었습니다. 서비스가 바뀌면 새로운 일이었고, 데이터가 바뀌면 또 새로운 일이었고, 알고리즘이나 방법론을 수정하는 것도 늘 새로운 일이었습니다. 4~5년을 비슷한 패턴으로 일을 하다보니 이제는 새로운 서비스가 들어와도 기존의 서비스와 거의 비슷하다고 느껴지고, 새로운 데이터가 들어와도 이미 다른 서비스에서 다뤄봤던 데이터들이고, 그리고 새로운 알고리즘이라는 것도 별로 없다는 것을 실감하기 때문에 일종의 업무 권태기가 온 듯합니다. 물론 기존 서비스, 데이터, 알고리즘에 대한 고도화 작업은 꾸준히 이어지지만 이건 좀 지루하고 (매우 중요한 업무지만) 챌런징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세상에 수많은 알고리즘/기술들이 있지만 현재 업무 영역 내에서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은 한정되어있기 때문에 새로운 알고리즘을 배우고 적용하는 것에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날 갑자기 기존 서비스에서 전혀 새로운 데이터가 만들어져서 분석니즈가 생겨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다른 서비스로 메뚜기처럼 옮겨갈 수도 있지만 그냥 환경이 조금 바뀌었다뿐이지 크게 달라질 것도 같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전혀 다른 일을 시작하지 않는 이상은 새로운 것에 갈망을 채워주지 못할 것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도 내년에는 뭘하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그러던 중에 같은 서비스, 같은 데이터, 같은 알고리즘이더라도 새로울 수가 있다는 생각이 문뜩 들었습니다. 예전부터 이 부분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봐야겠다고 생각했었었는데 이제껏 바쁘다는 핑계로 계속 미뤄뒀던 것인데 지금 이 권태기 기간이 그 생각을 더 정리하고 그걸 바탕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적기인 듯합니다.

예전부터 늘 새로운 일에 치여서 바쁘게 지내면서 '과연 우리는 현재의 데이터 또는 능력에서 최대한의 가능성/의미를 뽑아내고 있는가?'라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아주 간단한 데이터에서 단순히 평균이나 편차 이상의 그 무엇을 생각해내고 있는가?라는 그런 종류의 의문이었습니다. 다음검색에서는 여러가지 쿼리/클릭로그에서 사용자들에게 최대의 만족도를 줄 수 있는 가치를 뽑고 있는가?가 될테고, 다른 다양한 RDB나 로고들에서는 그 서비스에 맞는 최대치의 결과를 주고 있는가? 등의 물음입니다. 한 가지 데이터를 여러 곳에 응용해서 사용하고 있지만 그 데이터가 가지는 또는 그 알고리즘이 가지는 최대치를 아직까지 미처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계속 해왔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상황은 전혀 변하지 않았더라도 완전히 새로울 수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새로운 서비스, 새로운 데이터, 새로운 알고리즘은 일반인들이 모두 보고 상상할 수 있는 XYZ축의 3차원 공간 이상이 아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3차원 공간에서 시간이라는 4차원 시공간이 되고, 또 그 이상의 무언가에 의해서 5차원, 6차원으로 발전하듯이 (분석) 업무에서도 기존의 서비스, 데이터, 알고리즘의 차원 이상의 차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New Insight
그래서 생각해낸 첫번째 차원은 바로 새로운 인사이트입니다. 지난 몇 년간 해오던 서비스에서 나오는 늘 똑같은 데이터를 정형화된 프로세스로 분석한다손치더라도 그 속에서 새로운 보물/인사이트가 숨어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매너리즘에 빠져버려서 내가 담당하는 서비스의 가능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데이터의 숨은 미세 틈새를 여태껏 놓쳐버린 것도 있을 것이고, 늘 이렇게 해왔고 이게 가장 좋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사용하던 그 방법론에서도 새로운 가치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주도면밀하게 관찰하고 상상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그런 인사이트를 여태껏 놓쳐버린 것같습니다. 때로는 '아하'의 순간도 있겠지만 스스로 더 깊이 파고 들어가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이 인사이트입니다. 이제껏 바쁘다는 핑계로 또는 재미없다는 핑계로 또는 급한 것이 아니다라는 핑계로 내버려뒀던 것들에서 더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찾는 노력을 기울려야 겠습니다. 그것이 인사이트를 얻는 시발점인 듯합니다.

New Perspective / Viewpoint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서는 새로운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늘 보던 방식대로 서비스와 데이터를 보면 새로운 것을 볼 수가 없고 인사이트를 얻기가 힘듭니다. 인사이트를 얻기 위한 또는 새로운 관점을 장착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입니다. 늘 만나던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예전에 했던 얘기를 또 하게 됩니다. 그래서 더 약한 고리의 사람들과 자주 접촉을 해봐야 합니다. 내가 담당하지 않는 서비스의 사람들이나 다른 직군의 사람들과 너른 대화를 해봐야 합니다. 굳이 깊이 있는 토론일 필요는 없습니다. 때로는 대화도 전에 그 사람의 얼굴을 보는 순간 새로운 생각이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또 새로운 관점을 갖기 위해서는 기존의 프레임/틀을 깨어부숴야 합니다. 원래 그럴 것이다라는 그런 식의 편견/선입견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서는 새로운 것을 볼 수가 없습니다. 아니, 새로운 것을 보더라도 새로운 것으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다양한 프레임을 만들어서 사물을 보면 또 다른 것이 보여집니다. 그리고 너무 당연하지만 생각비우기 또는 오픈마인드도 좋은 새로운 관점을 갖기 위한 좋은 프랙티스입니다. 내가 이제껏 이런 일들을 해왔고 이런 분야에 전문가다라는 그런 생각을 모두 버리고 완전히 어린 아이나 그 일을 처음해보는 초보자의 입장으로 돌아가서 지금의 문제를 다시 보는 것입니다. 쉽지도 않고 그렇게 하더라도 늘 완전히 새로운 솔루션을 얻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그래도 완고한 틀에 갇혀서 가능성이 없는 상태보다는 더 낫습니다.

지금 지루하고 힘든 권태기를 보내고 있다고 해서 늘 새로운 길로 갈 수는 없습니다. 이 시점에 기존의 것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새로운 것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관점으로 기존의 것을 봐야할 때입니다. 제가 지금 그런 시점에 와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새로운 관점에서 내가 하고 있는 업무들을 리뷰해보자고 마음을 먹었지만 쉽지만은 않습니다. 주변에서는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혼자만 놀고 있는 듯해서 미안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더 알찬 내년을 준비하기 위해서 눈치를 보면서도 이런 저런 다양한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Think Differ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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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도 100을 전부 볼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이다. 능력이 좋아도 2~30이상을 보기는 힘들다. 아무리 능력이 없어도 5정도는 볼 수 있을 거다. 물론 1미만도 있겠지만. (PKH처럼) 그렇다면 우리가 좋아하는 평균을 사용하면 100이라는 세계에서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10정도는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이렇게 10밖에 볼 수 없는 사람들 중에서 그 10을 마치 100인양 착각해서 사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나머지 90은 세상에 존재치도 않은 것처럼 생각한다. 다행인 점은 평균적으로 10만큼을 보지만 모두 같은 영역의 10을 보지 않는다는 거다. A와 B는 10밖에 볼 수 없지만 그들이 겹치는 영역은 5이고, 나머지 5는 서로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도 있다. A와 C도 10밖에 보지 못하지만 이들은 서로 겹쳐서 보는 곳이 0이어서 둘은 완전히 다른 10의 세상을 본다. 개인의 능력은 10밖에 되지 않지만 모두가 다른 영역의 10을 볼 수 있는 사회는 아름답다. 다양성이 인정되고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보완해줄 수가 있다. 이런 세상에서는 각자의 힘은 10이지만 최소 10명이 모이면 수치상으로 100의 세상을 모두 채울 수가 있다. 그런데 10밖에 볼 수 없는 개인들이 모여서 모두 같은 10을 획익적으로 보는 또는 볼 것을 강요받는 그런 집단도 있다. 우리가 경험하는 많은 집단들이 합쳐도 10밖에 되지 못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소위 전문가라는 무리들이 이런 오류에 빠지는 경우를 자주 본다. 그리고 특수한 목적과 이익을 위해서 모인 무리들도 그렇다. 보통 이들을 이익집단이라고 말한다. 학교에서 정치집단은 이익집단과 다르다고 배웠다. 그런에 요즘 정치집단들을 보면 이익집단을 뛰어넘는 초이익집단인 것같다. 굳이 새누리를 예로 들지는 않겠다. 회사에서도 비슷하다. 특정 기능에 특화된 팀에서는 그 팀의 전문성 외의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팀들이 모여서 큰 회사를 이루기 때문에 어쩌면 문제가 별로 크지 않다. 그런데 정작 문제가 될 수 있는 집단이 있다. 바로 경영진들, 이사회, 또는 리더모임이 획일적인 10의 집단으로 되는 것을 종종 본다. 어떤 결정이 그들의 스펙트럼 내에서 정해진다. 그래서 나머지 90의 직원들의 행복이 희생되는 것을 자주 본다. 이런 집단일수록 소위 말하는 포퓰리즘에 빠지기 쉽다. 포퓰리즘이란 '현상에 대해서 1차원적인 해법만 제시하고 생생내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그리고 강압적이다. '니 들이 뭘 알겠어' '다 니들을 위한 결정이었어' 등으로 무시하기도 하고 자기 위안에 빠지는 것을 자주 본다. 나도 아무리 잘난 척 하더라도 100중에 10이상을 본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누구와는 조금은 다른 10을 본다. 겹치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그러나 가능하면 겹치지 않기를 바라며 노력한다. 그래서 내가 옳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보는 부분에서는 옳다. 그들도 그들이 보는 부분에서 옳은 결정을 내렸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욕했지만 후회되기도 한다. 그냥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려니... 지난 글에서 밝혔던 '우리는 여전히 파편만 보고 있다'라는 말도 누구도 100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일부러 문단을 나누지 않았다. 이 또한 글을 적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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