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시적 소비'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3.04.08 과시적 생산
  2. 2012.04.05 과시적 소비와 부의 불균형
  3. 2011.12.06 양지의 검색 In Public?

과시적 생산

Gos&Op 2013.04.08 09: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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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잉여'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잉여력이 어떻게 사회를 변화시키는가? 많은 이들의 잉여력을 어떻게 한 곳에 집중시킬 수 있을까? 사람들이 기쁘게 자신의 잉여력을 기부할 수 있는 분야는 무엇일까? 등의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사람들의 잉여 이유를 알고 싶었습니다. 이 글이 모든 잉여의 이유를 설명해주지는 못합니다.

재미있는 경제학 용어가 있습니다. 미국의 경제학자 베블린 Thorstein Veblen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베블린효과 Veblen Effect라고도 불리는 '과시적 소비 Conspicuous Consumption'라는 용어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위키를 참조하시고 (위키링크), 대략적으로 설명하면 사람들의 소비행위가 자신의 계급이나 지위를 남에게 과시/뽐내기 위한 행동의 일종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소비 행위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고가의 명품을 구입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잘 설명해줍니다.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기 때문에 자신의 위치를 나타내기 위해서 고가의 명품을 구입하는 경우도 있지만, 역으로 자신의 지위가 높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고가의 제품을 구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명품/고가품의 구입이 단지 과시성만이 이유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즉 과시성이 주가 되기 때문에 비쌀수록 더 잘 팔리는 기현상도 발생합니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고가의 명품을 구입하는 과시적 소비가 있다면, 비슷한 이유로 과시적 생산도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잘 난 사람이야' '나는 뭐든지 잘해' 등과 같이 자신의 역량을 과시하기 위해서 이것저것 만들어 보여주고, 스스로를 과시하고 뿌듯해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종종 봅니다. 이런 생산에서의 과시성이 잉여력의 한 이유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지나친 과시정으로 잉여력 이상의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는 헛된 과시성의 중독도 목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잉여력의 발산의 큰 부분이 과시성이 있는 것같습니다. 스스로 좋아서 하지만, 굳이 필요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 소비에서 처럼 -- 과시성으로 설명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변에 이것저것 남들을 잘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는 오픈소스 커뮤니티에서처럼 자신의 시간과 리소스를 기부하는 행위를 종종 봅니다. 이들이 그런 행동을 통해서 실질적으로 얻는 것도 없으면서 그것을 계속 하는 것은 적어도 남들 (도움을 받은 이)에게 인정을 받기 위한 심리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여러 커뮤니티나 서비스를 둘러보면 회원들을 등급으로 나누는 것도 일종의 과시성 및 과시성을 부추기는 것같습니다. 그냥 일상의 생각을 기록하던 블로거들에게 '파워블로거'라는 명칭을 붙여주고는 그들의 잉여력을 최대한 뽑아내려는 것도, 그리고 스스로 파워블로거라고 자부하면서 스스로 대단한 위치에 있는 것처럼 여기는 것도 모두 과시성입니다. 필요에 의한 것도 있지만 게임에서 만렙을 얻거나 성주가 되는 것도 그런 과시성이고, Q&A 서비스에서 최고 등급을 받기 위해서 모든 질문에 답변해주는 것도 일종의 과시성의 발로입니다.

적당한 과시성은 좋은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공유경제가 더 활성화되고 자발적인 문화가 번성합니다. 그러나 과시성에 중독되어 자신의 능력 범위를 벗어나는 것은 위험합니다. 요란한 선행 Blatant Benevolence라는 말이 있습니다. 과시성이 지나쳐서 자신의 모든 선행을 남들에게 떠들석하게 알리는 것입니다. 남몰래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 플래쉬 세례를 받으면서 떠들석하게 기부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과시성만으로 모든 잉여력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직접적인 혜택이 없는 잉여력의 발산을 과시성보다 더 잘 설명해줄 수 있는 다른 것도 없을 듯합니다. ('이타성'이 있긴있네요. 근데 많은 이타성 내에도 과시성이 존재한다고 생각됩니다.) ... 잉여력의 발산이 과시성에 기인했든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건 세상에 기여하는 다양한 잉여력의 발산은 늘 좋습니다.

(2013.04.02 작성 / 2013.04.08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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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로버트 H. 프랭크의 <사치 열병 Luxury Fever>이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책의 시작은 일상 생활에는 별 필요가 없는 사치재의 소비가 늘어난다는 것에서 시작해서 다양한 사회현상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직 책의 전반부만 읽고 있지만 그냥 스쳐지나가는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듯해서 글을 적습니다.

베블린 ThorsteinVeblen이라는 유명한 경제학자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잘 알려져있지 않더라도, 그의 이름을 딴 베블린 효과 Veblen Effect라는 용어는 뉴스에서 한번정도는 들어봤을 것입니다. 베블린 효과는, 짧게 말해서, 제품의 가격이 높아서 사람들이 많이 구매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동의된 제품의 적정 가격이 있고, 또 경제학의 기본 원리에 의해서 가격을 높이면 수요가 감소합니다. 그런데 제품의 가격을 올렸는데도 수요가 감소하기는 커녕 오히려 올라가는 현상이 발견되었는데, 이를 베블린 효과라고 말합니다. 최근에 일고 있는 고가/고급의 명품 열풍을 잘 설명해주는 현상입니다. 이런 베블린 효과를 설명해주기 위해서 등장한 용어가 바로 '과시적 소비 Conspicuous Consumption'입니다. 필요 Need에 의해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 Want에 의한 소비를 잘 설명해줍니다.

그런데 이런 고가의 제품을 구매하는 베블린 효과나 과시적 소비의 시작은 부자들이 시작합니다. 의식주의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가진 부자들은 자연스레 미술품이나 골동품 등의 예술품에도 관심을 가지고, 좋은 집이나 차를 구매하기도 하고, 그 이상의 부자들은 개인 제트비행기나 요트를 구매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고가의 제품 소비는 다른 부자들에게 자신을 더 뽐내기 위해서 경쟁적으로 소비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런 과시적 소비가 부자들에게만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부자들이 명품이나 사치품을 구매하기 시작했지만, 그런 모습이 부러웠던 일반인들도 점점 명품 등의 고가 제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부자들은 남는 돈으로 사치품을 구매하지만, 일반인들은 그런 여유자금이 없기 때문에 필요경비를 줄여서 명품소비에 가세를 하거나 아니면 여유자금을 더 벌기 위해서 업무 외의 아르바아트 등의 노동의 양을 증가시킵니다. 

단기적으로는 다른 불필요한 경비를 줄이고 노동을 늘려서 여유 자금을 마련하는 것은 좋지만, 이런 현상이 장기화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노동 시간을 늘렸다는 것은 놀이와 여유시간이 부족해짐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재충전할 휴식을 갖지 못하기도 하고, 또 다른 기술이나 지식을 습득한 학습시간이 줄어들게 됩니다. 비슷한 관점에서 부식비를 줄여서 영양상태가 나빠진다거나 도서구입비도 줄어들고, 또 문화생활비도 줄일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런 기간이 길어질 수록 부자와 빈자 사이의 경제적 차이보다도 더 큰 문화격차, 지식격차, 여유격차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경제적 격차가 더 벌어집니다. 부/소득의 불균형이 더욱 심화됩니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불균형의 악순환이 걱정되었습니다. 아직까지도 경기가 좋아지지 않아서, 절대 필요 경비 외의 문화생활비를 줄이고, 부식비를 줄이고, 심지어 한국인들에게는 마지막 보류와도 같은 자녀들 교육비도 줄이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단순히 경제적 격차에서 시작했지만, 1%와 99%로 대변되는 현재의 불균형은 문화의 격차도 더욱 넓히고, 지식의 격차도 더욱 넓히고, 경험의 격차, 생각의 격차... 등의 모든 격차를 넓히고 있습니다. 글의 시작은 사치품의 소비가 마치 불균형을 심화시킨다는 식으로 글을 적었지만, 오히려 이런 개인의 선택에 따른 불균형의 심화는 그래도 받아들일만한데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회적 현상 따른 불균형의 심화는 뭐라말할 수도 없습니다. 

최근의 '무상급식' ('의무급식'이 맞다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논쟁에서도 근본적으로는 장기적인 사회 불균형의 심화를 줄이는 방안이라는 측면에서 검토되어야 했습니다. 단순히 포퓰리즘이라는 생소한 용어를 익숙하게 만들 것이 아니라, 사람 사는 공동체의 조성이라는 측면에서 검토되었어야 했던 사안입니다. 부의 불균형을 넘어서 지식과 문화의 불균형으로 심화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그런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무리들의 놀음에 우리는 쇠뇌되고 있습니다. 순간순간 깨지 못하면 영원히 시체로 남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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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의 검색 In Public?

Gos&Op 2011.12.06 09: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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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잠시 떠오른 생각으로 시리즈를 이어갈까합니다. 답을 제시하는 글이 아닙니다. 그냥 저의 궁금증에 대한 나열입니다. 지난 글들은...
 1. 재미있는 검색. FUN 
 2. 잉여자들을 위한 검색 Search As Fun
 3. 잉여를 위한 검색은 없다. No Search for Abundance/Surplus
 4. 잉여의 나라로 Into Real World
 5. 검색의 재미 검색의 잉여 Fun of Search
 6. 잉여와 잉여자, 그리고 검색 Abundance & Surplus
 7. 재미를 위한 인터넷. 그렇다면 검색도 가능? Not that purpose only.

 작년에 소셜네트워크의 현상에 대해서 '허영의 또는 허영 위에 세워진 왕국'이라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의 SNS를 이용하는 것이 단지 정보의 습득보다는 자기 자신을 뽐내기 위해서 많이 사용한다는 의미였습니다. 경제학자 베블린 Thorstein Veblen[각주:1]이 말한 과시적 소비 Conspicuous Consumption (보통, 베블린효과 Veblen Effect로 알려진 것)이 이뤄지는 대표적인 (인터넷) 공간이 소셜서비스입니다. 물론 그 전에 있던 많은 커뮤니티 서비스에서도 그런 과시적 행위가 많았지만, 그 공간이 더욱 사적으로 바뀌면서 과시의 정도가 더 심해진 듯합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 자주 언급하는 내용은 '나 XXX에 왔어' '나 XXX랑 있어' '나 XXX를 먹고 있어' '나 XXX를 샀어' '나 XXX를 선물받았어'... 등의 글을 자주 올리게 됩니다. 이런 종류의 조금 사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나는 XXX (전문정보)를 알고 있어'류의 글이 타임라인/뉴스피드에 많이 올라옵니다. 위의 글에서 공통적으로 빠져있는 문장이 있습니다. (물론 가끔은 명시적으로 표현되었지만) 그것은 바로 '... 부럽지?'입니다. 많은 트윗이나 뉴스피드를 분석해보면 "나는 이런 멋진 곳에서, 멋진 사람이랑, 멋진 음식을 먹고, 멋진 물건을 소비/선물받고, 또는 이런 어려운 지식을 알고 있는데, 넌 이거 없지? 그러니 부럽지?" 이런 식의 글들입니다. 이것이 베블렌이 경제/소비생활에서 밝견했던 과시적 소비의 인터넷/온라인 버전이 아니면 뭘까요?

 그런데, 이 글의 주제는 소셜이 아니라 검색입니다. 검색에서도 이런 과시적 소비가 이뤄질 수 있을까? 그리고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과시적 소비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가 오늘 아침에 갑자기 든 의문입니다. 검색은 소셜과 달릴 더 개인적인 영역입니다. 이걸 공적인 영역으로 끌어낼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떤 정보를 찾고자할 때 주로 검색을 이용합니다. 어떤 정보/지식을 찾는다는 것은 지금 그 정보/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 또는 잘 모른다는 것이 밑에 깔려있는 가정입니다. 소셜에서는 '나는 이걸 알고 있다. 또는 이걸 가지고 있다'가 전제가 되어서 '너는 이걸 모르지? 또는 이걸 알려줄까?'로 이어지는 과시행위로 이어졌는데, 검색에서는 '나는 이걸 모른다'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네가 내가 이걸 모른다는 걸 알면 안 된다 (그러니 검색해서 충분히 알고 난 뒤에 아는 척 하겠어)'는 의식이 깔려있습니다. (항상 그렇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더우기, 아주 특수한 케이스지만 어제도 방송인 H씨의 스캔들 비디오가 이슈가 되었지만, 그런 종류의 음성정보를 찾기 위해서도 검색을 많이 이용합니다. 진짜 궁금하고 낯이 두꺼운 경우에는 공공장소에서 'XX비디오'를 찾고 있어요라고 친구/지인들에게 부탁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보통 사적인 장소나 사적인 커뮤니티 또는 그런 것만을 주로 취급하는 곳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음), 보통의 경우는 인터넷 검색창에서 관련된 키워드를 입력해서 그런 데이터를 얻고자 합니다. 

 요약하면, 소셜이 양지의 서비스라면 검색은 (일종의) 음지의 서비스입니다. 이런 음지를 지향하는 서비스가 이전 글들에서 말했던 그런 (양지의) 재미를 제공해줄 수 있을까? '나는 이걸 찾아봤어. 너도 궁금해?'를 쉽고 가볍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 생각을 해보면 모든 검색의 주제가 음지에 있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특히 미디어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사안들에 대해서는 양지에서 소통되고 논의되어야하는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유머/사진/동영상을 발견했을 때 친구들에게 공유한다거나.. (그런데 그런 유머는 검색을 통해서라기 보다는 게시판이나 다른 친구들의 글을 통해서 얻는 경우가 더 많죠. 그래서 이렇게 회자되는 정보를 하나로 묶어서 보여주려는 서비스 시도가 종종 있었습니다.) 가벼운 글보다는 어쩌면 사회의 어두웁거나 무거운 사건 (예를들어, 선관위 DDoS공격 (아닌 것같지만) 사건이나 총선/대선 등의 선거, 자연재난재해, 사건사고 등)을 검색을 통해서 쉽게 유통시킬 수는 있을 것같습니다. (그런데 이게 검색의 양지화인가???) 단순히 검색결과에 대한 공유버튼을 추가하는 것으로는 이뤄지기 힘들 듯합니다. 검색이 양지의 플랫폼으로 만들어줘야 가능할 것같은데, 그런 플랫폼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1. http://en.wikipedia.org/wiki/Thorstein_Veblen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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