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03.19 그저 그런 사람들
  2. 2013.01.11 천재와 교육

그저 그런 사람들

Gos&Op 2013.03.19 09: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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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문득 이런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르게 만들어졌는데 그냥 평범해지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때마침 읽고 있는 마르쿠스 헹스트슐레거의 <개성의 힘> 때문에 이런 생각이 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백하자면 '개성의 힘'은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에는 첫 장만 읽은 상태입니다. 책의 모두 읽지 않더라도 내용과 결론은 충분히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지난 밤에 미디어오늘에 올라온 이정환 기자님의 "'미생', 장그래가 말하지 않는 것들" 을 읽은 기억 때문에 저런 생각이 떠올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윤태호 작가님이 그리는 미생이 직장인들의 필독서가 된지가 오래지만 그동안 그 속에 숨어있는 불편함을 미쳐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저 그 속에서 아등바등거리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에서 나나 동료들의 애환만을 생각하고, 그래서 동화되고 응원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직 경쟁 그리고 적자생존만을 외치는 삶의 정글에 갇혀서 오직 한 가지 목표만을 향해서 달리는 우리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오직 살아남겠다는 그 하나의 끝만을 쫓다보니 참다운 나는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내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왔고 또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와는 무관하게 모두 나이가 되면 대학에 들어가고 나이가 되면 적당한 회사에 취직을 합니다. 그걸로 나는 끝입니다.

SNS에서 어쩌다 알게 된 미술을 전공한 분의 최근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졸업작품을 준비하는 것은 가끔 봤는데 결국 졸업하고 취직해서 지금 회사를 다니고 있는 듯합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지쳐서 아무 것도 하기 싫다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작년에 밤을 새면서 졸업작품을 준비할 때는 전혀 그런 글을 본 적이 없는데, 졸업한지 그리고 취직한지 얼마되지도 않은 벌써부터 지친다는 글이 눈에 띕니다. 그분은 전공인 미술과 관련된 직장을 구했을까요?

제 주변에는 개발자들이 많아서 컴공과 출신이 많습니다. 컴공과가 아니더라도 대부분 다른 공대나 자연대 출신들입니다. 어릴 적 꿈이 코딩이 분명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개발자들은 그마나 공학적 지식을 활용해서 (?) 개발을 하고 있지만, 기획자들을 보면 이들이 원했던 삶이 이거였을까?라는 질문을 가끔 던지게 됩니다. 가끔 얘기를 해보면 제가 평소에 들어보지도 못했던 생소한 학과 졸업생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그저 여기서 웹 기획을 하려고 비싼 등록금과 4년 이상의 시간을 보냈는 것일까요? 이들의 업무가 좋다 나쁘다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어릴 적에 지금의 모습을 꿈꿨을까요? 아니 그들이 대학을 선택할 때 지금의 모습을 그려봤을까요? 그들이 학과 수업을 들으면서 지금을 예상했을까요?

살면서 헛돈을 많이 썼지만 가장 아깝게 생각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서울에 있는 모대학에 지원을 하고 논술 등의 본고사를 보면서 들어간 돈이 가장 아깝게 생각됩니다. 원서비, 교통비, 숙식비만 고려해도 당시에 100만원 이상 들어갔고, 여기에 불필요한 논술을 준비한다고 들어간 돈과 시간까지 합친다면 지금도 가끔 그때를 회상하면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차피 내가 가고 싶었던 대학도 아니었고, 설령 합격이 되어 그곳을 다녔더라도 '나'를 만드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더욱 그때 들인 노력과 자원이 아깝게 여겨집니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나이가 된 후부터 커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는 결코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터였는데, 고등학교 졸업할 때가 되어서 결국 서울에 있는 대학을 지원하고 쓸데없이 돈을 낭비했습니다. 저는 평범함을 갖기 위해 돈과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어제 런닝맨에서 송지효와 한혜진의 베트남 전통의상인 아오자이를 입은 모습이 이슈가 되었습니다. 최종 미션장소에 모인 군중들이 모두 노란색 아오자이를 입고 있어서 노란색 아오자이를 입은 송지효가 군중 속에 숨을 수 있었고 최종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 일화에서는 송지효가 군중, 즉 평균에 수렴/적응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 아니냐?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만약 군중이 노란색 옷이 아니라 각자 다른 색상의 옷을 입고 있었다면 송지효뿐만 아니라 모든 멤버들이 군중 속에서 숨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환경은 늘 변합니다. 만약 모두가 갑자가 붉은 옷으로 갈아입는 과정이 있었다고 가번한다면 송지효의 노란옷은 결국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놓는 상황이 되었을 것입니다. 각자가 각자의 색을 가지고 있을 때 소수가 아닌 다수에게 유리한 상황이 발생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평범해지기 위해서 다르게 태어난 사람들...'이라고 아침에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습니다. 이미 또 하루만큼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고 난 후라서 아침에 느낌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오늘도 나는 나의 다름을 양보하고 그저 평범을 얻기 위해서 시간을 허비한 것같아서 오늘 하루에게 미안합니다.

당신도 지금 그저 평범해지기 위해서 아등바등 거리며 살고 있지 않나요?

(2013.03.11 작성 / 2013.03.19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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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와 교육

Gos&Op 2013.01.11 09: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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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미했던 천재 지휘자 헤르베르트 본 카라얀. 그의 평전을 읽으면서 '카라얀이 만약 음악/지휘를 하지 않았다면 그가 천재로 인정받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어릴 적에 기계 메카닉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어쩌면 엔지니어로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엔지니어로 천재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까? 만약 물리학이나 수학 또는 경제학 등의 전혀 다른 분야로 진출했다면 그는 그 분야의 천재가 됐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카라얀은 운좋게도 지휘/음악을 시작했기 때문에 그 분야에서 천재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현재까지 음악에 문외한 나조차도 알고 있는 지휘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참고. 카라얀 평전 1, 카라얀 평전 2)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적합한 분야를 선택해서 공부하고 노력한다면 천재적 기질을 발휘할 수 있지 않았을까?' 또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분야가 아닌 엉뚱한 곳에서 재능을 썪히면서 평범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페이스북에 짧게 "모든 사람은 천재다. 만약 자신의 재능을 꽃피울 최적의 분야를 찾는다면… 그래서 대부분은 바보다."라는 글을 남겼다.

카라얀 평전 초반부에 마리아 칼라스의 명언이 한 줄 나온다. "좋은 교사와 위대한 교사의 차이: 좋은 교사는 제자의 자질을 최고로 끌어올릴 줄 알고, 위대한 교사는 제자의 장래를 내다볼 줄 안다."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의 재능을 발견해주고 그 재능을 극대화시켜주고 또 그걸 통해서 미래를 개척/변화시키는 것을 도와주는 그런 부모/스승/멘토/지도자를 만난다면 우리 모두가 천재가 되지 않을까? 적어도 현재처럼 자신의 소질과 흥미와는 무관하게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책에만 파묻혀서 지내지는 않아도 되고, 그래서 더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서 더 재미있고 흥미로운 세상이 만들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부모들은 자기 자식들이 어릴 때 한 작은 행동이나 말을 보면서 '천재가 아닐까?'라는 착각에 쉽게 빠지고, 자식들이 진짜 흥미를 느끼고 또 재능을 보이는 것이 아닌 (부모의) 착각 속의 분야로 자식들을 내모는 경우를 자주 본다. 대부분은 안 좋게 끝난다. 자식들의 실제 재능을 발견하기 위해서 이것저것 모두 해보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무진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사람이 천재가 되는 길은 참 험하고 멀다.

흔히들 우리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적어도 3가지 기준으로 그 일을 평가해본다.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일인가? 내가 진짜로 잘할 수 있는 일인가? 내가 진짜로 해야만 하는 일인가? 즉, 흥미와 관심 Love to, 재능과 소질 Able to, 그리고 당위 Have to에 대한 자문이다. 당연히 내가 좋아하면서도 잘 하는 일을 해야만 할 때, 가장 퍼포먼스도 잘 나고 어쩌면 그 일에 천재적 재능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어느 것 하나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평범하게 살아간다. 때로는 자신의 관심과 재능과는 전혀 무관한 분야에서 자기 만족에 빠지는 경우도 있고, 더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경우도 종종 본다.

어릴 적에는 부모나 주변의 강요에 의해서 싫든 좋든 많은 것을 해본다. 운좋으면 자신의 흥미와 재능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어린이에게 시대적 소명이나 당위성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그런 경우라면 그것을 즐기며 갈고 닦으면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말콤 그래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 말한 1만시간의 법칙을 지킨다면 천재까지는 아니더라도 평균 이상의 전문가로는 명성을 쌓을 수 있을 거다. 그런데 운좋게 발견한 그 분야가 진짜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고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괜히 적당히 좋은 분야에 올인하느라 진짜 천재적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본다. 조금 다른 뉘앙스지만 자신의 재능과 흥미를 발견할 때도 -- 짐 콜린스가 말한 -- '좋은 것이 위대한 것의 적'이 될 수도 있다. (참고,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사람들은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서 스스로 꿈을 꾸게 된다. 보통 그 꿈이란 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요즘 청소년들은 제대로 된 꿈을 꿀 기회조차도 박탈당하는 것같다. 나만 하더라도 어릴 적에는 막연한 장래희망이 있었지만, 10대와 20대 초반을 보내면서 특별한 목적의식은 없었던 것같다. 짜여진 획일적인 커리큘럼에 따라서 교육받아지는 우민 백성들이 만들어지는 사이에, 진짜 소중한 우리의 꿈과 개성과 재능은 늘 뒷전으로 밀리기만 한다. 최근에는 그런 몰개성 교육의 무용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고, 미래를 위해서 새로운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단순히 새로운 커리큘럼을 준비하는 것은 새로운 방식의 바보만 양산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교육 자체가 없어져야할지도 모르겠다. 2차산업의 역군을 키우기 위해서 갖춰졌던 현대 교육과 작별을 고할 때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이들에게 다양한 놀거리와 생각할거리를 제공해서, 스스로 자신의 꿈과 재능을 발견할 기회를 줘야 한다. 이 대목에서 앨빈 토플러의 충고를 새겨들어야 한다. 그는 한국의 학생들은 10년 후에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하루에 몇 시간씩 공부한다고 지적했다. 기성세대가 만든 과거가 아닌 자신이 설계하는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다행히도 소위 말하는 머리에 피가 마르는 시기가 되면 성인들은 스스로 자신의 장래를 걱정하면서 자신의 흥미와 소질을 재평가해서 미래의 직업을 선택한다. 우민화로 인해서 그 시기가 너무 늦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노파심에서 말하지만, 여기서 좋아하는 것은 유희적/소비적 취미를 뜻하지는 않는다. 생산적 취미와는 어느 정도 맞다.

개인의 개성 (흥미와 재능)에 더해서, 당위성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무조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라고 해서 그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법과 문화, 규범의 테두리 내에서 불가능한 것들도 많다. 그런 하드한 제약조건이 아니더라도, 특정 시대가 요구하는 시대정신 또는 소명이 있다. 그런 시대정신과 소명에 맞는 일이 무엇인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다 같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유아독존이 될 수가 없다.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모두 그 사회로부터 받은 것을 되갚아줘야 한다. 즉, 사회기여 contribution가 필요하다. 내가 이 일을 함으로써 이 사회는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 또는 역으로 어떤 해를 입을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면서 일을 선택해야 한다. 우려되는 점은 이 사회의 저소득, 하층민, 소외계층의 경우 사회로부터 받는 것이 전혀 없다는 그런 좌절감을 느낀다. 최근 대한민국의 양극화/불평등/불확실성 상황을 보면 그 심각성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그런 인식을 갖는 사람이라면 역사회기여의 행위를 자행할 수도 있다. 실제 최근 자주 발생하는 묻지마 사건들이 그런 부작용의 일종이다. 개인이 사회에 느끼는 당위성은 사회가 그 개인에게 공평하고 공정한 기회를 줄 때만이 생겨난다. 개인의 사회 당위성은 사회 (국가)의 개인에 대한 공정성에서 나온다.

마지막으로 카라얀 평전에 나오는 글귀 (챕터제목) 하나로 글을 마친다.

천재란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노력이다.

[업데이트 20130114] 주말에 안타까운 뉴스가 있어서 업데이트 합니다. 13세의 나이로 RSS (Rich Site Summary, formerly Really Simple Syndication)의 표준화에 참여했고 Creative Commons에도 참여했고 Reddit도 공동창업했던 Aaron Swartz의 자살소식입니다.  (참고. Prosecutor as bully, by L. Ressig) 그냥 유명 연예인의 죽음은 별로 충격적이지 않은데, 이런 기술분야의 천재들의 뉴스에는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평소에 이런 천재들이 더 많이/오래 사회에 공헌/기여하는 것을 원했던 사람으로써 그의 요절은 참으로 충격적이고 안타깝습니다. 앞서 천재는 적성과 재능과 당위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와 함께 '인성'에 대한 부분도 필요합니다. 특히 어릴 적부터 천재 소리를 듣은 이들은 자신만의 인성을 갖기도 전에 주변의 주목부터 받기 때문에 제대로된 인성을 기를 겨를이 없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본 윤석찬님의 아론에 관한 글의 말미에 나오는 대한민국의 김웅용씨가 말한 'NASA에서는 계산과 예측에서 천재성을 발휘하는 그의 재능만 필요로했다'는 말에서 이들에게 자존감과 사회공동체의식과 같은 인성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오직 그들의 재능만을 빨아먹고 있는 것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성은 당위성과 함께 제대로 가르쳐줘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을 깨닫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어릴 적부터 천재성이 부각되기 때문에 그런 재능을 소진한 이후에 당위성과 인성을 자각하게 되면 너무 늦습니다. 검찰과 MIT에서 과도하게 그를 옥죄었다는 것이 그의 자살/우울증의 원인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그가 제대로된 인성교육을 받았다면 이번 사건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MIT JSTOR의 해킹이 그렇게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신념 때문에 정보의 자유로운 공유를 위해서 JSTOR를 해킹했을 개연성은 높았지만, 그래도 당위성에 대한 가르침이 있었다면 그렇게 쉽게/무모하게 행동에 나서지도 않았을테고 제대로된 인성이 갖춰졌다면 그 이후의 사회적 압박/괴로움 그리고 삶을 포기하는 것을 그렇게 쉽게 자행하지는 않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별한 분야에 적성과 재능을 가졌다지만 천재도 또한 사람입니다. 그에게 천부적인 재능을 강요하는 것에 앞서서, 사람으로써의 자존감을 갖도록 인도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최근 한국 사회의 청소년 문제들을 보면서 우리도 반성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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