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의 미래

Gos&Op 2015.01.07 12: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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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하다.

요즘 새로운 걸 좀 해보겠다고 Deep Learning 관련 논문들을 탐독하고 있습니다. 작년 초에 딥러닝이란 걸 들은 후에 논문 몇 편을 프린트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잘 읽혀지지 않아서 그냥 포기했습니다. 후반기에 추천 시스템(CBF)에 딥러닝을 사용한 사례가 있어서 관련 논문을 또 프린트해서 읽기는 했는데 뭔 소리를 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작년 12월부터는 이해하든 못하든 그냥 딥러닝 논문들을 다양하게 많이 읽다 보면 용어나 개념에 익숙해지고 차츰 깨달음을 얻겠지 싶어서 (마치 기계를 학습시키듯) 읽어나가고 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잘 모르는 이들에게 (전문가들에게 구라를 치면 바로 들킬테니) 대략적으로 설명은 해줄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압축되고 어려운 논문을 찾아서 또 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또 좌절을 맛보고 있습니다.

이런 1년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학술) 논문의 미래는 없다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비록 논문이 인류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새롭게 발견된 것을 논문이란 이름으로 정리해서 많은 이들에게 공표, 공유했습니다. 그런 논문을 읽은 이들은 또 그것에서 영감을 얻어서 새로운 사실을 추가해서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서 다시 공유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시각과 발견이 합쳐져서 다양한 분야에서 현재의 발전에 이르렀습니다. 발견과 공유라는 논문의 대승적 원칙에는 동감하지만, 이제 논문이 제 역할을 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히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블로그 포스팅이 기존의 학술 논문을 대체하고, SNS가 저널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 아닙니다. 웹이 새로운 저작과 공유의 도구를 만들어냈지만, 학술 논문과 저널이 가지는 전문성이나 깊이를 따라기기에는 격차가 여전히 큽니다. 연구가 주 목적인 학계와 개발이 목적인 산업계의 속도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도 학술 논문의 위기를 암시하지만, 여전히 학계의 기초 연구와 산업계의 응용 개발은 공존해야 합니다. 이런 현상은 논문이 다른 모습으로 진화하는 것을 부추기겠지만, 논문의 종말을 이끌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렵게 적히 몇 편의 논문을 읽으면서 이제 논문의 한계 수명을 다했구나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새로운 발견에 대한 한 편의 논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 명이나 될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분야에서 오랫동안 연구해왔던 전문가들은 아마도 그 논문이 가지는 함의와 영향을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분야의 밖에 있는 이들은 그 발견에서 중요한 인사이트를 얻기가 힘들 듯합니다. 논문을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지 영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논문이 더 압축되고 어려워질수록 (새로운 개념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있고, 그저 어렵게 적혀진 경우도 있음) 전문가들은 만족하겠지만 초보자들의 좌절합니다. 그런 논문들이 늘어날수록 논문은 전문가 집단, 즉 이너서클에서만 환영을 받고 그네들만을 위한 공유의 도구가 됩니다. 이너서클에서 인정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논문은 발견과 공유 즉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하는 길라잡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 (어렵게 적힌) 논문은 초보자들이 극복해야할 장애물이 됐습니다. 

한 편의 논문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 선행해서 알아야하는 개념들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줄줄이 엮인 논문들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나서야 처음 손에 잡았던 논문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레퍼런스의 레퍼런스, 레퍼런스의 레퍼런스의 레퍼런스, ...를 모두 읽어야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그리고 특정 분야의 전문가라고 해서 그 모든 것을 온전히 이해하고, 정리해서 타인들에게 알려줄 수도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일부러 더 압축하고 어렵게 적으려는 경향도 어느 정도 있습니다. 소위 전문가 티를 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냥 우스게 소리로 대가는 증명이 필요한 어려운 문제를 그냥 'it's trivial'이라고 말하고 증명을 생략한다라고 말합니다. (논문의 길이 제한 등으로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존재하지만) 개념적으로 쉽게 설명해도 되는 것들을 그냥 어려운 용어들을 나열하고 때로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어도) 그럴듯한 개념들을 마구 수셔넣어서 압축합니다. (불필요한 수식도 가능한 자제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오히려 그게 더 간결하고 이해하기에 쉬운 경우도 있으니 그것까지 불평하진 않겠습니다.)

공유를 위한 도구가 이제 견제를 위한 울타리가 됐다는 느낌을 받으며 (저의 무능을 감추기 위해서) 하소연 해봅니다.

학자 여러분들, 논문 좀 쉽게 쓰세요. 그게 당신의 가치를 깎아내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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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에의 집착'과 '위대함은 충분함의 적이다'에서 이미 다뤘던 내용이지만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빈번히 함정에 빠지기 때문에 다시 적는다. 지난 글에서 있으면 좋을 법한 온갖 기능들을 모두 갖춘 그런 완벽한 서비스를 생각하고 개발에 들어가지만 많고 상충되는 요구조건들 때문에 서비스 리드타임은 증가하고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결과물이 나와서 사용자들로 외면받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적당해도 되는 것은 적당히 끝내고, 중요한 것에 더 집중해야 된다고 말했다.

내가 말하는 완벽한 서비스란 필요한 또는 필요할 것같은 기능들을 모두 갖춘 서비스를 뜻한다.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사용자의 피드백을 받으며 차츰 진화해서 필요에 따라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거나 기존의 기능이 수정/제거되어서 완벽한 모습/기능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이런저런 기능을 모두 집어넣어서 만든 서비스를 말한다. 마치 모든 자물쇠를 열 수 있는 만능키/마스터키같은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욕심은 기획자나 개발자나 이상주의자나 현실주의자나 누구나 갖는 것같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런 서비스를 만들 수가 없다. 아니, 그런 서비스는 존재할 수가 없다. 우선 사용자의 니즈나 취향이 바뀌고, 주변 환경과 트렌드가 계속 바뀐다. 기획 초기에는 맞던 컨셉/기능이 런칭 단계에서는 불필요한 것이 될 수도 있다. 더 끔찍한 경우는 한참 개발하고 있는 중에 니즈나 트렌드가 바뀌어서 개발 방향을 바꿔야하는 경우다. 완벽한 서비스를 꿈꾸면서 기획/개발하다 보면 그런 상황이 오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있어야할 기능을 빼고 출시한다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헛된 자존심이 프로젝트를 망하게 만든다.

처음부터 서비스는 완벽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사용자에게 전달되는 모든 서비스는 완성품이어야 한다. 불완전한 서비스는 사용자의 관심을 끌 수가 없다. 완성된 또는 완전한 서비스는 기능의 많고 적음이나 서비스의 규모 등의 문제가 아니다. 작은 기능이더라도 사소한 서비스더라도 단독으로 애초에 의도했던 기능 또는 서비스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완성된 서비스다.

여러 관점에서 완성된 서비스를 설명할 수 있겠으나, 적어도 다음의 3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서비스의 컨셉이 완전해야 한다. 여기서 완전하다는 것은 컨셉이 깔끔하게 설명이 되고 많은 사람들이 바로 수긍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미션/비전 스테이트먼트처럼 보일 수 있으나) 구글이 내세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체계화하겠다'라거나 트위터의 '140자로 소통하겠다' 또는 페이스북의 '모든 사람들을 연결하겠다'와 같이 짧지만 명확하게 셜명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하면서 억지로 짜낸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저 경쟁사의 서비스와 차별화를 위해서 억지 기능을 추가하기도 하고, 현실성이 없는 목표를 세우는 것은 완전한 컨셉이 아니다. 주변에 실패한 많은 서비스들이 대부분 컨셉 자체가 불완전하고 누더기같은 경우가 많다.

둘째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컨셉이 완전하면 기본에 충실하지 않을 수가 없지만, 그래도 기본은 늘 강조되어야 한다. 꺼내고 싶지 않은 예지만, 마이피플이 처음에 카카오톡을 이길 기회는 많았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 마플과 카톡의 기본은 친구와의 자유로운 수다다. (자유롭다는 말에 공짜라는 의미도 있다. Free is free.) 다른 글에서도 적었지만, 아이폰이 보급된 초기에는 무료문자보다도 그냥 잘 만들어진 (초성검색이 가능한) 주소록이 필요했다. 그때 모든 아이폰에 제대로 된 주소록으로써 마플이 설치되고, 이를 기반으로 무료문자기능이 업그레이드되었다면 초반에 카톡과의 경쟁이 재미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플이 출시된 이후에도 -- 카톡의 급성장으로 서비스가 불안정하던 시기에 -- 안정된 서비스만 제공해줬더라도 역전의 기회가 있었다. 당시에 그런 메시징의 안정성보다는 무료(화상)통화라는 추가 기능에만 집중했던 과오가 있다. 말했듯이 카톡이나 마플의 기본은 '자유로운 메시징'이다. 자유롭다는 말에 '공짜'를 내포한다고 했지만, 자유롭다는 말에 '안정적'으로의 뜻도 포함되어있다. 꼭 되어야할 기능이 부실한데 화려한 추가 기능은 오히려 역효과만 낸다.

세째는 디테일이 살아있어야 한다. 이전 글에서 말했듯이 명품과 짝퉁을 구분짓는 것은 디테일에 얼마나 충실했느냐에 달려있다. (실제 사용되는 재료가 다르지만) 사용된 재료와 가공 방법이 똑같더라도 명품과 짝퉁은 보이지 않는 곳의 디테일에서 결정이 난다. 바로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서 명품과 짝퉁을 구분하기 어렵다. 그러나 속을 자세히 들려다 보면 구분이 된다. 이태리 장인의 한땀 한땀 바느질 손길이 느껴지는 것이 명품이고, 짝퉁은 그냥 공장에서 대강 박음질해서 쏟아진 것같은 느낌을 받는다. 기본에 충실해야 된다고 말했지만, 신규 서비스라고 대대적으로 홍보되어서 사용해봤는데 접속이나 로그인도 제대로 안 되고 맨날 장애만 일으키는 서비스는 성공할 수가 없다. 서비스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작은 버그까지도 없는 그런 서비스가 완성된 서비스다.

모든 사용자의 니즈를 모두 충족시키겠다는 그런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서 명확한 컨셉을 바탕으로 기본에 충실하고 디테일까지 신경을 쓴 그런 서비스에 집착해야 한다. 세상의 어떤 것도 절대 완벽해질 수 없다. 가능한 모든 모습과 기능을 상상하고 검토해봐야겠지만, 모든 것을 넣을 필요는 없다. 지금 만들고 있는 서비스를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다면 재고해야 한다. 지금 기본 기능보다 부가 기능에 눈이 돌아간다면 헛수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디테일을 무시하고 그냥 대충대충 넘어간다면 결과는 이미 예견되어있다. 기획과 개발은 과정일 뿐이다. 사용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그 모든 수고가 허사가 된다. 일반 사용자는 DIY를 원하지 않는다.

(2013.05.03 작성 / 2013.05.13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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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DC에 있는 한국전기념공원에 가면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Freedom is not free'라는 유명한 글귀가 있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태어나서 자란 세대는 과거의 전쟁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금 누리는 자유와 평화를 얻기 위해서 취했던 선조들의 노력과 희생을 이해하지 못한다. 당연히 아무런 희생도 없이 지금의 평화와 자유를 얻었으리라 생각하기 마련이다. '전쟁과 평화'의 메시지에는 비할바는 못 되지만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살았는 것같다. 일상에서 누리는 편안함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지난 주에 언론에 소개된 어떤 자료를 보기 전까지는...

지난 주에 애플에서 언론에 공개한 한 자료가 있다. 바로 2010년도에 삼성에서 갤럭시S1을 만들면서 작성했던 걸로 보이는 '애플 아이폰과 삼성 갤럭시S의 상대평가리포트'가 바로 그것이다. (아래의 자료 참조) 130여 페이지를 통해서 아이폰의 상세한 기능들과 갤럭시S의 기능/UI 등을 비교분석해서 향후 갤럭시S의 개선방향을 소상히 작성한 자료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도 적었지만, 아래의 자료만으로 삼성이 애플의 UI/UX를 배꼈다라고 바로 말할 수는 없다. 그저 애플 아이폰을 잘 벤치마킹했다는 점만 알 수 있다. 즉, 현재 애플과 삼성 간의 소송에서 애플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자료이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애플이 삼성에게 결정타를 날린 자료는 아니라는 뜻이다. (해외의 언론/분석가들도 비슷하게 생각하는 듯함) 그리고, 나름 애플 제품을 좋아하고 삼성의 기업운영형태를 비판하는 입장이지만, 지금 애플과 삼성의 소송 이야기를 하는 것, 특히 내가 그들의 소송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는 이 글의 취지에 맞지 않아서 삼가겠다.

위의 자료를 보면서 처음에는 애플과 삼성 간의 소송에 대한 생각이 먼저 떠올랐지만, 자료를 더 면밀히 보면서 '당연함'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갤럭시S가 아이폰보다 더 나은 점도 많이 있겠지만, 위의 자료만을 본다면 아이폰은 참 많은 것을 고민해서 만들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거의 3년동안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으면서 당연하게 생각했던 기능이나 인터페이스가 갤럭시S에는 전혀 구현되어있지 않다는 점을 느꼈다. 바로 이점이 이 글의 요지다. 3년동안 아이폰을 사용하면서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기능이나 인터페이스가 모두가 (특히 다른 경쟁업체에서) 생각했던 당연함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당연한 기능이었다면 갤럭시S에서도 당연히 구현되었어야 했을 법하다. 그러나 아이폰에는 있고, 갤럭시S에는 없다. 즉, 아이폰의 당연함이 갤럭시S의 당연함이 아니었다. 아이폰을 사용하면서 특정 버튼의 크기나 위치 등이 왜 저기에 있어야 했지?에 대한 생각은 해본적이 없었다. 너무나 당연히 사용자들이 그 버튼을 사용하려면 그 정도의 크기에, 또 그 위치에 있어야지 사용하기 '당연히' 사용하기 편하기 때문에 여기에 있는 거겠지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위의 자료를 보는 순간 당연함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사용자들이 그냥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서 사용자들을 깊이 분석하고 이해하고 그런 결과로 현재의 아이폰이 나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익숙해서 당연했지만 누구나 생각하는 당연함이 아니었다는 사실...

지난 '성공하는 서비스의 조건' 글에서도 말했지만, 성공하는 서비스나 제품은 하이컨셉/하이터치여야 한다고 말했다. 개념적으로 사용자를 홀릴 수가 있어야 하고, 그리고 실제 사용자들이 그 제품/서비스를 사용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개념과 터치를 구현/실현하기 위해서는 깊은 연구와 고민이 필요하다. 그런 연구과 고민과 시행착오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하이컨셉, 하이터치 제품/서비스가 나온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제품/서비스를 사용하면서 그것을 완성시킨 개념이나 터치는 그냥 하늘에서 뚝떨어졌는 듯이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렇게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깊고 끊임없는 고민의 결과라는 점을 쉽게 인식하지 못한다. 당연함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자각했을 때, 어쩌면 지금 내가 만들고 있는 제품/서비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비판과 반성의 개기가 된다. 사용자들이 깜짝 놀라게 하고 또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제품/서비스를 만듦에 있어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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