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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예전에 우연히 느꼈던 감정이나 느낌을 다시 받을 때가 있다. 감정뿐만 아니라 이성적 깨달음도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 어제는 새삼스레 마샬 맥루한의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언뜻 떠올랐고, 감성이 이성에 앞선다는 생각이 또 그랬다. 잘 알다시피 MBC 파업이 한달을 넘어섰다. 그래서 대부분 뉴스 진행이 파행을 겪고 있고, 파업의 대의인 공정보도와는 무관해보이는 예능프로그램들도 재방송이 속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무한도전'을 1달 넘게 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그정도의 불편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무한도전의 결방은 나에게 자유로운 토요일 오후와 저녁 시간을 주었다.

어제 한겨레 신문에서 재미있는 기사를 올렸다. (참고로 '재미있다'라는 표현은 그냥 내가 즐겨쓰는 수사일뿐이다. 표현대로 '재미'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흥미롭다'의 의미에 가깝다.) 바로 조국 교수가 <무한도전>의 김태호 PD를 인터뷰한 내용이다. (참고. 김태호 PD "파업 동참 이유는 가슴이 울어서...") 그동안 MBC 파업에 대해서 많은 글을 올리지 않았다. 블로그에서는 그냥 본문 중에 잠시 언급된 정도로 올린 듯하고, 트위터에서는 몇 차례 관련 기사를 올린 것같다. 그런데 이전에 올렸던 많은 기사들이 MBC 파업의 실상 및 내막을 더 자세히 다룬 기사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기사들은 RT가 거의되지 않거나 소수의 관심만을 끌었다. 그런데 어제 트윗한 김태호 PD의 인터뷰는 급속도로 SNS를 점령했다. 뭐가 다른 것일까? 현재 '무한도전'이라는 예능프로그램이 가지는 파급력이나 김태호 PD와 조국 교수가 가지는 사회적 영향력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이 물음에 적절한 답은 아닌 것같다.

개인적으로 판단하기에는 김태호 PD가 사용한 '가슴이 울어서'라는 표현 때문인 듯하다. 김태호 PD는 분명히 MBC 파업에 동참한 이유를 거창한 공정방송실현이라는 대의를 내세울 수도 있었다. 그리고 여러 세세한 증거들을 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가슴이 울어서'라는 것을 파업참여의 변으로 내세웠다. 무겁고 어려운 주제에 대해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답변이 아니라, 감성적인 답변을 했다. 이것이 사람들에게 반향을 일으켰다고 본다. 지금 베스트셀러에 오른 스튜어트 다이아몬드의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에 대한 한줄서평으로 '감정적인 문제는 이성적으로, 이성적인 문제는 감성적으로 해결하라'로 했다. 사회적으로 무겁고 어려운 주제에 대해서 더욱 논리와 이성을 앞세우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없다. 논리와 이성은 머리는 움직일 수는 있어도 가슴은 움직일 수가 없다. 가슴을 움직일 수 없다면 우리의 손과 발을 움직일 수 없다. 감성이 이성을 앞선다고 서두에 표현한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고 MBC 파업이라는 메시지는 조국과 김태호 그리고 무한도전이라는 미디어를 통해서 전파되었다. 올바른 미디어의 선택이 그것이 담은 메시지의 정당성과 진의도 보장한다.

최근 글에서 팟캐스트에 대한 내용을 자주 언급한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나는 꼼수다'나 '나는 꼽사리다' '저공비행' 등을 언급하면서 '유희의 시대'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그들 팟캐스트들이 내용의 지루함 (복잡함 난해함 무거움)을 표현의 유쾌함으로 해결했다고 말했다. 그들 팟캐스트의 진행자들이 어려운 주제를 논리적으로만 설명했다면 지금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잘 보라. 그들의 입에는 욕이나 저속한 표현이 끊이질 않는다. 시도때도없이 경박한 웃음이 넘쳐난다. 김어준씨의 '시바'는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고, 선대인의 거친 표현에 사람들이 끌리기 시작했다. 더우기 '저공비행'에서 보여주는 노회찬 통합진보당 대변인의 상황에 적절한 촌철살인의 비유는 사건의 핵심을 찌른다.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공통점은 모두 '시장의 언어/말'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잘 차려입은 샌님의 언어 체계가 아니라, 시장통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그 언어체계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의 말을 사용하고 있기에, 우리의 문제가 아닌 것같던 것들이 우리의 문제가 되었다. 때론 혼란스럽고 때론 듣기 거북한 소리지만 우리의 삶이 반영된 언어에서 우리가 동질감을 느낀다. 이성적으로는 굳이 동창할 이유가 없는 많은 문제들이 우리의 문제가 되었다. 4대강사업, BBK 문제, 강정마을, 원자력발전, 재벌계혁 등등등... 어쩌면 당장 내 눈앞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내 눈앞의 문제가 되었다. 이 시대의 선지자는 학교나 사원에서가 아니라 분명 시장에서 나올 것이다.

시장의 언어는 감성의 언어다. 만약 학교의 언어나 방송의 언어, 즉 이성의 언어로 우리에게 전달되었다면 우리는 머리에서 한번 걸러내고 내가 사용하는 언어체계나 감성체계로 한번 변화해야 했었다. 그러나 내가 사용하는 바로 그 언어체계인 시장의 언어, 즉 감성의 언어로 우리에게 메시지가 전달되었을 때 우리는 바로 반응한다. 머리를 거치지 않고 바로 가슴으로 전달된다. 그래서 가슴이 뛰기도 하고 가슴이 울기도 한다. 가슴이 뛰어야 우리 몸도 뛴다. 고귀한 메시지보다 친근한 미디어가 더 중요해진 것같다. '미디어는 메시지다'와 '감성이 이성에 앞선다'를 새삼 깨닫게 된 계기다. 그런데 나는 왜 이 글을 이성적으로 전개하려고 노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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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소셜 그 이후 사회'라는 글에서 기능 function을 중시하는 지능 intelligence의 시대에서 느낌 feeling을 중시하는 감성 emotion의 시대로, 감성의 시대에서 관계 relation을 중시하는 소셜 social의 시대로, 그리고 (앞으로) 소셜의 시대에서 전체 entirety 로써의 에코 Eco의 시대로의 사회전이에 대한 글을 적었습니다. 단순히 대니얼 골먼의 책제목을 따라서 적어나갔던 글인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공감을 표해주셨습니다. 이번 글에서도 앞의 기조를 보여주는 사례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이전 글에서도 제품 생산/서비스 개발 과정에서 중심 관점이 기능, 가격, 품질, 디자인, 브랜드로 이어졌다는 글을 적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에 <비욘드 버즈 Beyond Buzz>라는 마케팅 관련 책을 읽으면서, 마케팅에서도 같은 흐름이 적용되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마케팅을 중심으로 제가 제시했던 흐름과 얼마나 동조하는지를 글로 적으려고 합니다. 생산자의 입장에서 생산과정이 같은 흐름을 경험했다면,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같은 흐름을 경험했다는 것은 당연한 소리겠지만,... (글을 적을수록 조금은 억지로 끼워맞추는 느낌이 있지만, 책을 읽으면서 받았던 느낌은 이게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기 그때의 느낌을 잊어버게 되네요.)

 2004년도에 미국에 체류하면서 TV를 많이 봤습니다. 여전히 영어 (전체로 봤을 때, 언어 - 국어, 영어, 프로그래밍 언어 모두)에 영 소질이 없지만 그래도 미국에 체류할 때 할일없이 봤던 TV 때문에 지금은 그나마 영어 듣기가 조금은 가능한 상태입니다. 가끔 인터넷에 회자되는 재치있는 광고들이 몇 편 존재하지만, 제가 미국에서 봤던 TV 광고들은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광고들이라서 놀랐다는 것보다는, 제품에 대한 사실 또는 정보 전달에 치중한 광고들이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약품 광고에서는 효능에 대한 설명이 길었고, 또 어떤 광고들에서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글씨로 소비자 약관을 광고 말미에 보여주었습니다. 전형적인 제품의 기능에 초점을 맞춘 지능의 시대에 적합한 광고들이었습니다. 초기 마케팅 기법은 이런 광고들과 같이, 제품의 기능이 어떤지, 그래서 어떤 효용 utility가 있는지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우리나라의 TV광고에도 비슷한 기능을 중시하는 광고들이 여전히 많이 존재하지만, 대표적으로 화장품이나 아파트 광고에서 보듯이 더 이상 기능에 초점을 맞춘 광고들이 많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광고에서 여전히 기능에 대한 설명이 빠질 수는 없지만, 최근의 광고 트렌드는 '내가 만약 저 제품을 사용한다면 어떨까?'라는 그런 느낌을 파는 광고들이 많이 있습니다. 단순히 '나도 저 화장품을 쓰면 얼굴이 희어지겠지'라는 상상보다는 '나도 저 화장품을 쓰면 광고 속의 연예인처럼 될 것만 같은' 그런 이미지를 팔고 있습니다. 이런 이미지 또는 느낌에 호소하는 광고가 감성의 시대를 대변해주는 것같습니다.

 이제 미디어는 신문이나 TV으로 대변되는 올드미디어와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뉴미디어로 나뉩니다. 당연히 사람들의 관심이 올드미디어에서 뉴미디어로 옮겨감으로써, 당연히 마케팅도 뉴미디어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을 중심으로한 마케팅은 과거의 기능이나 이미지를 판매하는 광고보다는 소위 말하는 입소문 Buzz marketing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전히 검색광고나 배너광고가 전체 광고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실제 제품이나 서비스의 판매 측면에서의 영향도 contribution 측면에서도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또는 기존의 카페/커뮤니티 등의 소셜네트워킹/소셜미디어를 통해서 사람에서 사람으로 이어지는 '버즈'를 통해서 많은 수요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구글/오버츄어의 검색광고와 더블클릭의 배너광고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 페이스북의 소셜광고의 성장이 눈에 띕니다. 단순히 생산자가 제공해주는 상품에 대한 소개를 뛰어 넘어서, 친구가 소개해주는 제품에 더욱 눈길이 가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 블로그에서 쏟아지는 다양한 리뷰들이 제품/서비스의 선택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네트워크 시대에 적합한 광고 모델이 버즈 마케팅인 것은 분명한 것같습니다. 버즈 마케팅은 말 그대로 소셜의 시대의 산유물입니다. 버즈 마케팅 이외에도 피라미드, 다단계, 레퍼럴 마케팅 (어감이 조금 나쁘게 사용되곤 하지만) 등도 소셜 마케팅의 부류로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억지가 정점에 달합니다.) 현재는 그리고 앞으로는 단순히 제품의 기능이 뛰어나거나 품질이 우수하거나 디자인이 좋거나 아니면 평판 (소문)이 좋다고 해서 자동으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어떤 제품이냐에 대한 평가와 함께 누가, 어떤 과정으로 제품을 만들었느냐도 중요한 덕목으로 뽑히고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지속가능성 sustainability나 친환경 green 등과 같은 기업의 사회참여 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가 제품판매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기업의 이미지를 광고했고 오늘날에도 수많은 기업들이 좋은 이미지/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이미지와 사용자가 인식하는 이미지 사이에는 괴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생산자가 생각하는 스스로의 모습과 사용자가 느끼는 모습이 일치하지 않으면, 아무리 유명한 인기연예인을 광고모델로 사용해서 이미지광고를 쏟아내더라도 기업의 발전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사회 전체의 일원으로써의 기업의 모습을 이제 소비자들이 원하고 있습니다. 국내의 대기업들을 보면 참 한심하고 미래가 걱정됩니다. 그들은 여전히 세계 최고의 기능, 가격, 품질, 디자인의 제품을 생산할 능력도 있고, 가끔 그런 제품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지금 국내에서 그런 기업들과 경영자들이 받는 평판이라는 것이 자신들이 생산하는 제품의 수준에 못 미치고 있습니다. 국내의 삼성, LG, 현대 등의 대기업들은 오랜 생산/제조자의 입장에서 단순히 물건을 잘 만들어서 제공하면 된다는 그런 사고에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기업이 전체 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이 아니라, 외부 세계인양 행세하는 것이 너무 오랜 관행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소비자들 (국민들)이 바라는 감정을 제대로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기대에 못 미치거나 반하는 행위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업의 이미지/평판/브랜드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현재 국내에서 삼성불매, LG불매, 현대불매 운동이 크게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더 놀라운 일입니다. 지능의 시대, 감성의 시대, 어쩌면 소셜의 시대는 위조할 수가 있습니다. 좋은 제품을 잘 만들어서 적당히 광고하고 입소문을 타면 해결이 되었지만, 에코의 시대에서는 하나의 작은 흠도 투명하게 소비자들에게 전달될 것입니다. 그것이 에코입니다. 상하이의 나비의 날개짓이 뉴욕에 폭풍우를 몰아넣을 수 있는 것이 에코입니다. 자연의 시스템이라는 것이 그렇게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시스템의 아주 작은 오류도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에코의 시대에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물량의 광고로는 될 수가 없습니다. 소비자/사용자와 함께 호흡을 할 수가 없다면 더 이상 기업이 존재할 수가 없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지능의 시대에 감성이나 이미지, 버즈 마케팅이 없었다는 것도 아니고, 감성 및 소셜의 시대에 기능을 중시하는 광고가 없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지능의 시대에서 사회적 책임이 강한 기업들이 존재했었고, 또 오늘날에도 우리 주변에 악덕기업들이 수도 없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전체의 흐름에서 지능에서 감성으로, 감성에서 소셜로, 소셜에서 에코로의 변화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글에서 제가 처음에 받았던 인사이트 및 느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지만, ... 그렇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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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놀부 2010.04.09 20:5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폴인럽님의 글은 마지막에 제일 재밌어요. 훗.

    별을 가리키면 손가락 끝만 보는 놀부^^

  2. 성준 2010.04.12 17:51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연작의 앞에 글보고 댓글을 좀 장황하게 달았는데, 계속 생각을 발전시키시고 계시네요. 하여튼 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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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대 초중반으로 기억이 됩니다. 어느날 갑자기 TV광고 등에서 EQ라는 용어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지능지수 IQ에 대해서는 초등학생들도 알정도의 유명한 개념인데, 갑지가 EQ라는 용어가 나오기 시작해서 왠 말장난인가?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당시 광고에서 '아이큐, 엄마큐, 이큐' 뭐 이런 식의 말장난 word play였던 것같습니다. 처음에는 EQ가 어떤 개념인지 모르기에, 저 말장난 광고만 뇌리에 남아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EQ 또는 감성지능이라는 용어의 사용이 계속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EQ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게된 개기는 2005년도, 당시에는 창의성, 디자인, 리더쉽, 자기개발 등의 용어에 큰 관심을 가졌고, 관련된 책이나 논문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리더쉽에 대한 다양한 자료들을 찾다보니, HBR (하바드 비즈니스 리뷰)에 발표된 Emotional 관점에서의 리더쉽 유형을 설명한 기사를 봤습니다. 그 기사의 저자는 Daniel Goleman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분이 그리 유명한지는 몰랐는데, 일단 논문을 재미있게 읽고 난 후에 관련 자료를 찾다보니 여러 책들을 발간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특히 처음으로 눈에 띈 것이 Emotional Intelligence, 감성지능 (EQ)에 대한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또 어느날 우연히 서점에서 Social Intelligence, 사회지능 (SQ)라는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발견했는데, 저자의 이름이 꽤 낯익은 분이더군요. 바로 대니얼 골먼이었습니다. 물론, 이 책도 단번에 읽어내려갔습니다. (그런데, 내용이 깊이 각이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또 비슷한 제목의 책을 보고 구입을 했습니다. (아직 읽기 전) 바로 Ecological Intelligence 에코지능이라는 책입니다. 물론, 이 책의 저자도 역시 대니얼 골먼입니다. 최근에 많은 저자들이 에코, 그린, 자연친화 등의 이슈/주제를 가지고 책을 적고 있기 때문에, 대니얼 골먼의 책이 특별히 눈에 띄는 요소도 없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아직 읽기 전이라는 점 재강조). 그런데, 제가 관심을 가졌던 부분이 단순히 대니얼 골먼이 에코지능이라는 책을 내놓았다는 것이 아니라, 대니얼 골먼의 책 편찬순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가 지능지수에 대한 글을 적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아이큐가 일반화된 시점에 감성지능이라는 용어를 들고 나왔고, 감성지능이 익숙해진 시점에서 다시 사회지능이라는 용어를 들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다시 에코지능이라는 용어를 들고 나왔다는 것이 참 흥미로웠습니다. 어떻게 보면, 현재의 사회트렌드 (또는 여러 제품 및 서비스 트렌드)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번째 트랜지션: 지능에서 감성으로...

 다른 포스팅 또는 발표들에서 제품의 진화과정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간략히 설명하면, 새로운 컨셉의 제품이 나오면 처음에는 '기능'으로 승부를 합니다. 즉, 이러이러한 새로운 기능을 제공하기 때문에 이 제품을 사용하세요라는 접근입니다. 그런데, 비슷한 기능을 제공해주는 많은 경쟁자들이 등장하면 처음에 제공해주던 기능은 더 이상 유니크하지 않습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보통 '가격'경쟁이 시작합니다. 즉, 같은 기능을 제공해주지만 더 저렴한 또는 합리적인 가격의 제품으로 소비자들을 유혹합니다. 기술이 발전하고 생산원가가 감소하면 또 많은 경쟁자들이 비슷한 기능, 비슷한 가격대의 제품을 선보이게 됩니다. 이 단계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품질'이었습니다. 고품질의 제품을 선보임으로써 (다소 높은 가격으로라도) 소비자들을 유혹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8~90년대의 일본 제품들이, 이전까지의 가격경쟁에서 품질경쟁으로 넘어간 것을 목격할 수가 있습니다. (데밍이나 다구치 방법론 등의 개념은 생략하겠습니다.) 또 시간이 흐러면, 기능도, 가격도, 품질도 비슷한 제품들이 쏟아지게 됩니다. 이 단계에, 새롭게 고객들을 유혹하는 것이 바로 '디자인'입니다. 더 보기에 좋고 사용하기에 편하고 감성을 만족시켜주는 디자인이 소비자들을 현혹합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애플'을 들 수가 있을 것같습니다. 애플의 제품은 여러 면에서 일반 소비자들을 만족시켜줄 수가 없지만, 그네들만의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또 그 저변을 늘려가는 것을 우리는 2000년대에 목격했습니다. 이런 디자인적 요소도 어느 순간 수렴되는 시점이 올 것이고, 어떤 측면에서 많은 후발주자들이 애플의 그것을 따라잡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디자인도 어느 정도 수렴이 되면, 그 다음 단계는 '브랜드'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벌써 몇몇 기업들을 중심으로 '브랜드'가 공공히 구축된 사례들도 있지만, 더 많은 기업들이 브랜드 구축에 힘을 실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특히, 디자인의 중심에 있던 애플이, 브랜드 구축에 가장 성공한 사례로 보입니다. 브랜드란 단순히 보이는 것 그리고 느껴지는 것을 포함해서, 기업이 중시하는 가치와 그네들이 가지고 있는 철학 및 문화 등이 모두 녹여진 것이 브랜드입니다. ... 이렇게 길게 글을 적은 이유는 제품진화의 초기의 드라이빙 팩터가 기능, 가격, 그리고 품질이라는 IQ적인 측면이 강했지만, 이들이 레드오션으로 변한 시점에는 디자인과 브랜드라는 더 감성적인 요소가 사용자들을 만족시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기능, 가격, 품질 (초기)는 구체적인 수치로 측정할 수가 있는 요소지만, 품질 (후기), 디자인, 브랜드는 명확한 기준도 없이 그냥 느껴지는 요소입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IQ의 시대에서 EQ의 시대로 흘러갔습니다.

 두번째 트랜지션: 감성에서 소셜로...

 제가 더 관심을 가질 웹서비스의 관점에서 90년대 초중반의 HTML을 기반으로 둔 초기웹서비스들이 등장했습니다. 대부분 처음 시도되던 것들이라 기능을 중시했습니다. (웹기반) 이메일이라는 것이 처음 생겨났고, 다양한 게시판 및 커뮤니티사이트들이 등장했고, 또 특정 취미/관심사를 중심으로한 정보사이트들이 등장했습니다. 지금의 대표적인 인터넷 서비스인 '검색' 또한 기능의 축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 아닙니다. (초기의 정보나열식 웹사이트들의 모습이 예뻐지기 시작한 것은 일종의 감성으로의 진화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저 색칠해서 보여주기로 끝난 경우가 많았지만...) 그러더니 2000년대 초반에 등장한 웹2.0은 초기의 웹서비스들에서 더욱 강력한 기능으로 다가왔습니다. 웹서비스에서의 감성요소는 이미 일반제품에서의 감성이 중시되던 풍조가 그대로 녹아들었기 때문에, 특별히 지성에서 감성으로의 눈에 띄는 변이를 설명하기는 좀 어려운 것같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주로 주목을 받는 웹서비스들을 보면서, 기능과 감성을 기초로한 웹서비스들이 소셜을 중심으로한 웹서비스로 발전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즉, 소셜네트워킹 SNS 또는 소셜미디어 SM 등으로 대변되는 것들입니다. 한국의 싸이월드나 미국의 페이스북, 트위터, 마이스페이스 등의 소셜네트워킹 사이트들뿐만 아니라, 블로그나 유튜브 등의 개인미디어의 등장은 많은 점을 시사해줍니다. 바로 사람들 사이의 연결이 중요한 시대에 우리는 들어와있습니다. (블로그도 초기에는 단순히 자신의 생각을 적는 도구였지만, 점점 친구 또는 구독관계를 형성하는 소셜미디어로의 발전을 보고 있습니다.) 단순히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 보이는 사람사이의 관계를 말하는 소셜 뿐만 아니라, 현재 트렌딩되는 모든 관계중심의 서비스들을 소셜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즉, 페이스북으로 대변되는 사람사이의 관계, 트위터로 대변되는 시간의 선후/실시간 관계, 그리고 포스퀘어로 대변되는 공간 속의 관계 등이 모두 소셜 (관계)를 형성하는 서비스들입니다. 현재 주목을 받는 서비스들이 이런 관계 (시간, 공간, 인간 - 세개 모두 '사이'라는 '간'자를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를 벗어나서는 결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구글이 전통 IR중심의 검색에서 실시간검색 및 소셜검색에 주력하는 이유도 이런 지성에서 소셜로의 전이를 준비하는 것이고, 지금 수많은 신생기업들이 시간, 공간, 인간을 활용한 서비스들을 쏟아내는 것도 모두 이미 우리는 지성의 시대를 넘어서 소셜의 시대에 왔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양한 사례를 들고 싶지만, 현재 보이는 모든 것이 사례이기 때문에 생략하겠습니다.

 세번째 트랜지션: 소셜에서 에코로...

 이제 또 다음 단계로의 전이를 준비할 때가 된 것같습니다. 제가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대니얼 골먼의 출판과정을 통해서 힌트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지성에서 감성으로, 감성에서 소셜로, 그렇다면 다음은 소셜에서 에코로의 대전환만을 남겨둔 것같습니다. 제가 지금 말하고자하는 에코는 단순히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친환경 또는 그린 테크놀로지가 미래를 대변한다는 것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에코는 말그대로의 '대자연'이 아닌 우리가 살아숨쉬는 모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인간 사이의 관계를 맺어주고, 시간 사이의 관계를 맺어주고, 공간 사이의 관계를 맺어주는 것이 아니라, 이 삼간을 포함한 모든 것 사이의 관계를 맺어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대자연과 어울리고 상호작용하면서 살아가듯이, 앞으로의 웹서비스는 (간단한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전체'를 품어야합니다. 특정 서비스를 중심으로한 웹에코시스템이 아니라, 모두의 웹에코시스템 그자체... 아직까지 눈으로 볼 수가 없는 개념이라서 제 머리 속에는 떠오르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이것이 내가 말하는 바다'라고 명확하게 제시를 못하는 점이 참 안타깝습니다. 현재는 우리가 소셜서비스에 열광하고 있지만, 미래의 우리는 에코에 열광할 것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The step after ubiquity is invisibility."라는 문장이 항상 제 머리 속에 남아있습니다. 테크뉴스 컬럼니스트인 Cringeley가 2003년도 어느 칼럼에서 말한 문장입니다. (실제는 Al Mandel이라는 분이 종종 말하는 문장이라고 합니다.) 어떤 개념, 기술, 현상이 편재하면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저 그 속에서 숨을 쉬면서 살아갈뿐, 그것을 느끼고 또 그것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해보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게되는 그런 단계입니다. (편재한 것의 무가치를 말해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우리가 소셜서비스들, 실시간서비스들 (실제, 시간축에서는 현재를 나타내는 실시간 서비스 뿐만 아니라, 과거를 보여주는 Delayed 시간서비스 (유튜브나 Hulu 등), 그리고 미래를 보여주는 Plancast 등도 포함해야함), 그리고 위치서비스들에 열괄을 하고 있지만, 이런 서비스들이 우리의 일상이 되고 편재한 다음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고민해야할 시점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제가 대니얼 골먼의 '에코지능'이라는 책제목에서 (그리고, 그의 이전 책제목들에서) 받은 희미한 인사이트는 미래는 특정 축 (인간, 시간, 공간 또는 제4의축)에서 정의되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니라, 그 전체를 아우르는 개념으로써의 '에코'서비스가 핵심이 될 것같다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 스쳐지나간 생각을 긴글로 서술하려니 참 어렵습니다. 제 역할은 여기까지인 것같습니다. 여러분들의 의견을 보태주셨으면 합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링크

(업데이트) 처음부터 적고 싶었던 문장... 알고, 느끼고, 동조하고, 동화된다. 지성의 시대에 집단이 만나서 집단지성이 생겨났고, 감성의 시대에 집단이 만나서 집단감성이 생겨났고, 그런 집단지성과 집단감성은 그 집단에서 자유를 얻었다. 집단이라는 아바타를 깨고 나와서, 이제 대자연 Mother Nature와 하나가 되는 단계로... 감성이 없는 지성은 흑마법사를 만들어냈고, 나눔이 없는 감성은 사이코를 만들어냈고, 자연이 없는 집단은 종말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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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node.tistory.com BlogIcon linker 2010.03.31 21:4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저도 이전에 웹서비스를 포함해서 상품 및 서비스의 흐름이 생산자->(Mass)소비자->(Segmented)소비자들->ValueChain 측면에서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첫째, 지능:기능,가격(비용),품질 모두 생산 측면의 개념들로 보입니다. 싸게 잘 만들면 팔린다는 생각. 생산<소비 시대입니다. 감성:디자인,브랜드 는 소비(인식) 측면으로 봤습니다. 이쁘고 멋지게 잘 보여야 잘 팔린다는 생각. 생산>소비 시대입니다. 소셜:인간,시간,공간 은 소비자들 특정 집단, 시기, 위치는 (개별)소비자들 개념으로, 각 상황에 맞아야 팔린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분화의 시대입니다. 마지막으로 에코:전체는 생산과 소비, 중계를 아우르는 Value Chain으로 부르는 시스템을 포함하는 게 아닌가 싶네요. 비슷한 흐름으로 이해한 내용이라, 뭐 약간 끼워 맞춰 보았어요.

    • Favicon of http://bahnsville.tistory.com BlogIcon Bahniesta 2010.04.01 11:05 신고 Address Modify/Delete

      하나의 개념이 한가지 방법으로만 설명되는 것이 아니고, 또 그걸 한가지 방법으로 부를 이유도 없으니... 모든이의 설명이 다 맞겠죠. 그러나 이미 학정된 개념을 새로운 것에 대비시킬 때는 항상 위험이 따르는 것같습니다. 밸류체인이라는 말이 제 머리속에서의 개념이 조금 다를 수 있으니... 물론 그걸 설명하기 위해서 어떤 용어를 가져오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까지의 흐름을 어떻게 볼 것이며 또 앞으로는 어떻게 흘러갈 거냐를 상상해보는 것이 중요하겠죠. 저도 과거를 되돌아볼 뿐 미래를 내다보지는 못합니다. 단지 에코지능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지능지수, 감성지능, 사회지능이라는 기존의 틀에서 '지능'만을 제외했을 때 큰 흐름이 있는 것같다는 영감을 받은 것뿐이니... 이를 어찌 설명해야할지는 참 난감하더군요. 특히, '에코'를 기존의 정의에서 벗어나서 어떻게 설명할 건가가 관건이었는데, 결국은 실패하고 그냥 '그대로' 남겨놓았지만...

  2. Favicon of http://node.tistory.com BlogIcon linker 2010.04.02 20:08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아. 그렇다면, 에코시스템은 value chain 개념의 시스템이라기보다는 웹자체가 보이지않는 공기와 같은 유비쿼터스 환경이 될 것이다라는 의미로 들리네요. 인공물과 자연물의 Co-Evolution과 같은 미래일까요?

  3. Favicon of http://perversion.tistory.com BlogIcon 재미있는사이트 2010.04.06 15:41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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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Favicon of http://bluezery.tistory.com BlogIcon 블루제리 2010.04.11 09:50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모호한 개념들을 깔끔하게 잘 정리해 주셨네요 ^^

    • Favicon of http://bahnsville.tistory.com BlogIcon Bahniesta 2010.04.11 12:42 신고 Address Modify/Delete

      마지막 부분에서 더 애매하게 넘어간 것같습니다. 앞으로 더 찾아보고 더 생각해보고 더 구체화해서 계속 글을 이어가겠습니다. 코멘트 감사합니다.

  5. 성준 2010.04.12 17:46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에코지능이라는 말을 처음 접해 보았습니다. 사회,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해 진다는 거 정도로 가늠(책 소개와 목차만 보고..)합니다. 근데 이 개념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닐 거고 미래, 아니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지금 현재 우리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가 문제 아닐까 합니다. 골만의 이야기 처럼 '에코'일 수도 있고 코틀러 처럼 생각(mind)이나 감성(heart)이 아니라 spirit(영혼) 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던거 같은데 얼마전 TED.com에서 본 영상이 하나 생각났습니다. http://www.ted.com/talks/lang/kor/joseph_pine_on_what_consumers_want.html 이 스피치는 2004년에, 관련책은 1999년에 출간했더군요(번역본은 없는거 같구요).그래서 놀라기도 한 것인데 'experiences economy(경험경제)'라는 개념으로 commodities(availability) -> goods(costs) -> services(quality) -> experiences(authenticity)로 설명하는 것이 었습니다. 근데 여기서 말한 경험 또는 체험이라는 것이 저간의 사정을 보면서 무릎을 쳤습니다.

    웹에서의 social, eco-, spirit, experience, 주역에서 얘기하는 후천개벽이든 이야기하는 관점이나 범주에 따라 다양하겠지만, 최소한의 생존을 벗어난 시대에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를 어떻게 개념화해서 접근할 것인가의 문제인데 아직은 어느것도 지배담론이 되지는 못한 거 같기에 상상력의 날개가 필요한 때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좀 횡설수설한것 같습니다만 저는 풍부해진 '소셜'속에 사람들이 모든 걸 품고 '조화롭게 상생'하면서 살고 싶은 꿈은 궁극적인 것일 것입니다. 그래서 함께(social) 참으로 느끼면서(authentic experience) 삶으로써 영혼(spirit)을 찾기 위해 eco-itself 하려는 소망이겠죠.

    생각을 많이 해보게 하는 포스트 였네요.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