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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9.12 기술 발전과 마케팅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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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AI (인공지능)도 마케팅 용어다라는 비판 또는 자조도 종종 들립니다. 연구자를 중심으로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보다 그걸 팔아서 돈을 버는 데만 혈안이 되서 지나치게 과장하는 현상도 있고 또 단시간 내에 약속한 것을 모두 줄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의미일 겁니다. 경우에 따라서 뉘앙스가 다를 수 있지만 보통 ‘마케팅 용어’라는 표현은 부정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지나친 과장, 비전문가의 득세, 시간에 따른 휘발성, 실체가 없는 모호성 등을 포함한 자조적 비판인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어떤 전혀 기술적이지 않은 기술 용어가 등장해서 회자되면 그건 그냥 마케팅 용어가 아닐까라는 의심을 합니다. 그런데, 문득 ‘마케팅 용어’가 그렇게 나쁜 의미만 가지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글을 적습니다.

AI는 이전의 것들과 다르게 실체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일부에서 마케팅 용어다라는 비판을 보면서 조금 안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여러 의미에서 이게 마케팅 용어라면 시간이 지난 후에 잊혀지겠다라는 생각도 들고, 그러면 곧 사라질 기술 때문에 지금 굳이 머리를 싸매면서 공부하지도 않아도 될 것 같고, 또 다른 기술이 등장할 거니 미리 그걸 먼저 공부하는 게 낫지 않을까 등의 생각도 이릅니다. 그래서 한편으론 지금 내가 딥러닝에만 함몰된 AI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얻지 않은 것이 참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한동안 휩쓸었던 ‘빅데이터’라는 용어를 지금의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전혀 기술적인 표현이 아니어서 저도 한동안 별로 좋아한 단어는 아니었지만, 또 워낙 많이 사용해서 그냥 나도 빅데이터에 엮어서 (자신을) 팔아먹어야겠다는 생각을 안 한 것도 아닙니다. 빅데이터가 유행일 때도 마케팅 용어다라는 얘길 들었습니다. 빅데이터 이전에는 ‘Web 2.0’이라는 용어도 있었는데, 이걸 지금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웹2.0이 한참일 때에는 웹2.0이 실체가 없는 마케팅 용어라는 얘길 들었습니다. 그 전에도 수많은 기술과 관련된 용어들이 트렌드를 타고 사라짐을 반복하면서 마케팅 용어 사전에 추가됐습니다.

그런데 이런 용어들이 그저 마케팅 용어라는 틀에서 무시를 받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어떤 용어는 진짜 사이비 용어도 있습니다. 최근 많이 듣는 ‘4차산업’이 그렇습니다. ‘4차 산업’과 같은 사이비 (마케팅) 용어는 이 글에서 다루는 것과는 궤를 달리합니다.

마케팅 용어가 기술을 제대로 표현하지는 못하는 것은 맞지만, 그 기술의 꽃을 설명하는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즉, 기술이 꽃피우는 시점에 등장하는 것이 기술에 기반한 마케팅 용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꽃피우다’라는 의미는 기술이 정점에 이르러서 가장 번성한 시기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실수가 봄에 꽃을 피워서 가을에 과실을 수확하듯이, 마케팅 용어의 등장은 해당 기술이 라이프사이클에서 꽃피우는 시점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그 기술의 열매/과실을 따는 (== 실생활에 늘리 적용되는) 시기는 아닙니다.

과실수에서 과일을 얻는 것을 생각해봅시다. 종류에 따라서 다르지만 보통 씨를 뿌려서 (모두 제대로 자란다는 보장은 없다) 최소 2~3년 정도는 키워야지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꽃이 폈다고 다 열매를 맺는 것도 아닙니다. 어쨌든 꽃이 피고 진 후에 그 자리에 열매가 맺고, 고된 여름을 보낸 후에 가을에 제대로 익은 과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떤 기술의 등장에서 실샐활에 적용 (mass-production)까지의 과정이 씨를 뿌려서 과일을 얻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어느 외딴 연구실 골방에서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지만 바로 주목을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 그 기술을 조금씩. 꾸준히 발전시켜가다 보면 가시적인 성과를 얻기 시작하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서 연구비가 몰려들고 더 완성된 기술로 발전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기대가 커고 연구비가 많다고 해서 바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즉각적으로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바로 관심이 시들해지고 연구비가 줄어듭니다. 하지만 그런 관심의 시간을 보낸 후에 그 기술이 점점더 고도화되고 생산가능해집니다. 한차례 파도가 지나간 그 이후의 잔잔한 시간이 되서야 비로소 우리는 그 기술의 과실을 따먹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연구비가 몰리는 시점이 우연찮게 보통 마케팅 용어가 등장하는 시기와 보통 일치한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그 시기에 바로 과실을 따먹지 못하기 때문에 기술의 본질을 외면하고 그저 ‘마케팅’ 수단이었다고 자조하고 또 다른 기술로 눈을 돌립니다.

꽃이 화려하게 폈다가 바로 지듯이, 마케팅 용어도 화려하게 회자되다가 바로 사라집니다. 하지만, 그 폭풍의 시기를 보낸 후에야 진짜 열매가 맺히고 익어서 수확철이 다가옵니다. 꽃이 분명 화려하고 예쁘지만 지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기술도 마케팅 용어의 시기에 주목을 받았다가 잊혀진 이후에 그 기술의 실제 열매를 얻습니다. 저의 이런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 가트너에서 제시/발표한 Hype Cycle 입니다. (아래는 2017년 이머징 기술에 대한 하이프사이클)

Gartner Hype Cycle for Emerging Technologies, 2017

출처: http://www.gartner.com/smarterwithgartner/top-trends-in-the-gartner-hype-cycle-for-emerging-technologies-2017/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어떤 기술이 조용히 등장했다가 엄청난 주목을 받는 시기가 있습니다. 이 시기에 많은 기대를 받지만 실제적으로 우리 실생활에 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를 보내고 급격히 하강한 이후에 우리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부활합니다. 그림에서 Slope of Enlightenment의 시기가 비로소 열매를 맺고 과실을 따는 시기입니다. Peak of inflated expectations 시기에는 기술이 주목을 받지만 실제 이룬 성과는 거의 없습니다. 이 시기에 등장하는 것이 마케팅 용어입니다.

하지만 이런 마케팅 용어가 등장해야지 비기술 분야에서 그 기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또 그래서 돈 (연구/개발비)가 몰려옵니다. 그렇게 몰려든 눈먼 돈이 없다면 그 이후의 과실 맺기는 실패합니다. 물론 돈이 더 현명하게 사용되는 좋겠지만, 어쨌든 눈먼 돈이라도 몰려오기 때문에 아이디어나 프로토타입 수준의 기술이 다양한 사람들의 관심 속에 인큐베이션됩니다. 연구비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쳐나는 시기에는 (엉뚱함을 넘은 쓰레기같은) 희귀한 연구도 많이 진행하고, 그 광란의 시기가 지나면서 쓸데없는 것들이 정리되고 핵심 기술만이 남아서 우리 삶을 변화시킨다.

빅데이터라는 것이 한 차례 지나갔습니다. 물론 비전문가 체리피커들이이 장난을 치긴 했지만, 그런 관심을 받으면서 눈먼 돈이 몰려들었고 관련된 많은 기술과 인프라를 갖추게 됐습니다. 바로 기대했던 것과 같은 데이터에서 가치를 발견해서 큰 돈을 번 사람/기업은 아직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데이터 기술이 거의 모든 회사에, 저변에 깔렸습니다. 이젠 데이터 수집도 쉬워지고 그걸 분석하는 것도 예전보다 훨씬 쉬워졌습니다. 물론 그걸로 제대로된 가치를 만들어내지는 못할지언정… 어쨌든 그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지금의 AI의 시기가 왔습니다. 제대로된 많은 데이터가 없이 지금의 인공지능은 불가능했습니다. 빅데이터 이전에도 웹/웹2.0 시기를 거치면서 다양한 웹 기술이 등장하고 저변에 깔리는 기간이 있었고, 더 전에는 컴퓨터 하드웨어의 기술 발전기가 있었습니다. 그런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그리고 데이터의 전변 위에 변방의 알고리즘이 결합돼서 인공지능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각 시기별로 안타깝게도 마케팅 용어가 늘 등장했지만, 그 용어 때문에 몰린 관심과 자원이 누적돼고 결합돼서 현재의 또 다른 기술의 토양이 됐습니다. 단기간만을 본다면 인공지능도 단지 마케팅 용어로 거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하지만 관심이 멀어진 후에 5년, 10년 뒤에 또는 더 먼 미래에는 이제껏 살아왔던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우리는 살아갈 것입니다.

제 주변에 등장했던 많은 기술들이 결국은 마케팅 용어였다라고 정리되는 것은 안타깝기도 하지만, 결국 그런 시기를 거치면서 기술이 완숙해지고 프로덕션에 이르렀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마케팅 용어가 등장할 때 속지 않고 그것에 휩쓸리지 않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런 광풍의 시기가 지난 후에 그 기술의 진가가 드러나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웹2.0은 마케팅 용어였지만 많은 기술을 만들어냈고 그 위에 지금 살고 있습니다. 빅데이터도 분명 마케팅 용어였지만 그 과실을 지금부터 따먹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도 마케팅 용어로 거칠 가능성이 있지만, 이 시기를 보낸 후에 우리 삶에서 진정한 인공지능을 만날 것입니다. 꽃이 없으면 열매가 없습니다. 광란의 시기를 잘 보내야 합니다. 특히 기술적 연결고리가 미약한 사이비 마케팅 용어는 조심해야 합니다.

뭔가 깔끔한 결언을 적고 싶었으나, 사기는 조심하고 눈먼 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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