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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에 다음검색에 새로운 서비스가 오픈했습니다. 이름하여 소셜픽 Social Pick 서비스입니다. 이 글은 소셜픽 검색을 자세히 설명할 목적은 아닙니다. 단지 저도 프로젝트에 일부 참여했기 때문에 제가 담당했던 부분에 대한 내용과 그리고 이 프로젝트가 진행과정 그리고 오픈 이후의 제 생각을 간단히 적어볼까 합니다. 소셜픽검색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다음검색 공식블로그의 글을 참조하세요.

소셜픽검색은 말그대로 Social + Pick + Search의 조합어입니다. 소셜은 여러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이슈라는 의미이고, 픽은 그런 이슈를 잘 설명해주는 문서를 뽑는다는 의미이고, 검색은 말그래도 그런 이슈와 문서를 검색 키워드를 통해서 제공해주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현재 인터넷에 많이 회자되고 있는 이슈 (& 이슈키워드)를 잘 설명해주는 문서들을 선택해서 보여준다는 의미입니다. 사람들 사이에 회자가 되는 이슈키워드를 수집하는 과정과 또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는 뉴스/문서를 수집하는 과정으로 이뤄져있고, 만약 해당 이슈키워드를 사용자가 입력하면 그 결과로 사회망에서 이슈가 되었던 관련 문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슈키워드를 뽑아내는 작업에 제가 깊이 관여했기 때문에 이 부분은 러프하지만 충분히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문서 관점에서 이슈문서는 트위터 등의 SNS에서 많이 언급되었거나 미디어다음의 뉴스댓글이 많은 경우에 해당되는 문서를 추출한 것입니다.

소셜픽의 화면구성은 위에서 보듯이 대표컨텐츠 (뉴스와 블로그, 카페 등)와 실시간 트위터 반응으로 이뤄있습니다. 이번 오픈은 1차 오픈이기 때문에 가장 간단한 형태로 이슈에 대한 사실을 다룬 컨텐츠와 이슈에 대한 사용자 반응을 다룬 컨텐츠로 분리해서 보여줍니다. 추후에 이 서비스가 어떻게 발전해나가는 지를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입니다. (작년말부터 기획했던 서비스인데, 지금 보여주는 것은 기획된 내용의 10%에도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그리고, 특정 개인에게는 참 불행한 일이었으나, 어느 운동선수의 이혼소식이 소셜픽 첫날부터 100만회이상의 조회를 기록했습니다.

이슈키워드를 뽑는 방법은 쉽습니다. 이미 국내의 포털 서비스를 이용해보셨던 분들은 검색 우측 날개 영역에 '실시간 이슈어'라는 것에 익숙해있습니다. 소셜픽을 위한 이슈키워드를 발굴하는 것도 실시간이슈어를 뽑는 로직과 거의 비슷합니다. 평소에는 잘 검색되지 않던 단어가 어느 순간에 갑자기 많이 검색이 되면 그런 검색어를 이슈어로 선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수준까지를 이슈어로 볼 것인가?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는 과정이 어렵습니다. 그런데 기존의 실시간 이슈어의 경우에는 단순히 검색창에 유입되는 검색어의 쿼리량/비율의 변화만으로 대략 급등성을 판단하면 되었는데, 소셜픽에서의 이슈검색어는 단순히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졌다고 해서 무조건 선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해당 키워드에 반응하는 신뢰할만한 문서 또는 검색결과가 존재할 경우에 이슈어로 선정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검색쿼리량에 더해서 뉴스기사가 생성되는 정도라던가 트위터 등에서 언급되는 다양한 단어들의 증감같은 요소도 함께 고려해서 점수화했습니다. 그리고, 실제 이슈어로 선정되었더라도 말했듯이 신뢰할만한 문서가 없는 경우에는 이슈어에서 제외됩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점은 하나의 이슈를 설명해주는 이슈어가 오직 하나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위에 보여주고 있는 '이종범 은퇴'라는 이슈에 대해서 '이종범 은퇴'가 당연히 이슈어가 되겠지만, 이것과 관련된 다른 검색어들 -- 예를들어, 이종법, 이종범 전격은퇴, 이종범 타이거즈 등 -- 도 해당 이슈에 반응하는 이슈검색어로 함께 등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의 이슈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다양한 양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최초에 잡았던 몇 개의 이슈키워드로 해당 이슈를 계속 설명해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기존 검색서비스에서의 관련검색어의 로직을 일부 차용했습니다. 관련검색어는 사용자들이 연속으로 던지를 쿼리를 수집하거나 같은 문서에 포함된 단어들을 수집하는 방식으로 데이터를 구축합니다. 소셜픽에서도 비슷한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더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원래는 다른 이름으로 시작한 프로젝트인데 최근에 소셜픽이라는 이름으로 정해졌습니다. 저는 소셜픽이라는 이름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단순히 '이슈 검색'이라는 측면보다는 진화하는 (검색) 플랫폼, 즉 검색을 담는 새로운 플랫폼이라는 측면에서 소셜픽검색이 발전할 것을 기대했었습니다. 그런데 소셜픽은 군중에 의해서 선택된 것이라는 좋은 의미를 담고 있지만, 일단 하나의 브랜드 이름으로 부르기에는 너무 강하고 거칠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제 '소셜'이라는 용어가 지겹고 식상할 때도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소셜이라는 용어가 개념적인 용어도 아니고, 기술적인 용어도 아닌 마케팅 용어로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거부감이 심해졌습니다. 소셜픽이라는 이름으로 제가 처음부터 구상했던 새로운 검색 플랫폼으로의 진화를 담을 수 있을지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그리고 현재의 모습으로는 소셜픽이라는 이름이 서비스에 부합되지만, 처음 기획했던 나머지 부분들을 채운 후에도 이 이름이 적합한 이름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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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병 Dutch Disease라는 경제학 용어가 있습니다. 1977년도에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지가 네덜란드의 경제사정을 묘사하기 위해서 사용했던 용어입니다. 위키백과에도 설명이 되었지만, 어느 나라에 다량의 새로운 자원이 발견되면 그것에서 많은 수익을 얻게 되면서 자연스레 국내에 자금과 유동성이 증가하게 된다. 그러면 물가도 오르고 상품가격을 비싸진다. 상품의 가격이 높다는 것은 경쟁국과의 무역에서 비교우위를 점하기 어렵게 되고, 그래서 해당 국가의 경제 부분에서의 경기가 장기적으로 침체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네덜란드병이라는 용어는 1959년에 네덜란드에 새로운 유전이 발견되어 많은 수익을 얻었는데, 그 수익을 기반으로 소비가 증가했지만 제조업부분은 약화되어 결국에는 네덜란드의 경기가 침체된 것에서 유래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쉽게 얻은 수익을 장기적인 경제발전에 투자하지 않고 그냥 흥청망청 써버렸기 때문에 장기적인 침체를 겪게 된다 정도로만 이해를 했었는데, 위키백과의 내용에 따르면 천연자원의 발견과 경기침체 사이에 더 구조적인 연관성이 있어 보입다.

네덜란드병은 보통 풍부한 천연자원을 가진 나라들을 경계할 때 자주 인용됩니다. 천연자원을 팔아서 손쉽게 많은 국부를 쌓다보니 다른 산업분야의 발전을 위한 장기적인 투자를 하지 않는 국가들이 그 천연자원이 고갈된 후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는 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병을 반면교사 삼아서 두바이는 석유에서 얻은 수익으로 금융이나 관광리조트 개발 등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두바이가 올바른 방향으로 제대로 투자했는지 여부는 역사가 판단내려주겠죠.) 어쨌든 쉽게 얻은 이득은 쉽게 허비한다는 오랜 가르침을 네덜란드병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네덜란드병을 국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난 산업화의 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땅부자들이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팔거나 아니면 땅투기를 통해서 부자가 되고, 그런 졸부들이 재산에 대한 철학/가치관도 없이 마구잡이로 과소비를 하는 모습도 자주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창업자들이 어렵게 일군 기업이 3, 4세대를 거치면서 어려움을 겪는 모습도 자주 봅니다. 창업자들은 어려운 형편에서도 기업이라는 나무를 심어서 가꾸었기에 그 열매를 쉽게 따먹지 못하고, 2세대들은 부모세대들이 어렵게 나무를 키우는 모습을 주위에서 지켜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기업을 가꾸는 일의 어려움을 알기에 또 그 열매를 허비하지 못하지만, 3세대 이상은 나무의 성장과정은 지켜보지 못했고 그저 성장한 나무에서 열매만을 따먹고 자랐기 때문에 기업이라는 나무를 키우는 어려움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저 매년 공급되는 열매에 도취되어 나무의 성장이 멈췄는지 여부도 제대로 체크하지도 않고, 그래서 새로운 나무를 심어서 키울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기업의 흥망성쇠가 발생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IT와 인터넷을 중심으로 성장한 몇몇 기업을 보면서 네덜란드병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것은 아닌가 우려됩니다. 여전히 성장은 하고 있지만 성장 이후의 성장에 대한 대책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여전히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정글과도 같지만, 이미 권좌에 오른 기업들은 외적인 성장은 계속 이뤄지고 있지만 내적인 성장은 좀 주춤한 듯한 인상을 자주 받습니다. 국내의 네이버나 다음뿐만 아니라, 외국의 구글이나 페이스북, 이베이 등을 보더라도 현재 수익원은 배너광고나 검색광고 등의 광고사업이나, 월정액의 게임사용료나 중계수수료 등으로 수익모델이 극히 제한되어있습니다. (아마존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듯함.)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제한된 수익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그 수익모델이 너무 강력하다는 것입니다. 많은 인터넷 기업들이 새로운 수익모델을 개발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것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현재의 강력한 무기를 그냥 계속 사용하겠다는 욕심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유없이 수익이 계속되고, 이유없는 성장을 거듭하다 보면 결국 이 기업은 네덜란드병에 걸린 것과 같습니다. 새로운 혁신을 하지 않아도 계속 외부에서 자금이 공급된다는 환상에 빠져버리게 됩니다. 기업이나 개인이 새로운 혁신을 주저하는 이유 중에 큰 부분은 카니발효과를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새로 출시된 제품이나 서비스 때문에 기존의 제품판매나 서비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걱정을 합니다. 너무 당연한 인식 과정이지만, 때로는 사망선고를 받고 나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기도 합니다. 파괴적 혁신이라는 용어가 어쩌면 네덜란드병을 고치는 묘약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새로운 더 큰 것을 위해서 과거의 작은 부분을 희생시킬 수 있는 것이 파괴적 혁신입니다. 그런 자기 혁신이 늘 필요합니다. 분명 초기에는 카니발효과가 발생해서 신제품의 판매도 예상만큼은 아니고, 그렇지만 예전의 제품의 판매량은 신제품효과 때문에 감소하고... 단기적으로 보면 어려운 시기를 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신제품이 제대로된 방향으로 컨셉이 잡혔다면 그것을 믿고 더 끌고갈 필요가 있습니다.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해서 너무 단기적으로 성과지표를 얻을려고 하면 안 됩니다. 최소 3년을 기다려야 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물론 3년은 너무 긴 시간입니다. 그러나 충분히 기다려야지만이 자기 혁신의 열매를 따먹을 수 있습니다.

앞서 말한 나무를 심고 가꾸는 비유가 혁신의 과정을 잘 설명해주는 것같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과수원을 가꾸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어떤 품종이 잘 맞을지도 모르고, 넓은 황무지를 개간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그곳에서 땅을 파고 밭을 갈아서 씨를 뿌리면 후에 누군가 또 그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무가 작을 때는 간격이 좁게 많이 심어도 되지만 나무가 커가면서 나무 간의 간격을 넓히기 위한 감벌과정이 필요합니다. 혁신의 과정도 처음에 뿌린 모든 씨앗에서 열매를 맺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중간중간에 불필요하거나 새로운 환경에 맞지 않은 혁신은 제거해야지 제대로된 혁신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변하면 이미 잘 가꿔진 과수원지만 모든 나무를 베어내고 새롭게 시작할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감벌이나 땅을 갈아업는 과정이 파괴과정입니다. 그러나 그런 파괴과정을 거쳐야지 더 큰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휴지기를 가지는 것도 혁신을 위한 좋은 방법입니다. 공장의 기계가 돌아가듯이 365일, 24시간 가동할 것이 아니라, 농부가 농사를 짓듯이 3~4년에 한번씩 밭을 놀리는 일이 필요합니다. 사람에게도 그런 휴지기가 새로운 혁신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을 확신합니다. 놀면서 여유를 부리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생산에 지장을 주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입니다.

최근에 농사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게 되고, 지속가능성이나 사회적 책임 또는 성공이 아닌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답게 사는 삶 등에 대한 책도 많이 읽고 생각도 많이 하다보니, 지금까지 제가 살아왔던 것들이 참 어리석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삶 자체의 파괴와 혁신이 필요합니다. 

P.S. 네덜란드병을 검색하면서 스펠링을 잘못 입력해서 'dutch desease'로 검색을 해봤습니다. 그런데 다음 아고라에 이상한 글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네덜란드가 보편적 복지를 해서 네덜란드병에 걸렸다는 황당무개한 이야기였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네덜란드가 원유에서 얻은 수익을 모두 복지예산으로 투입했기 때문에 그리고 네덜란드 국민들이 흥청망청 써버렸기 때문에 네덜란드병이 걸린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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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어제 적고 싶었던 본 내용을 적으려고 합니다. 어제 적은 비이해관계에서는 사회가 진화론적인 적자생존의 경쟁을 부추기고 그래서 동료 및 공동체가 파괴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삭막한 시대일수록 더욱더 각자의 이해/이득/경쟁에 기반하지 않은 비이해관계의 구축이 필요하다/절실하다는 것이 주요 요지입니다. 이런 비이해관계로 구축된 공동체를 뭐라 부를까 고민하다가 '잉여 네트워크'라는 말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잉여들을 위한 공간'정도의 의미를 가집니다.

잉여 네트워크의 호혜주의 reciprocity에 기반을 합니다. 나의 존재와 활동이 타인에게 이득을 주고 또 타인의 행위의 결과가 나에게도 이득을 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익뿐만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편하게 여김으로써 공동체의 분위기가 가볍고 밝아지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경쟁 또는 타도 상대로 여기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고 보살펴주는 것입니다. 네트워크에서 하나의 노드가 실패하면 때로는 이웃 노드로 그것이 파급되어 전체 네트워크의 실패를 도래하기도 하지만, 하나의 노드가 실패하더라도 이웃 노드들이 서로 그것의 부족분을 보완해서 전체 네트워크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적자생존의 경쟁 네트워크에서는 최후에는 몇 개의 대형노드만 남게 되겠지만, 상보적인 잉여 네트워크에서는 실패한 노드도 재생시켜줘서 최후에도 전체의 균형 balance를 유지시켜 줍니다.

여기에서 자발적 기부라는 개념도 등장할 수 있을 듯합니다. 정의상 '잉여'는 남는 것을 뜻합니다. 경쟁체제에서는 내게 부족한 것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획득하고 남아도는 자원은 그냥 허비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호혜체제에서는 자신의 남는 부분을 사회/공동체에 기부해서 이웃의 부족분을 매꿔주게 됩니다. 그런데 아직은 이런 (재능)기부에 대한 플랫폼이 제대로 갖춰져있지 않은 듯합니다. 물론 그런 재능기부플랫폼이 잉여 네트워크이고, 잉여 네트워크의 한 결과물이 그런 재능기부플랫폼이 될 듯합니다. 그래서 결국 잉여 네트워크 또는 잉여 공동체는 사회를 위한 그리고 공익을 위한 서비스/커뮤니티인 셈입니다. 그리고 잉여의 기부이므로 모든 노드가 동일한 수준으로/일괄적으로 기부를 해야 한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넘치는 부분을 허비하지 않고 사회에 귀속시키는 것이지, 자신을 살신성인해서 퍼주는 것이 아닙니다.

잉여 네트워크가 추구하는 가치는 social responsibility입니다. 노드는 전체 네트워크에 속하기 때문에 네트워크 내에서의 책임을 다 해야 합니다. 최근에 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사회책임)이 강조되는 것과 비슷한 취지입니다. 그런데 각 노드 또는 전체 네트워크가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네트워크가 지속가능해야 합니다. 공동체가 지속가능 (sustainability)하다는 것은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네트워크를 유지할 에너지를 계속 공급받아야 된다는 소리와도 일맥상통합니다. 국내외의 많은 NGO들은 국가나 개인들의 기부로 운영을 계속 해가지만, 잉여 네트워크에서는 스스로의 힘으로 에너지 (a.k.a., 돈)를 생산/자급자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 한다고 하더라도 기업을 유지할 자본을 획득하지 못하면 결국 그 기업은 지속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결국 잉여 네트워크는 '좋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뻔한 결론에 이릅니다. 그리고 잉여 네트워크는 공동체라는 순수성을 영속시켜야 합니다. 구글이 초기에 <Don't be evil>로 선하게 돈을 번다 (또는 윈윈)는 것을 내세웠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에는 결국 하나의 주식회사 (직원과 고객보다는 주주의 이득을 대변하는 회사)로 바뀌면서 여느 기업 못지 않게 사악해져가는 것을 반면교사 삼아서, 공동체가 끝까지 순수하게 남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처음부터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잉여 네트워크의 정신은 해커리즘 또는 아마추어리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해커'는 남의 시스템에 불법적으로 침투해서 정보를 빼가거나 시스템을 파괴하는 자로 인식됩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순수하게 '잉여자들의 저항정신'정도로 약간은 미화된 개념이 받아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Mark Zuckerberg's Hacker WayHacker Culture: The Key to Future Prosperity 등의 글에서 해커문화 또는 해커의 순수성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해커와 크래커 Cracker는 구분이 되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미화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순수한 해커란 결국 아마추어 Amateur를 뜻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노동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즐거움/재미를 위해서 취미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마추어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순수한 즐거움을 넘어서야 합니다. 더이상 아마추어를 Just for Fun으로 정의하면 안 됩니다. 이제 More than Fun으로 정의내려야 합니다. 프로츄어라는 신조어가 생겼듯이 아마추어의 취미활동을 통해서 개인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유익에 앞장 서야 합니다. 이제는 Social Responsible Amateur의 과잉이 필요합니다.

다른 글에서 지속가능을 위해서는 자발성 Spontaneity 민주성 Democracy 다양성 Diversity가 필요하다고 적었습니다. (참조. 지속가능 웹생태계 조성자들) 벌써 3년 전에 생각했던 속성인데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만들어야할 잉여 네트워크도 자발적 참여에 의해서 조성되고, 민주적 방식으로 운영되고, 다양한 재능들이 모여서 성장해야 합니다. 여기에 앞서 말했던 순수성과 호헤성이라는 개념을 더 하면 될 듯합니다.

며칠 전부터 구상하고 있는 간단한 서비스가 있습니다. 조만간 그 서비스에 대한 내용도 잉여의 공유라는 취지에서 글을 남기겠습니다. No sooner t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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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이해관계

Gos&Op 2012/03/27 1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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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에 회사분과 얘기하면서 잠시 스친 생각입니다. 회사에서 생활하다 보면은 이제 더이상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동료가 아닌 경쟁자라는 느낌을 자주 받습니다. 지금 많은 회사들은 연봉제와 인센티브제도에 기반해서 동료가 좋은 성과를 내어 좋은 평가를 받으면 상대적으로 내가 나쁜 업무평가를 받는 구조입니다. 많은 경영서적들은 동료 간의 협력체계가 굳건하면 전체 팀이나 조직이 좋은 퍼포먼스를 낸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같은 팀에 소속되어있지만 각자의 성과지표 KPI를 맞추기 위해서 경쟁하는 경쟁관계가 되어있습니다. 선의의 경쟁이 존재하지만 경쟁이 과열되면 전체의 조화보다는 개인의 성과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동료도 이제는 경쟁관계이고 이해관계가 되었습니다. 경쟁관계와 이해관계가 똑같은 의미는 아니지만, 언제나 자신의 이해에 따라서 동료와 협동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용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냥 무시해버리기도 합니다.

같은 회사나 같은 팀에 속한 경우에도 서로가 서로를 이해관계로 여기기 시작했는데, 만약 다른 팀이나 다른/경쟁 회사에 속한 사람들과의 관계는 더욱 이해관계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비협력게임 Non-cooperative game에 익숙해져있습니다. 자신이 가진 정보는 철저히 보호하면서 남이 가진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때로는 자신이 가진 정보의 양이 자신이 가진 힘의 크기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자신이 가진 정보를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이에게 공유하면 자신의 힘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합니다. 한 조직 내에서도 경영자들은 자신이 구상하는 조직의 미래 청사진/장기 비전을 제대로 공유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그런 경우 아래 직원들은 장기 마스트플랜에 따라서 전략적으로 움직이기 보다는 단기 성과를 위해서 임기응변식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무한경쟁과 약육강식이라는 회사/사회 내에서의 우리들이 이해관계가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 듯합니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는 우리는 비이해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문수학한 대학에서도 서로 좋은 학점을 얻기 위해서 경쟁을 펼칩니다. 고등학교에서도 서로 더 좋은 내신을 얻기 위해서 경쟁을 하고, 서로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경쟁을 합니다. 그런 경향은 점점 더 어린 세대들에게 전이되고 있습니다. 중학생들도 고등학교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초등학생은 중학교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그 이하의 유아들도 서로 더 좋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배당되기를 위해서 경쟁을 합니다. 어쩌면 산부인과 선택에서부터 그런 경쟁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릴 적을 회상해보면 동네 친구는 그냥 친구였습니다. 먹을 것이 있으면 같이 나눠먹고, 심심하면 서로서로 불러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기꺼이 가르쳐주고 또 상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이 다릅니다. '잘 모르겠는데요'라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자신을 한수 접고 들어가는 것으로 비쳐집니다. 때로는 상대를 속이기 위해서 '잘 모르겠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여러 서적들을 읽어보면 비이해관계를 통한 사회개혁을 이룬 사례들을 자주 봅니다. 그런 사회활동들이 멋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현실에서 나는 그런 비이해관계를 맺어서 더 숭고한 꿈을 성취하기 위한 활동을 할 가능성이 너무 낮습니다. 늘 마음으로는 이웃을 돕고 싶은데, 내가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돈을 허비해버리면 옆의 동료들에게 뒤쳐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늘 조급해집니다. 매일 잠들기 전에는 조금 더 느리게 조금 더 심플하게 살고 싶다고 말하지만,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어떤 일을 빠릴 해치울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내가 줄 수 있는 것보다는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에 더 마음이 빼았깁니다.

처음에 글을 시작할 때는 이런 무거운 분위기의 글보다는 발전적인 글을 적을려고 구상했는데 어느 순간 신세한탄으로 빠져버렸습니다.

이 사회에서 비이해관계를 맺으며 지속가능한 사회를 꿈꾸는 모임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에 허심탄회하게 서로를 도와주고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공유하고 또 내가 가진 재능을 기부하는 그런 모임말입니다. 늘 내가 만들고 있는 서비스에만 관심을 두다 보니 내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하는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나의 잉여 자원을 사회에 기부하고 또 남의 잉여 자원을 수혈받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모임이나 플랫폼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직업의 세계에서는 스스로 프로페셔널이 되기에 전념을 하지만, 그외의 삶의 일상에서는 스스로 즐거움에 심취한 아마추어리즘에 빠져보고 싶습니다. 어쩌면 사회의 진화는 프로들의 노력에 의한 것이겠지만, 사회의 지속은 아마추어들의 즐거운 기여에 의한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주변을 좀더 관찰해보고 이런 활동에 관심이 있는 많은 잉여들을 집결하는 일을 해봐야겠습니다. 먹고 사는 일에 대한 문제보다는 사람으로 사는 삶에 집중할 때입니다.

처음에는 비이해관계를 잉여와 아마추어리즘에 연결하고, 또 그것을 해커문화로 연결한 글을 적고 싶었는데, 이해관계/경쟁관계에 대한 한탄이 너무 길어서 더 발전적인 글을 적지 못했습니다. 생각을 더 정리해서 조만간 다시 글을 적겠습니다.

P.S. 원래 이 글은 'The Big Bang Theory'라는 미드를 가지고 글을 전개할 예정이었습니다. 시즌2에 나오는 'Friends with Benefits'이라는 단어가 적당한 시작포인트로 생각했는데, 글의 전개가 달리 흘러가서 그냥 그렇게 적었습니다. (참고로, Friends with Benefits은 위키백과에서도 설명하듯이 결혼이나 약혼 등의 깊은 관계를 전제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벼운 성관계를 맺는 친구사이 정도로 설명하는 단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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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에 대한 생각.

Gos&Op 2012/03/26 09: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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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있었던 일입니다. 일요일 오전 일정은 족구동호회 모임과 예배참석으로 정해져있지만, 오후에는 그날 날씨나 기분에 따라서 가변입니다. 어제는 날씨는 좋았지만 바람도 많이 불고 쌀쌀해서 그냥 사무실에 잠시 들러서 이번 주에 회의하기로 데이터 분석작업을 (분석 내용은 간단하지만 데이터 사이즈가 커서) 미리 해두로 했습니다. 그렇게 뿌듯하게 프로그램을 실행시켜놓고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저녁 늦게서야 꼭 필요한 내용을 추가하지 않고 분석프로그램을 돌려놓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무실과 집 사이가 약 2km로 5분 거리지만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사무실로 돌아오기에도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오늘 다음 제주 오피스가 기존의 오등동의 GMC Global Media Center에서 영평동의 제주첨담과학기술단지 내에 새로 지어진 다음스페이스닷원 (다음스페이스워/Daum Space.1)으로 이사해서 첫 출근일입니다.)

결국 어제 실행했던 프로그램을 조금 수정해서 지금 다시 돌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어제 제가 한 일은 아무 것도 없고 그래서 결과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제 제가 한 일이 진짜 아무런 소득이나 성과가 없는 일이었을까요? 만약 어제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 분명 어제와 같은 조건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해서 지금 한참 실행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과가 다 나온 이후에야 내가 뭔가 큰 잘못을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오늘 아침에 했던 재작업을 오늘 오후에 하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어제 허비했다고 생각되는 그 시간과 노력이 오늘 오전 또는 오후에 분명 발생했을 그런 헛수고를 덜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어제의 그것은 완전 헛된 시간과 노력이 아닙니다.

경제학에서 기회비용 Opportunity Cost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A라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A대신 선택할 수 있었던 B에서 얻을 수 있는 기회 또는 비용의 차이를 말합니다. 구체적인 수치로 나타나는 비용일 때도 있지만 심리적인 비용이 강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기회비용이라는 용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행하지 않음으로 발생하는 모든 것을 비용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아깝게 얻지 못한 기회에 대해서 늘 한탄하고 아쉬워하는 것같아서 별로 어감이 좋지 않습니다. 대신 저는 비용기회 Cost Opportunity (비용을 투입해서 얻은 기회와 경험)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B를 하지 못함으로써 여러 기회비용이 발생했지만, A를 선택함으로써 얻었던 경험과 가치가 지금은 더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B는 어차피 상상 속의 결과지만 A는 현실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집행된 (기회)비용을 매몰비용 Sunken Cost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미 비용을 집행했기 때문에 회수가 불가능한 비용을 뜻합니다. 이 매몰비용은 다시 회수가 불가능한데 사람의 심리에는 큰 영향을 줍니다. 현재는 A라는 것을 계속 하고 있다고 가정합시다. 그래서 과거에 B를 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했던 기회비용/매몰비용이 너무 커서 지금 A를 그만 둔다면 왜 과거에 B를 하지 않았느냐?는 식으로 자신의 과거 선택을 아쉬워하고 그래서 그렇게 매몰된 비용이 아깝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 A를 그만두고 B를 선택하지 않으면 앞으로 얻게 될 (기회)비용이 너무 커서 지금 당장 A를 그만 두지 않으면 안 될 것같은 생각이 듭니다. 과거의 매몰비용 때문에 A를 선택했던 과거가 아쉽고, 미래의 기회비용 때문에 지금 당장 B를 시작해야될 것같고... 우리가 한번도 가져보지도 못했던 또는 가져보지 못할 과거의 매몰비용과 미래의 기회비용.

비용은 단순히 수치적 가격이 아니라 심리적 가치를 반영한 것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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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팀은 아니지만 같은 본부에 유능한 개발자 한 분이 있습니다. 검색엔진과 검색서비스를 개발하는데 오랜 경험을 쌓은 분입니다. 그 분과 얘기해보면 검색과 제반 사항에 대한 깊은 전문성과 디테일에 놀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배울 점이 참 많은 분입니다. 이 글의 시작은 그분과의 대화 중에서 관찰한 것을 적고 있지만, 나의 이야기이며 또 많은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바로 유능하고 경험이 많은 전문가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 분야에 많은 전문 지식을 습득하고 경험을 축적한 이들을 가리켜서 전문가라고 칭합니다. 세계가 발전하고 다원화되어 일은 더욱 복잡해지고 업무가 세분화되었습니다. 그래서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많은 경험 덕분에 해당 분야의 업무를 매우 효율적으로 처리합니다. 관록이 쌓이면서 일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디테일까지 매끄럽고 완벽하게 처리합니다. 그런데 한 분야에 오래 몸을 담고 있다보면 일종의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고 그동안 길들여진 업무스타일을 벗어나기 힘들고 새로운 분야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기에 어려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적응은 전문가로 가는 길이면서 또 (과거 스타일의 고수라는) 함정에 빠지는 첩경입니다. 전문가가 된다는 것이 효율성은 높아지지만 유연성이 떨어지고 그래서 다양성이 떨어지는 과정이 되면 안 됩니다.

'정의'를 영어 단어로 뭐냐는 물음에 인문학 계열의 학생들은 Justice라고 말하고, 이문학/공학 계열의 학생들은 Definition이라고 답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습니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이) 백그라운드에 따라서 세상이나 사물을 달리 바라보고 생각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의 가치관이 형성되면 다른 가치관으로 사물을 바라보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합니다. 하나의 확고한 가치관 또는 생각의 틀을 갖는다는 것은 성장에 매우 중요하지만,  타인의 의견이나 관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오늘 그 유능한 개발자와 얘기하면서 어떤 이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색인 Index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그 분은 검색엔진에서 사용하는 색인과 역색인 Inverted-Index이라는 용어로만 색인을 이해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분야에서 익숙한 단어나 개념에 쉽게 빠집니다. 

어떤 일을 진행할 때 중요한 세가지 물음이 있습니다. 바로 무엇 what을 어떻게 how 왜 why 하느냐?입니다. 그런데 왜?와 무엇?은 상대적으로 가지수가 적고 통일된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흔히 노하우 know-how라 부르는 어떻게?는 매우 많은 가지수를 가집니다. 그런데 전문가가 될수록 '어떻게'에서 가장 효율적인 베스트 프랙티스 Best Practice로 일을 처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베스트 프랙티스를 많이 알고 실행하기 때문에 관록이 있는 전문가라는 소리를 듣지만, 역으로 베스트 프랙티스가 아닌 방법으로는 전혀 시도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때로는 처음에 주어졌던 문제의 환경과 조건이 변경되었는데도 새로운 조건에 맞는 새로운 방법을 찾기 보다는 그저 과거의 비슷한 경험에 바탕해서 과거의 베스트 프랙티스를 꺼집어드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것이 맞는 방법일 수도 있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효율성의 극대화가 유연성과 다양성의 희생으로 얻어지면 곤란합니다.

실수를 적게 하는 이가 전문가지만, 실수를 통해서 새로운 경험을 얻지 못하는 것도 전문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보면서 새로운 실수를 경험하고 그리고 실수와 실패를 통해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할 수 있는 유연한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매번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봐도 예전 방식이 최선일 수도 있지만, 새로운 시도를 해보지 않으면 더 나은 방법을 영원히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전문가와 대화 또는 논쟁을 하면서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전문가이기 때문에 자신의 영역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풍부해서 자신의 의견이 100% 맞다고 확신을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문용어를 사용해서 전달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그들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용어에 익숙치도 않고, 그들과 다른 개념과 정의를 바탕으로 그들의 용어를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간단한 개념/단어에 대해서도 서로 생각의 충돌이 벌어지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일반 범인들은 시장의 언어를 사용하는데, 전문가들은 너무 고귀한 자신만의 언어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때로는 전문가들이 자신이 어려운 용어를 사용해야지 전문가로써 권위와 위신을 세울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장의 언어를 입에 담지 못합니다.)

ps. 친하다는 이유로 특정인을 미화시켜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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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기다리던 두개의 제품이 발표/발매되었습니다. 바로 애플의 태블릿PC인 뉴아이패드와 캐논의 DSLR 카메라인 5D Mark3입니다. 보통 신제품이 출시되면 개선된 스펙에 관심이 가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가격에 더 민감합니다. 국내에 출시되기 전에 아이패드1을 구입해서 사용하고 있지만 제게는 아아패드의 활용범위가 제한되어있기 때문에 이번에 출시한 뉴아이패드에 대한 구매의사는 없습니다. 그러나 2004년도에 구입한 캐논 20D를 아직까지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5DMk3는 매우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스펙의 개선과는 무관하게 경쟁제품보다 가격이 다소 높게 책정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캐논이 왜 이런 어중간한 가격으로 제품을 출시했을까?를 고민하게 되면서 기능개선과 가격책정에 대한 무슨 꼼수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입니다. 캐논의 사례만을 들기에는 좀 부족한 것같아서 애플의 가격정책도 함께 살펴봅니다.

업그레이드 & 가격유지.
뉴아이패드가 출시되면서 기존의 가격체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즉, 기능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가격은 동일합니다. 이는 이제까지 애플이 견지해왔던 일종의 규칙입니다. 보통 6개월에서 1년 사이에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그 사이에 개선된 그러나 가격은 내려간 부품을 신제품에 사용함으로써 신제품은 기능은 좋아졌지만 가격은 현상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오히려 가격이 내려간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의 경우, '신제품 = 고성능 & 가격유지'의 기조를 당분간은 이어갈 듯합니다.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가격이 현상을 유지하더라도 개선된 기능 때문에 오히려 가격이 내려간 것같은 착각을 느끼기도 합니다. 특히 오랫동안 기다리던 제품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애플의 신제품은 기본 수요가 많기 때문에 이런 기능개선 & 가격유지 정책은 잘 먹혀들어갑니다. 그리고 신제품의 가격을 유지하는 한편으로, 기존의 구제품의 가격을 인하시키는 투트랙으로 가격을 책정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마음을 더욱 홀리는 듯합니다. 많은 경우 기능이 개선되었더라도 가격을 인하할 요인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므로써 프리미엄 제품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도 하고 기존 고객들의 저항을 막는 효과도 있습니다.

업그레이드 & 가격인상.
캐논의 경우는 기능을 개선하면서 가격을 함께 올렸습니다. 그런데 그 이상폭이 생각보다 크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기능 개선에서 오는 혜택은 별로 못 누리는 것같습니다. 오히려 경쟁기종에 비해서 기능도 떨어지면서 가격만 높였다는 비난도 받습니다. 그런데 '왜 캐논은 이런 정책을 취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여러 이유에서 가격인상의 요인들이 있었음은 분명하겠지만, 과도한 인상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품이 처음 의도만큼 팔리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조만간 다시 가격조정에 들어갈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캐논이 처음부터 의도했던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4년을 기다렸던 제품이기 때문에 해당 제품에 대한 수요가 높아진 상태이고, 그 제품을 즉시 구매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이들이 많아졌을 것입니다. 제품 구매에 강한 의지를 가진 집단들은 가격이 비싸더라도 바로 구매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렇게 초기 수요층을 대상으로 고가로 제품을 판매한 이후에, 가격을 다소/점진적으로 내려서 제품을 판매하면 초기 가격저항층들도 무장해제가 됩니다. 어차피 기업의 입장에서 고객은 소위 말하는 고갱입니다. 비싸게 구입할 소비층들에게는 비싸게 판매하고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는 시간이 지난 후에 가격을 낮춰서 또 판매하고... 이것이 어쩌면 캐논이 의도했던 가격 책정 전략인 듯합니다. 지금 5DMk3의 스펙 대비 가격이 비싸고, 경쟁기종인 니콘 D800에 비해서 가격이 비싸다고 아우성이지만 캐논이 책정한 가격대로 제품을 이미 구입한 소비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격이 비싸더라도 어차피 구매할 사람은 구매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기다릴 것이다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기업은 초기에 적당히 비싼 가격으로 제품을 출시해도 손해볼 것이 없습니다. 초기 제품 판매를 거친 후에, 전격적으로 가격을 인하하면 우리는 또 우매하게도 매우 기쁘게 그것을 받아들이고 지갑을 열게 됩니다. (더 기다리는 부류도 있을테고..) 처음부터 착한 가격으로 조금 더 많은 이들의 구매의욕을 끓어올리는 것보다는 초기 얼리어댑터의 욕구를 채워주고 이후에 대중을 상대하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인 듯합니다. 그리고, 신제품 출시 초기에는 제품의 생산이 수요를 맞추기 힘들기 때문에 이런 고가격 정책을 취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SLR과 같이 카메라보다 호환 렌즈의 비용이 높은 제품군에서는 경쟁사의 가격이 낮더라도 경쟁사로 옮겨탈 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짜증나는 일이지만 이득극대화를 위한 기업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합리적인 전략인 듯합니다.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은근슬쩍 가격을 올리는 이런 기업 관행은 사라졌으면 합니다. 합리적으로 가격을 책정하면 소비자들은 믿고 소비를 합니다. 많은 소비자들이 이런 기업의 꼼수를 눈치채고 불매 등의 소비저항에 들어가면 그런 기업은 결국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을 것입니다. 기업들은 소비자/고객/사용자들을 현혹할 방법들을 찾기위해서 항상 노력합니다. 때로는 데이터 분석 등을 통한 과학적인 방법도 사용하고, 때로는 감동적인 스토리로 감성을 자극하는 방법도 사용합니다. 이런 시대에 현명한 소비자가 더 많이 늘어나야 합니다. 기업의 전술전략이 아닌 자신의 가치관에 따른 현명하고 단호한 소비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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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사진으로 동영상 만들기! 베가스, iMovie로 뮤직비디오 만들기

    Tracked from Insight of GS Caltex 2012/03/26 13:46  Delete

    &nbsp; 사진으로 동영상 만들기! 베가스, iMovie로&nbsp;뮤직비디오 만들기 &nbsp;사진으로 동영상 만들기! 베가스, iMovie로 뮤직비디오 만들기 ! 저에게는 이쁜 조카가 하나 있는데요. 4월이면 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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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존재의 증명

TSP 2012/03/21 16: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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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에 보면 얼핏 보기에 역설적인 주장이 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구원은 행위가 아닌 믿음에 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사도 야보고는 야고서에서 '구원은 믿음이 아닌 행위에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도 바울과 야고보는 아브라함의 믿음 또는 행위를 자신의 주장의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얼핏 보기에는 역설이지만, 신학적으로 이미 정리된 문제다. 짧게 설명해서, 로마서는 초신자, 특히 이방인을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거짓 행위가 아닌 의를 향항 믿음을 강조한 것이고, 야고보서는 이미 믿는 이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이웃 사랑에 대한 실천을 강조한 것이다. 그래서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믿음과 그에 합당한 행위가 있어야 한다'로 정리가 되었다. 그런데 미국의 유명한 선교인인 짐 엘리엇 Jim Elliot[각주:1]의 전기 <전능자의 그늘 Shadow of the Almighty[각주:2]>에 보면, 신약성서에서 명시되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으로 인간의 믿음과 인간의 행위에 더해서 한가지가 더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인간/그리스도인의 '존재'가 그것입니다. 신앙인의 '존재' 그 자체로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말합니다.

'존재'라는 단어를 꺼집어 내기 위해서 좀 멀리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의 존재 또는 존재감을 증명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얻으려는 것도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는 것이고, 이성 앞에서 멋지게 보이려고 온갖 아양을 떠는 것도 자신의 존재/매력을 뽐내기 위한 것이고, 회사에서 무진장 애를 쓰면서 충성하는 것도 자신의 존재를 상사에게 알려서 고과점수를 잘 받으려는 그런 행위입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과 같이 누군가로부터 내가 인정을 받고 그에 따른 보상을 받으면 자연스레 즐거워지고 더 깊이 충성하게 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본능이 아니라, '학습된/체화된 무기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존재의 증명 경쟁에서 저는 오늘 무존재라는 말을 꺼내고 싶습니다. 평소에 블로그를 통해서나 트위터/페이스북을 통해서나 아니면 사내 게시판을 통해서나 가끔 제 생각을 직설적으로 표현합니다. 특히 사회나 회사의 부조리에 대해서는 더욱 분노하고 그 분노를 굳이 숨기려하지 않습니다. 꼭 부조리는 아니더라도 많은 사안들에 대해서 좀 비꼬는 식으로 말을 하고 글을 적다보니, 사람들은 제가 그들이 관심이 있을만한 사안에 대해서도 뭔가 깊은 생각이나 비판, 의견이 있을 걸로 기대를 합니다. 그래서 가끔 '너는 XX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곤 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저는 그 XX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관심이 없는 주제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참 난감합니다. 뭔가 핵심을 찌르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면 그동안 제가 쌓아놓았던 명성/평판이 일순간에 허물어질 것같은 부담감도 느낍니다. 

평소에 이런 저런 다양한 주제에 대한 책들을 많이 읽고 (사실 독서량에 비해서 주제의 범위는 제한되어있음), 글을 적을 때도 다양한 소스에서 소재를 빌려오고 있지만 (이 글에서 신약성서와 짐 엘리엇을 꺼냈듯이) 저는 만물박사가 아닙니다. 저도 여느 사람들과 같이 제가 관심이 있는 주제와 사안에 대해서만 깊이 생각합니다. 관심이 있는 주제에 대해서는 저의 존재하지만, 그렇지 못한 주제에 대해서는 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가 모든 사안들에 대한 의견을 가져야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굳이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제게 묻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굳이 제 스스로 저의 '무존재'를 증명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저도 다른 이들과 같이 저의 존재만을 증명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 너무 벅찹니다.

  1. 짐 엘리엇은 자세한 정보는 위키백과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여기서는 문구를 소개하려 합니다.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서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사람은 바보가 아니다. He is no fool who gives what he cannot keep to gain that which he cannot lose." [본문으로]
  2. '전능자의 그늘'은 짐 엘리엇의 어린 시절부터 신학교시절과 선교사를 준비하는 과정, 그리고 에콰도르에서 선교를 시작해서 큰 성과를 못 내고 바로 죽음을 맞이하는 기간에 대해서 자세히 전하고 있습니다. 짐 엘리엇의 전기는 아니지만 그가 죽은 후에 그의 부이인 엘리자베스 엘리엇이 선교사역을 계속 이어가는 내용은 <영광의 문 Through Gates of Splendor>에 자세히 적혀있습니다. 기독교인이고 선교에 뜻이 있는 분들이라면 위의 두 전기를 필독해볼 것을 권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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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장 빈번하게 생각하고 묻는 질문이 있다면 바로 '꿈이 뭐니?'다. 단순히 '내 꿈은 뭘까?'에 대한 질문도 되고, 타인들에게 '네 꿈은 뭐니?'라는 질문도 된다. 꿈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레 꿈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정의 definition와 의미 meaning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왜 나는 꿈이 없는 걸까?' 또는 '내 꿈이 구체적으로 뭐지?'라고 묻기 전에, 내가 '꿈'에 대해서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 꿈을 제대로 펼쳐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어렵고 복잡한 개념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흔히 메타포 metaphor나 비유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꿈을 설명해줄 메타포를 찾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우연히 찾는 나의 꿈에 대한 메타포는 죽음이다.
꿈은 죽음과도 같다.
희망과 관련된 단어를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죄송하다는 말부터 전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책들을 읽다보면 늘 등장하는 주제 중에 하나가 바로 바이오/게놈과 나노기술이다. 이 두 주제가 결합해서 암과 같은 난치병/불치병을 치유하게 되고, 젊음을 유지하게 되고, 장수를 넘어서 불로장생할 거라고 말한다. 때로는 당장 병을 고칠 수 없더라도 급속냉동으로 신체를 보관해뒀다가 미래의 언젠가 치유법이 개발되면 그때 냉동시켜서 병을 고치는 불로장생을 넘어 부활에 이르는 얘기까지도 등장한다. 때로는 조금 허무맹랑해 보여도 계속 연구하고 도전하다보면 현실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읽고 있노라면 '삶에서 죽음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늙지 않는다면 (짧은) 젊음이 소중할까? 절대 죽지 않는다면 현재의 삶과 관계에 최선을 다할까?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인간으로써 죽음은 피할 수 없지만 가능한 늦추고 싶은 것. 그래서 나는 꿈은 죽음과 같은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들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과 사투하며 보낸다. 그렇게 꿈도 우리의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져야 한다. 그리고 죽음이 눈 앞에 있다면 너무 허탈하듯이, 꿈이 너무 쉽게 이뤄지면 이 또한 너무 허탈하고 그게 진정 꿈이었을까? 꿈은 단순히 나중에 뭐가 되겠다라는 장래희망도 아니고, 뭔가를 이루겠다는 목표나 계획도 아니고, 뭘 갖고 싶다는 소유욕망도 아니고, 어떤 존재가 되겠다는 그런 바람도 아니다. 죽음은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고귀한 선물이다. 어쩌면 두번째 선물은 꿈을 가질 자유를 준 것.

'꿈'은 절대 가벼운 것이 아니다. '죽음' 그 이상의 무거운 것이 꿈이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되돌아돌 때만이 제대로 연결할 수 있는 것이 꿈이 아닐까? 꿈을 이루기에 너무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죽음을 그렇게 갈망하지 않듯이... 너무 이른 시간에 이루어질 꿈이라면 그건 꿈이 아니다. 그냥 바람일 뿐이고, 마치 자살과도 같은 것. 그 이후의 삶은 어떡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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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뉴스위크지에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올라왔다. Rob Cox가 적은 The Ruthless Overlords of Silicon Valley라는 기사다. 기사의 내용은 실리콘 밸리를 중심으로 한 많은 IT기업들이 스스로 선하다고 인식하고 그렇게 알리고 있지만, 그들이 적대하는 기존의 악덕대기업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구글이나 애플, 페이스북 등의 주요 IT기업들이 자신들의 기업 미션이 악하지 않고 수익을 낸다거나 수익보다는 위대한 제품/서비스를 만드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기존의 제조나 유통 대기업들의 경영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 중에서 최근 이슈가 되었던 SOPA (Stop Online Property Act) 규정에 대한 내용이 있다. (그리고 Digital Millennium Copyright Act도)

논의에 앞서서 개인적으로 '사용자들의 자발적 규제'에 대해서 찬성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발적 규제란 사용자 스스로가 현재의 법적인 근거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표현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의미다. 기존의 저작권법이라거나 정보통신이용법이라거나 그런 법적인 근거를 해치지 않고 또 사회규범이나 미풍양속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자발적으로 인터넷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발적 규제'가 사회의 민감한 이슈에 대한 '자기 검열'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 사법체계가 완벽해서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그저 건전한 인터넷 문화에 사용자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자발적 규제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지, 스스로 표현의 자유를 억제하라는 의미도 아니다. 표현의 자유도 헌법에서 보장해주는 것이니 당연히 지켜야 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금지하는 행위 (인터넷 도박, 성인, 저작권침해, 욕설이나 악성 허위사실유포 등)에 대해서는 스스로 삼가야 한다는 취지다.

그래서 SOPA처럼 강제적인 조치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반대한다. 이런 행위를 법이 아닌 사용자 스스로가 인식하고 자제하고 금지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으며, 또 인터넷 생태계 내에서 잘못된 정보나 악의적인 행위들은 스스로 규제/정화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런 강제조항은 반대한다. 특히 대한민국에서 지난 4년 동안 보여왔던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무시한 입법 행위에 대해서는 당연히 반대한다. 강제력보다는 자발성에 바탕을 둔 생태계의 조성에 더 많은 토의가 필요한 시점이지, 무조건 강제력의 동원이 답은 아니다.

그런데 위에 소개한 기사를 읽으면서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있다. 바로 지난 2008년의 전세계 금융위기 사건이다. 지난 금융위기의 원인에 대한 많은 분석과 의견들이 있었지만, 그것의 직간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던 입법행위가 있었다. 새롭게 법을 만든 것은 아니지만 기존에 존재하던 법의 폐기가 있었다. 바로 1930년대의 세계대공항 시기에 만들어졌던 글라스-스티겔법 (Glass-Steagall Act, The Banking Act of 1993)의 폐지다. 법을 간단히 설명하면 한 은행이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동시에 가질 수가 없다는 거다. 예금과 대출, 보험, 증권 등을 한 은행에서 모두 할 수 없다는 거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종의 금산분리법과 비슷하다. (금산분리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를 말한다.) 그런데 근 70년간 이어오던 법이 90년대 말에 폐지되었다. 2000년대의 투자은행이 성행하고 은행들의 서브프라임모기지나 증권화과 가능했던 것이 글라스-스티겔법의 폐지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중론다. (전문 분야가 아니므로 세부사항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맥락은 맞습니다.)

기사를 읽으면서 글라스-스티겔법의 폐지와 금융위기 사건이 떠올랐다. 자율시장은 지지하지만 무분별한 자율시장의 결과가 바로 우리가 지금도 고통을 받고 있는 금융위기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법은 늘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작동해야 한다. 글라스-스티겔법이 그런 일종의 안전장치였다. 실제 70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법이 처음에 제정되었던 시대와 사회 환경이 많이 바뀌었고 은행업무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래서 실제 글라스-스티겔법의 의미가 거의 유명무실해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형식적으라도 존재하던 법이 사라지면서 사람들은 무분별/무절제의 자유방임이 되어버렸다. (비유하자면 남녀가 한방에서 가운데 그어놓은 선을 지운 것과 같은...^^)

금융에서의 사례를 바로 인터넷에 적용할 수는 없다. 그리고 SOPA 등의 법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러 법이 제정되면 관련된 업체/기업들은 위축될 수 밖에 없고, 사용자들도 자기 검열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움직임에는 근본적으로 반대한다. 그렇지만 방종에 이르도록 내버려두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 이 글을 적고는 있지만 어떤 의견을 보태거나 빼야할지 막막하다. 단순히 미국의 얘기라면 쉽게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에 비춰보면... 좋은 의도로 시작된 법이 나쁜 적용사례를 남긴 적이 많지 않은가? 무리하게 법조항을 적용한 사례도 많이 보았다. 그리고 허위사실유포나 명예훼손 부분에서는 기존의 법체계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서는 이중잣대의 새로운 무거운 법조항을 삽입하려는 현재의 움직임을 보면서 아주 좋은 취지의 법이라도 찬성의 입장을 밝힐 수가 없는 것이 지금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미네르바 사건이나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나경원 전의원과 김재호 판사의 기소청탁 사건도 인터넷 사용에 대한 규제에 관한 사안이다. 이런 사건들을 바로 옆에서 목격하면서 SOPA와 같은 입법 움직임을 어떻게 봐야할까?

그런데 금융위기에서 금융회사들이 타격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IT/인터넷기업들은 교훈을 얻었을까? 이상한 법이 만들어지지 않고도 건전한 인터넷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 가장 바람직하다. 현재까지는 나름 잘 만들어져가고 있다. 그런데 세계대공황이나 금융위기가 인터넷 생태계에서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입법으로 규제될 수 없는 공간이지만 그렇다고 손놓고 그냥 보고만 있을 수도 없는 공간이다. 어쩌면 구체적인 사안별로 주먹구구식으로 입법할 것이 아니라, (과거의 달라진) 현재와 미래의 상황에 대해서 더 심도깊은 토의를 거쳐서 좀더 폭넓은 사회전반에서 우리의 법체계를 재검토해보는 것이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이 글은 참 오해를 불러일으키기가 좋다. 그래서 적지 않으려고 했지만... 요약하면 '인터넷에서도 금융위기와 같은 대공황이 발생할 수 있다. 가능하면 자발적으로 정화가 되어야 하지만,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필요하다. 그런 안전장치가 기득권의 이득을 위한 임의의 조치로는 되면 안된다.' 오해가 있을 수도 있지만 옳은 방향으로 이 사회가 발전하기를 희망하면서 적은 글입니다. 세부사항에서 잘못된 부분도 있을 수도 있고,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사안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표현된 것도 있을 수가 있지만, 글을 처음 적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그 요점이나 취지를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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