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Gos&Op

아이폰 이후의 정체된 세상 (혁신이 혁신을 정체시킨다.)

아이폰이 등장한 이후로 모바일 세상이 열렸다. 현재의 생활이 5년 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는 것을 종종 느낀다. 여전히 아이폰이 가져온 큰 변화에 제대로 적응을 못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 변화에 즐겁게 동참해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는 이들도 많아졌다. 아이폰 이후에 안드로이드도 실질적으로 만들어졌고, 아이패드와 태블릿이라는 영역이 개척되었다. 삼성은 피쳐폰의 제왕 노키아를 가볍게 누르고 어느새 핸드폰 마켓의 강자로 굴림하게 되었다. 애플과의 특허 전쟁은 실질적 침해 여부를 떠나서 삼성의 위상을 높여주었고, 영원한 우군처럼 보이던 안드로이드의 구글이 견제한다는 얘기까지 들려온다. (이건 국내 언론의 과장일 수도 있다.) 어쨌든 아이폰의 등장 이후로 업계의 판도에도 지각변동이 있었고, 우리같은 일반 소비자들은 모바일 세상을 즐기고 있다. 물론 여전히 PC정신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들도 많지만…

그런데 문득 아이폰이 등장한 이후로 실질적으로 세상이 정체된 것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아래의 트윗을 남겼다. 설명하기는 좀 애매하지만 내 느낌이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서두에 아이폰 등장 이후의 많은 변화를 얘기했지만, 실질적인 변화라기 보다는 그저 아이폰 조정기 또는 적응의 단계를 지나고 있는 것같다. 세련화 과정을 혁신 과정이라 부르기는 어렵다.

혁신 모델을 설명하는데 점진적 개선 incremental improvement와 파괴적 혁신 disruptive innovation이라는 말이 있다. 아이폰은 분명 당시로써는 파괴적 혁신이었다. 그런데 한번의 큰 파괴가 발생하면 그 이후 오랫동안 그 파괴를 수습하기에 바쁘다. 그 수습의 기간 동안 적응해나가는 몸부림이 점진적 개선이다. 서두에 말했던 수많은 변화들이 새로운 파괴를 일으켰다기 보다는 그저 파괴 이후의 개선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큰 지진 이후에 계속 이어지는 작은 여진들과 같다.

아이폰 이후의 5년을 잘 살펴보면 실질적으로 아이폰보다 더 나아진 것이 없다. 안드로이드가 되었건 윈도우8이 되었건 아니면 타이젠이 되었건 실질적으로 iOS와 별반 차이가 없다. (어느 OS가 더 낫다 아니다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삼성 LG HTC 모토로라 노키아 소니에릭슨 등의 수많은 제조사들에서 쏟아져나오는 스마트폰들이 아이폰이 만들어놓은 카테고리를 파괴하지 못하고 있다. 재미있게도 애플의 아이패드도 실질적으로 아이폰이 만들어놓은 세상을 조금 확장했을 뿐 실질적인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다고 말하기는 애매하다. 최근에 이슈가 되는 애플의 iWatch나 구글 Glass도 딱히… 그렇다. 이미 우리는 손목시계를 그저 장식용 악세사리로 취급하기 시작했고, 안경은 여러 모로 불편하다. (지난 밤에 글의 초안을 적었는데, 밤새 올라온 The Joy of Tech에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재미있는 제품이긴 하지만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줄 것같지 않다는 거다. 여전히 아이폰 이후의 에코시스템에 우리는 갖혀있다.

The Joy of Tech. http://tapastic.com/episode/2316

앞서 말했듯이 많은 개선이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파괴는 없었다. 물론 어느 곳에서는 새로운 파괴가 일어나고 있겠지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다. 비유가 이상하겠지만, 2004년도의 쓰나미, 2011년도의 쓰나미 이후로 많은 쓰나미 경보를 발행했지만 실제 눈에 띄는 쓰나미가 없었다. 아이폰의 등장 이후로 그런 혁신 또는 파괴에 대한 많은 말들이 있었지만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없다. 어느날 갑자기 대형 쓰나미가 발생하듯이 또 어느날 갑자기 우리 손에 새로운 혁신이 놓여있을 거라는 것은 확신한다. 미래의 일이다. 그렇기에 아직까지는 아이폰 이후의 정체기를 겪고 있다.

새로운 카테고리의 제품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카피하거나 개선한 수많은 것들이 쏟아진다. 아이폰이 규정해놓은 스마트폰의 정의에 충실한 아류들이 쏟아졌다. 만약 아이폰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다른 또는 더 혁신적인 스마트폰이 등장하지 않았을까? 또는 다른 모바일 세상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라는 상상을 해본다. 현실적으로는 시기가 더 늦어졌거나 열등한 제품들에 여전히 만족하고 있겠지만… 포드의 모델T이후의 자동차의 외관과 기능이 비슷해졌던 것이 하나의 혁신이 세상을 얼마나 획일화시켜버리는지를 잘 보여준다. 모방을 통해서 배우기도 하지만 혁신은 모방의 자식이 아니다. 수명이 다 하기 전에 제거하는 것이 파괴다. 혁신이 그런 것이다.

앞으로도 상당한 기간동안 우리는 아이폰이 만들어놓은 프레임에 갇혀지낼 것같다. 혁신이 혁신을 정체시킨다는 의미다. 우리는 여전히 아이폰이 만들어놓은 세상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갈 자유가 있다. 각성하라.

(2013.03.05 작성 / 2013.03.15 공개)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