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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 Jeju

제주 올레 이어 걷기

2007년도 9월에 제주 말미오름에서 광치기까지의 제주 올레 1코스가 만들어진 이후, 5년의 시간이 지난 2012년 11월에 제주 올레가 완성이 됩니다. 제주해녀박물관에서부터 말미오름까지 연결하는 21코스가 개장하면 걸어서 제주를 한바퀴 돌 수 있게 됩니다. 그외에 우도, 추자도 등의 추가 코스를 모두 포함하면 현재까지 26개의 올레가 만들어진 셈입니다. 그동안은 해안길을 중심으로 올레가 조성되었기에 앞으로 내륙을 연결하는 코스가 더 많이 준비될 걸로 기대합니다. 조만간 있을 21코스 개장을 축하하기 위해서 제주의 회사 및 단체들과 함께 이제껏 만들어진 올레를 모두 순차적으로 걸어보는 행사가 진행중입니다. 다음도 이 행사에 동참해서 오늘 14-1코스를 걸었습니다. 다음직원 20여명, 다음서비스 10여명, 그리고 올레꾼 10여명 이렇게 50명 정도가 함께 걸었습니다. 올레14-1코스는 저지리사무소에서 시작해서 제주자연생태문화체험골까지 이어지는 약 19km의 내륙 올레입니다. 현재로써는 바다/해안길을 끼지 않은 거의 유일한 코스입니다. 오늘은 14-1 전체 코스를 걷지는 않고, 저지리사무소에서 오설록녹차발물관까지 약 10km정도만 함께 걸었습니다. (참고로, 오설록 이후 코스는 인적이 드문 곳이라 개인이 걷기에는 다소 위험한 곳입니다.) 14-1 코스가 내륙에 형성되었기 때문에 제주의 곶자왈을 제대로 즐길 수 있습니다. 더 자세한 코스 설명은 사단범인 제주올레의 홈페이지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제주올레)

아래에는 오늘 걸으며 찍은 사진을 중심으로 생각했던 점들을 좀 적어볼까 합니다. 스토리 전개상 일부 사진은 순서가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처음 사진들은 저지리사무소에서 이제 막 올레를 걷기 시작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평소 친분이 있는 회사동료나 가족 단위로 행사에 참가해서 삼삼오오 담소를 나누며 함께 길을 걸었습니다. 처음에는 한동안 집과 밭 사이의 길을 걸었습니다. 어제 저녁부터 내린 비가 도로를 막기도 하고 오름에서는 길이 다소 미끄럽기도 했지만 천천히 경치를 감상하며 걷기에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제주의 흙은 물을 가두지 못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농지가 논이 아니라 밭입니다. 땅이 척박해서 식물이 잘 자라지 않을 것같지만, 저지로 가는 버스에서 제주의 밭은 효율이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름에도 다양한 채소나 과일이 자라지만, 겨울에도 귤을 비롯해서 마늘과 보리 등의 식물이 자랍니다. 땅이 척박하고 수분이 없어서 논을 형성하지는 못하지만, 1년 4계절 항상 식물이 자라는 곳이 제주입니다. 그런 생명력을 가진 곳이 제주도입니다. 그리고 지난 노익상 작가님의 강연 이후로 제주의 흙이 검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흙에서 태어나 흙에서 자란 농부의 아들이었는데, 제주의 흙색깔이 고향의 흙색깔과 다르다는 것을 4년이 넘도록 자각하지 못했다는 점이 신기합니다. 그냥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렸는지도 모릅니다. 세상에는 당연한 것은 없는데 말이죠.

돌담 너머로 귤이 싱그럽게 익어갑니다.

강정동산의 나무 아래.

제주에서 살다보면 친숙하게 다가오는 제주만의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오름, 말, 집/밭 주변의 봉분 등입니다. 문도지오름은 이 세가지 모두를 가졌습니다. 제주에서 올레나 다른 관광지를 걷다보면 말들을 자주 봅니다. 길을 걷다가 말을 보면 말 구경에만 신경을 쓰지 마시고, 길을 조심스레 살펴야 합니다. 말들이 있는 곳에는 항상 말똥들이 지뢰처럼 늘려있습니다. 쾌적한 걷기를 위해서 말이 아닌 말똥을 살펴야 합니다. 말들은 순하기 때문에 무서워하지 마시고 조심스레 옆으로 돌아가시면 됩니다.

멀리 14-1코스가 시작한 저지오름도 보입니다.

문도지오름에서 내려다보는 곶자왈과 저지오름

올레 이정표를 좀 모아봤습니다. 마을길이 아닌 숲길을 걷다보면 가끔 길을 잃어 헤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올레에서는 걱정이 없습니다. 길 중간중간에 그리고 갈레길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올레방향표시와 올레리본이 있습니다. 올레 리본은 빵강과 파랑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배경을 날리고 사진을 찍으면 멋진 모습을 보여줄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나무에 얹혀있는 나무이름도 유심히 보시면서 걸으면 재미있습니다. 육지와 다른 나무들도 있지만, 제주만의 고유이름이 재미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오늘 길을 걸으며 (곶자왈을 통과하며) 일부러 사진으로 가장 많이 담은 것이 거목에 기생하는 넝쿨들입니다. 아무 생각없이 길을 걸을 때는 겨우 한두종의 넝쿨만 있는 줄 알았는데, 오늘 유심히 보니 다양한 종류의 넝쿨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거목에 기생하는 이런 넝쿨들을 보면서, 우리 인간도 이 대자연에 기생하면서 살고 있는 것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런 자연 생태계의 모습은 우리의 생활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다음이나 네이버, 또는 최근에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같은 서비스들은 거목을 형성합니다. 그런 거목에 기생해서 다양한 3rd party의 서비스들이 만들어져서 기생하는 그런 IT 생태계의 모습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특히 우리나라의 거목들은 조금 치사합니다. 저도 다음에 다니고 있지만, 거대 IT기업들과 중소IT기업들의 상생에 문제가 있는 것을 자주 봅니다. 물론 더 거대한 삼성이나 SK 등의 기업은 더한 모습도 자주 보여줍니다. 늘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런 거목들도 자연의 힘에는 속절없이 부러지고 뽑혀집니다. 지난 볼라덴 태풍 이후로 곶자왈의 거목들이 부러지고 뿌리채 뽑힌 것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습니다. 네이버나 다음, 그리고 다른 삼성이나 현대 등의 큰 기업들이 지금은 잘 나가고 있지만 그런 자만심이 태풍이라는 거대한 파고에 속절없이 무너질 수 있다는 그런 자연의 경고/교훈을 속깊이 새겨야 합니다.

태풍에 부러진 나무를 보며 자연에서 교훈을 얻습니다.

볼라덴으로 뿌리채 뽑힌 사진. (IT/기업 생태계에 대한 글을 적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후로는 제대로 뿌리채 뽑힌 나무 사진을 찍지 못해서 문도지오름에서 내려오는 길에 찍은 사진을 사용했습니다.)

가을이 익어 이제 겨울의 문턱까지 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 몇 주동안 기온도 제법 내려갔습니다. 나뭇잎들은 색이 바래고 낙엽이 되고 있습니다. 가을 억새도 그 힘을 잃고 있습니다. 이제 또 하얀 눈이 내리겠지요. 지난 겨울에 눈 내린 한라산을 여러번 등산했었는데, 그래서 빨리 눈이 내려서 다시 한라산에 오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오늘 올레걷기의 마지막은 오설록 녹차밭입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이 나무들에서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나오는 봄이 또 오겠죠?

평소에 제주여행은 자가용을 이용합니다. 자가용을 이용하면 중간 과정은 모두 생략되고 도착지에 대한 기억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버스를 이용해서 제주시에서 저지리로, 또 오설록에서 제주시로 이동했습니다. 운전하지 않으니 이동하는 중간 과정들을 모두 볼 수 있었서 좋았습니다. 또 조금 높은 버스의 뒷자리에서 내려다보니 승용차에서는 볼 수 없었던 조금 다른 제주의 모습도 볼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내가 이 길을 그렇게 자주 다녔는데 왜 이제껏 이 광경을 보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됩니다. 조금 천천히 걸어보기, 조금 다르게 걸어보기, 조금 높은/낮은 곳에서 보기 등등... 작은 실천/변화만으로도 많은 교훈을 얻습니다.

우리는 흔히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런데 지난 이명호 작가님의 강연 이후로 오늘은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주에서 나무 연작을 다시 시작한다면 추천해주고 싶은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숲을 보더라도 결국은 나무를 봐야 합니다. 한그루 한그루 모두를... 한그루로는 숲이 될 수 없지만, 그 한그루도 숲의 일부입니다. 생태계가 그렇습니다. 한그루의 나무가 빠지면 잘 모르지만 그렇게 한그루씩 빠지다 보면 숲이 없어집니다. 전체 숲을 파악하는 눈도 필요하지만 나무 한그루 한그루를 관찰하는 눈도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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