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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 Jeju

제주의 어느 가을날

오랜만에 아무런 계획이 없는 토요일은 늦잠을 자기에 안성맞춤이다. 10시가 다 되어 눈을 뜨고 침대에서 누운채로 아이패드를 켜서 페이스북에 올라온 친구들의 불금기록도 살펴보고 핀터레스트에 올라온 예쁜 사진들도 감상하고 그런 여느 토요일 오전... 오늘은 그냥 이렇게 한가히 침대에서 하루를 보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또 그냥 차를 타고 저지문화예술인의 마을을 다녀와서 SET 블로깅을 할까?라는 생각도 든다. 그냥 고민과 갈등 속에 시간을 보내며 문득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오전 내내 침대에만 누워있던 나 자신을 부끄럽게 만드는 푸른 가을 하늘. "그냥 조용히 시간을 보내려고 했는데 날씨가 날 밖으로 이끈다. 어디 가지?" 이렇게 페이스북에 올린다. 그래 무엇을 하든 어디를 가든 지금 집밖으로 나갈 타이밍이다. 주말동안 먹을 밥을 안치고 또 밥을 먹으면서 그런데 어딜 가야할까?를 또 고민하게 된다. 차를 타고 멀리 갔다 오기에는 살살한 날씨에 그냥 기름만 축내는 것같고, 그렇다고 근처에는 딱히 생각나는 장소도 없고... 그래서 그냥 가을 사진이나 찍자고 나선 곳이 바로 회사 주변의 공터를 매운 억새밭... 평소에 출퇴근을 하면서 스쳐지나갔던 그곳 그리고 창밖으로 고개만 내밀면 보이는 그곳이 그렇게 아름다운 곳인지는 천천히 걷고 나서야 깨닫는다. 산업단지 주변에 공사판이 벌어져서 공사차량들이 왔다갔다해서 먼지가 날리고 또 온갖 공사소음으로 아름다움이란 찾아볼 수 없을 것같던 그곳에서 또 다른 아름다움을 만나니 기분이 좋아진다. 길가의 오래된 묘지들마저도 그림의 한 영역을 이룬다.

그래서 또 여러 생각들이 겹친다. 양면성. 사진을 찍다보면 깨닫는 사실이 있다. 어쩌면 남이 잘 찍어놓은 사진을 보면 깨닫는 건지도 모른다. 어떤 것은 멀리서 볼 때 아름답고 또 어떤 것은 가까이서 볼 때 아름답다. 그런데 멀리서 볼 때 아름다운 것을 너무 가까이서 사진을 찍으면 영 이상하게 나오고, 반대로 그냥 볼 때는 지저분해보이지만 가까이서 특정 영역만 사진에 담으면 또 멋진 작품이 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리고 때로는 차를 타고 가면서 빠르게 훑어보면 멋진 풍경이 있고 역으로 천천히 걸으면서 자세히 볼 때 멎진 풍경이 있다. 아무렇게나 자란 억새밭은 차를 몰고 지나가면 멋있는데, 또 막상 내려서보면 덤성덤성 자란 풀들과 여러 생활쓰레기들 때문에 왜 내가 차를 세웠지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렇지만 또 주변을 천천히 걷다보면 또 나름 예쁜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멀리 가야 아름다운 것을 담을 때도 있지만 또 가까이에서도 아름다움을 담을 수가 있다. 저지리까지 차를 몰고 갔다면 그곳의 아름다움을 담았겠지만, 오늘처럼 동네를 걷지 않았다면 이 동네의 아름다움을 담지 못했을 거다. 순간의 포착이 중요할 때가 있고, 또 일몰사진이나 결정적인 순간과 같이 진득이 기다렸다가 한장을 남길 때도 있다. 아침에 아름다운 것이 있고 또 저녁에 아름다운 것이 있다. 같은 곳도 계절에 따라 아름다움이 다르다. 총 천연색이 어울릴 때가 있고 흑백의 강한 대비가 어울릴 때가 있다. 포커스가 잘 맞은 쨍한 사진이 좋은가 하면 그냥 블러아웃한 사진이 마음에 들 때도 있다. 또 혼자 자유롭게 돌아다닐 때만 얻을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고, 또 둘이서 또는 여럿이서 함께 걸을 때 얻을 수 있는 아름다움도 있다. 내 감각에만 의지할 때가 있는 반면, 옆에서 알려줄 때 비로소 깨닫는 아름다움이 있다. 자연만 담겠다면 혼자가 편한데, 자연만 담은 사진을 나중에 보면 또 쓸쓸하기도 하다. 그리고 피사체가 있으면 배경은 조금 무시되는 경향도 있다. 피사체를 굳이 아름다운 여성으로 국한시키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제한하는 게 나을 것같다.^^ 다음스페이스로 이사온지도 반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급하게 심어놓은 잔디밭이 바둑판을 이뤘는데, 지금은 사이 공간이 거의 메워져서 그냥 너른 잔디밭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잔디밭을 만들 때도 처음에는 돈으로 해결해야할 때가 있었고 지금은 그저 시간이 해결해주기를 기다릴 때인 듯하다. 그렇게 모든 것은 양면성 또는 다면성을 가진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머리 속으로는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가 울려퍼진다.

그냥 걸으면서 찍었던 사진을 올린다. 사진에 굳이 설명을 붙일 이유는 없는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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