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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관념 속의 기획자들

회사에서 다양한 서비스와 기능들을 새롭게 추가하지만 모든 것이 성공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많은 돈을 투자한 프로젝트도 최종 단계 또는 런칭을 한 이후에 성과가 별로 좋지 않으면 투자한 자금을 순손실로 처리하고 접는 경우도 있다. 반면에 별로 기대를 하지 않고 그냥 만든 서비스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완소 아이템/서비스가 되는 경우도 간혹 본다. 왜 어떤 서비스는 성공하고 또 비슷한 다른 서비스는 실패하는 걸까? 하이컨셉 하이터치 시대에 참신한 컨셉/개념의 부재, 친근한 터치의 부재, 또는 부적절한 전략적 타이밍 등을 예전 글에서 말한 적이 있다. 또 다른 글에서는 실패하는 서비스는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냥 필요할 것같은 것을 내놓기 때문에 그렇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

최근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런데 입사한지 채 1년도 되지 않았고 단독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전담한 적이 없는 신입 기획자가 프로젝트의 메인 기획자로 배정되었다. 신입이기 때문에 의욕적으로 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또 모르거나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매번 의견을 구하는 모습이 예쁘다. 그래도 아직 서비스 런칭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지 옆에서 보기에 답답하기도 하다. 경험있는 기획자라면 금새 해치웠을 일도 속도가 조금 느리고, 어쩌면 속도가 느린 것이 아니라 기획의 프로세스와 결과물에 대한 구체적인 안을 모르는 것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신입 기획자에게 많은 것을 바라는 그런 욕심을 부리는 것은 아니지만, 옆에서 조금만 도와주고 메꿔주면 그/그녀가 금방 성장할 수 있을텐데라는 안타까움이 크다. 어쩌면 그/그녀가 지금 빠져있는 함정이 이 글에서 말하는 상황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신입 기획자들이 빠지는, 때로는 노련한 기획자도 빠져버리는 그런 함정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다. 그리고, 더 중요한 코멘트는 이 글에서 말하는 기획자는 단순히 서비스를 기획하는 그런 기획자만을 뜻하지 않는다. 더 일반적으로 다양한 이벤트를 설계하는 기획자도 포함되고, 또 개인/가정적으로 자신/가족의 삶을 디자인하는 그런 모든 사람들을 뜻한다.

최근에 사내에서 재미있는 행사들이 있었다. 사실 사내의 공식행사는 아니다. 제주바람에서 기획한 겟인제주 여행 및 공연, 사내의 기타동호회 주관의 미니음악회 및 MT/발표회, 그리고 사내 사진동호회가 주체한 <특별한 하루> 행사, 그리고 조만간 있을 올레걷기행사 (이건 공식인가?) 등에 참여했다. 혼자서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것은 좋아하지만, 음악회에 참여하거나 단체 행사에 참가하는 것은 내 적성에 맞지가 않다. 그래도 반복되는 지루한 삶에서 일탈의 물결을 일으키기 위해서 기꺼이 이런 저런 행사에 참가하고 있다. 물론 귀찮고 사람들의 눈이 편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행사에 참가해서 주변을 관찰하는 것이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한다.

기타동호회 MT를 다녀온 이후에 MT를 준비했던 기타동 회장이 게시판에 다음의 글을 남겼다.

(나름) 큰 행사를 진행하면서 기록에 대한 계획을 미리 세우지 않았던것이 가장 큰 실수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행사 악보집을 만들기는 했지만 준비 과정에서부터 후기까지 사진,영상, 문서 등에 대해서 이제서야 생각하니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T.T

이런 행사를 처음 준비하다보니 미쳐 생각지 못했던 많은 것들이 행사가 끝난 이후에 떠오른 모양이다. 그래서 답글로 '그렇게 기획자로 커가는 거임.'이라고 남겼다. 첫번째 행사에서 미흡했던 부분을 기록/기억해놓고 다음 행사를 준비한다면 다음 행사는 분명 이번보다 더 나아질 거라 믿는다. 만약 그렇게 시행착오를 조금 거치면서 새로운 행사를 계속 기획, 준비해간다면 위의 기타동 회장은 조만간 훌륭한 기획자가 될 거로 믿는다. 단순히 행사 기획자가 아닌, 삶/인생의 기획자로... 이렇게 MT나 공연/연주회를 기획, 준비한 그런 경험을 가지고 새로운 서비스를 만든다면 분명 재미있는 서비스도 만들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기타동회장이 지나가는 말로 "<특별한 하루>를 준비한 사진동의 회장/총무도 많이 힘들었을 거에요."라고 했다. 행사를 한번 준비해본 사람의 입에서만 나올 수 있는 반응이다. 나처럼 그냥 단순히 행사에 참가/참관을 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단순히 그 행사가 즐거웠느냐 아니냐에 대한 반응만 보였을 건데, 한번 큰 행사를 준비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다른 행사를 볼 때도 그 행사를 준비한 사람의 심정을 먼저 유추해보게 된 듯하다. 미리 도움을 요청했으면 다양한 측면으로 도와줬을텐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들은 역지사지의 동지애를 키울 수가 있었을 거다.

왜 의욕적으로 시작한 새로운 서비스가 실패하고 마는 걸까?를 고민하면서 최근에 오프라인에서의 일을 회상해봤다. 왜 서비스는 실패하는 걸까? 이전 글에서 밝혔듯이 '그냥 필요할 것같은 것'을 기획하고 만들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같다. 그냥 관념적으로 이런 저런 기능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게 있으면 좋겠지?라고 생각하고 서비스/프로세스/UI/UX 등을 기획, 개발한다. 관념에서 나온 결과물은 그저 핑크빛 전망 뿐이다. 현실성이 없고 실제하지 않기 때문에 이게 진짜 유용한지 판단할 수 없다. 판단을 할 수 있더라도 또 관념 속에서 판단한다. 그러니 그냥 좋을거다, 필요할거다, 사람들이 좋아할거다 정도로 판단하고 일을 진행한다. 그러다보니 명확한 기획안도 나오지 않고 일의 진행속도도 느려지고, 또 많은 리소스가 들어간 결과물도 애초의 의도에 벗어난 괴물이 튀어나온다. 그런 괴물은 분명 사람들이 좋아할 요소가 없다. 특히 시장에서 입지를 갖춘 회사에서 나온 제품들 중에 그런 괴물들이 많이 있다. 투자한 리소스, 즉 매몰비용이 높아서 쉽게 포기하지도 못하고, 그렇지만 인기도 없어서 계속 운영하기도 버거운 그런 괴물...

몇 해 전에 스티브 잡스가 애플이 끊임없이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내고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기술 Technology과 인문 Art의 만남이라고 말해서 사람들 사이에 오래 회자되었다. 그래서 이/공대에서도 기술뿐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등의 다양한 인문학을 가르쳐서 학생들의 교양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교양을 갖추고 기술을 터특한 사람만이 창의적인 사람이 되는 것처럼 떠들어댔다. 나도 그 순간에는 그런 것같아다. 그래서 대학에서 교양과목 수업이나 더 많이 듣고 졸업할 껄 그랬다면 후회한 적도 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잡스가 말했던 인문은 단순히 그런 교양과목이나 문화예술 참관을 뜻하는 것은 아닌 것같다. 위의 사내동호회 회장들과 같이 다양한 행사/이벤트를 기획하고 준비하고 또 실행에 옮기는 그런 활동 및 경험이 잡스가 말한 인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저런 행사을 준비하면서 진짜 이게 필요한가를 깊이 고민을 해보고, 또 실행에 옮기면서 부족했던 점을 복기해보고, 또 다음 행사에서는 그런 부족분을 보완하고... 그렇게 행사 또는 삶을 디자인해보면서 얻는 경험이 새로운 서비스나 제품을 만드는데 그대로 투영된다. 내가 전에 이런 행사를 해보면서 이런 기능이 있었으면 좋겠더라라고 생각을 하고, 그래서 그 기능을 해줄 서비스를 만들어서 다음 행사에 적용해보면서 만들어진 서비스/제품은 '필요할 것같은'이 아니라 '필요한' 것이다. 관념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경험과 삶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음악, 특히 비틀즈에 빠져있었던 잡스에게서 iPod과 iTunes가 나왔다는 점은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글머리에서 신입 기획자 얘기를 꺼냈다. 대학을 갓 졸업해서 회사 시스템이나 서비스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그/그녀가 처음부터 멋진 서비스를 기획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냥 주어진 업무이니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의욕은 넘칠 거다. 그러니 이런저런 것을 만들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까?를 궁리하고, 그렇게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고 본다. 아직 신입이라 대학을 다니면서 또는 생활하면서 느꼈던 필요성을 충족시킬 서비스를 주도적으로 만들 힘도 없을테니.. 자신이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고 주도적으로 일을 이끌어나가지 못하는 환경에서 그/그녀는 머리로만 생각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 그래서 서두에 언급한 것이지, 부족함을 지적하기 위해서 언급한 것은 아님을 재참 밝힙니다.*** 유능하고 경험있는 사람들도 그렇긴 매 한가지지만... 나도.

다양한 경험, 다양한 식견... 때로는 일상적인 일이 아닌 다른 행사들에 참가해보는 것도 좋을 것같다. 가능하다면 그런 행사를 직접 기획하고 만들어보면 더 좋을 거다. 삶에서 경험하지 못하고 그냥 관념으로 서비스를 만들다보면 결국 삶과 동떨어진 것이 나오기 마련이다. 프로토타이핑... 스타트업을 하면서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을 때 몇시간 또는 며칠 내로 시제품을 만들 수가 없으면 시도하지도 말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스타트업에 펀딩할 때도 얼마나 훌륭한 기획/경영자가 있느냐보다는 실제 서비스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개발자 수/비율이 몇이냐에 따라서 펀딩한다는 그런 얘기도 있다. 프로젝트의 성공은 서비스의 완성도보다는 어쩌면 현실성/실현가능성이 더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불가능한 것은 상상하고, 가능한 것은 손에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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