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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망할 서비스

추석 연휴동안 TV에서는 어김없이 많은 특선영화들을 보여줬습니다. 극장에도 자주 못 가던 시절에는 명절이나 국경일에 보여주는 만화, 영화 등을 보는 것도 연중행사였습니다. 요즘은 극장에도 쉽게 갈 수 있고 24시간 케이블TV에서는 영화를 보여주고 또 인터넷 스트리밍을 통해서 개봉작들을 그때그때 볼 수 있기 때문에 예전만큼 명절 특선영화들을 기다려지지는 않는 듯합니다. 그래도 명절이 시작하면 으레 이번 연휴에는 어떤 프로그램들이 준비되었는지를 확인하는 버릇은 여전합니다. 지난 밤에는 하지원씨 주연의 <7광구>라는 영화가 방영되었습니다. 작년 초의 선풍작인 <시크릿가든> 마지막 편에서도 밀어줬던 기대작이었지만, 2011년에 기대를 전혀 못 채운 영화 순위에 들정도의 쪽박을 찬 영화입니다. 그렇기에 TV에서 방영한다고 해도 별 기대도 없었고 다른 방송사의 프로그램이 끝난 이후에 시간이 남아서 결론 부분만 조금 봤습니다. 몇 씬을 보지는 않았지만 실패작이라는 흥행성적의 이유를 다분히 알 수가 있었습니다.

1년에 수십, 수백편의 영화가 제작되고 그 중에는 대박을 친 영화들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몇 편을 제외하고는 중박은 커녕 쪽박에 가까운 흥행성적을 거두는 것이 영화판입니다. 물론 홍보가 부족해서 진짜 잘 만든 영화가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고, 또 투자 대비 큰 성공을 거둔 작품들도 존재합니다. 어제 7광구를 보면서 저의 오래된 의문이 되살아났습니다. 저와 같은 아마추어 관객들도 영화의 일부 몇 씬만 보더라도 이 영화가 흥행할 수 있을지 또는 망할지를 감으로 알 수가 있는데, 오랜 시간동안 영화에만 일생을 바친 전문가 그룹인 제작자들, 감독들, 배우들은 처음 시놈시스나 대본을 받아봤을 때 또는 초반 몇 씬을 찍어보면서 그 영화가 성공할지 실패할지 감으로 알 수가 없는 걸까요?  때로는 글로 읽으면 재미있는 작품들도 있기 때문에 시놉시스나 대본만으로 해당 영화의 흥행을 점친다는 것은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적어도 처음 영화를 찍다보면 또는 그런 필름을 편집하다보면 이건 된다 또는 이건 아니다라는 감을 받을 거라 생각합니다. 때로는 판단 미스로 계속 일을 진행하는 경우도 존재하지만, 때론 '이건 아니다'라는 감을 잡고서도 끝까지 밀어붙여서 결국 쪽박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드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초기에 투자한 매몰비용이 아깝기 때문인 경우도 있고, 또는 이미 홍보가 다 된 작업을 중도에 포기하는 것이 (사회적 시선이) 두렵기도 하기 때문에 밀어붙이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이 드는 제품/서비스를 만드는 본인과 주변의 처지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세계 또는 국내 전체를 보지 않더라도, 지금 일하고 있는 이 회사 내에서도 일년에 수십가지 서비스가 기획되고 개발되고 출시가 됩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하는 경우는 손에 꼽을 만합니다.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는 커녕 존재의 인식조차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화 제작자들과 감독들과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영화에 전문가면서 왜 그들은 그들의 영화의 흥행성적을 제대로 점치지 못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바로, 왜 나와 동료들은 인터넷 서비스를 전문적으로 기획, 개발하면서 왜 우리가 만들고 있는 서비스의 흥행은 바로 점치지 못하는가?에 대한 의문으로 바뀌었습니다. 늘 새로운 서비스를 준비하고 런칭하면서 장미빛 전망에 사로잡혀서 이건 필히 성공한다는 그런 자기 암시를 넘은 체면으로 그 서비스의 진짜 기회와 위협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같습니다. 전문가의 식견이 아마추어 사용자들의 안목을 못 맞추게 됩니다.

스티브 래비가 적은 구글 Google에 관한 책 <In The Plex>에도 비슷한 내용들이 나옵니다. 검색과 데이터로 인터넷을 평정한 구글이지만, 이제껏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겨진 성공한 서비스보다는 처참하게 실패한 서비스/프로젝트들이 더 많다는 것을.. 인터넷 트렌드에서 소셜 및 위치정보 등의 컨텍스트를 간과해서 페이스북이나 포스퀘어 등에 선두를 내어주는 것이나 다양한 서비스에서 개인정보/프라이버시 문제를 너무 가볍게 취급해서 정부기관을 비롯한 많은 이익단체, 비영리그룹들로부터 공격을 받는 이야기 등이 구글의 성공 이면에 존재합니다. 제가 근무하는 다음도 구글의 그런 실패스토리 이상의 실패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규모가 작아서 외부에 덜 알려져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그런 실패 스토리를 하나둘씩 추가하고 있습니다.

아마추어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의 흥행을 점쳐보듯이 아마추어 사용자의 입장에서 내가 관여하는 또는 회사가 준비하는 서비스들의 성패를 점쳐보는 것이 똑같은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길입니다.

그냥 몇 씬만 봐도 망할 영화는 이유가 바로 보이는데, 전문적으로 하는 제작사나 감독 배우들은 시놉시스나 대본을 받아보면 또는 연기/촬영을 하다보면 그걸 모르나?라는 생각도 들지만, 또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사용자들은 한번 사용해보면 이게 될지 말지를 바로 감으로 아는데 또 직접 그걸 기획하고 개발하는 사람은 그걸 모르고 끝까지 서비스를 런칭해서 피를 본다는 것은... 남의 일에는 촉이 서는데 왜 자기 일에는 그렇게 무감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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