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Gos&Op

소비자는 혁신을 구매하지 않는다.


지난 글 (애플과 혁신을 바라보는 이상한 시선)에서 아이폰5에 대한 언론의 반응에 대해서 글을 적었습니다. 대체적으로 아이폰5에는 더이상의 혁신은 없고, 특히 포스트-잡스 시대에는 애플의 혁신 동력이 사라졌다는 류의 반응이 많았습니다. 그런 글들을 보면서 글을 적은 기자들은 혁신이 뭔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고, 또 객관성과 균형감각이 없는 이런 종류의 글을 계속 봐야하는가?라는 회의감도 느꼈습니다. 지난 글의 초안을 잠들기 전에 급하게 적었던 글이라서 표현도 거칠고 또 한두 스텝 더 나간 분석 또는 전망을 전달하지 못했다는 점이 조금 부끄러웠습니다. 그때 떠오른 생각이 '소비자는 혁신을 구매하지 않는다'였는데, 이에 대한 단락을 이전 글에 추가하는 것은 조금 늦어버린 감이 있어서 추가로 글을 적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글을 적으려니 글의 전개에 대한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특히 글 하나가 크게 관심을 받고 나면 다음 글을 적을 때는 항상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결정적으로 이 글을 적어야 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계기가 생겼습니다. 바로 왼쪽 옆에 첨부한 삼성에서 만든 아이폰5와 갤럭시S3의 비교 포스터를 보는 순간 이 글을 적어야만 한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글을 적어야 겠다고 마음을 먹은 후에 재미있는 글이 하나 더 올라왔습니다. 삼성의 저런 광고에 반대해서, 애플의 팬들이 반박하는 글/사진들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참고. Apple fanboys fight back against Samsung) 기업의 입장에서는 비교광고 (떄로는 네가티브광고)를 만들어서 자사의 제품/서비스를 홍보, 부각시키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애플은 그런 비교광고에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재미있게도 애플 제품의 소비자들이 기업을 대신해서 반박을 하는 재미있는 사건입니다. 일부에서는 애플빠라고 욕을 하겠지만, 삼성의 입장에는 그런 삼성빠 ('삼성알바'가 아닌)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기업의 지속성을 보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소비가 혁신을 구매하지 않으면 도대체 뭘 구매하지?라는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고상한 단어들을 떠올렸습니다. 친숙함, 기대감, 편의... 그런데 그런 단어들을 구차하게 나열하는 것보다는 더 재미있는 애널러지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음식/요리입니다. 사람들이 평소에 식당/맛집을 선택할 때의 상황을 떠올려보면 소비자들이 어떤 제품/서비스를 구매하는가를 잘 설명해줍니다. 일단 가격이라든가 이벤트와 같은 특수상황은 무시하고, 그저 지인들과 저녁약속을 잡는 경우로 생각해보겠습니다. 사람들이 맛집을 선택할 때, 그저 많은 재료가 들어간 요리를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그냥 맛있는 요리 또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요리를 선택합니다. (맛집 전문블로거와 같이) 시험삼아 새로운 식당/음식을 도전해보기도 하지만, 보통의 경우 평소에 맛있게 먹어서 자주 들러는 식당이나 주변에서 많이 추천해주는 식당으로 갑니다. 일반적인 경우 소비자들이 제품을 선택하는 것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갑에 돈이 없어서 편의점 삼각김밥을 선택하기도 하고, 특별한 데이트 때문에 무리해서 호텔식당에 가기도 하겠지만...) 

결국 취향의 문제입니다. 혁신도 소비자 취향의 한 축이 될 수가 있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더 많은/새로운 기능이 일부 소비자의 취향을 만족시키겠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많은 기업들이 최근 10년동안 꾸준히 논쟁이 되어왔던 미니멀리즘이라든가 인문과 기술의 조우라든가 소비자를 이끄는 디자인 및 감성이라든가 그런 것들에서 여전히 (소비자의 취향/트렌드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900년대 초반에는 제품의 존재만으로 소비자을 유혹했고, 1900년대 중반에는 기능의 다양성 및 가격 결정력으로 소비자을 유혹했고, 1900년대 후반에는 품질의 우수성으로 소비자를 유혹했듯이, 2000년대에는 디자인의 우아함 및 브랜드의 신뢰성 등으로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위의 비교광고를 처음 접하는 순간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이게 효과가 있을까? 비빔밥을 만드는데 5~6가지 재료면 충분한데, 쓸데없이 10여가지 재료를 마구 쑤셔넣어서 비빔밥에 밥은 없고 그냥 나물범벅이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비빔밥을 만들 때도 가장 맛있는 조합을 만들기 위해서 전략적 선택 (추가/배제)을 하는데, 고가의 소비제를 만들면서 그냥 모든 재료를 떼려넣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부터 아이폰5를 구매하고자 했던 고객들의 마음을 위의 광고로 되돌릴 수 있을까요? (기능적/스펙상의) 혁신을 강조하고 싶었겠지만 이게 혁신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블로거는 (원본글을 찾을 수 없네요) 아이폰5 키노트에서 애플이 아이폰5만으로 할 수 있는 (감성적인) 것들을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했다고 직적했습니다. 키노트 전체를 보지 못했지만 이제까지는 신기술을 선보이면서 그걸 가지고 어떻게 삶을 변화시킬지에 대한 감성스토리의 예시를 보여줬는데, 이번에는 그런 순서가 없었나 봅니다. 삼성이 애플의 룩&필이나 스펙을 비교하는 것보다는 삼성만의 고유의 룩&필이나 기능적 강점을 가지고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 더 나을 듯합니다.

기능이나 사용성과 같은 여러 측면에서 새로운 것 또는 혁신적인 것은 -- 일반적으로 --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소비자가 그냥 새롭다거나 혁신적이라고 해서 선택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그 새롭고 혁신적인 것이 소비자의 필요를 충족시켜주고 또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느냐가 관건입니다. 그저 많은 기능들로는 소비자의 필요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그냥 스펙의 나열만으로는 소비자의 (구매/사용) 욕구를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식객들의 입맛을 자극하는 재료와 조리방법, 즉 레시피가 있습니다. 그렇듯이 소비자를 현혹시키는 제품/서비스의 레시피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레시피가 소비자의 취향이 아닌 생상자의 취향에 맞춘 레시피라면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비록 그 제품/서비스가 아무리 새롭고 혁신적이라 할지라도..

글이 조금 이상하게 흘러갔지만,... 소비자는 혁신만으로 제품을 구입하지는 않습니다. 혁신이 눈요기로 그치면 혁신에 대한 불신만 쌓일 뿐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