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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무시의 기술 The Art of Ignorance

정보기술의 진화는 (정보) 필터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 원래 정보기술이라는 것이 지식의 축적과 공유를 촉진시키기 위해서 발전해왔다. 그러나 더 많은 지식이 쌓이고 더 많은 정보가 공유될수록 나에게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얻는 것이 더 어려워진다. 그렇기에 지식의 축적과 공유의 축의 정보기술과 함께 정보의 제한 및 여과의 축의 정보기술도 함께 발전해왔다.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나 조선시대의 4대 서고와 같은 것은 활자형태의 지식을 축적/보관하기 위한 대표적인 사례이고, 서구에서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그리고 동양에서는 중국의 3대 발명품 중에 하나인 종이 (나머지는 화약과 나침반)라던가 우리나라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나 직지심경, 그리고 팔만대장경과 같은 인쇄술 등이 대표적인 지식의 공유의 도구였다. 그러나 지식을 더 쉽게 축적하고 공유를 할 수록 쌓여가는 지식의 양과 종류도 함께 늘어갔다. 그렇기에 축적된 인류의 지식 속에서 지금 내게 필요한 정보를 추려내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 그런 측면에서 듀이의 도서분류학이 등장했고, 두꺼운 사서에는 색인이라는 아날로그 정보필터가 등장했던 것이다. 도서관이나 인쇄술이 아날로그 버전의 지식축적과 공유 기술이었다면, 장서는 분류체계로 정리되고 개념은 색인으로 재정열되는 것은 아날로그 버전의 정보여과 기술이다.

정보의 디지털화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활자가 0과 1로 표현되어 무수한 디스크 위에 기록이 되고 있다. 개인 PC에 기록된 정보는 어느 순간 이메일이나 트위터 등을 비롯한 인터넷을 통해서 세계 도처로 분산되고 있다. 도서관의 형태가 인터넷 아카이브로 바뀌었다면 정보분류나 색인은 검색엔진으로 발전해왔다. 인터넷 초창기에는 야후와 같은 포털을 중심으로 정보 아카이빙이 주도를 해왔다면, 그 중흥기에는 구글을 비롯한 검색엔진이 왕좌를 차지한 것도 정보의 축적 및 공유 그리고 여과라는 양 측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검색엔진은 사용자의 쿼리에 반응해서 그리고 여러 랭킹요소에 의해서 정보를 정렬해주는 정보필터를 제공해줬다면, 최근에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의 소셜네트워크를 통해서 지인이 제공하는 또는 추천하는 정보라는 개념의 소셜필터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더 최근에는 핀터레스트로 대표되는 정보큐레이션이라는 형태의 정보필터도 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핀터레스트가 대표적인 큐레이션 서비스이지만, 기존의 카페/커뮤니티나 개인블로그 등도 큐레이션의 개념이 녹아있다.)

정보를 축적하고 공유하는 기술이 무한 발전해나가듯이 정보를 여과하는 필터 기술도 함께 발전해나가고 있다. 그런데 필터가 아직은 우리가 원하는 수준은 아닌 것같다. 많은 사람들이 정보라는 급류에 휩쓸려 거의 익사 수준에 이른 것같다. 하루에도 세계 도처에서 전달되는 이메일 (물론 스팸메일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뿐만 아니다. 핸드폰이 보급되면서 SMS의 범람을 경험했듯이, 스마트폰의 보급은 카카오톡이나 마이피플 등의 메시징도 시도때도없이 넘쳐난다. 그리고 다양한 스마트폰 앱의 알람/노티기능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일보다는 스마트폰에 더 집중하는 것같다. 간혹 마이피플의 그룹채팅을 하다보면 어떤 이들은 조용히 해당 그룹을 떠나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그 사람은 분명 관심도 없는 주제에 대한 메시지가 계속 쏟아지면서 스마트폰은 계속 알람을 울려대기 때문에 매우 성가시고 귀찮아졌는 것같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 심지어 특히 컴퓨터 프로그래머들까지도 -- 그렇게 쏟아지는 알람소리/진동을 제어하지 못해서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이쯤에서 이 글의 요지를 적어야겠다. "최고의 정보필터는 무시다." 그동안 검색엔진이나 소셜네트워크, 또는 큐레이션 등의 다양한 정보필터들이 소개되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강력한 최고의 정보필터를 우리는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같다. 바로 무시 Ignorance다. 언젠가는 필요한 정보일 수는 있지만, 쏟아지는 모든 정보가 현재 내게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저 그런 정보를 그냥 흘려보내는 기술을 습득할 필요가 있다. 바로 무시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는 거다. 나름 컴퓨터광들도 스마트폰의 알람/노티피케이션 기능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조금은 한심스럽기도 하다. 마이피플 그룹에서도 그렇다. 누군가는 A라는 인물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특정 그룹(채팅)에 포함시켰는데, A는 수도없이 울려대는 알람이 귀찮아서 그룹에서 탈퇴해버린다. 분명 A는 무시의 기술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듯하다. 스마트폰의 노티피케이션 기능을 꺼두면 스마트폰에서 조금의 해방감을 누릴 수 있다.

질문에는 모두 답변을 해줘야 한다는 불문률이 생긴 것같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모든 질문에 답변을 할 필요가 없다. 답변을 거부하면 매우 큰 결례를 범한 것이라고 인식하는 것같다. 그래서 들어오는 모든 메일에 답장을 보내야하고, 모든 메시지에 응답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겼다. 특히 SMS나 카톡/마플 등의 IM의 경우는 찰라의 여유도 없이 바로 반응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것같다. 그게 마치 대단한 에티켓으로 포장되고 있다. 그래서 스마트폰에서 마플/카톡의 노티피케이션을 꺼두지 못하는 것같다. 안스럽다.

트위터를 사용하면서 나는 비동기의 미학을 배웠다. 그리고 또 무시의 지혜를 터득했다. 흘러가는 모든 물길을 댐이나 보로 막을 필요도 없고, 4대강사업처럼 새로운 물길을 만들 이유가 전혀 없다. 흘러가는 강물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최선일 수도 있다. 정보도 그렇다. 그냥 흘러갈 정보라면 그냥 가둬둘 필요가 없다. 그냥 흘러가고 또 흘러가고... 그러다가 언젠가 필요할 때가 있으면 검색엔진 등을 이용해서 되살려내면 된다. 물이 고이면 썩듯이 기록된 지식은 그냥 죽은 지식이다. (죽었다고 무효하다 invalid는 의미는 아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또는 RSS리더기에 올라오는 모든 글을 읽고 기억할 필요가 없다. 그냥 그렇게 흘려보내면 된다. 그 정보가 정작 내게 필요한 것이라면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내게 전달된다. 그렇지 않더라도 수많은 대안 정보가 있다.

보를 만드는 기술만 배울 것이 아니라, 물길을 터주는 기술도 배워야 한다. 빅데이터의 시대에 무데이터의 정신을 발휘해보는 것은 어떨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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