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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허상을 쫓는 사람들.

들어가기 전에... 지난 목요일 (2012.05.31)에는 제주 표선에 위치한 해비치 호텔에서 제7회 제주포럼 행사가 있었습니다. 행사의 일환으로 애플의 공동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 Stephen Gary Wozniak을 모시고 'IT 기술의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의 대담이 있었습니다. 표선은 제주시에서 자동차로 3~40분을 운전해가야하기 때문에 평소에 잘 가지도 않는 곳이어서 행사 참석을 망설였지만, 이때가 아니면 Woz를 직접 볼 기회가 없을 것같아서 참석을 신청했습니다. 행사장에는 예상은 했었지만 70%이상의 청중들이 주변의 고등학생들로 채워져있었습니다. 대담의 내용은 익히 대부분이 알고 있는 내용들이서 굳이 요약정리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어쨌든 40분정도의 대담과 20분정도의 질의응답,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인행사가 있었습니다. 저는 운 좋게 사인행사장의 앞쪽에 위치해있어서 지금 사용중인 MBP에 Woz의 사인을 빨리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래의 사진처럼 사인을 받았는데, 계속 사용하다보면 사인이 희미해질 것같은데 어쩌죠? 그냥 영구보전하고 새로운 MBP를 사야할까요?

저의 MBP가 Woz의 사인으로 더욱 블링블링해졌습니다.

이제 본 글의 본론으로 돌어가겠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워즈의 대담의 내용은 특별한 것이 없기 때문에 요약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런데 워즈의 대담을 들으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습니다. 그 생각을 지금 공유하려고 합니다.

행사장에 나름 일찍 들어가기 위해서 30분 정도 전에 표선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대담장은 고등학생들고 가득 메워져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거의 뒷부분에만 좌석이 남아있어서 그곳에서 대담을 듣기로 했습니다. 아래의 사진에서 보듯이 워즈의 실물은 눈으로 거의 확인할 수가 없었고, 스크린에 비친 모습만 확인이 가능했습니다. 물끄러미 스크린의 워즈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왜 지금 실물이 아닌 허상을 보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스크린에 비친 모습을 볼려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동영상을 확인하는 것이 더 낫을 것을 왜 고생해 가면서 이곳까지 왔는가?라는 생각이 났습니다. 그 순간부터는 얼굴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실물을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대담 중인 스티브 워즈니악. 그런데 너무 멀리 앉아서 실물을 잘 볼 수가 없었습니다.

스크린을 통해서 워즈니악을 보는 것뿐만이 아닙니다. 행사장에는 자리마다 동시통역기가 나눠져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귀에 이어폰을 끼고서 동역된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렸습니다. 바로 앞에 워즈의 목소리가 들리는데도 그 목소리가 아닌 통역된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대담의 내용/컨텐츠가 중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컨텐츠는 이 행사 외에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것이었는데, 통역된 목소리가 워즈의 육성보다 더 중요하게 취급받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담의 내용도 워즈의 개인사에 대한 것보다는 70%이상이 애플 또는 고 스티브잡스에 과련된 질문들로 채워졌습니다. (다행히 질문자들 중에서 학생들은 워즈가 겪었던 가장 힘들었던 시기 등에 대한 질문이 오갔다는 것에서 나름 희망은 봤습니다. 역시 희망은 어른이 아닌 학생들에게서 보였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분을 모셔놓고 그의 인생사나 생각, 가치관/철할 등을 묻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거의 아무런 관계도 없는, 심지어 보유 주식도 없는, 애플에 과련된 질문이나 잡스에 관련된 질문들로만 채워진 것은 워즈에게 너무 무례한 처사가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사전에 어떤 질문들이 오갈 것이라는 것을 사전 협의/조율하고 양해를 구했을 거라고 짐작은 가지만...

물론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실물을 앞에 두고 스크린에 비친 허상에 만족하고, 물론 잘 알아듣지는 못했겠지만 본인의 목소리가 아닌 통역사의 목소리에 만족하고, 물론 좀 덜 알려졌지만 그 본인의 이야기가 아닌 남 또는 이제는 거의 무관한 회사에 대한 이야기에 만족하는...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이 시대는, 이 세상은, 이 세대는 실체가 아닌 허상을 쫓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This is an Imaginary World. 실제하는 것보다 만들어지고 가공된 허상에 더 열광을 하는 것같습니다. 2009년도 Wired지에 실렸던 The Good Enough Revolution이라는 기사도 문득 떨올랐습니다. 실체보다는 허상/허구에 만족하듯이, 조금 귀찮더라도 더 완벽한 것보다는 그냥 저렴하고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에 만족하는 것 말입니다. 기사의 내용은 그런 쉽고 값싼, 즉 그냥 적당하고 편한 것에 대한 나름의 찬사를 보내고 있긴하지만,.. (사업적인 측면에서 그런 편하고 쉽고 값싼 것을 어떻게 제공해줄가?를 고민을 하지만, 실제 제 삶으로 돌아오면 더 완벽한 것을 얻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어쨌던 지금 이 세대는 그냥 적당히 좋은 것만 쫓는 것같습니다.

이제 결론을 내려야할 때인데... 결론은 각자 알아서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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