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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Op

존재의 이유

The Proof of Existence. 임정욱님의 다음 제주 오피스의 강연에 연관된 세번째 글입니다. 특별한 이슈가 없으면 마지막 관련글이 될 것같습니다. 오늘은 기업문화보다는 기업을 구성하는 사람 그리고 그가 만든 제품/서비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정욱님의 발표 중에 -- 그리고 애플과 스티브 잡스의 생애에서 꼭 등장하는 에피스드 중 하나인 -- 스티브 잡스가 1997년에 애플에 복귀해서 단행한 제품의 라인업 정리에 대한 일화가 있습니다. 애플과 그들의 제품이 시장에서 영향력을 상실해가고 있지만, 여전히 경쟁력이 없는 수많은 제품들을 생산/판매하고 있었습니다. 데스크탑만 하더라도 10여가지 모델이 생산되고 있었고, 그 외에도 프린트사업이나 PDA 뉴튼 사업 등도 있었습니다. (뉴튼은 실패한 사업으로 알려졌지만, 애플의 규모 및 기대치에 맞지 않았을 뿐이지 그 자체로는 실패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초기 제품의 결함음ㅠㅠ) 잡스가 복귀 후에 경여진들을 모아놓고 발표를 하면서 우리가 지금 많은 제품들을 생산하고 있는데, 가족이나 친구가 컴퓨터를 하나 추천해 달라고 부탁하면 (제품의 종류가 너무 많아서) 우리 제품 중에서 어떤 제품을 추천해줘야할지 결정할 수가 없다고 말하면서, 양산되고 있는 제품을 모두 접고 (PC의 경우) 데스크탑과 랩탑을 기준으로 소비자제품과 프로페셔널제품 두종류씩 총 4개의 라인업으로 정리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지금의 제품명으로는 데스크탑은 iMac이라는 소비자제품과 MacPro라는 프로제품을 남기고, 랩탑의 경우 MBP와 맥북이라는 프로/소비자제품으로 정리했습니다. 그외에도 뉴튼이나 프린터 사업 등도 함께 접었습니다.

그리고 정욱님의 경우에도 라이코스에 -- 이건 강연 이후의 담소 중에 나온 얘기같음. 다른 강연에서도 밝혔던 내용 -- 처음 갔을 때 불필요한 서비스들을 접고 많은 사람들을 내보내는 뼈아픈 구조조정을 단행했다고 합니다. 그때 구조조정/다운사이징의 어려움도 다시 밝히셨지만, 그 이후에도 경쟁력을 거의/완전히 상실한 제품/서비스를 그만 두기가 너무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유는 그 서비스의 담당자들이 절대로 해당 서비스를 죽이면 안 된다고 강경하게 버티고 있고, 조금만 개선을 하면 수익을 내는 서비스로 탈바꿈할 수 있다고 끊질기게 설득을 한다는 것입니다. 해당 서비스를 접으면 마치 자신의 존재 이유를 상실하는 듯이...

실제 많은 레이아웃을 단행되면서 제품/서비스 라인업과 함께 해당 제품/서비스를 담당하던 이들이 함께 퇴사를 권고받아왔던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 하에서 자신의 제품/서비스를 끝까지 지켜내는 것이 회사에서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인식되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물아일체 (내가 만든 제품/서비스와 나는 하나다)의 결의가 제품/서비스에 대한 오너십 ownership을 키워주는데는 좋은 역할을 하지만, 역으로 그 서비스를 종료시킬 때는 강력한 반발을 직면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과연 '제품이 사라지면 나도 사라진다'에 대한 생각을 언제까지 가져야할까요? (앞서 말했지만 경험상 그래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고, 인수합병 시에도 고용승계 등의 조건을 내거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겠지만...) 자신이 만들고/담당하고 있는 제품/서비스가 과연 그들의 회사 내에서의 존재이유일까요? 왜 제품/서비스에 의존해서 살아가야만 할까요? 회사에서 자신의 존재이유를 제품/서비스에 둘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둬야 합니다. 제품/서비스 라인업이 사라지더라도 여전히 필수불가결한 irreplaceable로 남을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능력이 있다면 벌써 자신만의 스타트업을 시작했거나 경영진들이 좋은 조건으로 계속 잡아두려고 했을 법도 하지만...

회사에서의 자기 자신, 즉 '사람'이 존재이유임을 증명해준 케이스도 1997년의 애플에 있습니다. 당시 라인업을 정리하면서 잡스가 강조했던 것은 고객들을 유혹하는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외부의 유명 디자이너들을 섭외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렸습니다. 그러나 결국 잡스가 선택한 인물은 이미 애플의 디자인팀을 이끌던 조나단 아이브 Jonathan Ive였습니다. 아이브가 직접 잡스를 찾아가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보임으로써 그는 여전히 애플의 영혼이 투사된 제품을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죠니는 천재잖아?'라고 반문한다면 저는 더 이상의 답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내'가 존재이유가 되어야지, 내가 만든 '무엇'이 나의 존재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그 무엇은 그저 나의 일부가 투영된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간혹 스타트업들이 적절한 시점에 회사 또는 기술을 다른 기업을 넘겨주지 못하고 결국 낙마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물론 그 반대로 끝까지 지켜서 더 좋은 기업으로 성장시킨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페이스북이 그런 사례입니다. 구글이나 MS의 끊질긴 구애에도 여전히 마크 저크버그는 새로운 자신만의 성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트위터가 뜨기 전에 Digg의 기세가 무서웠습니다. 당시에 구글이 Digg를 인수하려고 끊임없이 구애를 펼쳤는데, 결국 좌절했습니다. 그 후에 트위터 등의 실시간SNS의 주가가 높아지면서 Digg의 쇄락이 시작되었습니다. (최근에는 페이스북의 Apps 인터페이스 때문에 다시 재기하고 있다고 합니다.) 디그의 창업자들도 저크버그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겁니다. 더 성장할 수 있는 제품을 그냥 대기업에 넘길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앞서 말했듯이 내가 만든 제품 또는 창업한 회사는 나와 운명을 같이 해야된다는 그런 인식 때문에 (어쩌면 가격이 맞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지만) 디그를 구글에 넘기지 못하지 않았나라고 추측해봅니다.

'제품/서비스 = 나'라는 등식에서 조금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나의 존재이유는 나이지 내가 만든 그 무엇이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이 사회에서도 내가 만든 그 무엇으로 내가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써의 '나'로 평가를 받는 풍토도 갖춰져야 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회사에서 존재의 이유가 당신입니까? 결국 자신이 자신의 존재 이유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대체불가, 즉 유니크 unique해지는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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